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개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창 밖으로 개 한 마리가 휙 던져집니다. 고속도로를 따라 쏜살같이 자동차를 뒤쫓아보지만, 이제 이 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외톨이 신세입니다. 버림을 받고 떠돌이가 된 개는 까맣게 멀어지는 자동차를 보며 우두커니 멈춰 서서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슬픈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다가도 정처 없는 신세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일념으로 다른 차들을 쫓아가 보기도 하지만 사고만 일으킬 뿐, 정작 이 떠돌이 개에게 찾아드는 것은 버려진 처량한 비애감이요, 기진맥진한 피곤입니다. 낙담한 채 바닷가와 도시를 어슬렁거리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년을 만나게 되는 모습에 이르면 데생 작품 한 점 한 점에 서려있던 서글픈 감정이 이내 안도감으로 바뀌고 뭉클한 위안이 되어 따듯한 눈물 한 방울을 만들어 냅니다.
따듯한 연민의 시선으로 함께 바라본 그림책 『떠돌이 개』 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절절한 외로움에 눈물 훔치게도 되고, 우두커니 거울 속에 비치는 홀로인 자신의 모습에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게도 됩니다. 대사는커녕 그림에서 색깔도 모두 지워버린 모노톤의 목탄 데생 64편으로 구성된 『떠돌이 개』는 가브리엘 뱅상이 수묵화에서나 볼 수 있듯 한껏 여백을 살려 독자가 자신들의 공감을 그리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단색이지만 채도의 농담을 통해 느껴지는 깊이감은 삶의 비의를 다시금 돌이켜 보도록 하는 힘이 느껴집니다. 비록 버려진 개 한 마리에게 감정이입하여 반추한 우리 삶의 쓸쓸한 존재감이라고는 하지만, 친구를 찾게 된 떠돌이 개의 모습을 통해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지는 듯한 노곤한 해방감은 그 어느 작품에서도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모노톤의 단조로움은 다양한 시선으로 자유자재로 구사된 크로키를 통해, 카메라의 렌즈처럼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리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원근감을 통해 지나치게 감정으로만 실릴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해주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림책 읽기를 가능하게, 그러므로서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환원해서 되비칠 수 있도록 하는 그림 장치는 감히 젊은 작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작가의 철학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코끝이 시큰해진 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망연히 있노라니 문득 자코메티의 ‘개’ 철근 소조가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는 본래 혼자 있으면 이렇듯 앙상한 존재일까?‘ 왠지 서글픈 느낌이 쉽사리 가시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10대 그림책, 보스톤 글로브 혼 북 어워드 명예상, 미국 학부모 선정도서 금상, 일본 도서관협회 선정도서 등등 수상 경력이 화려한 이 책은 솔직히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혼자서만 몰래 오래오래 보고 싶은 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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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뱅상은 192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모니크 마르탱. 그녀는 브뤼셀의 미술 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한 뒤 데생에만 전념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표출되는 힘과 절제, 감수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82년에 발표한 <어느 개 이야기Un Jour, un chien>를 시작으로 <거대한 알L'Oeuf>(1983), <꼬마 인형La Petite marionette>(1992) 같은 작품들은 모노톤 데생의 가능성의 극한을 추구하고 있다. <셀레스틴 이야기> 시리즈로 1988년 볼로냐 어린이 도서전 그래픽 상을 받기도 했다.
2000년 9월 그녀는 일흔둘의 나이로 브뤼셀에서 숨을 거두었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추모 기사에서 <그녀는 가벼운 선으로 강렬한 감정을 그려 냈다>고 요약했다. 그녀는 스무 권이 넘는 작품집을 남겼으며 국제적으로 많은 상을 받았다.
출판사서평
그림책 형식을 빌린 독창적인 예술 작품
탁월한 데생과 따스한 이야기로 모든 연령층의 독자를 매혹시켜 온 가브리엘 뱅상Gabrielle Vincent의 그림 이야기집 <어느 개 이야기>, <꼬마 인형>이 별천지에서 재출간되었다.
뱅상은 프랑스 그림책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녀의 작품은 여느 그림책과는 달리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교훈을 줄 뿐만 아니라, 그녀만의 풋풋함과 포근함,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이 녹아들어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담은 <흔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각각 연필과 목탄을 이용한 모노톤 데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뱅상의 그림 이야기집은 어른과 아이를 동시에 매혹시키는, <그림책 형식을 빌어 전 인류를 위해 씌어진 다큐멘터리>이다.
단순한 데생으로 그려 낸 섬세한 감정
회화적 재능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함께 갖춘 흔치 않은 그림책 작가 가브리엘 뱅상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린 이야기들은 내가 직접 체험했거나 관찰한 것들이다. 난 머릿속에 줄거리를 구상하고는 연필을 잡고 재빨리 그려 낸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면 마치 몽유병자 같다. 마치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나 자신의 관찰자로 물러나고 나 자신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거의 항상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가장 처음 그린 크로키들이다. 난 자발성을 좋아한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내 작업은 근본적으로 회화의 영역에 속해 있다.>
그녀의 따뜻한 이야기들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보여 줌으로써 아동서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림책 형식을 빌린 독창적인 예술 작품에 속한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발견되는 인생의 진실, 부드러움, 타인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 단순하게 사는 삶, 이런 것들이 바로 그녀가 그림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1982년에 발표한 <어느 개 이야기>(연필)와 1992년작 <꼬마 인형>(연필)이다.
1999년에 나온 <어느 개 이야기> 제6판에는 이제껏 공개되지 않았던 여덟 페이지가 추가되어 있는데, 한국어판은 이를 저본으로 삼았다.
『어느 개 이야기 Un Jour, un chien』
도로에 귀찮은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개 한 마리가 도로 한가운데 버려진다. 개는 맹렬한 속도로 주인을 뒤쫓지만 이내 뒤쳐지고 만다. 개는 고개를 떨구고 냄새를 킁킁 맡으며 자취를 쫓는 개 한 마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끝없는 지평선뿐이다.
사랑하고 믿어왔던 누군가에게 버림받는다는 것. 그 쓸쓸함과 막막함의 정서가 개의 움직임과 표정을 통해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머뭇거림 없이 휙휙 그어진 검은 선만으로 그려진 그림책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잘 들여다보면 세심한 관찰에 근거한 훌륭한 데생에 감동하게 된다.
뒤집힌 차를 바라보는 겁먹은 '표정', 저기 어딘가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선',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움직임'... 자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존재 하나에 마른 가슴이 먹먹해진다.
연필과 하얀 백지만으로 이렇듯 풍부한 울림을 자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며,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의 풍요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많이 쓸쓸하고 아득해지는 그림책이다.
탁월한 데생과 따스한 이야기로 모든 연령층의 독자를 매혹시켜 온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집. 연필과 목탄을 이용한 데셍을 통해,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진실, 작은 행복, 단순하게 사는 삶 등을 이야기한다.
뉴욕 타임스 선정 10대 그림책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어워드 명예상
미국 학부모 선정 도서 금상
일본 도서관협회 선정 도서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미술 부문 수상
어느 개의 단 하루의 일상에 이처럼 풍부한 감정과 반향과 암시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정 위대한 예술가뿐이다. ― 보스턴 글로브
가슴 뭉클한 이 그림책의 마력은 우리를 버림받은 개의 경험 속으로 끌어당긴다는 데 있다. ― 혼 북 매거진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도, 어른을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은 그림책 형식을 빌어 전 인류를 위해 쓴 강력한 다큐멘터리이다.
뱅상의 그림 속에는 어떠한 감상주의도 없다.
예기치 못한 인생의 가능성을 찬미하는 이 독창적인 그림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셀마 레인스
완전히 독창적인 예술 작품. ― 모리스 센닥
버림받은 개의 물리적, 감정적, 사회학적 진실을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어떤 논문이나 사진집도 따라갈 수 없는 책. ― 미디 리브르
첫댓글 가브리엘 뱅상 책 무척 좋아해요 ^^^^ 특히 시메옹을 찾아주세요 좋아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