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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스럽게 눈이 보송보송 내리는 겨울밤, 소복소복 흰 눈이 창틀에 쌓여가요. 잠들지 못하는 빨간 머리 소년이 뒤척이다 그만 창 밖 세상을 한가득 채워가는 흰 눈을 발견하지요. 서둘러 털 스웨터를 입고 털신을 신고 빨간 장갑을 끼고 소년은 눈밭으로 달려 나갑니다. 그리고는 눈덩이를 굴려 점점 크게 만들죠.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키 큰 눈사람의 몸체가 완성되자, 엄마가 구워주신 과자로 코를, 난로에서 가져온 개탄으로 눈을 만들어줍니다. 그래도 어딘가 허전한지 소년은 아빠의 모자와 목도리를 눈사람에게 씌워주지요. 『눈사람 아저씨』 중에서 꿈과 사랑의 나라로 어린 독자를 초대하기 위해 레이먼드 브릭스는 날카로운 연필도, 둔탁한 느낌의 물감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색연필만으로 부드러운 눈의 뽀?한 느낌을 살리고 있어요. 파스텔 톤의 따듯한 색감의 그림 속 하나하나에는 눈 온 밤 어린 소년의 설렘과 아이의 꿈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세상의 질감이 묻어나요. 『눈사람 아저씨』에는 그 어떤 단어 하나도 제시되지 않은 체 오로지 삽화들로만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말은 필요 없어요. 마치 만화처럼 한 컷 한 컷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들로 시선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소년과 눈사람 아저씨가 조용조용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거든요. 그것도 말예요, 텅 빈 공간에 메아리치듯 깊은 울림을 갖고 있는 그런 소리가 말예요. 『눈사람 아저씨』는 일반적인 그림책처럼 32쪽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삽화는 전부 168개로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삽화를 그리려 했는지는 조금 뒤에 함께 살펴보기로 할게요. 그런데 연결되어 있는 삽화를 보면 마치 움직이는 사진의 필름을 보듯이 동작 하나 하나가 연속되어 있기도 해요. 그래서일까요? 레이먼드 브릭스 아저씨의 그림책들은 『눈사람 아저씨』 이외에도 많은 작품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많이 제작되었어요. 참고로 무려 2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다는 『눈사람 아저씨』의 애니메이션은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성으로 제작되어 있지만, 소년과 눈사람이 북극으로 비행할 때 흘러나온 노래 “Walking in the air"가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조차 글썽이게 될 정도로 애잔히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림책에 만화를 도입한 작가 대형 마트나 서점의 도서 코너에 가보면 꼭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즐비하게 줄지어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꼬마들의 모습이죠. 자신있게 대답해 드릴 수 있는데, 그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아시나요? 바로 만화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이 열광하는 것이 만화이기 때문에 요즘에는 학습 만화라는 장르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글쎄요. 글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으면 아이들의 관심을 지속시킬 수 없고,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어쩐지 그림책이란 것이 그네들에게는 다소간 유치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이란 반드시 글자를 모르는 취학 전 어린이 독자만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책은 분명히 아닙니다. 오히려 그림책은 작가가 글로서 표출하기 어려운 내용을 그림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인을 위한 그림책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곧 맏이하게 될 독자들의 경우, 꼬맹이들이나 읽는 그림책을 읽는 독서 행위 자체가 유치하다고 생각되나 봅니다. 글쎄요. 꼭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레이먼드 브릭스는 1973년부터 자신의 그림책에 만화적 기법과 형식을 도입한 그림책 작가로서 유럽에서는 아주 유명했습니다. 만화적 기법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로는 『산타 할아버지』,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 『작은 사람』, 『바람이 불 때에』 등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도서관계자들은 이런 그의 작품을 ‘그래픽 소설’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그럼 왜 레이먼드 브릭스는 자신의 그림책 속에 만화적 요소를 도입하고 꾸준히 그런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것일까요? 레이본드 브릭스가 밝힌 바를 전적으로 수긍한다면, 그 이유는 그의 출신과도 많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1934년 런던의 윔블던 공원 안에 있는 작은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그리고 있는 그의 작품 속 성인 주인공들처럼 그의 아버지는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우유배달원이었습니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과 세계 경제 공황의 여파로 영국 경제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도 하녀로서 남의 집 일을 거들어야만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여간 레이먼드 브릭스의 유년기는 유복한 환경과는 거리가 먼 듯합니다. 게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던 당시, 그의 가족은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이 승리하자, 무사히 런던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의 가족은(가족이라고 해봐야 부모님과 레이먼드 혼자였다고 합니다.) 다시 폐허 속에서 삶을 지속해 나가게 되지요. 청소년기의 레이먼드는 자신의 어머니가 끔찍이도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끝나면 아트 컬리지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만화를 그렸지요. 형제도 없이, 심지어 어머니마저 집을 비우기 일쑤였던 그로서는 만화를 그리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창조한 만화 속 인물들과 대화할 필요가 있었을 것 같네요. 20대 초반에 그는 ‘슬레이드 미술 학교’에서 2년간 정규 미술 교육을 받고 미술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직업화가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제안을 받고 삽화 작업을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아동서에 관심을 쏟게 되는데, 당시 그가 그린 『마더 구스 트래져리(Mother Goose Treasury)』는 영국에서 출간되는 우수 아동서에 수여되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1966년에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림책에 더욱 빠져든 그였지만, 그림책의 전통적인 제약에 갈증을 느낀 그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만화적 요소와 형식을 차츰 차츰 자신의 그림책 속에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먼드 브릭스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가 끊임없이 그림책 속에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그림책에 허용되는 지면의 수가 32쪽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32쪽에 걸친 삽화를 통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과감하게 한 쪽의 지면을 작은 커트의 만화로 적게는 두어 개, 많게는 열 개의 삽화로 쪼개었습니다. 두 번의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하고 많은 작품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등의 행운을 얻은 그림책 작가지만, 그는 현재 영국 교외의 작은 집에 거주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브라이튼 미술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독신으로 지낸다고 합니다. 그는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와도 대화를 시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묵직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에델과 어니스트』, 『바람이 불 때에』 등의 그림책을 통해서 많은 성인 독자들도 갖고 있습니다. 다시 크리스마스로 레이먼드 브릭스를 소개하면서 만화적인 요소를 그림책에 도입했다고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한 장에서 화면을 여러 칸으로 분할한 뒤 연속된 동작을 보여주는 만화적 방법은 산타클로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음의 두 작품 『산타 할아버지』와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시간적 배경으로 산타 할아버지의 분주한 하루 일과를 담고 있는 『산타 할아버지』는 간간이 말풍선 속에 글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체로 분할된 그림들 속에 연속되는 상황을 제시하여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작은 글자 정보라도 독자의 그림 읽기는 결코 어렵지 않다고 할 수 있겠죠. 이 책에서 시간의 흐름은 한 장에 펼쳐진 여러 컷의 그림을 연결해서 보는 가운데 산타 할아버지의 행동의 추이로 알 수 있으며, 공간은 자세하게 묘사된 배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는 과연 일 년에 딱 한 번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를 어떤 기분으로 맞이할까요? 이 책은 특이하게도 어린이의 시각이 아니라 매일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다 잘 이해됩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북극 산타 마을에 사는 산타 할아버지에게도 어김없이 12월 24일이 찾아왔습니다. 드디어 그 동안 아이들에게서 받은 선물 목록대로 준비해 둔 선물들을 순록이 끄는 썰매에 싣고 배달을 나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는 따듯한 차나 마시면서 집에서 쉬고 싶을 뿐입니다. 이해되시죠? 공감하시죠? 뭐든 일이 되고 보면 지긋지긋한 살낌이 먼저 다가오는 것은 사람이나 산타나 마찬가지인 것에 저는 빙그레 웃고 말았지요. 자, 어찌되었거나 아이들에게 기쁨을 나눠주러 떠나야 하는 것이 산타의 임무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산타의 일도 만만치가 않군요. 추운 날씨는 눈에서 진눈깨비로 바뀌고 하늘은 검은 먹구름을 몰고 오더니 이내 천둥번개까지 으르렁거립니다. 게다가 여기 저기 너무나도 많은 집들의 굴뚝은 왜 그렇게 구조가 다른지… 심지어 뚱뚱한 산타가 타고 내려가기에는 너무 좁은 굴뚝도 많아서 산타할아버지는 재투성이가 되어 넋이 나갈 지경에 이르지요. 하룻밤 내내 지친 작업을 마치고 전용 썰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산타 할아버지에게 따듯한 차 한 잔, 더운 목욕물은 천국과 진배없답니다. 어때요? 어린 아이들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산타의 피곤한 업무, 어쩐지 아이들보다는 일상의 과업에 지친 어른들이 봐야 ‘그래, 그렇지. 산타도 힘들 거야.’라고 맞장구쳐지지 않을까요? 자, 일년 내내 일만 하고 지낼 수는 없겠지요. 저런, 산타 할아버지가 12월 24일에만 일한다고 생각하셨다면 결과만 보신 게 아닐까요? 산타 할아버지의 집무실인 집에는 일년 내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온 선물 목록 편지로 그득합니다. 그것을 일일이 뜯어보고 또 일일이 주문하고 포장하는 것이 산타 할아버지의 주 업무인데 몰랐다는 말씀인가요? 음… 게다가 또 다른 업무 중 하나는 그 많은 아이들의 행동평가도 같이 해야 한다는 건데요, 이제는 아시겠죠? 얼마나 막중하면서도 힘든 일인지 말이죠? 그런 산타 할아버지에게도 여름휴가는 당연한 일이지요. 레이먼드 브릭스는 바로 이 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무슨 뜻인가 하면, 산타 할아버지에게 휴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이들의 엄마 아빠에게도 아이들로부터, 일로부터, 집안 허드렛일로부터 벗어나 며칠 정도는 푹 편안하게 쉬어야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메시지 말예요.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를 보면 휴가를 며칠 앞두고 산타 할아버지가 얼마나 들떠있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요. 순록이 이끄는 썰매를 멋진 캠프차로 바꾸고 눈에 띠는 빨간색 페인트칠을 한 산타 할아버지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휴양지에서 멋진 휴식을 가질 생각으로 행복에 들떠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산타 할아버지의 외모를 알고 있는 어린이들이 좀 많아야죠. 파리에 가도, 스코틀랜드에 가도, 심지어 라스베가스에 가도 번번이 산타의 정체를 알아보는 아이들 때문에 산타 할아버지는 제대로 푹 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한정된 휴가 기간이 끝나갈 무렵 산타 할아버지는 휴가지에서 서서히 지쳐가죠. 마치 우리가 피서를 떠나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와서 ‘휴, 우리 집이 최고야.’라고 말하듯, 산타 할아버지도 지친 순록의 등을 두드리면서 하는 말씀이 “수고했다. 우리 착한 순록들아. 역시 집이 최고구나.”입니다. 그런데요, 그것도 정말 잠시뿐, 집 앞의 마당에는 웃자란 잔디들이 할아버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전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엽서들이 할아버지의 확인을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분주한 일상은 시작입니다. 어른들은 힘들어요. 그렇죠? 큰 곰과 작은 사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을 요리하는 마녀에게는 제법 많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레이먼드 브릭스 아저씨의 『곰』이 가장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서 눈에 확 띄지요. 과연 ‘곰’ 답다고 할까요? 그럼, 『곰』이란 단행본 그림책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도서 출판 ‘비룡소’가 1995년에 그림책을 출간하기 시작하면서 그 첫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레이먼드 브릭스의 『곰』이었어요. 그 당시는 아직 그림책이 단행본으로서 우리나라 일반 독자들에게 낯설었던 시절이었는데요, 무려 268x370mm 사이즈(펼치면 4절 도화지 정도의 크기랍니다)의 거대한 이 책은 서가에 꽂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서점가에서 찬밥신세였던 적이 있다고 하네요. 지금에 와서야 작가와 편집자가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그림책 판형의 다양함이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쪽으로 이해되지만,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천편일률적인 크기의 전집류 시장이 대세였으니 당시에 엄청난 크기의 판형인 『곰』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을 생각하면 웃어야 될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셔야 할지 묘한 기분이 되네요. 『곰』은 하얀 털이 보송한 거구의 북극곰이 집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믿어주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주인공 소녀 틸리와 곰의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그림책 속에는 틸리가 엄마의 눈을 피해 자신의 침대 밑에 커다란 북극곰을 숨겨 놓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잠꾸러기 북극곰이 뒤척이다 그만 자신의 몸 위에 있던 침대가 흔들려 틸리까지 침대에서 미끄러지게 되지요, 이 장면이 꼭 십 여 년 전 단행본 『곰』이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에 떡하니 등장했던 모습과 어째 비슷한 듯해서 혼자 낄낄거리며 이 마녀는 웃었답니다. 그동안 숨어있던 거대한 판형의 단행본 그림책 『곰』의 등장으로 전집류 위주의 뻔한 그림책 시장을 흔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면, 음… 괜찮은 비교 아닌가요? 『곰』이 커다란 판형으로 마녀를 놀라게 했다면, 『작은 사람』은 그림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지면으로 마녀를 또 놀라게 했습니다. 레이먼드 아저씨는 여러분과 마녀조차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 지금 비밀로 작업 중에 있다는 다음번 그림책은 또 어떤 것으로 충격을 주게 될지 적잖이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려 64쪽이나 되는 그림책, 게다가 빼곡하게 적힌 글씨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미술책의 경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1992년에 발표된 『작은 사람』은 『선데이 타임즈』로부터는 “천재의 작품”이란 칭찬을, 『가디언』지로부터는 “생각을 바꾸어 주는 걸작”이란 칭찬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림과 글로 발휘되고 있는 유머 감각은 정말이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재미있고 그 어떤 소설보다도 유쾌합니다. 사실 이 그림책을 펼쳐 첫 장을 볼 때부터 비범했어요. 이 그림책은 “중국 속담에 ‘3일이 지나면, 생선과 손님은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는 문구로 시작되는데요,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 그러니까 닷새간의 반갑지 않은 손님인 근육질의 작은 남자와 존이란 남자아이의 동고동락을 다루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사람과 존의 이야기는 상당히 철학적이에요. 자아 정체성이 무엇이며, 사람 사이에서 관용이란 덕목은 왜 필요한 것이며, 다양성이란 어째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심각하지 않은 듯 풀어나가고 있는데요 그러면서도 평소에는 의심해보지 않았던 독자들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하니, 레이먼드 브릭스의 재능이 이쯤 되면 얄미워지기까지 하더군요. 몸집이 존의 손에 꼭 쥐어질 만큼 작은 아저씨와 존은 티격태격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다른 그림책에서 쉽사리 만날 수 없는, 아이가 어른을 돌보는 모양이 기발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식성도 까다롭고 취향도 남다른 작은 인간의 끊이지 않는 요구를 존은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 들어주지요. 그러다 작은 사람의 요구가 무례해지자 존은 어른이지만 자신의 손아귀에 쥘 수 있는 작은 사람을 장난감처럼 다루기도 하는데요, 이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지속적인 대화였습니다. 솔직히 이 책은 다분히 많은 층위에서 읽힐 수 있는 훌륭한 책이지요. 하지만 흔히들 이 『작은 사람』을 레이먼드 블릭스의 『눈사람 아저씨』, 『곰』에 이어 ‘우정 삼부작’으로 꼽는다고는 하지만, 아직 논리적 사고와 추론적 사유가 자유롭지 못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한테는 긴 이야기만으로도 따분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네요. 흠… 어찌되었거나 여러분이 이 마녀한테 레이먼드 블릭스의 ‘우정 3부작’을 연령에 맞춰 추천할 기회를 허락해 준다면요, 3세부터 6세 어린이에게는 『눈사람 아저씨』를, 7세부터 10세 어린이에게는 『곰』을, 그리고 11세 이상부터 100세 노인까지는 『작은 사람』을 추천하고 싶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봐야하는 그림책 이제 이 마녀는 정색을 하고 심각한 어조로 말하고 싶습니다. (어험) 이런저런 일로 베를린에 몇 차례 다녀온 일이 있었는데요, 2000년 독일인 친구의 소개로 아주 특이한 관광을 했습니다. 어디냐 하면요, 베를린 한 복판에 있는 대형 백화점과 영화관의 지하 150미터에 있는 핵전쟁 대피소입니다. 커다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귀가 먹먹해지게 되면서, 커다란 굴처럼 생긴 높이 3미터 가량의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눠진 대피소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약 2천 명을 2주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4층으로 된 침대들이 빼곡하게 있는 방, 2주간 버틸 수 있는 식수, 자가 발전기, 핵공격으로 입은 화상이나 낙진 등으로 인한 방사선 노출의 위험으로부터 몸을 지켜줄 약물들이 있는 약방, 그리고 작은 치료실들, 모르스 부호를 사용한 고전적 통신망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낙진이 지상에 떨어져 내리는 2주간을 버틸 수 있도록 마련된 대피소로서, 베를린 시민들 중 연령별, 성별, 직업별로 선택된 사람들을 핵전쟁 시에 수용하도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대피 시설이 베를린에만 스무 곳이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국민인 우리는 어떨까요? 언론매체나 동사무소에서 나눠주는 만약을 대비한 행동지침서조차 없습니다. 그나마 형식적인 민방위 훈련도 어쩐 일인지 시행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단일 민족의 뿌리를 중시한다고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게르만 민족들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누군가 살아남아 혈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는 철저한 의식이 우리에게는 전혀 없는 게 아닐까요? 레이먼드 브릭스의 『바람이 불 때에』는 바로 핵폭탄이 투하된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노부부가 정부의 지침서대로 대피소를 집 안에 만드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정부의 지침서대로 문짝을 뜯어 바람을 등지게 세운 뒤, 비상식량과 비상약품을 마련하고 지하실에는 비상 식수까지 준비해 두었지만, 노부부는 거대한 핵폭탄이 투하되고 섬광이 번쩍하고 뜨거운 열에 나뭇가지조차 그슬려 버린 폐해 속에 격리됩니다. 방송도 없고, 옆집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노부부는 불안 속에서 희망을 찾아 집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고는 그렇게 낙진에 노출되어 노약한 몸에 방사능에 의한 증세들이 빠른 속도로 하나 둘 나타나는데도, 그 노부부는 정부가 나눠준 지침서만을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마녀도,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만 전달할까 합니다. 대신 여러분께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꼭 보세요. 꼭 직접 보세요. 반드시 보고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의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들의 현재를 점검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바람이 불 때에』 그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준비하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 우리의 어린이들의 미래는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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