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 풋풋했던 시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직격탄 한 방에 정강이뼈가 통째로 으스러졌다. 응급실에선 다리를 절단 안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운좋게 정상으로 회생하여 긴 병원 생활을 접고 나니 풋내는 냉철함으로 바뀌었다. 그후 수년 동안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라는 긴장은 항상 생활의 일부로 자리했다. 그러면서 홀로 가진 힘겨움의 속앓이가 있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과연 도래할 것인가. 다른 어떤 문제보다 힘겨웠던 화두였다.
그때 한 편의 소설이 세 권의 책으로 서점에 깔렸다. 정지아가 쓴 ‘빨치산의 딸’(실천문학)이다. 1990년이었다. 책을 펼치자 수많았던 사상서나 이론서보다 강한 흡인력으로 가슴과 머리를 휘어 감았다. 현대사의 무게를 가장 처절하게 부여 안았던 당사자인 빨치산들의 이야기였다. 진솔하고 담담하게 펼쳐갔던 생생한 기록이었다.
이 책을 계기로 10대 후반부터 마음의 고향이었던 지리산은 정신의 고향으로 성숙되었다. 그 실체는 다름 아닌 ‘염원했던 세상이 꿈으로 끝나도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빨치산들의 신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세상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삶과 정열을 지리산에, 역사의 산줄기에 새겼다. 그것은 감동을 넘어 삶의 방법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기억이 뚜렷하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코끝이 시리고 눈물을 흘렸던 밤이 생각난다.
‘빨치산의 딸’은 제목 그대로 아버지가 전남도당 소속이었고 어머니가 남부군이었던, 부모가 빨치산이었던 딸이 썼다. 그래서 기교나 재주를 무색케 하는 진정성이 배어있다. 정지아는 이 소설을 쓰고 수배를 받는 등 모진 고생도 했다. 이제는 문단에서 인정받는 작가의 반열에서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빨치산의 딸’은 피와 눈물의 나이테가 없었다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다. 탁월한 문학적 재주가 있더라도 감히 쓰기 어려운 이야기다.
몇 년 전 많은 언론에서 체게바라를 크게 소개했다. 평소의 체게바라와 다른 논조를 가진 신문들도 동참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에는 체게바라가 쿠바혁명의 주역이 되기 10년 전에 이미 수천수만의 체게바라가 있었다. 그들은 지리산을 비롯, 태백산과 오대산에서 주목과 신갈나무의 밑거름이 됐다. ‘빨치산의 딸’은 그들이 어떤 기다림에 지쳐서 산으로 갔는지 생생하게 밝혀준다.
〈서재철|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