우리나라 문씨의 대종인 남평문씨의 시조 [문다성]은 신라말에 남평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출생에 대한 설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서기 472년 전남 나주군 남평현 동쪽에 장자지라는 큰못이 있고 그 못가에는 천길이나 되는 높은 바위가 있는지라 군주가 하루는 못 기슭 그 바위 밑에 놀이를 함에 갑자기 바위 뒤에 오색 구름이 감돌더니 문득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지라 군주께서 마음이 이상하게 여겨져 곧바로 사다리를 만들게 영을 내리고 시종자로 하여금 올라가 보게 하니 석함이 있는지라 철사로 매어 당겨 내려 함을 열어 보니 함 가운데 어린아이가 있는데 피부가 옥설 같고 용모가 기이하여 마침내 군주께서 데려와 양육하니 나이 겨우 5세에 글을 자연히 통달하고 또한 무술이 뛰어나며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는 지라 그러한 고로 문자로서 성을 하고 다성이라 이름하고 명원으로 자를 삼으니 그 시대 사람들이 칭송하며 말하기를 밝기가 일월 같고 맑기가 성진 같다 하여 호를 삼광이라 하였다.14세에 대사도가 되고, 18세에 대사마 대장군이 되고, 삼중대광보국, 삼한벽상공신에 오르니 남평개국백을 봉하고 대사대부가 되었다. 수는 98을 누리고 시호를 무성이라 내리었다.
영주 입향조 남평문씨는 고려 시대부터 영주에 자리를 잡아 살고있었다.
순흥지에 따르면 고려 후기 문과 급제로 정승을 지낸 문질이라 기록하고 있고 영주지에는 고려1376년(우왕2)왜구가 영주에 엄습했을 때 왜구를 무찌르고 아버지를 구원한 문재도라고 기록하고 있다.두인물의 본관은 모두 남평 문씨로 밝혀져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문익점,문재인,문희상 등
남평문씨 시조 문다성 배향 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