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식생활 떠받치는 바삭하고 구수한 ‘막대기’
[김성윤 기자의 세계 맛 기행]
세계인의 밥- 프랑스 바게트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22.04.25
바게트(baguette)는 프랑스어로 ‘막대기’란 뜻이다. 이 길쭉한 막대 모양 빵이 프랑스인의 식생활을 떠받치는 근간이다. 프랑스에서 1년에 소비되는 바게트는 대략 100억 개로, 전체 판매되는 빵 중에서 70%를 차지한다. 6000만 프랑스 국민이 하루에 바게트 반 개를 먹는 셈이다. 버터와 잼을 바른 바게트를 우리나라 국그릇처럼 커다란 잔에 담긴 카페라테에 찍어 먹는 것, 전형적인 프랑스 아침 식사 광경이다. 요리에 곁들여진 소스를 비스듬하게 썬 바게트에 찍어 먹는 것, 전형적인 프랑스 저녁 식탁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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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시민들이 “빵을 달라”고 외치며 일으킨 대혁명을 경험한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바게트 가격을 1986년까지 규제했다. 지금은 규제가 풀렸지만, 빵집들은 시민 반발을 고려해 함부로 올리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평균 가격은 1유로(약 1300원)다. 파리 지하철 티켓이 2유로임을 고려하면 바게트가 얼마나 저렴한지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빵집 주인들은 여름 바캉스 기간에도 함부로 문을 닫지 못했다. 시민들이 빵을 먹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빵집 바캉스 휴가 신고제’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신고제는 지난 2015년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던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없앨 때까지 이어졌다.
프랑스 식품법에서는 밀가루·소금·물·효모 4가지 재료만으로 만든 빵만 바게트로 부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규격도 길이 67~68cm, 무게는 오븐에서 구워낸 완제품 기준 280g으로 엄격하다. 재료가 같더라도 크기와 모양이 다르면 명칭이 달라진다. 바게트와 무게는 같지만 길이가 40~41cm로 더 짧고 통통한 빵은 ‘바타르(batard)’, 길이는 같지만 무게가 500g으로 2배가량 무거우면 ‘파리지앵(Parisien)’, 무게 200g에 길이 62~63cm로 바게트보다 가늘고 가벼운 빵은 ‘플뤼트(flute)’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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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매일 아침뿐 아니라 점심·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나오는 빵을 사려는 이들이 동네 단골 빵집 앞에 줄 선다. 이처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까닭은 갓 구운 빵과 조금이라도 묵은 빵은 맛 차이가 하늘과 땅이기 때문이다. 갓 구운 따뜻한 바게트는 두껍고 먹음직스러운 황금빛 껍질로 덮여 있다. 껍질을 쪼개면 ‘미(mie)’라 부르는 크림색 속살이 드러난다. 껍질은 바삭하고, 미는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게 씹힌다.
제대로 구운 바게트를 확인하려면 반으로 갈라 구멍을 확인한다. 미에는 발효 과정에서 생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구멍 크기가 불규칙적이어야 제대로 만든 바게트이다. 공장에서 냉동 반죽을 사용해 대량으로 생산한 바게트는 구멍 크기가 균일하다. 미는 크림색이 아닌 종잇장 같은 흰색에다 맛도 종잇장처럼 밋밋하다.
바게트를 맛있게 먹으려면 무엇보다 갓 구운 신선한 제품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은 보관법이다. 자르지 않은 채 보관해야 수분 증발이 덜하다. 그렇다고 비닐봉지에 넣어두면 껍질이 고무처럼 질겨진다. 헝겊이나 종이로 싸 두는 게 낫다. 프랑스 가정에는 빵 보관용 헝겊 가방이 하나씩은 있다고 한다.
이제 국내에도 프랑스산(産) 밀가루를 사용해 제대로 구운 바게트를 파는 빵집이 많아졌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여전히 뭔가 다르다”며 “석회 성분이 많은 프랑스 물로 반죽해야 제맛이 나는가 보다”라며 아쉬워한다. “김치·된장찌개는 역시 한국이 맛있다”는 교포들과 비슷한 향수를, 그들은 바게트에서 느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