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노씨세계
송재부군이 지음
九대조 국자진사의 휘는 유(裕)이니 아들은 대상이요 휘는 장용(藏用)이며 그의 아들 상소호부봉익의 휘는 준(俊)이니 수원 사족(士族) 복창시부승 최득기에 따님에게 장가들어 통일검교군기감 휘 정(貞)을 낳으니 이상은 모두 연천(漣川) 사천(沙川) 두 고을에 살으셨고 산소 또한 이 두 도을에 있다. 정(貞)이 청도직장동정 김순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2남 1녀를 낳으니 정순에 추봉되어 판사제시사인 휘 서린(瑞麟)이요. 차남은 개성목감직인 휘 덕린(德隣)이며 여서(女壻)는 승복남 판도좌랑인 박숭헌(朴崇憲)이다. 서린(瑞麟)이 의안군 사족 봉악판소부시사 현지준(玄之俊)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의안군부인으로 개성에서 사시다가 철원으로 이사해서 사셨는데 4남 4녀을 낳으니 장남은 호군 휘 천보(天輔)요 차남은 용구현령 휘 천계(天桂)요. 3남은 낭장 천수(天壽)요. 4남은 중종종부령 천익(天益)이며 장녀은 별장 황지단(黃之但)에게 출가하고 차녀는 봉익령혜윤상호군 안윤의(安允宜)에게 출가하고 3녀은 중랑장 박문절(朴文節)에게 출가하고 4녀는 봉상군기소윤 송득인(宋得隣)에게 출가하였다. 11월 초10일에 판사재가[서린(瑞麟)] 본 집에서 돌아가시니 철원에 장사 지냈으며 공민왕 10년(1361년)에 홍건적이 경기부내(京畿府內)에 들어오니 부인 현씨가 자녀와 가족을 데리고 농장을 찾아 청도군에서 사시다가 4월 4일에 서거하시어 본군에 장사지냈다. 덕린(德隣)이 1남 1녀를 낳으니 아들은 돈(敦)이고 딸은 중랑장 손국영(孫國英)에게 출가하였다. 천계(天桂)는 밀양부 향족령동정 박연(朴淵)에 따님에게 장가드시니 추화군부인인데 어머니 현씨을 따라 이사하여 농장이 있는 의안군부의 동쪽 곡목리에서 살며 1남을 낳으니 낭장 휘 흥길(興吉)로 공민왕 20년(1371년) 2월 1일에 본집에서 서거하시어 본군부 동북쪽 백리산 동북록 동향의 장사지냈고 부인 박씨는 30년을 수절하다가 조선조 정종 2년(1400년) 8월 16일에 서거하시여 본마을 신현산 남향의 장사지냈다 휘 흥길(興吉)은 여흥군 사족 봉익판도판에 추봉된 민서명(閔瑞明)의 따님에게 장가드셨으며 우왕 원년(1375년)에 도병마사 이순(李順)을 따라가서 의주 성상소(城上所)가 되고 기미년(1379년)에 도순문사 심덕부(沈德符)를 따라가서 평양 성상소(城上所) 되었으며 유영녹사의 종사(從仕)한지 3년이 지나서 이미 본사(本司)로 돌아와 좌우위 낭장에게 배수(拜受)되었고 창원부 본리에 퇴거하여 1남 2녀를 낳으니 아들은 사정 휘 [언(焉)-모]이요. 장녀는 사정 김모(某)에게 출가하고 차녀는 봉예랑 손모(某)에게 출가하였다. 다시 벼슬할 뜻이 없어 천수(天壽)을 즐겁게 사셨고 태종 3년(1403년) 3월 11일에 부인 민씨가 서거하시어 본군의 남쪽 모삼리 초도 서록서향에 장사 지냈고 세종 8년(1428년) 11월 21일에 낭장이 본집에서 서거하시어 본군의 동가리 산리 소산 동록동향에 장사지냈다. 휘 [언(焉)-모]은 김해 사족(士族) 봉상군기소윤 김모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백당(栢堂)의 녹사(錄事)의 종사하였다 개미년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고 상을 마치고 이내 병들어 벼슬한지 100일이 못 돼어 다시 종사하지 못하고 본 마을에 퇴거하였다가 정통(正統) 병인년(1446년)에 집에서 서거하시어 창원부 동면 불천토성산남록의 장사 지냈다. 김부인은 천순(天順) 3년 기묘년(1459년)에 서거하시여 공으로 더불어 쌍분으로 장사를 지냈다. 3남 3녀를 낳았으니 1남은 장사랑 백동으로 사직 감극중에 따님에게 장가들어 1남 1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호직이요. 딸은 전력 조무진에게 출가하였다. 모(某) 부승(副丞) 강경화에 따님에게 장가들어 1남 3녀를 낳았으나 모두 어리다. 차남은 곧 숙동(叔仝)이니 가정대부 전예조참판이요. 3남은 수의교위(修義校尉) 계동(季仝)이니 사정(司正) 현면에 따님에게 장가들었고 1녀은 교도(敎導) 홍여명에게 출가하였다. 3남 2녀를 낳았으니 장남은 치(治)요 차남은 순(淳)이니 김극중에 따님에게 장가들어 1남을 낳았으나 어리고 삼남 한(漢)과 2녀는 다 어리고 2녀는 부장 박수에게 출가하여 1남 2녀를 낳았으나 다 어리며 3녀는 목과 사정 석효동에게 출가하여 3남 1녀를 낳았으나 다 어리다.
거본리의 아래에 궐루가 많으므로 불천묘갈문을 초록하여 고람토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