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월 23일 저녁 7시 30분 서울역에서 열린 ‘성과퇴출제 저지! 총파업투쟁 승리! 서울-수색지구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 신규조합원이 했던 발언입니다. 유머가 넘치면서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열정적 발언이었습니다.}
“성과퇴출제는 평생인턴제”
“우리 신규 조합원들도 당당하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울기관차 신규조합원 이재근입니다. 반갑습니다.
얼마 전 저희 지부장님께서 오늘 이 자리를 제안하시면서 오늘 야간근무였는데 근무까지 바꿔주셨습니다. 지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기 뒤에 관리자분들도 계시다면서요?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후문으로는 신규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하면 해고가 되고, 해고무효소송 2,3년 동안 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지금 발령대기중인 우리 동기들이 신규파업자는 발령대기되고, 그들이 니 자리를 채울 것이다. 또 평생 그렇게 낙인찍힐 것인지. 만약에 성과연봉제가 통과되면 저성과자로 퇴출되진 않을는지, 저희 신규조합원들은 너무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우리 신규조합원들 힘내라고 같이 한번 파이팅 한 번 해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저는 2016년 인턴기간을 거쳐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안녕하십니까” 하루에 수백 번 영혼 없는 인사를 외치던 그 인턴들. 불합리한 처우에도 일언반구할 수 없었던 그런 인턴들. 가장 소중한 동기들에게 앞에서는 웃음 짓고 뒤로는 칼을 갈며 짓밟을 수밖에 없었던 그 비인간적인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인턴들.
저는 성과퇴출제 노예연봉제의 다른 말은 평생인턴제라 생각하는데, 평생인턴제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 파업투쟁 승리하고, 내친김에 이 비인간적인 인턴제도 바꿔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거의 끝나갑니다. 서울기관차에 여섯 명의 동기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늦깍이 연애를 시작해서 정말 하루종일 웃음이 그치지 않고 화장실에도 웃으며 다니는 우리 병기형님. 이번 추석 상여금으로 부모님께 가죽 소파를 사드린 우리 착한 성현이. 같이 죽자고 이런 이름 부르는 건 아닙니다. 지금 근무하는 중이지만, 밤새 인생 상담해놓고 자세한 얘긴 내일 만나서 다시 얘기해요 하는 영익이. 이번 파업 기간 동안 서울대병원 선생님들과 친해져서 꼭 소개팅을 하자고 약속한 우리 기섭이. 그리고 술에 취해서 주짓수 좀 가르쳐달라고 밤새 뒹굴다가, 옆집 사람들에게 오해를 샀던 우리 막내 종준이.
저는 이 동기들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일 마치고 같이 소주 한 잔 나누면서 평생 서로 모자른 점, 부족한 점 채워주자고 약속한 동기들을 짓밟고 그들의 눈물로 채워진 연봉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따뜻한 소주 한 잔도, 교행하면서 나누던 손인사도, “1223[열차] 후부 좋습니다. 안전운행하세요~” 하던 손재홍 기관사님의 애교 넘치는 무전도 사라질 것입니다. 경쟁이란 이름 아래 질시와 반목과 결국 민영화에 짓밟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서울역을 이용하시는 시민여러분들에게도, 그리고 여기 앉아계신 철도노동자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이 성과퇴출제를 왜, 도대체 왜 시행하시려고 하는지 뒤에 계신 [관리자]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주장이 아니라 질문을 했습니다.
마무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여자친구랑 밀정이란 영화를 봤습니다. 거기에 의열단장으로 나온 이병헌의 마지막 대사가 있었습니다. 내일 로맨틱 성공적...은 아니구요.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디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파업의 끝에 무엇이 있든 저희 신규 조합원들도 쫄지 말고 당당하게 자랑스런 공공철도를 지키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겠습니다. 웃으며 함께 갔다 웃으며 함께 옵시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