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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역사(요약)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가장 권위 있는 국제축구대회를 ‘월드컵 축구대회’라고 한다.
FIFA는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의 약자이다.
또한 ‘월드컵 축구대회’는, ‘피파 월드컵(FIFA World Cup)’, ‘축구 월드컵’ 또는‘월드컵’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승국에게 수여하는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약자로 ‘월드컵’이라고 한다.
처음에 제작되었던 월드컵 우승 트로피의 이름은 ‘월드컵’이었는데, ‘월드컵 축구대회’ 제안자 ‘쥘 리메’의 이름을 기리기 위하여 1946년에 ‘쥘 리메 컵’으로 바꾸었다.
‘쥘 리메 컵’은 발음하기가 거북하므로, ‘줄 리메 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쥘 리메 컵’은 매회 우승국에게 수여하였고, 우승국은 보관하고 있다가 4년 후에는 다시 국제축구연맹에 반납하였는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하였고, 이로써 FIFA 규정에 의하여 총 3회 우승한 브라질이 ‘쥘 리메 컵’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쥘 리메 컵’은 1983년에 도난당했고, 절도범들에 의해 용해되어버렸다고 한다.
이후 1974 서독 월드컵부터는 월드컵 우승 트로피의 이름을 ‘FIFA World Cup(일명-FIFA컵)’으로 명명한 트로피가 제작되어 우승국에 수여되고 있다.
‘FIFA컵’은 팀의 우승 횟수와 상관없이 우승국에 영구 수여하지 않는 것으로 FIFA규정을 바꾸었다.
쥘 리메 컵처럼 분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월드컵 우승 팀은 FIFA컵을 다음 대회 때까지 보유하고 있다가, 실물을 반납한 후에는 실물보다 조금 작게 만든 도금한 복제품을 받는다.
FIFA컵 하단에는 우승국을 표시할 수 있는 명판이 17개가 준비되어 있기에, FIFA컵은 2038년 월드컵까지 존속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은 1930년, 프랑스인 ‘쥘 리메’의 제안에 따라 FIFA 주관으로 우루과이에서 처음 열렸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을 제외하고는 4년마다 개최되어왔다.
올림픽 대회 축구경기와는 달리 월드컵에는 프로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게 된다.
심판은 각국 축구협회가 제출한 심판명부에서 선발된다.
이 대회는 2년에 걸친 6대륙별 지역예선과, 지역예선에서 선발된 32개의 국가대표 팀이 참가하는 본선으로 이루어진다.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는 본선에 16개국 국가대표가 참가했으나, 1982 스페인 월드컵부터 24개국,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32개국 국가대표팀이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938 프랑스 월드컵 이후부터 개최국은 본선 자동 진출권을 획득했다.
1938 프랑스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前대회 우승국도 본선 자동 진출권을 획득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부터는 前대회 우승국일지라도 예선 대회를 통과해야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국인 브라질은 차기 월드컵 예선을 치른 첫 우승 팀이 되었다.
각 대륙의 예선전은 리그전으로 치러진다.
한국이 속한 아시아 대륙의 팀들은 참가국 수에 따라 몇 개조로 나누어 리그 방식으로 1차 예선전을 벌이는데, 이때 각조 우승을 차지한 팀을 다시 2개조로 나누어 각조 1~2위 팀은 본선에 오르고, 각조 3위는 플레이오프를 거쳐 유럽 예선 14위 팀과 최종 플레이오프전을 치르는 방식으로 본선 진출국을 결정한다.
아시아는 4개국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고, 유럽 팀과의 경기 결과에 따라 1개국이 추가되어 5개국까지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호주는 2010 남아공 월드컵부터는 아시아로 편입되어 예선전을 치르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아시아 대륙 최종 예선전의 일정과 장소는 FIFA와 아시아 축구연맹(AFC)이 협의하여 정하는데, 장소는 최종 예선전 진출국을 제외한 국가 가운데서 선정한다.
한국은 1954 스위스 월드컵, 1986 멕시코 월드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994 미국 월드컵,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함으로써 본선에 총 8회 진출했다.
첫 본선 진출이었던 1954 스위스 월드컵 때는 유례없는 점수 차로 패했으나(헝가리전 0:9, 터키전 0:7),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거치면서 점진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비록 16강 진출과 대회 통산 1승의 꿈은 여전히 실현하지 못했으나, 축구 강국들인 독일, 스페인, 볼리비아 등과 겨루어 2무 1패의 성적으로 24개국 중 20위에 올랐다.
그러나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 등과 겨루어 1무 2패의 성적을 거두는 데 그쳐 미국 월드컵 때보다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은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강팀을 잇달아 격파하여 4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4강전에서 역시 유럽의 강팀인 독일을 만나 0:1로 아쉽게 패한 후 터키와의 3, 4위전에서 터키에 2:3으로 패해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역대 대회 참가 사상 최고의 기록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계에도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 역시 숙원인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양국은 향상된 경기성적뿐만 아니라 매끄러운 대회운영으로 사상 최초의 월드컵 공동개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처음으로 원정 1승을 거두었으나, 1승 1무 1패로서 G조3위의 성적으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1승 1무 1패로서 B조 2위의 성적으로 드디어 처음으로 원정 16강의 대업을 달성했다.
E조에 속한 일본 역시 조2위로 원정 첫 16강에 올랐다.
리그전에서 수비수 이정수의 선제골과 박지성의 쐐기골로 그리스에게 완승한 허정무호는, 아르헨티나에게는 ‘이과인’에게 남아공 월드컵 통산 유일한 해트트릭을 허용하는 등 1:4로 대패하여 전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기도 했으나, 나이지리아와 비기므로 16강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게 1대 2로 아쉽게 패하여 원정 16강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우루과이의 공격수 ‘포를란’의 결승골은 뼈아픈 일격이었지만, 너무도 멋진 중거리 슛이었다.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에서의 포를란의 결승골은,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나라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골든볼’을 수상한 포를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격이었다.
뒤늦게 출장한 이동국이 경기 끝나기 얼마 전에 골키퍼와의 1:1 상황에서 실축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었고, 이것은 문전에서 약한 한국축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볼 수 있었던 수비의 허점과 이동국 선수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문전에서의 볼 처리 능력의 부족은, 앞으로 한국축구가 두고두고 풀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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