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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명대사 유적지 기념관과 입구의 푸른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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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진 | 밀양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화왕산 방향으로 접어들어 오른쪽으로 잠시 달리면 사명대사 유적지 기념관을 만나게 된다. 기념관이 밀양에 있는 것은 그 곳이 대사의 출생지이기 때문이다. 방문객은 기념관 뒤뜰에 서 있는 사명대사의 동상 앞에서 경건하게 고개를 숙인다. 안내원은 대사의 부모 묘소가 “저 산 위에 있다”고 말한다.
대사의 동상을 마주보고 서서 오른쪽 산을 쳐다보면 제법 웅장하게 꾸며진 묘소가 산중턱에 두드러지게 보이지만, 그것은 인근 주민의 호화 분묘일 뿐 대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사의 부모 묘소는 기념관 오른쪽으로 야산을 올라야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묘소로 가는 길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초행길 방문객은 엉뚱한 곳으로 찾아들기가 십상이다.
기념관을 둘러본 뒤 정문으로 나와 작은 호수 곁을 걸어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복원한 생가 등이 말끔한 얼굴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기념관이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모든 것들이 고색 창연한 맛을 풍겨내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사명대사가 어릴 적 공부를 했다는 방, 마루 등을 둘러보는 마음은 자못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생가 뒤로 병풍처럼 쳐진 야트막한 야산에는 지금도 어린 대사가 뛰어다니며 놀고 있을 것만 같다.
유정 사명대사의 속명은 임응규(任應奎)이다. 유정은 법명이다. 대사는 조부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13세인 1556년 김천 황악산 직지사의 신묵을 찾아가 승려가 된다. 18세인 1561년 승과에 급제하고, 32세인 1575년 봉은사 주지로 초빙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 휴정(서산대사)의 법을 이어받는다. 그 후 금강산 등 명산을 찾아다니며 도를 닦던 중 상동암에서 소나기에 맞아떨어지는 낙화를 보고는 무상을 느껴 문도(門徒)들을 해산하고 홀로 참선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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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명대사 유적지 기념관 바로 앞 마을에 복원되어 있는 대사의 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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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진 |
| 대사는 1589년 정여립 역모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무죄 석방되기도 한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휴정의 휘하로 들어간다. 이듬해 승군도총섭(僧軍都摠攝)이 되어 명나라 군사와 협력, 평양을 수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합세하여 의령에서 왜군을 격파한다. 1594년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과 의논,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진중을 3차례 방문, 화의 담판을 하면서 적정을 살핀다.
정유재란 때는 명나라 장수 마귀와 함께 울산과 순천에서 전공을 세우고 1602년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使)가 된다. 1604년 국왕의 친서를 휴대하고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하여 귀국한다. 선조가 죽은 뒤 해인사에 머물다가 그 곳에서 죽는다. 대사는 밀양 표충사, 묘향산 수충사에 배향되고 있다.
기념관을 둘러본 뒤 되돌아 나와 지방도로에서 좌회전하면 가까운 거리에 표충비가 있다. 나라가 위급할 때면 눈물을 흘린다는 비석이다. 도로변에 있어 찾기가 아주 수월하다. 여기까지 왔으니 표충사를 찾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애국충절을 기려 국가에서 절 이름을 붙였다는 사찰이 바로 표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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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문 바로 아래에서 거꾸로 쳐다보며 찍은 표충사 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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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진 | 본래 이 절은 654년(태종무열왕 1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하였으며, 829년 인도 승려 황면선사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여 영정사(靈井寺)라 이름을 고치고 3층 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1286년(충렬왕 12년)에는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국사가 1000여 명의 승려를 모아 이 곳에서 불법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1926년 응진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표충사에는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 보물 제467호인 삼층석탑이 있으며, 석등·표충서원·대광전 등의 지방문화재와 25동의 건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표충사 입구에는 고색 창연한 벚나무들이 세월의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그러나 어떤 나무는 우람한 둥치만 보여줄 뿐 잎새 하나 없는 알몸을 푸른 하늘에 드러내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런 고목에도 화사한 벚꽃은 어김없이 곱게 피어났다는 사실이다. 목을 뒤로 수직으로 꺾은 채 벚꽃을 감상하다가 문득 계곡 물소리를 듣는다. 그 물소리는 어쩐지 사람을 다시는 돌아올 일없는 심심유곡 속으로 몰아넣는 듯하다. 절에 올 때마다 승려가 부럽다. 그러나 출가하지 않은 보통사람은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