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막국수는 누구나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실은 그 본연의 모습을 알기가 어려운 음식에 들어간다. 막국수로 소문난 지역이 아닌, 타 지방 사람들에게 막국수라고 할 때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쟁반막국수’이기 쉽다. 커다란 쟁반에 메밀국수와 갖은 야채, 고기를 빙 둘러 놓고 육수를 부어 새콤달콤매콤하게 먹는 그 음식 말이다.
그러나 실제의 ‘메밀 막국수’는 그런 음식이 아니다. 막국수의 이름에 대해서는 정확한 유래를 알 수가 없지만 대략 두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메밀을 빻을 때 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빻아 가루를 만들고 그 가루로 국수를 만들기 때문에 ‘거칠다’는 의미의 ‘막’이 붙어서 막국수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방금’이라는 뜻의 ‘막’이 붙어서 메밀이 흔한 지역에서 그냥 집에서 손쉽게 말아 먹는 국수를 가리킨다는 의견도 있다.
원래 어느 집에서나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보니 메밀 막국수의 원형을 찾기란 어렵다. 메밀로 만든 국수에 국물을 부어 국수를 마는데, 국물로는 동치미 국물을 쓰기도 하고 육수를 내어 쓰기도 한다. 국수의 꾸미도 동네에 많은 재료들을 집에 있는 대로 올리는 것이 원래 막국수의 형태였을 것이다. 다만 메밀이 나는 지역이 우리나라에서는 날씨가 좀 서늘한 지역이다 보니 덜 자극적이고 심심한 맛이 원형에 가까울 것임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양념장도 요즘처럼 새빨간 색깔이기보다는, 아예 넣지 않거나 간장을 기본으로 한 담백한 맛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막국수의 ‘원조’ 고장으로 소문난 춘천의 춘천막국수축제 사이트에서는 메밀 막국수를 만들기 위해서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1:7 정도의 비율로 섞어 면을 만들고 육수를 부은 후, 진간장과 파·마늘·깨소금을 합한 양념장을 넣는다고 알려준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메밀 막국수의 국수에는 메밀만이 아닌 다른 재료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순메밀로 부침개를 부치거나 묵을 만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메밀은 끈기가 적어서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부스러지기 쉽다. 물론 예전에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에는 메밀가루만으로 국수를 만들었고, 또 메밀 역시 가공하기에 따라 찰기가 높아지고 색깔이 희어진다. 가공 과정에서 메밀의 겉껍질을 버리고 속살만을 써서 가루를 만들면 껍질이 들어갔을 때보다 찰기가 높아진다고 하고, 일본에서 ‘소바’로 불리는 메밀국수를 만들 때에는 그런 방법을 쓴다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 메밀 막국수의 재료가 되는 메밀가루는 껍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도 약간의 껍질 부스러기들이 섞여 있다. 워낙 막국수라는 음식이 쫄깃쫄깃한 맛보다는 메밀 특유의 뿌듯하고 그윽한 느낌을 위주로 하는 터라 대부분은 메밀가루에 다른 곡식, 즉 밀가루나 고구마 전분을 섞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음식디미방』에도 메밀가루를 곱게 빻고 고운 천에 거르고 거기에 녹두 녹말을 섞어서 국수를 만드는 요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막국수의 고향을 흔히 춘천이라고 한다. 사실 춘천막국수라고 하면 어느 정도 고유명사처럼 붙어서 쓰이고 있을 정도다. 1970년대 초부터 춘천에 메밀 막국수집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맛이 점점 소문이 나면서 춘천은 막국수의 ‘메카’가 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동해를 향해 움직이다 보면 강원도가 가까워지면서부터 메밀 막국수의 행렬은 계속 이어진다. 국도를 따라 동해 바닷가까지 이동하는 길에는 실크로드 아닌 ‘막국수 로드’가 이어진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곳들을 찾아가 막국수의 원조를 따져 물어보면, 결국은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고향에서 먹던 맛으로 만들기 시작한 국수가 오늘날 메밀 막국수의 원형이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 따라 메밀 막국수의 맛과 형태도 다르다. 춘천막국수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하나의 브랜드이고, 실상 메밀 막국수라는 음식은 단일한 형태가 아닌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강원도의 메밀 막국수 전문점도 대부분은 가루를 제분소에서 빻아온다. 예전에는 가게에서 제분도 하고 국수도 뽑는 집이 흔했지만, 요즘은 어느 분야건 전문화되는 추세인지라 가루 상태를 받아오는 것이 대세다. 이름 있는 막국수집들의 경우는 단골 제분소와 특별한 계약을 맺어서 국수의 품질과 맛을 유지한다. 이런 집들은 하나 같이 국수 반죽부터 면을 뽑는 일은 식당 자체에서 직접 해결한다. 옛날에야 박이나 나무로 만든 국수틀로 국수를 뽑았겠지만 현대식으로는 냉면을 뽑는 기계식 국수틀국수가 뽑히면서 바로 아래 끓는 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을 사용한다. 메밀은 익는 감각이 밀가루보다 더 예민하고 삶은 후에 곧 퍼져 버리기 때문에, 은근히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라고 한다.
국산 메밀의 수요가 늘어나고 값도 오르면서 수입 메밀을 쓰는 막국수집들도 늘어나고 있다. 막국수의 고장인 강원도 지역의 사정이 그럴진대, 다른 지역에서 메밀 국수라고 팔고 있는 국수들에 메밀의 실제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 국산 메밀을 쓰는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서 파는 메밀국수에는 밀가루가 메밀보다 더 많이 들었고 메밀이 아닌 다른 성분을 넣어 검은 색을 낸다는 풍문이 괜히 돌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메밀 막국수 전문식당의 사장님들은, 서울에서 먹는 ‘시커먼’ 국수는 메밀의 원래 색깔이 아니고, 요즘 메밀은 겉껍질이 다 벗겨진 상태에서 제분에 들어가기 때문에 국수가 밝은 회색을 띠는 게 옳다고 지적한다.
춘천은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메밀 막국수의 고향이다. 소양강댐 아래 샘밭골 일대에 막국수집들이 많이 모여 있고, 그 가운데에는 춘천막국수축제에서 ‘명가’로 선정된 집도 있다. 춘천 시내에도 유서 깊은 막국수집들이 몇 곳 있는데, ‘실비막국수’는 1968년에 개업해서 아직까지 처음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 문을 연 사장님이 양식 요리사 출신이었는데, ‘옛날 교도소 앞 막국수집’에서 막국수 맛을 보고 와서 연구를 한 끝에 실비막국수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 회고담으로 미루어본다면 춘천에 메밀 막국수 가게가 생기기 시작한 때가 아마도 1960년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다. 해마다 8월 말이나 9월 초에는 춘천막국수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로 11회를 맞고 있다.
춘천과 함께 영서 지방 막국수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곳이 봉평이다. 9월마다 열리는 메밀꽃축제의 고장답게 메밀 음식점도 읍내를 중심으로 여러 곳 있는데, 40년 이상 된 식당으로 ‘현대막국수’를 꼽을 수 있다. 교통이 그리 편리하지 않은 봉평이 오늘날처럼 일부러 찾아가서 메밀꽃을 보고 메밀 음식을 먹는 명소가 된 것은 이효석 덕분이라며 겸양을 보이지만, 음식 맛이 없다면 누군들 멀리서 일부러까지 가서 먹을까 싶다.
여주는 독특하게도 행정구역으로 경기도에 속하면서도 메밀 막국수촌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이포대교 건너 천서리에는 10여 곳의 막국수집들이 모여 있는데, 이 중 가장 먼저 생긴 곳이 ‘강계봉진막국수’다. 다리가 생기기 전인 1970년대 초, 강계 출신 실향민이던 1대 사장님이 고향에서 먹던 국수 맛이 그리워 시작한 막국수집이 입소문이 나게 되었고, 다리가 놓이면서 본격적인 막국수촌이 형성되었다. 9월에 열리는 천서리막국수축제가 11회째에 이르렀다.
영동 지방의 메밀 막국수는 ‘깔끔한 맛’을 내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식당에 따라 차이가 많긴 해도 영동 지방 막국수는 동치미국물을 많이 쓰고 특히 김을 많이 넣는 것이 독특하다. 영서 지방에 비해 조금 더 심심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영동 지방에서 막국수촌으로 유명한 곳이 장산리 막국수촌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형 막국수집들이 있는 이곳에서, 예스러운 맛을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 ‘영광정막국수’다. 동네에서 국수 맛있게 하는 집으로 소문이 나, 마을에 손님들이 오시면 몇 그릇씩 말아내던 것이 막국수 가게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성과 현남, 강릉에도 소문난 막국수집들이 여럿 있지만 30년 넘은 유명한 막국수 가게로 주문진의 ‘동해막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영동 지방은 막국수집이 많기도 하지만 이 지역 분들이 워낙 막국수를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이 동해막국수집 사장님의 말씀이다. 즉 관광객들이야 메밀 막국수 본연의 맛을 모르고 한 번씩 먹어보는 정도지만, 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막국수에 대해서는 경지를 자랑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곳곳을 다니며 막국수를 먹어보면서 “춘천막국수의 맛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보면 나오는 대답은 다 다르다. 그러고 보면 고정된 ‘춘천막국수의 실체’라는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면에 들어가는 메밀의 함량도 50퍼센트에서 90퍼센트 이상으로 막국수집마다 다 다르고, 쓰이는 육수도 순 육수에서 육수와 동치미를 섞은 것, 순 동치미 국물, 독특한 자기 집만의 육수 등으로 다 달랐다. 메밀이 자랑인 곳은 국수에서 풍기는 메밀 향이 진하고 구수했고, 맑은 물이 자랑인 동네에서는 국물 맛이 깨끗했다. 분명한 것은, 서울에서 먹는 달고 맵고 새콤한 국물이 자작하게 부어져 나오는 ‘검고 쫄깃거리는’ 막국수는 원래의 메밀 막국수와는 전혀 다른 맛이라는 점이다.
순하고 밍밍하며 뿌듯하고 텁텁하다가 개운한 메밀 막국수는, 그러나 본 지역에서도 점점 맛이 변하고 있다. 메밀 막국수집의 식탁 위에는 설탕과 겨자, 식초와 매운 양념이 놓여 있고 동치미 국물은 무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단 맛이 감돈다. 육수에서도 분명 인공조미료에서 왔을 법한 풍미가 난다. 메밀 막국수를 만들고 있는 분들의 말로는, 손님들의 입맛이 ‘달고 맵고 자극적인’ 것만 찾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지루한 논쟁은 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음식들이 본유의 맛을 잃고 비슷비슷한 맛으로 변해가는 현상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혹시 강원도로 가실 일이 있으시면 메밀 막국수집에 들러, 아무 양념도 넣지 않은 막국수 한 그릇을 드셔보시기를 권한다. 순메밀면을 만드는 집이라면 그것을 주문해도 좋겠다. 심심한 맛이고 지루한 맛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몸속을 흐르고 있는 우리 전래의 소박하고 조용한 맛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