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어느 글에서, 자랑스런 우리 조상 예순 분을 선정했는데 그 안에 공병우 박사를 포함했다. 공 박사님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독학으로 안과의사가 되셨고, 한글타자기를 맨 처음 만드신 분이다. 그러나 내가 예순 명의 위인 속에 이 분을 넣은 까닭은, 그런 것보다도, 이 어른이 돌아가시며 보여 주신 후손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다. 공 박사님은 1995년 돌아가실 때, 쓸 만한 장기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뼈는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기증하라는 유언을 하셨다. 무덤 만들 땅이 있으면 나무 한 그루나 배추 몇 포기를 심으라는, 평소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도 주저 없이 공병우 박사를 겨레 위인 60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았다.
지난해 5월 국민일보는 '좁은 땅 넓게 쓰자'는 기획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그 때의 기사를 요약해 옮기면 이러하다.
좁은 국토에 산 사람의 평균 주거 공간은 4.3평에 불과하지만, 죽은 사람을 위한 분묘의 평균 면적은 15평이나 된다. 산 자들을 위한 공간보다 3.5배나 넓다. 죽은 자들은 편히 누워 잠자고 있지만, 산 자들은 서 있기도 불편할 만큼, 남아 있는 땅이 좁다.
좀더 자료를 가지고 설명하면, 우리 나라 남한 면적은 9만9천600㎢인데, 이 가운데 1% 정도인 998㎢의 면적이 묘지로 덮여 있다. 묘지 면적이 서울시 면적의 배를 넘었고, 분묘 수는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2,100만기나 되는데, 이 가운데 40%가 버려진 무연고 분묘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분묘를 포함하면, 묘지 면적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넓을 것으로 추산된다. 또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1.2배에 달하는 8㎢의 땅이 묘지로 잠식돼 가고 있다. 정부는 산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부족한 땅을 넓히기 위해, 매년 14㎢의 공유수면을 매립하고 있지만, 정작 산 사람에게 돌아오는 면적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 기사를 읽다 보면, 정말로 우리는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고통 받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떨굴 수가 없다.
사람들이 이렇듯 매장을 좋아하는 데는, 매장이 효와 권력, 명예, 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 땅의 기득권자와 보수세력의 사고방식에 있다. 언젠가 정치인 김종필 씨는 부모의 무덤을 '왕기가 서린 명당(?)'이란 곳으로 불법 이장해서, 그 일이 한때 세상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또 전직 대통령 중에도, 부모의 시신을 '명당'이라는 곳에 매장하거나, 새삼스럽게 그런 곳으로 이장한 예가 있다. 대다수 재벌 총수나 큰 기업체 사장의 무덤 또한 마찬가지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돈 많은 부자도 늘어날 것이고, 권력자 또한 늘어나고 있으니, '호화분묘' 수는 앞으로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불법으로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의 도덕성도 문제지만, 정부가 무덤의 신분화에 앞장을 서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방부는 계급에 따라 매장과 화장으로 구분하여 국립묘지의 땅을 제공하는데, 장군의 경우는 8평 이내에서 매장을, 영관급 이하는 화장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살아 있을 때의 신분이 죽어서도 유효한 것이다. 국가보훈처에서도 국가유공자나 애국지사에게 매장으로 대우를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울의 국립묘지는 물론 대전의 국립묘지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따라서 머잖아 또 어딘가에 있는 아름다운 산천이나 옥토가 하루 아침에 까뭉겨지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무덤 동산이 새로 들어설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아무리 정부가 앞장 서서 매장 우위 행정을 펴고 있고, 이 땅의 부자와 권력자들이 매장 관습을 부추긴다고 해도, 그것은 머잖아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한정된 국토가 온통 무덤으로 뒤덮히는 세상을 어느 국민이 용납할 것인가. 산 자가 발 붙일 공간이 없는데, 죽은 자에게 안방을 내 주겠는가. 따라서, 좋으나 싫으나 고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 바로 우리의 매장 우위 장묘제도다. 우리 후손이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토록 하기 위해선, 이 땅에 있는 수많은 무덤을 모두 철거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산천과 옥토를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옛날 왕릉까지도 일부만 역사적 유물 또는 상징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다 철거해야 마땅하다.
그러면 해결 방법이 있는가. 어차피 사람은 죽고 시신은 남게 마련인데, 그렇다고 모든 시신을 공 박사님의 경우처럼 처리하도록 권장하거나 강제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대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고, 또 정부에서도 깃발을 처 든 대로, 매장 대신 화장을 하는 것이다. 먼저 정부는 무수한 왕릉을 정리하고, 국립묘지에 지금 있는 무덤이나 앞으로 새로 조성하는 무덤을 통털어 모두 화장만 수용해야 한다. 현재의 매장 무덤들을 일제히 정리하면 상당한 공간이 새로 생길 것이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부터 자신의 경우 반드시 화장을 원한다는 유언을 미리 공개해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화장의 경우, 그 처리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시신을 화장하고 남은 뼈를 가루내어, 아무 산이나 강에다 뿌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고, 국민 정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납골당에 유골을 한시적으로 안치하는 방법인데, 공동 납골당을 이용하거나 가족 단위로 만든 작은 납골당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문제가 많다. 특히 가족 납골당은 석재를 많이 이용하는데, 석재를 구하기 위해 산을 다시 파괴해야 하고, 또 여기저기 돌탑처럼 조성한 납골당은 보기에 봉분보다도 더욱 흉물스럽고, 철거하기가 봉분보다 훨씬 힘들다. 게다가 일부 부유층들은 가족 납골당을 만드는 데 쓸 석재를 외국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어쨌거나 가족 납골당은 묘지 면적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연을 파괴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는 데는 봉분보다 덜할 것이 없다. 셋째는 고인의 유골을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으로 만들어 간편하게 보관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유해를 화장해 3그램 정도로 압축한 뒤 엄청난 열로 가공해 0.25캐럿(50㎎)짜리 인조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인데, 유족은 이것으로 반지를 만들어 보관할 수도 있고, 빈 병에 담아 선반 위에 그냥 올려놓을 수도 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현재 약 2백50만원 정도 한다니, 무덤을 확보하고 관을 구입하는 등의 장례 비용을 생각하면 그다지 비싼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이용자가 늘어나면 그 비용은 훨씬 적어질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숲무덤 또는 나무무덤을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이상의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숲(나무)무덤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숲 공동묘지는 독일에서 잘 발달한 것으로 가장 자연친화적인 장묘제도이다. 이것은 나무가 울창한 숲에 유골을 묻는 것인데, 납골항아리 채 묻는 경우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거한다. 왜냐 하면 납골항아리는 썩지를 않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납골항아리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는 뼛가루를 그냥 나무 아래 뿌리거나 묻는다. 이미 이런 방법은 우리 나라에서도 일부 종교 단체에서 시행 중이다. 일정한 장소에 조약밭 같은 것을 따로 만들고, 그 곳에 고인의 시신을 화장한 뒤 얻은 고운 뼛가루를 뿌리는 것이다. 조약돌 같은 작은 돌 위에 뿌려진 뼛가루는 장례의식이 끝난 뒤 물뿌리개로 깨끗이 씻어낸다. 물론 그 곳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묘지 개념이다. 숲 속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런 무덤은 공간을 얼마 차지하지도 않고 보기에도 좋기 때문에, 나로선 앞으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장묘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무무덤 방법은 가족 납골당처럼 가족 단위로 나무무덤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집안나무(가목)를 한 그루 심고, 그 주변에 유골을 묻는 것이다. 납골항아리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고, 뼈를 가루내어 그냥 흙에 스며들도록 뿌리는 방법이 있다. 한옆에는 팻말을 세워 그 곳에 안치된 고인들의 이름과 생몰연대를 적어도 될 것이다. 집안나무는 뒷동산에 심을 수도 있고, 자기 집 뜰에 심을 수도 있다. 물론 이미 있는 나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집안나무는 우선 수명이 길고 크게 자라면 아름답고, 해충과 질병에 대한 저항성이 뛰어난 나무가 좋다. 예를 들면 은행나무가 그렇다.
부디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봉분 속에 매장하는 우리의 장묘제도를 과감히 개혁함으로써, 장래 후손에게 부끄럽고 이기적인 조상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