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2012.12

스포일러spoiler가 포함되지만 청소년 세계문학전집으로 이미 잘 알려진 [장발장]의 줄거리부터 정리하고자 한다.
원제인 [레미제라블]은 ‘가련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789년, 상위 1%인 제1계급 카톨릭 고위 성직자와 제2계급인 귀족들이 98%인 평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걷어 유지하던 루이 16세의 프랑스는 절대왕권의 붕괴조짐을 보인다.
가난한 평민 장발장은 7명의 조카들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다. 배고픈 조카들을 위해 빵 한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징역형에 처해지고, 수 차례 탈옥을 시도한 죄로 형량이 차츰 늘어 결국 19년 형기의 수감생활을 한다.
19년의 형기 중 14년 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가석방으로 풀려나지만 그에게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낙인이 찍혀, 어느 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늘 자신의 신분증명서를 내보여야 했고, 어딜 가든 경찰에게 행선지를 알려야 했던 장발장은 사회적 냉대로 인한 추위와 배고픔에 직면한다.
어느 수도원의 늙은 신부로부터 은혜를 입은 장발장은 수도원의 은그릇들을 훔쳐 달아나지만 이내 경찰에 붙잡혀 다시 신부 앞에 잡혀온다. 하지만 신부는 내가 선물로 주었다며 장발장의 거짓 증언을 감싸주고, 오히려 은촛대 두 개는 왜 가져가지 않았냐며 선물로 준다.
이에 감동한 장발장은 지금껏 증오만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었음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것을 다짐한다.
그로부터 8년 후 한 소도시의 시장이자 방직공장 사장이 된 장발장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긴 채 선행을 베푸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판틴이라는 여공이 동료들의 시새움과 공장감독의 치근거림에 하소연하지만, 장발장은 감독에게 알아서 해결하라고 떠넘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경감 자베르가 이 도시에 나타나 치안을 맡게 되었고, 그날 장발장과 자베르는 대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차에 깔린 시민을 구해주는 장발장의 괴력을 보고 경감 자베르는 그가 8년 전 종적을 감춘 장발장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이를 파리에 보고한다. 하지만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이 잡혀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는 회신을 받고, 시장을 의심한 자신을 꾸짖어달라고 한다.
장발장은 고뇌 끝에 재판정을 찾아가지만 명망 있는 시장이 장발장일리 없다는 말과 함께 법정 밖으로 퇴정 당한다.
그 사이 공장에서 쫓겨난 판틴은 여관에 맡겨진 어린 딸 코제트를 부양하기 위해 목걸이를 팔고,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이를 뽑아 팔고도 모자라 결국 매춘을 하기에 이른다.
도시의 구조 상 일반인들의 생활과 매음굴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어 그곳을 지나던 장발장은 싸움에 휘말려 쓰러진 판틴을 안아 병원으로 옮기나 판틴은 이 모든 것이 당신 때문이라는 원망을 하며 죽어가고, 자신의 딸 코제트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장발장은 죽어가는 판틴에게 딸 코제트는 자신이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여관 주인 부부에게 코제트의 몸값을 지불하고 도시를 떠난다.
그로부터 9년 후 대도시 파리에 몸을 숨기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장발장과 코제트 앞에 젊고 부유한 프랑스 혁명가 마리우스가 나타난다.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한 눈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마리우스는 장발장에게 그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경감 자베르도 파리에 나타나 장발장은 다시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영국으로 떠나려는 장발장에게 마리우스의 편지가 전달되고, 두 연인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에 장발장은 마리우스가 싸우고 있는 바리케이트로 간다.
총에 맞아 의식을 잃은 마리우스를 살려내어 코제트와 계속 사랑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장발장은 자신의 신분이 탄로나면 코제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수 있기에 잠적한다.
한편 자베르 경감은 신분을 감추고 혁명대에 잠입해서 그들을 제압하려 했지만 오히려 포로로 잡혀 죽임에 처할 운명이 된다.
그러나 장발장은 자베르 경감을 구해준다. 뿐만 아니라 9년 전 법정에 나타나지 않아도 되었을 장발장의 행동과 목숨을 걸고 마리우스를 구해준 연유에 대해서도 의아해 한다. 순간 자베르 경감은 자신이 믿고 있었던 범죄자에 대한 이미지가 무너지고, 추구해 온 삶에 대해 회의한다. 그리고 장발장으로 인해 자신의 영혼이 비참해졌다며 자살한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결혼식 날, 예전의 여관 주인이자 사기꾼인 부부가 찾아와 마리우스에게 코제트의 비밀을 알려준다며 마리우스의 반지를 보여준다.
마리우스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장발장임을 깨닫고 코제트와 함께 죽음을 목전에 둔 장발장을 찾아간다.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무릎 꿇고 지켜보는 가운데 장발장은 자신이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며 눈을 감는 것으로 청소년 세계문학전집의 [장발장]은 마무리 된다.
이상이 [레미제라블]의 줄거리이지만 너무나 잘 알려진 문학작품이기에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또한 이번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스토리도 여기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을 가지고 엔딩크레딧을 바라보았다고 평한다.
사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뮤지컬 영화(혹자는 오페라 영화라고 하지만 아마추어인 나에게 장르의 구분이 명확한 것이 아니니 이해해주길 바란다)라면 귀에 익은 아바의 노래들로 이루어진 [맘마미아]를 연상했으며, 화면이 아닌 뮤지컬 [시카고]를 보았을 때처럼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진 예술을 스크린이라는 평면에서 보아야 하나 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먼저 [맘마미아]를 연상한 음악과 노래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영화 [X 맨] 시리즈를 통해울버린으로 익숙해진 휴잭 맨(장발장 역)의 노래나, [글래디에이터]의 장군 막시무스를 잊지 못하게 하는 러셀 크로우(자베르 경감 역)의 노래는 귀에 거슬렸다. 물론 영화 초반에는.
하지만 대사를 노래로 바꾸었을 뿐, 상황에 맞춘 그들의 뛰어난 연기력(잊을 수 없는 표정들)은 점점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앤 해서웨이(판틴 역)와 아만다 사이프리드(코제트 역)의 음성은 마치 뮤지컬 영화를 전공한 배우들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 분)를 포함한 젊은 혁명가들의 합창은 마치 1980년대 중후반 수 많은 학우들과 거리에서 목놓아 부르던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같은 민중가요의 전율처럼 느껴졌다.
마리우스를 짝사랑했지만 결국 자신의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마리우스의 사랑이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고 죽은 에포닌(사만다 바크스 분)의 세레나데는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어린 코제트(아자벨 알렌 분)와 혁명대 속에 있던 어린 좀도둑(다니엘 허들스톤 분)의 가녀린 듯하면서도 감정 충만한 노래들도 여운이 많이 남는다.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 때문에 노래연기가 귀에 거슬렸던 것이 이내 자연스럽게, 오히려 감동적으로 느껴진 이유가 있었다. 장발장 역의 휴 잭맨은 이미 뮤지컬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토니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뮤지컬 배우였던 것이다. 러셀 크로우 역시 ‘블러드 브러더스’, ‘록키 호러 픽쳐쇼’와 같은 뮤지컬 무대에 선 베테랑 배우이고, 앤 해서웨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판틴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였고, 해서웨이 역시 어린 코제트 역으로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는 배우다.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어디선가 본 듯했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가 동일한 장르의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의 여주인공 역할이었던 것이 기억나자 그녀의 탁월한 가창력이 이해되었다. 마리우스를 짝사랑한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바크스는 이미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이니 너무나 자연스럽고, 뛰어난 노래실력을 뽐낼 수 밖에.
뮤지컬이라는 입체적인 공간을 스크린이라는 평면적인 공간으로 이동시켜 어색하지 않을까 한 생각도 기우에 불과했다.
첫 장면서부터가 압권이었다. 수백, 수천 명의 죄수들이 거대한 범선을 끌어당기며 합창하는 첫 장면은 관객들에게 마치 ‘이제부터 영화 속으로 빠져들 준비를 하라’는 선전포고와 같았고, 그 목적을 멋드러지게 달성했다.
장발장이 도피하면서 생활하던 당시의 사회를 너무나 잘 꾸며놓아서 단순한 영화 세트장 이상의 효과를 낸 것도 다른 영화를 능가한 점이다.
[레미제라블]은 좋은 평을 받아 마땅한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스토리를 단순히 뮤지컬이라는 형식 만을 덧입혀 ‘낯설게’ 한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읽어야 했던 [장발장]이라는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 이렇게 감동적인 예술 작품이었나 다시 되돌아보게 했으니 말이다.
차마 부끄러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기립박수를 치지는 못했지만,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찾아가 새벽까지 보고도 후회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