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300명 다치고 6명 죽었는데.. 중대재해법 시행돼도 70%는 처벌 불가윤태석 입력 2021. 07. 05. 04:31 수정 2021. 07. 05. 07:53 댓글 9개
<1>중대재해 외면하는 '중대재해법'
최근 1년 간 중대재해 발생 410개 기업 전수 분석
25%가 5인 미만, 44%는 2023년까지 적용 유예
한국일보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중대재해로 분류된 780건 중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410건의 재해조사 의견서를 입수해 해당 기업들의 사업장 규모와 공사금액(건설업)을 전수조사하는 방식으로 중대재해법에 미리 적용해봤다. 분석 결과 558개 기업 중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 소재 '동탄물류센터' 신축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정모씨 사망사고 현장. 사진=정씨 동료작업자 제공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올해 1월 8일, 충북 청주의 '암이스튼비앤알'이란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49세 노동자가 사망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던 그는 갑자기 컨베이어가 작동하는 바람에 벨트와 누름장치 회전축 사이에 끼여 숨졌다. 이틀 뒤인 1월 10일 판박이처럼 똑같은 사고가 또 발생했다. 전남 여수의 유연탄 저장업체 '금호티앤엘'의 하청업체 '성호엔지니어링' 소속 33세 노동자가 석탄운송 설비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던 중 갑자기 움직인 벨트 사이에 하반신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한국은 '산재공화국'이자 '중대재해공화국'으로 불려도 무색할 만큼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가 많다. 지난해 산업재해자는 10만8,379명(사고재해 9만2,383명, 질병재해 1만5,996명)에 달했고,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2,062명(사고재해 882명, 질병재해 1,180명)으로 집계됐다. 매일 300명이 다치고 6명이 죽었다는 의미다. 노동자 목숨을 깃털처럼 가볍게 취급하는 현실에서 기업의 경영 책임자에게 직접 안전보건 의무를 부과하고 의무 위반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엄중하게 처벌하자는 취지에서 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중대재해법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고 5~49인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원청 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은 법 공포(내년 1월 26일) 3년 후인 2024년부터 적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 중대재해법이 시행됐다고 해도 암이스튼비앤알과 금호티앤엘, 성호엔지니어링 모두 사업주나 법인 처벌은 불가능하다. 암이스튼비앤알은 상시 근로자가 6명이고 성호엔지니어링은 8명으로 법 적용 유예 기업이다. 금호티앤엘은 금호석유화학이 100% 주식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로 자본금이 755억 원, 지난해 매출액이 759억 원에 달하지만 상시 근로자는 45명(여수고용노동청 집계)이다. 금호티앤엘의 경우 2018년에도 유연탄 운송설비를 점검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3m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수고용노동청은 올 초 이 회사를 대상으로 관리 감독을 실시해 운송설비의 끼임 사고 방지 조치 미흡, 개구부 안전난간 미설치, 밀폐공간 작업 프로그램 미수립 등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사항을 117건이나 적발했다. 하지만 상시 근로자가 45명이기 때문에 중대재해법으론 엄단할 방법이 없다.
중대재해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중대재해를 △사망자가 1명 이상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과 기준이 조금 다르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한다.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5인 미만 기업이 4개 중 1개
한국일보는 얼마나 많은 사업장이 중대재해법의 성긴 그물을 무사 통과하는지 미리 파악해 보기로 했다. 본보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최근 1년간 산업안전보건법상 사고 중대재해로 분류된 780건 중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410건의 재해조사 의견서를 입수했다. 그리고 기업들의 사업장 규모와 공사금액(건설업)을 전수조사하는 방식으로 중대재해법에 미리 적용해봤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현장 조사 후 재해조사 의견서를 작성하는데, 고용부는 370건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원실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의견서 분석 결과 558개(원청 410개·하청 148개) 기업 가운데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해조사 의견서에 나온 558개 기업 가운데 제조업·기타업종은 221개이고 건설업은 337개였다. 업종과 관계없이 중대재해법상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기업은 137개(원청 87개 하청 50개)로 전체의 24.7%에 달했다. 2023년까지 법 적용이 유예되는 근로자 5~49인 기업(건설업의 경우 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은 246개(원청 203개 하청 43개)로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중대재해 발생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곧바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 기업은 제조업·기타업종은 47개(원청 41개 하청 6개), 건설업은 99개(원청 58개 하청 41개)로 전체의 26.1%에 불과했다. 29개 기업은 재해조사 의견서에 사업장 규모나 공사 금액이 기재되지 않아 파악이 불가능했다.
사업장 기준으로 살펴봐도 410곳 가운데 원청과 하청 모두 처벌을 받는 곳은 121개(29.5%)에 그쳤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에서 활동 중인 법무법인 율립 오민애 변호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지금도 근로기준법 등 주요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중대재해법에서도 통째로 빠진 건 큰 문제"라며 "5인 미만 적용 예외와 5~49인 적용 유예는 법 시행 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백한 사업주 책임도 처벌 불가
"중대재해법요? 사회적 타살이나 다름없는 사건이 벌어져도 사업주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할 텐데 실효성이 있겠습니까."
권오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지난 1월 '광주 사건'을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중대재해법 국회 통과 사흘 뒤인 1월 11일, 광주 플라스틱 재생공장 '씨씨씨폴리머'에서 일하던 51세 여성노동자 장모씨가 폐플라스틱을 압출기에 넣다가 칼날 같은 스크루에 오른쪽 팔이 빨려 들어가 과다출혈로 숨졌다. 이 사고는 사업주의 안전불감증과 정부의 안일한 관리 감독이 빚어낸 참사였다.
참사가 발생하기 6개월 전에 광주고용노동청(광주청)은 관내에 파쇄기를 보유한 291개 사업장을 불시 현장 점검했다. 지난해 5월 광주 폐자재 처리공장 '조선우드'에서 일하다가 합성수지 파쇄기에 몸이 끼여 숨진 김재순(25)씨 사망사건의 후속 조치였다. 광주청은 291개 사업장 중 고위험 사업장 30곳을 직접 점검했고 나머지 261곳에 대해선 △파쇄 날 접촉 방지를 위한 덮개 또는 방호울 설치 여부 △비상정지장치 위치 부적절 등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준수 여부를 묻는 자율점검표를 제출하도록 했다. 자율점검표를 제출하지 않은 55곳 중 39개 사업장에 대해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개선하도록 조치했다. 장씨가 일했던 씨씨씨폴리머도 개선 조치 주문을 받은 39곳 중 한 곳이었다. 광주청은 압출기 앞에 1m 높이의 방호가드를 설치하라고 회사 측에 지시했다. 그러나 사업주는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규정의 절반에 불과한 50㎝ 방호가드를 설치한 게 전부였다.
중대재해법 국회 통과 사흘 뒤인 1월 11일, 광주광역시 플라스틱 재생공장 '씨씨씨폴리머'에서 여성노동자 장모(51)씨가 부자재를 넣다 압출기 내부 스크루에 오른손이 끼여 숨진 당시 현장. 제공=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흉내만 낸 절반 높이의 방호가드는 되레 장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방아쇠가 됐다. 장씨는 기존에 없던 방호가드 위로 폐기물을 넣는 게 불편해지자 비닐봉지 등이 담긴 40㎝의 대형 마대자루를 발판으로 쓰기 시작했다. 물렁한 내용물이 담긴 마대자루 위에서 일하는 건 위험한 곡예를 펼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장씨가 균형을 잃고 스크루에 빨려 들어간 건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재해조사 의견서에 따르면 장씨에게 가해진 스크루의 힘은 5,000kg.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과 고통이 그를 덮쳤을 것이다.
권오산 부장은 "장씨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딸과 거동이 불편한 사위를 부양하고 있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광주청은 장씨 사망 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업주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처럼 사업주 책임이 명백한 사건도 당장은 중대재해법을 비껴간다. 씨씨씨폴리머의 상시 근로자가 5명이라 2024년부터 법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고용부에도 책임이 있지만 처벌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중대재해법 원안에는 인허가나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 처벌 조항이 명시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과정에선 삭제됐기 때문이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중대재해 대부분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재해를 줄이지 않고서는 노동자들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자신의 권한만큼 업무를 하지 않은 공무원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법에 명시된 적용 예외(상시 근로자 5인 미만) 및 유예 조항(5~49인)을 시행령을 통해선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적용 범위를 시행령에서 좁히거나 늘리는 건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선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법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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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최근 1년간(2020년 6월~2021년 5월) 전국에서 발생한 사고 중대재해 780건 중 410건의 재해조사의견서를 입수해 여기에 나온 기업들의 사업장 규모와 공사 금액(건설업)을 전수 조사하는 방식으로 중대재해법에 미리 적용해 봤습니다. 데이터 시각화 전문 스타트업 뉴스젤리와 협업해 제작한 '체험형 인터랙티브 지도'로 구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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