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기형아 보며 환호… 비이성적인 17세기 英 시대상 담겼죠
입력 : 2022.07.04 03:30
뮤지컬 '웃는 남자'
'괴물쇼'라 부르며 구경거리 삼아
佛작가 빅토르 위고 소설이 원작
2018년 우리나라서 처음 무대 올라
▲ 오는 8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뮤지컬 ‘웃는 남자’가 공연돼요. 17세기 영국 런던에서 일어나는 아동 연쇄 납치 사건을 배경으로 해요. 사진은 어릴 적 유괴를 당해 양 볼을 길게 찢긴 주인공 그윈플렌이 광대로 공연하기 위해 무대 위에서 뒤돌아서서 있는 모습. /EMK뮤지컬컴퍼니
17세기 후반 영국 런던.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진다"는 괴담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놀이터와 공원은 인적이 끊겨 버리고,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광장에 나와 사라진 아이 흔적을 찾아 헤매죠. 영국 왕실에서도 심각성을 깨닫고 군대를 동원해서 치안을 강화할 정도였지만, 어린이 연쇄 실종 사건은 50여 년간 끊이지 않고 발생합니다. 이 기간 수만 명의 아이가 사라졌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오는 8월 2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웃는 남자'는 이 기묘한 실종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원작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 소설 '웃는 남자'예요. 우리나라 뮤지컬 제작사가 2018년 처음 선보인 창작 뮤지컬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 혼을 비롯한 해외 스태프들이 함께했어요. 해외시장을 겨냥해 5년간 제작비 175억원을 들인 대작(大作)이기도 합니다.
17세기 영국 불행한 시대상 반영
극 중 실종 사건 배후에는 '콤프라치코스(comprachicos)'라는 범죄 집단이 등장합니다. 콤프라치코스란 '어린이 구매자(child buyer)'를 뜻하는 스페인어라고 해요. 아이들을 납치한 다음, 성장을 억제하는 약을 먹여서 강제로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아이들 뼈와 관절을 묶어 척추를 변형시키며 신체를 훼손하는 만행을 저지르죠. 고통을 참지 못하던 아이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고요. 콤프라치코스는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요.
이런 참혹한 사건 뒤에는 17세기 런던 귀족들이 즐기던 비이성적인 취미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있던 영국 귀족들은 뭔가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돈을 썼고, 콤프라치코스는 키가 1m도 되지 않는 남자, 몸은 붙어 있는데 얼굴은 둘로 나눠진 샴쌍둥이 등 괴이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괴물 쇼(freak show)'라 불리는 무대에 세우면서 귀족들을 만족시켰어요. 콤프라치코스는 한발 더 나아가 아이들을 납치해 억지로 신체를 변형시킨 다음 '괴물 쇼'에 내보냈어요. 쇼를 본 귀족들은 이 아이들을 물건처럼 사서 마치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녔고, 몸집이 작고 얼굴이 흉측할수록 높은 가격에 거래됩니다.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는 당시의 이런 시대상을 풍자하고자 이 작품을 썼다고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당시 실종 사건이 일어났는지, 콤프라치코스가 실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유괴당해 양 볼 찢긴 아이
뮤지컬 '웃는 남자'는 원작에서 콤프라치코스에 납치된 귀족 출신 아이가 겪는 파란만장한 생(生)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주인공 그윈플렌은 갓난아기 때 콤프라치코스에 유괴당해 양 볼을 길게 찢겨요. 끔찍한 칼자국이지만, 마치 웃는 얼굴처럼 보여서 '웃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죠. 영화 '배트맨'에서 항상 웃는 얼굴을 하는 조커(Joker)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윈플렌은 성인이 되고 나서 콤프라치코스에 버림받는데요. 눈 속을 헤매다 죽은 여자 품에 안긴 아기를 발견합니다. 아기는 앞을 볼 수 없었어요. 그윈플렌은 아기에게 '데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같이 떠돌아다니다가 약장수 '우르수스'를 만나요. 그리고 이들은 가족이 되죠.
세월이 흘러 그윈플렌은 자신의 기이한 외모를 웃음거리로 파는 광대가 됩니다. 그러다 여왕 이복동생 조시아나 공주의 눈에 띄어요. 런던 귀족들이 기이한 외모의 아이들을 사들였던 것처럼, 조시아나도 그윈플렌을 갖고 싶어 해요.
그러던 중 그윈플렌이 유명한 귀족 가문인 클랜찰리 공작의 잃어버린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그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역전됩니다. 그는 자신의 부와 지위를 이용해 귀족들 위선과 허세로 가득한 사회를 바꾸리라 결심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결국 그윈플렌은 모든 걸 내려 놓고 우르수스와 데아 곁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레미제라블과 노틀담의 꼽추
이 작품뿐 아니라 빅토르 위고 소설들은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게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레미제라블'과 '노틀담의 꼽추'죠. '레미제라블'은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과 양녀 코제트를 중심으로 19세기 프랑스혁명 격변기를 담은 대하(大河)소설입니다. 1980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1985년 런던 바비칸 극장 무대에 올랐는데, 지금까지 매년 무대에 오르며 영국 뮤지컬 중심지인 런던 웨스트엔드 역사상 최장기 공연 뮤지컬 기록을 세우고 있죠.
이 작품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도 불립니다.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하는 배우('오리지널 캐스트'라 불러요)들이 한국에 와 여러 차례 공연을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어로 만들어 공연을 올리기도 했어요.
'노틀담의 꼽추' 역시 뮤지컬로 제작됐는데요. 노트르담 대성당에 살고 있는 꼽추 콰지모도, 주교 프롤로, 집시 여인 벨의 얽힌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여러 제작사에서 공연을 만들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노트르담 드 파리'란 제목으로 뮤지컬을, 디즈니에서는 '노틀담의 꼽추'란 제목으로 뮤지컬 영화를 만들었어요.
프랑스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에 초연됐고, 20여 년 동안 세계 20국에서 관객 1500만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죠. 원작을 가장 아름답게 무대화했다는 평을 듣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답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대사 없이 노래 54곡이 극 전체를 이끄는 '송 스루(song through)' 형식이 특징인데요. 대표곡인 '벨(Be lle)'은 장기간 프랑스 대중음악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이처럼 빅토르 위고 소설은 시대를 넘어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답니다.
▲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 /위키피디아
▲ 1862년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미제라블의 초판 삽화. /위키피디아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