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山市誌 1997년
제 1편 地理
......... 중략
제 9편 학문 문학 및 예술 언론출판
제1장 학문
제1절 선현들이 남긴 문집
제2절 현대의 학문활동과 연구업적
제2장 문학 및 예술
제1절 고전문학
제2절 근 현대문학
1. 서설
2. 시
(1) 1950년대 ---------------- 1262
③ 김윤식(金潤植: 1927~ ) ---------------- 1265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야인(野人) 서지(西芝), 1927년 3월 용성면 덕천리에서 출생했다. 용성초등학교를 졸업, 일본 동경전수(東京專修)대학에서 수학, 홍익대학 국문과를 나왔다. 한국전쟁때는 대구일보 기자 (1950~1951)를 거쳐 흥해중학(1952) 경주여고(1953~1958)교사를 끝으로 향리 용성으로 돌아와 농업을 생업으로 농민이 되어 향리를 지키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반독재 작품활동과 함께 농민운동을 전개, 수차의 필화와 끊임없는 관헌의 감시와 지방 정치배의 압력 아래서도 굽힘없이 직필로 일관하는 한편 대자연을 벗으로 대화하며 때론 붓을 놓기도 했으나 직필로 일관했다. 그의 2.28대구 학생의거를 소재로 한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의 반독재 항거시 등은 오래 남을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79년엔 전부터 논의해오던 ‘경산문학회’를 전상렬(全尙烈) 정석모(鄭夕茅) 도광의(都光義) 안태중(安台重)등과 함께 창립, 부회장을 맡았다. 1980년에 회장이 되고 1985년엔 숙원하던 ⟪경산문학(慶山文學)⟫창간호를 펴내고 계속 11집 발간에 이르고 있다. 1992년 임의단체로 현실적으로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경산문학회를 부득 사단법인 한국문협경산지부로 재발족케 했다. 1987년 ‘김성도(金聖道)노래비 어린음악대’를 그의 모교인 하양초등학교 교정에 건립하는데 주도 했으며, 1983년 6월 전국적인 행사로 ‘성사원효추모현창대제’를 주재하기도 했다.
그는 향리에서 향리단체인 경산고적보존회장(1961), 경산명륜학원 창립 출강, 경산사직제부활위원장, 압독문화보존회장 (1980~ ), 용성초등학교총동창회장 (1988~1996)을 맡았으며, ‘경산군민의 노래’(1961) ‘경산군민현장비문(1986) 및 경산시민헌장비문 (1992) 제정’ 제정위원등으로 향토문화의 발전과 향토사의 탐구 발굴을 위해 전력 봉사했었다.
그의 작품은 노장의 무위자연사상과 불교의 무상감의 영향 아래의 자연귀의의 서정시를 쓰고 있으며 독재에 대한 항거, 정치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참여시, 농민 및 노동을 소재로 한 농민시를 쓰기도 했다. 1960년 2.28 대구학생의거를 비롯하여 3.12마산사건, 4.19에 이르는 동안의 저항 항거의 작품, 5.16이후 발표된 일련의 작품으로 수차례의 필화를 입은 바도 있어 문단에서는 반독재항거와 사회고발의 참여시인으로 더 많이 소개되고 있다.
1951년 대구신보에 발표된 <가을의 노래>를 비롯해서 첫시집 ⟪오늘⟫(1957)이 나오기까지 지방 및 중앙지와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했었다.
‘청맥동인(靑麥同人)’(1956), ‘경북청년문학회’ 총무간사(1961), 예총경북지부 사무국장(1971), 경산문학회장(1980~1992), 한국문협경북지회 창립회장(1982~1984)을 역임, 향토문화상(1964) 경상북도문화상(1989)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문협 경산지부장( 1992~ )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오늘⟫(1957)외 4권, 편저론 백신애 소설집 ⟪꺼래이⟫(1987),논문으로 <백신애연구(白信愛硏究)>, <윤동주연구(尹東柱硏究)>등이 있으며, 1995년 4월 19일 서울 도봉구 수유리 ‘4.19국립묘지’에 ‘김윤식시비(金潤植詩碑)’가 세워졌다.
첫댓글 저도 엄청 존경 하는 분이옵니다.
우리 외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