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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 Hugo)
제1부 팡틴
1.
1815년 샤를 프랑수아 비앵브뉘 미리엘 씨는 디뉴의 주교로 있었다. 그는 일흔다섯 살쯤 된 노인으로 가족은 누이동생과 늙은 하녀가 전부였다. 디뉴 주교관은 시 자선병원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교관은 아름다운 석조건물로 주교에게 당당하게 어울리는 저택이었다. 주교 전용 거실과 응접실, 서재 등을 비롯해 넓은 광장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있는 정원 등 모든 것이 웅장했다. 하지만 병원은 좁고 낮은 이층 건물로 좁아빠진 뜰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디뉴에 부임한지 사흘째 되던 날 주교는 병원을 찾아갔다. 방문이 끝나자 그는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장님, 지금 환자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스물여섯 명입니다, 각하."
"그런데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병실이 너무 비좁고 바람도 통하지 않아요."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각하."
"원장님, 뭔가 확실히 잘못되어 있군요. 당신 병원에는 비좁은 방 대여섯 개에 스물여섯 명의 환자들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커다란 집에 단지 세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되었군요. 당신이 이 집에 와서 살고, 내가 당신 집에 가서 살기로 합시다. 곧 당신 집을 비워주십시오."
이튿날 스물여섯 명의 가난한 환자들이 주교관으로 옮겨졌고, 주교의 가족은 병원으로 이사했다. 주교의 생활은 청빈했다. 그에게는 재산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국가에서 받는 봉급은 세 사람의 생활비인 천 리브르를 빼고는 모두 자선사업에 쓰고 있었다. 동생 바티스틴양도 거기에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디뉴의 주교는 오빠인 동시에 주교였으며 친구이기도 했다. 누이동생과 하녀는 오로지 그를 사랑하고 숭배했으며 그가 하는 말에 복종하고 협력했다. 바티스틴 양의 알뜰한 살림과 하녀의 엄격한 절약 생활 덕분에 주교는 그런 대로 살 수 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부자들한테는 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거두어들였다.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모두 그의 문을 두드렸다. 어떤 사람들은 기부하러 오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을 도와주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아무리 돈을 많이 받아도 그의 손에는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주는 그였다.
미리엘 주교의 청빈한 생활은 아주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모든 노인과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그렇듯이 그는 조금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 아침에는 한 시간 동안 명상을 하고, 그 다음에는 성당이나 자기 집 기도실에서 미사를 드렸다. 잡다한 일과 미사를 끝내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보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자기집 뜰을 가꾸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날씨가 좋을 때면 두 시쯤 집을 나가 거리를 산책했다. 그가 나타나는 곳은 어디고 잔치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은 사람들을 포근하게 해주고 따스한 빛을 주었다. 어린아이와 노인들은 마치 햇빛을 쬐는 듯한 모습으로 주교를 맞았다. 그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사람들은 그를 축복했다. 무엇이든지 딱한 처지에 빠진 사람에게는 모두들 주교의 집을 가르쳐주었다.
저녁 식사는 아주 검소해서 주로 물에 데친 야채와 수프가 식탁에 올랐다. 식사가 끝나면 그는 바티스틴 양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 자기 방으로 가서 글을 썼다. 그는 글쓰는 데도 소질이 있었고 학자이기도 했다. 때로는 손에 들고 있는 책이 무엇이든 간에 한참 읽다가 깊은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집은 이층으로 되어 있었다. 두 노부인이 이층을 쓰고 있었고 주교는 일층에서 살았다. 뜰에는 외양간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는 젖소를 두 마리 키우고 있었다. 그의 침실은 꽤 넓은 편이라서 추울 때는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디뉴에서는 장작 값이 무척 비쌌기 때문에 그는 외양간에 판자로 칸을 막아서 방을 하나 만들어 추운 날에는 거기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나무 탁자 하나, 짚의자 말고는 가구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식당에는 낡은 찬장 하나만 달랑 놓여 있었다. 주교는 그와 비슷한 모양의 찬장을 레이스로 덮어서 기도실에 갖다놓고 제단으로 썼다. 그에게 감동을 받아 회개하게 된 부잣집 부인들이 주교에게 새 제단을 마련해주기 위해 몇 번 모금을 했지만 그는 그 돈을 받아서 가난한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가장 훌륭한 제단은 주께 위로 받아 감사하는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주교가 가진 사치품이라면 옛날 소지품 중에서 남은 은그릇 여섯 벌이 있었다. 하녀는 그것이 초라한 테이블보 위에서 반짝이는 것을 기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주교는 "은그릇에 밥을 먹는 일을 그만 둬야 할 텐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하고 몇 번이나 말한 적이 있었다. 은그릇 말고도 대고모한테 물려받은 커다란 은촛대가 두 개 있었다. 촛대는 늘 벽난로 위에 놓여 있었다.
주교 침실 머리맡에는 작은 벽장이 있었는데 하녀는 저녁마다 그 은그릇 여섯 벌을 거기에 넣어두었다. 물론 열쇠는 언제나 벽장에 꽂혀 있었다. 집에는 자물쇠로 채워진 문이라고는 없었다. 성당으로 나갈 수 있게 된 식당 문에는 예전에는 감옥 문처럼 자물쇠와 빗장이 걸려 있었지만 주교가 모두 뜯어버리게 했기 때문에 걸쇠만 걸려 있었다. 언제고 누구건 그것을 밀기만 하면 열리게 했던 것이다.
처음에 두 노부인은 그것을 몹시 걱정했지만 주교는 이렇게 말해버렸다.
"그렇게 걱정이 되거든 그대들 방에나 빗장을 걸구려."
그래서 결국 그들도 주교처럼 마음을 놓게 되었지만 하녀는 가끔 불안해했다. 언젠가 한 사제가 아마 그녀의 부추김을 받았던 모양인지 주교에게 물었다.
"주교님께서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밤낮으로 문을 열어놓는 것이 조금은 경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게다가 문단속을 그렇게 소홀히 하다가 무슨 불행한 일이라도 당하실까 봐 걱정되지 않으세요?"
그러자 주교는 사제 어깨에 손을 얹고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말했다.
"주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무리 지켜도 헛수고일 뿐이오."
겸손한 주교는 자신의 믿음을 넘어선 사랑을 갖고 있었다. 신의 모든 창조물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있었고 평생 동안 아무 것도 멸시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과 죄를 뉘우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을 인도하고 위로해 주려고 애썼다. 오로지 동정하고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 그들에게 권하는 일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제1부 팡틴
2.
그해 시월 초, 해질 무렵 한 사나이가 디뉴의 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안한 눈초리로 그 낯선 사람을 쳐다보았다. 사나이는 중간키에 뚱뚱한 몸집이었으며 나이는 마흔예닐곱쯤 되어 보였다. 누렇게 바랜 셔츠에 낡고 닳아빠진 무명 바지를 입은 초라한 차림새에 등에는 불룩한 새 배낭을 짊어지고 손에는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초라해 보이는 나그네는 땀과 더위와 먼지 때문에 더욱 지저분해 보였다.
당시 디뉴에는 크루아 드 콜바라는 고급 여관이 하나 있었다. 나그네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겨 한길 쪽으로 나 있는 문을 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요리를 감독하느라 바빴던 주인이 화덕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뭘 드릴까요, 손님?"
"식사를 하고 묵어갈까 하는데요."
"그렇게 하세요."
말하고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나그네를 훑어보았다.
사나이는 배낭을 벗어 문 옆에 내려놓고는 난롯가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디뉴는 산간 지방이라서 시월만 되어도 저녁이면 추웠다. 그가 등을 돌리고 불을 쬐고 있는 동안 주인은 쪽지에 뭐라고 쓰더니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시청 쪽으로 달려갔다. 사나이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생각에 잠겨 앉아있었다. 아이가 그 쪽지를 다시 가지고 돌아왔다. 주인은 그것을 주의 깊게 읽어보고는 나그네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손님, 방을 드릴 수가 없군요." 사나이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뭐요? 돈은 있습니다. 먼저 돈을 지불할까요?"
"그게 아니오!"
"그럼 뭡니까?"
"남은 방이 없어요."
"마구간이라도 좋은데요."
"안 돼오."
"왜요?"
"말로 꽉 차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헛간 구석이라도 좋소. 그리고 우선 밥부터 먹고 봅시다."
"밥도 줄 수 없소."
"제기랄!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오. 오늘 해가 뜰 때부터 계속 걸었소. 120리나 걸어왔소. 돈은 낼 테니 먹을 걸 좀 주시오."
주인은 그를 쏘아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어. 당신이 들어온 걸 보고 생각나는 게 있어서 시청에 사람을 보냈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주인은 쪽지를 사나이에게 내밀었다. 사나이는 그것을 힐끗 보았다. 주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누구한테나 공손하게 대하는 성격이야. 어서 나가."
사나이는 고개를 떨구더니 배낭을 집어들고 나갔다. 그는 한길로 나갔는데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만약 돌아보았다면 여관 주인이 손님들과 길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큰 소리로 떠들어대면서 자신을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의심과 공포에 찬 눈초리를 보았더라면 자기가 나타난 것이 머잖아 온 시내에 화제 거리가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여지없이 짓밟힌 사람들은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다. 저주스러운 운명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한참 걸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이 피로도 잊은 채 낯선 길을 정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고픔을 느꼈다.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어디 쉬어갈 만한 곳이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고급 여관에서는 그를 내쫓았다. 그래서 허름한 주막이나 초라한 여인숙을 찾기로 했다.
마침 거리 끝에 있는 목로주점의 불빛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주인은 불을 쬐고 있었다. 쇠고리에 걸어놓은 냄비 속에서는 음식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하지만 식탁 앞에 앉아 있던 사나이들 가운데 생선장수가 하나 있었다. 그는 여기 오기 전, 삼십 분 전쯤에 여관 주인을 둘러싸고 있던 군중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는 슬그머니 술집 주인에게 눈짓을 한 뒤 구석으로 다가가 그에게 낮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술집 주인은 벽난로 옆으로 돌아와 사나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나가줘야겠어." 사나이는 주인을 돌아다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당신도 알고 있군요."
"그래."
"난 다른 여관에서도 쫓겨났지요."
"여기서도 나가 줘야겠어."
"그럼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다른 곳으로 가 봐."
사나이는 그곳을 나왔다. 여관부터 따라와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몇몇 아이들이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는 화가 나서 뒤돌아보며 지팡이로 아이들을 위협했다. 아이들은 새떼처럼 흩어졌다. 그는 형무소 앞을 지났다. 초인종에 매달린 쇠줄이 문에 늘어져 있었다. 그는 종을 쳤다. 샛문이 열렸다.
"간수님." 그는 공손하게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오늘 하룻밤만 재워주실 수 없습니까?"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형무소는 여관이 아니야. 붙잡혀 오면 재워주지."
샛문은 다시 닫혔다.제1부 팡틴
3.
그날 저녁 디뉴의 주교는 꽤 늦게까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여덟 시가 넘도록 글을 쓰고 있는데 하녀가 들어와 여느 때처럼 침실 벽장에서 은그릇을 꺼내갔다. 주교는 식사 때가 된 줄 알고 책상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식사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식탁은 벽난로 가까이 있었고 난로에서는 불이 제법 잘 타오르고 있었다. 주교가 식당에 들어갔을 때 하녀는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늘 바티스틴 양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주교도 이미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바로 출입문 빗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어떤 소문을 듣고 온 모양이었다. 수상한 부랑자가 하나 들어왔는데 다들 문단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세차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하고 주교는 말했다.
한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문을 열어놓은 채 한 걸음 걸어 들어와 멈춰 섰다. 어깨에는 배낭을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으며 눈에는 거칠고 대담하며, 지치고 사나운 빛이 어려 있었다.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하녀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벌벌 떨면서 멍하니 서 있었다. 바티스틴 양은 깜짝 놀라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교를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지극히 침착하고 평온한 빛을 되찾았다. 주교는 말없이 사나이의 얼굴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들어보십시오. 전 장 발장이라고 합니다. 감옥에서 19년 동안 징역을 살았습니다. 나흘 전에 석방되었지요. 지금까지 계속 걸어왔습니다. 저녁에 어떤 여관에 들었다가 쫓겨났지요. 전과자의 누런 통행증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시청에 가서 신고해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도 모두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절한 분이 이 댁에 가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여긴 도대체 어딥니까? 돈은 있습니다. 19년 동안 감옥에서 일해 번돈 109프랑이 있습니다. 배가 몹시 고픕니다. 재워주시겠습니까?"
"마글루아르 부인." 하고 주교는 말했다.
"한 사람 몫을 더 가져와요."
사나이는 서너 걸음 걸어나와 식탁 위에 있는 램프 옆으로 다가섰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는 뜻밖이라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전 징역을 산 사람입니다. 죄수라고요."
그는 주머니에서 커다란 누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게 제 통행증입니다. 이것 때문에 어디를 가든 쫓겨났습니다. '장 발장, 석방된 죄수. 19년간 징역살이를 했음. 가택침입 절도죄로 5년, 네 번의 탈옥 기도로 14년. 극히 위험한 인물임!' 이렇게 써 있습니다. 모두 절 쫓아냈지요. 그런데도 절 받아주시겠습니까? 식사도 하고 잠도 잘 수 있을까요?"
"마글루아르 부인." 주교는 말했다.
"손님용 침대에 흰 시트를 깔아놓아요."
하녀는 주교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식당에서 나갔다.
주교는 사나이에게 몸을 돌렸다.
"자, 앉아서 불을 쬐도록 하시오. 곧 식사가 준비될 것이오."
그들은 팡틴이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가냘픈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럽게 헐떡이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얼굴은 부드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 핏기 없던 얼굴은 맑아져 있었고 뺨은 보기 좋게 발그레했다. 그녀의 순결과 청춘에서 남겨진 단 하나의 아름다움인 긴 갈색 눈썹은 감겨진 채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는데 아마 인간의 육체는 죽음의 신비스러운 손가락이 영혼을 꺾으려는 순간이 다가오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마들렌 씨는 한참 동안 침대 옆에 가만히 서서 병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팡틴이 눈을 뜨더니 시장을 보았다. 그리고 웃으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제트는요?"
그녀의 온몸은 기쁨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 짤막한 물음에는 깊은 믿음과 강한 확신이 넘쳐 있었다.
"진정해요. 아이는 저쪽에 와 있으니까요."
팡틴의 눈이 환히 빛났다. 기도할 때 가질 수 있는 가장 격렬하고도 고요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얼른 이리로 데려다 주세요."
"아직은 안 돼요."하고 수녀가 말렸다.
"아직 열이 내리지 않았으니까. 아이를 만나면 흥분하게 되어 몸에 해로워요. 우선 병이 나아야지요."
팡틴은 흥분에 들떠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마들렌 씨는 그녀의 손을 꼭 쥔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 할 말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온 것이었는데 좀처럼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팡틴은 말을 하면서도 기침이 나와 말이 자꾸 끊어졌다.
"아, 들려요, 우리 아이 목소리가 들려요. 우리 코제트. 우린 얼마나 행복해질까. 우선 조그마한 뜰이 생기는 거야. 마들렌 씨가 주신다고 약속했는 걸. 그 애는... 이제 일곱 살이 되었어요. 앞으로는 5년 뒤에 하얀 베일을 씌우고 레이스로 짠 양말을 신기면 어엿한 아가씨가 되겠네요."
그리고 그녀는 웃으며 계속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들렌 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갑자기 이야기를 그치기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팡틴의 표정은 무서움에 질려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앞날에 대한 꿈으로 빛나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 침대 위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방 저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들렌 씨가 뒤를 돌아다보자 거기에 자베르가 서 있었다. 법정에서 마들렌 씨가 나간 뒤 검사는 충격에서 깨어나 마들렌 씨를 체포하기로 했다. 체포영장이 바로 발부되었고 자베르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부하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 왔다. 마들렌 씨의 눈길이 자베르의 눈길과 마주쳤을 때 자베르는 꼼짝도 하지 않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것은 지옥으로 떨어진 인간을 발견한 악마의 얼굴이었다.
드디어 장 발장을 잡았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장 발장의 발자취를 놓치고 나서 잠시나마 혼란을 겪었던 굴욕감은 이제 자랑스러움과 승리감으로 바뀌었다. 그 고압적인 태도에는 만족감이 넘쳐 있었다. 자베르가 자기를 잡으러 온 줄만 안 팡틴은 고통스럽게 외쳤다.
"마들렌 씨, 살려주세요."
장 발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부드럽고 침착하게 팡틴을 달랬다.
"저 사람은 당신을 잡으러 온 게 아니니까 안심해요."
"빨리 나오지 못해!"
자베르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시장님,"하고 팡틴이 외쳤다.
"한 가지 부탁이 있소."하고 장 발장이 말했다
"사흘만 여유를 주시오. 이 가엾은 여자의 아이를 데려오게 사흘만 여유를 주시오."
"농담할 때가 아냐!"하고 자베르가 소리쳤다.
"도망칠 수 있도록 사흘의 여유를 달라는 거지? 저 창녀의 새끼를 데리러 간다고?"
팡틴은 부르르 떨었다.
"우리 아이를 데리러 간다구요? 그럼 코제트는 여기에 없는 거군요. 우리 코제트는 어디 있어요? 시장님, 마들렌 씨!"
자베르는 팡틴을 노려보고, 장 발장의 멱살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이젠 마들렌 씨도 시장도 없어. 다만 장 발장이란 전과자가 있을 뿐이야. 내가 지금 그 놈을 잡아 가는 거야. 알았나!“
팡틴은 뻣뻣해진 두 팔과 손으로 침대를 짚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장 발장과 자베르를 번갈아 쳐다본 뒤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왔고 이가 딱딱 마주쳤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두 팔을 뻗어 허공을 휘젓다가 베개 위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가슴 위로 수그러졌다. 팡틴은 죽은 것이었다. 장 발장은 자베르의 손을 떼어냈다.
"당신이 이 여자를 죽였소."
"허튼 수작 마라. 얼른 가자, 그렇지 않으면 수갑을 채울 테다."
방 한쪽 구석에는 낡은 쇠침대가 하나 있었다. 장 발장은 그리로 다가가 눈 깜짝할 새에 침대머리에 붙은 쇠막대를 뜯어냈다. 그것을 힘껏 쥐고는 자베르를 쏘아보았다. 자베르는 문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장 발장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잠시 동안만 날 방해하지 말아주시오."
장 발장은 가만히 누워있는 팡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과 태도에서는 말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이 나타났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는 팡틴에게로 몸을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뭔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나이는 죽은 여자를 향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그의 말은 살아 있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단 한 사람인 수녀에 의하면 장 발장이 팡틴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을 때, 죽은 팡틴의 그 창백한 입술과 텅 빈 눈동자 속에 뭐라 표현할 수
그제야 사나이는 완전히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때까지 어둡게 굳어져 있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절 재워주시는 겁니까? 쫓아내시지 않고요? 저한테 반말을 쓰지 않고 당신이라고 불러주시는군요.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돈은 틀림없이 내겠습니다. 실례지만 주인 어른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돈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당신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여관 주인이십니까?"
"난," 하고 주교는 말했다.
"여기 살고 있는 사제요."
"그렇군요. 제가 몰라보았습니다. 그럼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냥 갖고 계시오.“ 하고 주교는 말했다.
"109프랑을 갖고 있다고 했소?"
"네."
"그걸 모으는데 얼마나 걸렸다고요?"
"19년입니다."
"19년이라!"
주교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녀가 그릇을 한벌 더 가져와 식탁 위에 놓았다.
"마글루아르 부인." 주교는 말했다.
"그 그릇은 벽난로 가까운 곳에 놓도록 해요."
그러고는 손님 쪽으로 몸을 돌려 말했다.
"알프스 밤바람이 무척 찹니다. 당신, 추우시지요?"
주교가 당신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사나이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이 램프는 영 밝지가 않군."
하녀는 말뜻을 알아차리고 은촛대를 가져다가 불을 붙여 식탁 위에 놓았다.
"사제님.“ 하고 사나이는 말했다.
"사제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절 깔보지도 않고 댁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인간이라는 걸 아시면서도 절 위해 촛불까지 켜주시는군요."
주교는 그의 옆에 앉아 조용히 손을 잡았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오. 이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지 않고 그 대신 고통이 있는가 없는가만을 물어볼 뿐이오. 당신은 고통을 받고 있고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니 잘 오신 것이오. 그리고 나한테 감사할 필요도 없소. 여기는 내 집이라기보다도 당신 집이오. 여기 있는 것은 모두 당신 것이오. 당신은 고생을 많이 했지요?"
"물론입니다. 시뻘건 죄수복, 족쇄에 달린 쇠뭉치, 널빤지 잠자리, 더위, 추위, 노동, 매질. 하찮은 일에도 쇠사슬을 두 겹으로 채우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토굴 속에 집어넣고 병자한테도 쇠사슬을 채워놓지요. 19년! 그러느라 이제 제 나이 마흔여섯이 되었습니다."
"알겠소." 주교가 말을 받았다.
"당신은 슬픈 곳에서 빠져 나왔소. 하지만 내 말을 들어보시오. 하느님께서는 흰 옷을 입은 의로운 사람 백 명보다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죄인 한 명 쪽을 더 기뻐하실 거요. 만약 당신이 그 고통스러운 곳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나 분노를 갖고 나왔다면 당신은 정말 가엾은 사람이오. 하지만 거기서 친절과 온정과 평화의 마음을 갖고 나왔다면, 당신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이오."
하녀는 그 동안 저녁상을 차려놓았다. 물과 기름과 빵과 소금으로 된 수프, 베이컨 약간, 양고기 한 조각, 무화과, 신선한 치즈, 그리고 커다란 한 덩어리의 호밀빵. 주교의 얼굴에는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쾌활한 표정이 떠올랐다.
"어서 듭시다." 하고 그는 기분좋게 말했다. 주교는 평소 습관대로 기도를 드리고 손수 수프를 따랐다. 사나이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교가 말했다.
"그런데 식탁에 무엇이 빠진 것 같은데."
그 자리에는 필요한 만큼 세 사람 몫의 은그릇만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주교가 누군가를 식사에 초대할 때는 순진한 허영심에서 여섯 사람 몫의 은그릇을 식탁 위에 늘어놓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이렇게 사치스러운 일은, 가난을 기품 있는 분위기로까지 끌어올린 이 집안에서는 애교스러운 일이었다.
하녀는 주교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식당에서 나갔다. 잠시 뒤에는 나머지 은그릇 세 벌도 식탁 위에 보기 좋게 놓여져 반짝거렸다. 식사가 끝나자 주교는 촛대를 하나 들고 다른 촛대는 손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당신 방으로 안내해 드리지요."
사나이는 그 뒤를 따랐다. 손님방을 가려면 주교 침실을 지나가야만 했다. 마침 그들이 그곳을 지날 때 하녀는 침대 머리맡 벽장에 은그릇을 넣고 있었다. 주교는 희고 깨끗한 잠자리로 그를 안내했다.
"그럼, 편히 쉬시오."
"감사합니다. 사제님." 하고 사나이는 대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교에게 돌아서더니 험악한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면서 목쉰 소리로 외쳤다.
"아, 당신 곁에 절 재워주시는군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셨습니까? 제가 살인범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십니까?"
주교는 눈길을 천장으로 보내며 대답했다.
"그건 주님께서만 아실 일이오."4.
장 발장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족이라고는 아이들 일곱을 데리고 과부가 된 누이 하나가 전부였다. 누나는 고아가 된 장 발장을 데려다 키웠고, 장 발장이 스물다섯 살 때 매형이 죽자 그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의 청년 시절은 고되고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다. 닥치는 대로 막일을 했고 누이도 열심히 일했지만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 때문에 생활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러던 중 혹독한 겨울이 왔다. 장 발장은 일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고 집에는 빵이 없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 장 발장은 굶주린 조카들을 보다 못해 거리에 나가 빵집 유리창을 깨고 빵을 훔치다가 붙잡혔다. 그는 가택침입과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고 유죄판결을 받아 5년형을 받았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꼭 한번 누이 소식을 들었다. 여섯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고 누이는 막내 하나만 데리고 파리 빈민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 후로는 영영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감옥에 들어간지 4년째 되던 무렵 탈옥할 기회가 왔다. 하지만 곧 붙잡혔고 그 죄로 형이 3년 연기되었다. 또다시 탈옥을 시도했지만 또 붙잡혔고 마침내 모두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비참하게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825년에 그는 마침내 석방되었다. 유리창을 깨고 빵 한 조각을 훔쳤기 때문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 지 19년만에 풀려난 것이었다. 그는 흐느껴 울기도 하고 몸을 떨기도 하면서 감옥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왔을 때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들어갈 때는 절망하고 있었지만 나올 때는 음울한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원래 무지한 사나이였다.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원래 타고난 지혜의 빛은 그의 마음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몽둥이질을 당하고 쇠사슬에 묶인 채 감방에 갇혀 있으면서, 뙤약볕 아래 노역장에서 혹사당한 끝에 죄수용 널빤지 잠자리에서 자면서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자기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은 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는 자기처럼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사회가 이렇게 가혹하게 대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은 사회에 있다고 단정하고 사회에 대해 미움을 품게 되었다. 자기 운명을 사회 책임으로 돌리고 언젠가는 그 책임을 따져 묻겠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그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나쁜 일뿐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껏 따뜻한 말과 친절한 눈길을 만난 적이 없었다. 고생을 거듭하면서 그는 점차 한가지 확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인생은 싸움일 뿐이고 자기는 그 싸움에서 졌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증오심 외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었다. 마침 감옥에는 수도사들이 복역수를 위해 세운 학교가 있었다. 그는 배우고 싶었다. 마흔 살의 나이에 그는 읽기와 쓰기와 산수를 배웠다. 지식을 쌓는 것이 곧 자기의 증오심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생활을 19년이나 하면서 그의 영혼은 향상되기도 했지만 타락하기도 했다. 그는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선량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기가 악해졌음을 느꼈다.
그는 말이 없었다. 웃는 일도 거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자연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도, 아름다운 여름날도, 빛나는 하늘도, 사월의 청명한 새벽도 그에게는 없었다. 해가 거듭됨에 따라 그의 영혼은 천천히 메말라갔다. 마음이 마르면 눈물도 마르는 법이었다. 형무소를 나올 때까지 19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린 적이 없었다.
성당의 큰 시계가 새벽 두 시를 칠 때 장 발장은 잠을 깼다. 침대가 너무도 포근했기 때문이었다. 침대에서 자본지 거의 이십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잠을 청하려 해 보았지만 이런저런 상념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머리속에서 갖가지 생각들이 뒤엉켰다.
그 중에서도 자꾸 끊임없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바로 식탁에 놓였던 은그릇이었다. 그가 자고 있는 곳에서 몇 걸음 안 되는 벽장 안에 하녀가 집어넣던 광경을 똑똑히 보아 두었다. 그릇은 순은으로 만든 것이었다. 적어도 2백 프랑은 나갈 것이다. 19년 동안 자기가 번 돈의 곱절이나 되었다. 그는 다소 반발하면서도 꼬박 한 시간 동안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세 시를 치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집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배낭을 열고 거기서 쇠로 된 길다란 못을 꺼냈다. 그것을 오른손에 쥐고 옆방 문으로 다가갔다. 주교 침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장 발장은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내지 않으려고 살며시 문을 밀고 들어가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가슴은 두 방망이질을 치고 있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침대 옆으로 갔다.
거의 삼십 분 전부터 구름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침 그 순간 구름이 갈라지며 한 줄기 달빛이 유리창으로 비쳐 들어와 주교의 해맑은 얼굴을 비췄다. 주교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수많은 거룩한 일을 했던 손은 주교반지를 낀 채 침대 밖으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얼굴은 온통 만족과 희망의 표정으로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의로운 사람의 영혼은 신비로운 하늘을 바라보는 법이다. 그런 하늘의 빛이 주교 위에 비치고 있었다.
장 발장은 쇠못을 손에 쥐고서 숭고한 빛에 싸인 노인의 모습에 넋을 잃은 채 꼼짝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찬 노인의 모습이 오히려 공포심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장 발장은 재빨리 벽장으로 걸어갔다. 자물쇠를 부수려고 쇠못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열쇠가 벌써 꽂혀 있었다. 그는 벽장을 열고 은그릇이든 바구니를 들고는 방을 나갔다. 그러고는 은그릇을 배낭 속에 집어넣고 바구니는 뜰에 집어던진 다음 담을 뛰어넘었다.제1부 팡틴
5.
이튿날 해뜰 무렵 주교는 뜰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 하녀가 허둥대면서 달려왔다.
"주교님! 은그릇 바구니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여기 있지." 주교는 방금 화단에서 그것을 주웠던 것이다.
"은그릇은요?"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어머나, 어젯밤 그 사람이 훔쳐갔을 거예요." 하녀는 재빨리 침실로 들어갔다가 다시 뛰어나왔다.
"그 남자가 도망쳐버렸어요. 우리 은그릇을 훔쳐갔어요."
주교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정색을 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 은그릇이 우리 물건이었던가?" 하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그 은그릇을 그렇게 오랫동안 바로 옆에 간직해 두었던 것이 잘못이었소. 그건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오."
"그러면 주교님은 이제부터 어디다 진지를 잡수실 작정인가요?"
"아, 그게 걱정이오? 놋그릇이 있잖소?"
"놋그릇은 냄새가 나는 걸요."
"그럼 나무그릇이 좋겠소."
잠시 뒤 그는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두 노부인에게, 빵을 우유에 적셔 먹는데는 나무그릇도 필요 없다고 명랑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장 발장을 에워싼 헌병들이 문간에 나타났다. 헌병 반장이 주교 앞으로 걸어왔다.
"각하!“ 장 발장은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각하? 그럼 이 분이 주임사제였단 말인가!" 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닥쳐!" 하고 헌병 하나가 말했다.
"이 어른은 주교 각하시다."
그러는 사이 주교는 있는 힘을 다해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니, 당신이구려?" 그는 장 발장을 향해 외쳤다.
"어떻게 된 거요? 당신한테 촛대도 주었는데 그건 왜 갖고 가지 않았소?"
장 발장은 눈을 크게 뜨고 그 거룩한 주교를 바라보았다.
"각하." 하고 반장이 말했다.
"그러면 이 사람 말이 사실입니까? 이 사람이 도망치듯 걷고 있기에 조사해 보았더니 은그릇을 갖고 있어서..."
"그건 내가 준 거요. 오해한 모양이구려."
헌병들은 장 발장을 놓아주었다.
"정말로 날 놔주는 겁니까?" 그는 물러서면서 꿈꾸듯 말했다.
"그래, 놓아주는 거다. 못 알아듣겠나?" 하고 반장이 말했다.
"여기 당신한테 준 촛대가 있으니 갖고 가시오."
주교는 난롯가로 가서 은촛대 두 개를 장 발장 앞으로 가져왔다. 두 노부인은 주교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될 말은 한마디도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장 발장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촛대를 받았다. 헌병들은 그 자리를 떠났다. 장 발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주교는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잊지 마시오. 절대로 잊지 마시오. 이 은그릇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데 쓰겠노라고 약속한 일을 말이오."
꿈에도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이 없는 장 발장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주교는 엄숙한 말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장 발장, 내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값을 치르는 것은 당신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당신 영혼을 어두운 생각에서 끌어내 하느님께 바치려는 것입니다."
장 발장은 도망치듯 시내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정처없이 들판을 걸으면서 방황하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갖가지 생각들이 온종일 그의 머리속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기분 좋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쾌활한 소년 하나가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소년은 이따금 걸음을 멈추면서 손에 든 동전으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중에 던졌던 40수 은화 한개를 떨어뜨렸다. 장 발장은 얼른 돈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아저씨, 내 돈 주세요." 소년은 믿음에 찬 말투로 말했다.
"네 이름이 뭐냐?"
"프티 제르베예요."
"꺼져." 하고 장 발장은 말했다.
"아저씨. 내 돈 이리 주세요!"
장 발장은 들은 척도 않고 땅바닥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돈을 달라고 외치면서 그를 잡고 마구 흔들며 돈을 밟고 있는 그의 신발을 밀쳐내려고 애썼다. 소년은 울고 있었다.
장 발장은 고함쳤다.
"썩 꺼지지 못해!"
소년은 부들부들 떨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하지만 얼마쯤 가서는 숨이 가쁜지 발을 멈추었다. 장 발장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중에도 소년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주위에 어둠이 내렸다. 그는 여전히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 그렇게 서 있다가 모자를 눌러쓰고는 지팡이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굽혔다. 그때 은화가 눈에 띄었다. 발에 밟혀 반쯤 흙에 박힌 채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란 듯 멈칫했다. 발작적으로 그것을 집어든 다음 몸을 일으켜 들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소년이 사라져간 쪽으로 달려가 힘껏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프티 제르베! 프티 제르베!"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들판은 적막하고 음침했다. 주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어둠과 고요뿐이었다. 미친 듯이 소년 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니는 동안 어느새 달이 떠올랐다. 그는 기진맥진해서 커다란 바위 위에 쓰러졌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는 얼굴을 무릎 사이에 처박으며 부르짖었다.
"아, 난 불쌍한 놈이야."
그러자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울기 시작했다. 지난 19년 이래로 그가 운 것은 처음이었다. 주교 집에서 나왔을 때도 그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무소라고 불리는 그 추하고 어두운 곳에서 나온 그의 영혼에 주교는 고통을 주었던 것이다. 그는 놀라움과 불안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프티 제르베의 돈을 훔쳤던 것이었다. 그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 확실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가 감옥에서 갖고 나온 나쁜 생각의 마지막 움직임, 마지막 시도였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훔친 것은 결코 그가 아니었다. 습관처럼 된 그의 짐승 같은 생각이 문득 그 돈 위에 발을 올려놓게 했던 것이다.
그가 저지른 이 마지막 죄는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의 지성 속에 있던 어둠을 갑자기 뚫고 들어가 영혼을 불러일으켰던 것이었다. 그는 어떤 신비로운 깊숙한 곳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빛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주교였다. 주교는 이 가엾은 사나이의 영혼 전체를 찬란한 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장 발장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비참했던 과거 생활, 처음에 저질렀던 죄, 차차 짐승처럼 변해버린 외모와 냉혹해진 마음, 인간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차 기다렸던 석방, 주교 집에서 일어났던 일, 마지막으로 소년에게서 돈을 훔친 일, 주교가 용서한 뒤에 있었던 일인만큼 더 비겁하고 더 흉악했던 그 죄. 그런 모든 것이 뚜렷하게 그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는 자기의 지난 삶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끔찍스러웠다. 그는 자기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부드러운 빛이 그 삶과 영혼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가 몇 시간이나 그렇게 울었는지, 운 다음 무엇을 했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밝혀진 것은 바로 그날 밤 어떤 사람이 새벽 세시쯤 디뉴 주교관 앞을 지나다가, 한 사나이가 어둠속에서 기도를 드리듯 그 문 앞 길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제1부 팡틴
6.
그 당시 파리 근처 몽페르메유라는 곳에 싸구려 여관이 하나 있었다. 여관은 테나르디에라는 부부가 경영하고 있었는데 여관 출입문 위의 벽에는 널빤지 하나가 못질되어 붙어 있었다. 그 널빤지에는 한 사나이가 다른 한 사나이를 등에 업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등에 업힌 사나이는 장교 견장을 달고 있었고 피처럼 보이는 붉은 점들이 몸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다른 화면 부분은 자욱한 연기로 덮여 있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전쟁 그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림 아래쪽에는 '워털루의 중사에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테나르디에는 워털루 전투 때 부상자나 시체의 소지품을 약탈했던 비열한 작자였다. 그는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해 비참하게 몸부림치고 있던 싸움터에서, 시체에서 금반지나 시계 따위를 훔쳐냈다.
그러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어떤 장교의 몸을 뒤지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린 그 장교는 테나르디에가 자기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 줄로만 알고서 그에게 깊이 감사를 표시했던 적이 있었다. 테나르디에는 물론 도둑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그 대신 자기가 워털루에서 용감하게 활약하며 장교의 목숨을 구했다고 자랑하며 떠들어댔다.
여관 문 앞에는 고장난 짐마차가 한 대 버려졌다. 마차 쇠굴대 밑에는 가운데 부분이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있는 쇠사슬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는 두 여자아이가 그네를 타듯이 거기에 올라앉아 재미있게 놀았다.
한 아이는 두 살반 가량, 또 한 아이는 한 살반 가량 되어 보였다. 예쁘장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은 생기가 활발해 보였다. 천진난만한 얼굴도 아주 귀여웠다. 퉁명스러워 보이는 아이들 어머니도 이때만은 자애스런 표정을 짓고서 아이들이 앉은 쇠사슬을 흔들어주면서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그때 아이를 안은 또 다른 어머니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이 광경을 보았다. 아주 깨끗한 느낌을 주는 여자아이였다. 세 살쯤 되어 보였는데 옷에는 리본을 달고 고급 린넨 모자에는 레이스가 달려있었다. 치마 밑으로 포동포동한 하얀 넓적다리가 보였다. 환한 장밋빛 얼굴은 건강하고 뺨은 사과처럼 발그레한 것이 몹시 귀여웠다. 눈은 잠들어 있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속눈썹은 길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초라했다. 나이가 젊어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차림새는 초라했다. 눈은 오랜 세월 동안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었던 사람 같아 보였고 안색은 핏기가 없어 몹시 지쳐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팡틴이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 일하러 갔다가 어떤 청년과 사랑에 빠졌지만 버림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미 임신한 뒤였다. 아기를 낳자 생활이 어려워진 팡틴은 고향인 몽트뢰유 쉬르 메르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파리를 떠났다. 하지만 고향에 가면 아기가 있다는 사실은 숨겨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아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떼어놓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여관에 이르러 팡틴은 그집 아이들을 보고는 그만 그 다정한 광경에 매혹되어 걸음을 멈추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아이들 어머니한테 나아가 무심코 말을 걸었다.
"따님들이 정말 귀엽네요."
어머니는 고개를 들고 고맙다고 말하고는 지나가던 그 여자에게 문가에 놓인 의자를 권했다. 두 여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팡틴은 자기 신상 이야기를 대충 들려주었다. 파리에서 여공으로 일하고 있었다가 남편이 죽어서 고향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동안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웃기 시작했다. 팡틴은 아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셋이서 같이 놀아라." 테나르디에 아내가 말했다.
그 또래 아이들은 곧 친해지는 법이라 일 분도 지나기 전에 함께 땅에 구멍을 파며 놀고 있었다.
"아기는 몇 살인가요?" 하고 테나르디에 아내가 물었다.
"곧 세 살이 돼요." 팡틴이 대답했다.
"우리 애와 같군요."
그 동안 아이들은 한데 모여 뭔가 신나는 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큰 벌레 한 마리가 땅에서 기어 나왔던 것이다.
"애들이란 저렇게 금방 친해지지요. 마치 세 자매 같네요." 하고 테나르디에 아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말이야말로 팡틴이 기다리고 있던 불꽃이었다.
"우리 아이를 좀 맡아주시지 않겠어요? 딸을 고향으로 데려갈 수가 없는 처지예요. 애가 딸리면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요. 제가 이 앞을 지나가게 된 것도 주님 뜻인가 봐요. 따님들이 저렇게 귀엽고, 깨끗하게 차려입고서 노는 모양을 보고 전 어머니가 참 좋은 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곧 돌아올 작정이에요. 그 동안 우리 애를 좀 맡아주시지 않겠어요?"
"생각해 봐야지요." 테나르디에 아내가 말했다.
"매달 6프랑씩 내겠어요."
이때 사나이의 목소리가 여관 안쪽에서 울려나왔다.
"7프랑 이하는 안 돼. 그리고 반년 치는 선불을 내야 돼."
"그렇게 하겠어요." 하고 팡틴이 말했다.
"거기다 약조금으로 따로 15프랑." 하는 말소리가 또 들렸다.
"전부 합해서 57프랑이에요." 하고 테나르디에 아내가 말했다.
"그러지요. 80프랑을 갖고 있으니까 그래도 여비는 남는군요. 돈을 벌어 조금만 모이면 곧 아이를 데려가겠어요."
남자 목소리가 또 들렸다.
"갈아 입힐 옷은 있겠지?"
"우리 주인양반이에요." 테나르디에 아내가 팡틴에게 속삭였다.
"그럼요. 모두 고급 옷들이에요. 호사스런 옷들이고 모두 타스로 되어 있는 걸요. 비단 드레스도 몇 벌 있어요."
"그걸 두고 가야지." 하는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물론이지요."
주인이 드디어 얼굴을 내밀었다.
"그럼 됐소."
흥정은 끝났고 팡틴은 그날 저녁을 여관에서 묵고 이튿날 아침 떠났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원래 미천한 계급과 몰락한 지식인으로 이루어진 잡다한 계급에 속해 있었다. 그들에게는 노동자의 씩씩한 열정도 없었고 중류계급의 고지식한 성실성도 없었다. 어떤 어두운 불길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일어나기만 하면 당장 흉악해져 버리는 뒤틀린 성질을 갖고 있었다. 여자는 원래 사나운 짐승 같은 성질이었고 남자는 무지막지하고 음흉했다. 둘 다 나쁜 방면에 있어서는 아무리 지독한 일이라도 태연히 해치우는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악인이기만 해서는 장사가 번창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싸구려 여관에는 손님이 별로 들지 않았다. 팡틴이 준 57프랑 덕분으로 테나르디에는 빚을 갚을 기한을 간신히 넘겼다. 다음 달에 또 돈이 필요하게 되자 아내는 코제트의 옷가지를 파리로 가져가 전당포에 잡히고 60프랑을 벌었다. 그 돈을 다 써버린 뒤에 이들 부부는 아이를 공짜로 길러주는 것처럼 다루었다.
코제트에게는 이제 남은 옷이 없기 때문에 딸들이 입던 헌 치마나 못 입는 속옷 같은 누더기를 입혔다. 먹는 것도 그들이 먹고 난 찌꺼기를 먹였다. 가엾은 코제트는 테이블 밑에서 개와 고양이와 함께 나무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었다. 팡틴은 고향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 딸 소식을 알기 위해 사람을 시켜 달마다 편지를 썼다. 처음 6개월이 지나자 달마다 정확히 양육비를 보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테나르디에는 12프랑씩 보내라고 요구했다. 팡틴은 딸이 행복하게 잘 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순순히 그 요구에 응했다.
한쪽을 사랑하면 다른 한쪽을 미워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성질의 인간이 있는데 바로 테나르디에 아내가 그랬다. 자기 딸들은 몹시 사랑했지만 코제트는 미워했다. 게다가 그녀는 그런 부류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날그날 일정한 양의 매질을 하고 욕을 퍼붓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만약 코제트가 없었다면 분명히 그 딸들이 코제트가 당하는 일을 모두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남의 딸이 그 딸들을 대신해서 매를 맞고 욕을 먹었다.
테나르디에 딸들은 여전히 그저 귀여움만 받고 자랐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코제트 머리 위에는 항상 심한 벌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이 가엾은 아이는 바로 곁에서 자기 같은 두 아이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끊임없이 벌을 받고, 꾸중을 듣고 갖은 매를 맞으며 자라났다. 그래도 마을에서는 테나르디에 부부를 칭찬하고 있었다. 버려진 아이인 코제트를 가엾이 생각하고 키워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테나르디에는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는 몰라도 코제트가 사생아라서 팡틴이 자기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고는 코제트가 커서 이제 많이 먹게 되었으니 한 달에 15프랑을 내지 않으면 아이를 돌려보내겠다고 위협했다. 그래도 결국 팡틴은 그 돈을 지불하고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자랐지만 그럴수록 고생도 늘어갔다. 아직 어렸을 때는 코제트는 다른 두 아이의 놀림감이었다. 그리고 조금 자라나자, 다섯 살도 채 되기 전에 그녀는 여관의 하녀가 돼 버렸다. 심부름을 했고 방과 안마당과 바깥 길을 쓸고, 접시를 닦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까지도 시켰다. 이제는 팡틴이 돌아와도 자기 아이를 쉽게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그렇게도 귀엽고 포동포동했던 코제트는 이제는 야위고 핏기 없고, 어딘지 모르게 수심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옛 모습이라고는 오직 아름다운 눈뿐이었는데, 그것을 보면 더욱 가엾었다. 눈이 컸던 만큼 더욱 많은 슬픔이 어려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겨울에는 이 가엾은 아이의 모습은 정말 애처로웠다, 아직 여섯 살도 채 안 된 아이는 누더기를 입고 떨면서, 커다란 눈에 눈물을 글썽이고 새빨갛게 언 손으로 커다란 비를 들고서 해도 뜨기 전에 마당을 쓸어야 했다. 마을에서는 그녀를 종달새라고 불렀다. 새보다도 더 조그만 것이 언제나 벌벌 떨며, 날마다 그 집에서나 마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날이 밝기 전에 한길을 쓸든지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불쌍한 종달새는 결코 노래를 부르는 일이 없었다.
제1부 팡틴
7.
팡틴은 어린 코제트를 테나르디에 집에 맡겨 놓고 계속 길을 걸어 고향인 몽트뢰유 쉬르 메르에 도착했다. 그녀가 고향을 떠난 지 10년이 흐른 뒤였다. 그곳은 완전히 변해서 가난한 고장이었던 고향이 번창하고 있었다.
2년 전쯤 거기에서 어떤 발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 사람들은 영국이나 독일에서 생산하는 까만 유리구슬의 모조품을 만드는 특수한 공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료가 비싸서 임금을 제대로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왔을 무렵에 이 장신구 제조법에 아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1815년 말 어떤 다른 지방사람 하나가 여기에 와 살면서 구슬 제조법을 새로 고안한 것이었다.
구슬에 바르던 수지 대신 칠을 쓰고, 특히 팔찌를 만들 때는 납땜을 한 둥근 쇠 대신에 그냥 둥근 쇠고리를 썼다. 이 작은 변화하나 때문에 원료비가 굉장히 줄어들었다. 그래서 임금을 많이 지불할 수 있게 되어 그곳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고 값이 싸졌으므로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었고, 훨씬 싼 값으로 팔면서도 이익을 세 배나 더 올렸기 때문에 제조업자에게도 큰 이익이 되었다.
삼 년도 되기 전에 이 새 제조법 발명자는 부자가 되었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도 넉넉하게 되었다. 그는 다른 지방에서 왔는데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겨우 몇 백 프랑에 지나지 않는 돈을 갖고서 이곳에 들어왔다는데 이 발명으로 마침내 자기는 물론이고 지방 전체를 부유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는 노동자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12월 어느 해질녘에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서 그가 도착했는데 그날 마침 시청에 큰 불이 났다고 한다. 사나이는 생명을 걸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두 아이를 구해냈다. 마침 그 아이들은 헌병대장의 자식들이었는데 그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 통행증을 보자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마들렌 아저씨였다. 쉰 살쯤 된 사나이로 모두에게 친절했다.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마들렌 씨의 수익은 대단한 것이어서 2년째에는 이미 커다란 공장을 갖게 되었다. 굶주린 사람은 누구든지 거기에 가기만 하면 일자리와 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은혜요 하늘의 뜻이었다.
그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지방은 모든 것이 침체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활기를 띠었고 실업이나 궁핍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호주머니에 얼마간의 돈이 들어 있었고, 아무리 어려운 집안이라도 작은 기쁨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돈벌이를 우선으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1820년에는 은행에 그의 이름으로 63만 프랑이 예금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벌써 그 이전에 시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백만 프랑 이상을 썼던 것이다. 시내 병원 시설을 위해 돈을 기부했고 학교를 두 개나 세웠다. 보육원도 세웠으며 늙고 병든 노동자를 위해 구제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 지방은 그에게 대단한 은혜를 입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그에게 은혜를 입고 있었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의 직공들은 그를 숭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숭배를 슬픔에 젖은 듯한 담담한 태도로 받아들였다. 그가 부자라는 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사교계 인사들은 그에게 고개를 숙였고, 시내에서는 그를 마들렌 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직공들과 어린아이들은 그를 마들렌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그는 그것을 더 좋아했다.
1819년 거기에 온지 4년째 되던 해, 그는 이 지방에 바친 공헌을 인정받아 시장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는 사양했다. 같은 해에 공업박람회에 출품된 그 발명품 때문에 레지옹 도뇌르 5등 훈장이 수여됐지만 그것도 거절했다. 하지만 5년째가 되던 해 다시 시장으로 임명되자 더 이상은 물리칠 수가 없게 되었다. 주민 모두가 들고일어나 그가 시장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수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눈에는 진지한 기색이 감돌았고, 얼굴은 노동자처럼 햇빛에 그을리고, 항상 철학자처럼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값싼 프록코트를 걸쳤다.
그는 시장의 임무는 다하고 있었지만 그 밖에는 아주 쓸쓸하게 살았다. 간단한 인사말만을 나누고는 얼른 자리를 피했고, 이야기를 오래하지 않는 대신 웃음만 지었다. 그는 언제나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식사를 했다. 그는 책을 좋아했다. 재산이 많이 모이자 한가한 시간도 많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을 정신수양에 쓰는 모양이었다. 그곳에 와서 해를 거듭함에 따라 그의 말씨는 점점 더 공손해지고 세련되어지고 부드러워졌다.
이미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였지만 모두들 그를 놀랄 만한 힘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쓰러진 말을 일으키고, 수렁에 빠진 수레바퀴를 밀어주고, 도망치는 황소의 뿔을 잡아 붙들기도 했다.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호주머니에 잔돈이 가득 차 있었지만 돌아올 때는 텅 비어 있었다. 그가 마을을 지나가면 누더기를 걸친 아이들이 즐거운 듯이 쫓아와 파리 떼처럼 그를 에워싸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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