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高敞)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나요?
풍천장어에 복분자 한 잔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눈물처럼 후두둑 동백꽃 지는 송창식의 선운사를 떠올리기도 하며, 청보리와 메밀꽃 피는 학원농장에서 순백의 웰컴투동막골이 눈앞에 재현되기도 할 겁니다. 여름이라면 달고 시원한 고창수박이 생각날 것이고, 역사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동학농민전쟁의 발단이 된 고부민란이나 세계최대의 고인돌 군락지를 떠올리고, 문화예술을 생각한다면 신재효의 판소리 여섯 마당이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읊조릴 것입니다. 또 후삼국시기 안동의 옛지명이 고창이었다는 엉뚱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고창엔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은 것들이 많고 많은데 우리는 비교적 덜(?) 유명한 만돌리 갯벌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잘 몰라서 그렇지 고창갯벌은 소금으로 유명한 곰소만의 남쪽 갯벌로서 서해안의 대표적인 습지입니다. 2010년부터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니 당분간 새만금 꼴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위안이 됩니다. 제가 보는 고창은 '꽃'입니다. 이른 봄에 고창을 찾으면 선운사에 들러 송창식의 ‘선운사’를 떠올리며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을 찾습니다. 봄이 한창일 때는 학원농장의 청보리밭에 파묻힙니다. 초가을에는 선운사 입구 꽃무릇 군락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청보리를 베어낸 학원농장에선 새하얀 메밀밭에 취합니다. 서정주의 고향 질마재의 국화밭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동백도 청보리도 꽃무릇도 메밀꽃도 국화도 없는 여름의 고창은 안타깝지만 ‘꽃보다 갯벌’입니다. 북의 새만금, 남의 영광원전이라는 야만 사이에 다행히 몸을 숨긴 고창 갯벌에는 아직 호미 가득 조개가 올라옵니다. ‘진짜’ 바지락칼국수를 먹는 것만으로도 고창을 찾아 온 가치는 충분합니다.
고창엔 결국 서해안고속도로로 닿게 되지만 중간에 30번 도로로 갈아타고 변산해안도로를 따라 고사포, 적벽강, 격포, 채석강 등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절경을 감상하며 우회하는 것도 권할 만한 코스입니다. 우리는 군산에 먼저 들렀다가 시간에 쫓겨 정작 변산반도는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이번에도 느꼈지만 스케줄은 여행의 기대를 위한 사전읽기자료일 뿐, 당연히(?) 변경되기 마련입니다.
군산은 부산항, 목포항과 함께 일제시대 식민지 수탈에 이용된 주요 항구도시로서 아직도 그 시대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잔재도 50년 넘게 연륜을 쌓으면 문화재가 됩니다. 요즘은 그래서, 이들도 어엿한 근대문화유적이 되어 있습니다. 신흥동과 월명동을 중심으로 ‘히로쓰가옥’, ‘동국사’, '옛 군산세관', '제18은행 군산지점',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이 널려 있으며 문화재가 아닌 일본식 가옥도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재개발의 대상으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70~80년대 혹은 그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이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 타짜, 장군의 아들, 8월의 크리스마스, 말아톤, 비열한 거리, 싸움의 기술, 화려한 휴가, 친절한 금자씨, 광복적 특사, 품행제로, 홀리데이,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등 아직 절반도 못 읊었는데 지면이 모자랍니다.
맛만 살짝 본 군산과 맛도 못 본 부안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만돌리의 2박3일을 향해 서해안고속도로에 오릅니다. 고창에선 뭘 먹고 뭘 즐겼냐고요? 사진으로 설명하겠습니다.
2박3일 일정의 첫 번째 식사, 군산 금강호휴게소의 신가네 해물 칼국수. 전라도의 손맛과 풍부한 해물의 만남에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요? 먹을 만은 했지만 소문에는 못 미치더라고요. 그래도 팥칼국수는 별미입니다.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이 살던 히로쓰가옥. 문화재 정식 명칭은 '신흥동 일본식가옥'입니다. 2층에 오르면 아기자기한 일본식 정원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걸을 때마다 복도가 유난히 삐걱거려 흔히들 집이 낡은 탓이려니 하지만, 자객(닌자)의 침입에 대비한 일종의 무인경비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소설 '대망'에서 읽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이 살던 집이라고 설명해주자 대뜸 거수경례부터 하네요. 드라마에서 각시탈을 괴롭히던 제국경찰 기무라 경부가 떠올랐나 봅니다. 이 아이에게 뭐부터 이야기해 줄까요?
알고는 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빵집이 아니라 대형 빵식당입니다. 그 맛있다는 팥빙수도 앉을 자리가 없어 못 먹고 빵만 잔뜩 사들고 나왔습니다. 군산의 명물 이성당. 'SINCE 1945'라던데 일본인 주인이 패전과 함께 부랴부랴 처분하고 도망갔다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그럼 이것도 적산가옥인가요?
황혼은 아름다워!
무슨 실버 예찬 TV 프로 제목이냐고요? 황혼녘 만돌리 갯벌이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아이의 웃음도 행복해 보이고… 똑딱이로 역광 보정까지는 무리인가 봅니다.
그럼 이 그림은 어때요? 작년 같은 장소에서 밀물 때 찍은 사진입니다. 물은 척척 차오르는데 애들은 겁도 없어요.
"백합이란 말이다! 껍데기에서 윤기가 흐르고, 또 뭐냐, 호미에 걸렸을 때 침을 한번 찍 내뱉고… 버티는 힘이… 뭔 말인지 알겠지?"
새만금아! 너에겐 이런 생명이 있느냐?
만선(?)의 기쁨을 안고… 갯벌까지는 개조한 트럭버스가 다닙니다.
머드팩 이전
오늘 하루도 수고했으니 개흙을 씻어내고… '집에 가서 한 잔?'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마당을 거닐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났습니다. "바쁜가봐? 화장품 광고에도 뜸하데… 요즘도 엄마 말 잘 안 듣냐?"
학교의 연륜을 말해주듯 수령이 최하 50년은 넘어 보이는 고목들 사이사이에 캥거루, 코뿔소, 사자, 낙타, 코끼리가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합니다. 동물들의 공통점은? 모두 외래종. 우리나라 동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도 기억납니다. 저 어렸을 때는 뭐든 물 건너 와야 대접 받았습니다. 심지어 동심까지도…
그 옆에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도 문화재급입니다. 심원초등학교였습니다.
심원초등학교 건너편 수궁회관의 게장정식, 일명 게딱지! 밥도둑 맞습디다. 바지락회비빔밥은 더 맛있습니다.
고창에 왔으니 풍천장어는 먹어줘야죠. 뭘 저렇게 많이 써붙였는지 궁금하시죠? 일단 500원 내시고… '국내 최초 지하 암반수 염도 0.3% 온도 18도로 300시간 토사시킨 유일한 맛집'. 풍천장어의 필수 첨가물(?), 항생제를 모두 제거해서 맛이 담백하다고 주인장이 '세뇌'를 시킵니다.
선운산 계곡은 아이들 물놀이에 최곱니다. 지칠 만도 한데 물 밖으로 통 나오질 않아요.
마지막 날 귀갓길에 남한산성 계곡에 들렀습니다. 선운산 계곡하고는 물 색깔이 차이가 나지요?
고인돌, 고창읍성, 선운사, 판소리박물관 등 이른바 '역사문화기행'에 어울리는 방문지들은 계획만 하고 정작 한 군데도 못 갔습니다. 내 이리 될 줄 알았습니다. 스무 명 가까운 아이들이, 그것도 한여름에 계곡 놔두고 문화기행하겠습니까? 그래도 마지막 날엔 장성으로 넘어가 축령산휴양림에서 편백나무 산림욕을 할 예정이었지만, 전대(全代)의 의결에 따라 이것도 계획을 바꿔 길 막하지 않는 상경을 택했습니다.
아~ 졸려, 낼 아침엔 산지직송 조개탕이다! 냠냐
근데 왜 이러는 걸까요? 다녀 온 건 갯벌인데 입속에선 자꾸 '선운사'가 맴도는 이 불편한 진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e2rc8x0aCpk
2012. 07. 20.~22.
<한장 스케줄>
첫댓글 다른 화장품 쓰다 짤렸어요 ㅋㅋㅋ
대박
고창이 제 기억으로는 전북에 내륙인줄 알았는데
바다랑 붙어 있군요
한번 가보고 싶어요
풍천장어를 생각하면 바다가 맞지요. 님을 운영자로 지정하고자 합니다. 허하여 주소서.
움하하 출세를 해버렸네요
30여 종류의 카페에서 특별회원이 최고 등급인데
한방에 운영자가 되다니 감격의 눈물이 ㅠㅠ
한겨울에 여름사진보기 좋은데요 여름이 그립다
기다리세요. 여름 여행 하나 더 퍼오겠습니다.
저도 여름이 무지하게 그립습니다. ㅠㅠ
우리나라가 좀더 길~~어 제주도 아랫쪽에 땅이 좀 있었음 좋겠습니다.
흠 살면서 한번도 군산엔 가본적이 없네요...영화를 무척좋아하는데..
님글 보니까 여행가서 영화에 나온곳을 되집어봐도 좋겠네요..
올해 가시면 됩니다. 군산만 가겠습니까? 따라만 오세요. 3월 중순경 오동도 동백 여행을 시작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계획이 그렇다는 거고 유동적입니다. 오실 거지요?
참존!~참존!~ 우흐흐흐흫~~~~~ 재미집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