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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부산썸머비치울트라마라톤대회 완주기
- 2009. 8. 22.(토) ~ 8. 23.(일) -
울트라 울트라
'09. 8. 22.(토) 한여름 한낮 , 3년 만에 부산 해운대 수영만 요트경기장 광장에 다시 섰다. 나의 6번째 100km 울트라마라톤대회에 출전하기위해서다. 지난 4월 대청호대회 이어 올해 2번째 울트라마라톤대회 출전이고, 이 대회는 2006년에 이은 2번째 출전이다.
처서가 바로 내일(8. 23.)임에도 한낮의 살인적인 무더위는 폭염주의보를 무색하게 한다. 16:00경 대회장에 들어서자 눈에 익은 주변 경관이 선명하다. 3년 전 대회에서는 '우쿵'이라는 복병 태풍을 만나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바람을 맞아가며 달렸었다.
우선 식사를 해야겠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점심도 못 먹은 상태다. 주변에는 특별히 식사할 만한 곳도 없어서, 대회본부 측에서 파는 장어국(?)을 사서 근처 잔디밭에서 아내와 점심 겸 저녁식사를 하는데, 맛이 별로 좋지 않다. 밤새도록 달릴 생각에 입맛이 달아나버렸나?
멀리 부산 원정경기에 아내가 동행했다. 대회 참가신청 이후 줄곧 함께 가겠다고 말은 해온 상태라 일찌감치 해운대에 있는 글로리아콘도를 예약하기로 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7일 전까지 해야 하는 예약을 놓쳤다. 밤새도록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기다리겠다는 아내를 설득했다. "당신같이 이쁜 아줌마를 어떤 놈이 데려가면 어떡혀~~" "차비만 해도 한 사람당 왕복 5만원이여~~"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 결국 설득에 성공해서 혼자 갈 왕복 차편도 예매를 했다.
22일 아침 포돌이런너스 주말훈련에 참여했다. 대회출전을 앞두고 있어 아내와 보문산 길을 조금 걷고, 회원들과 함께 보리밥도 나누어 먹은 후 집으로 돌아와 울트라용 배낭과 플래시 등을 챙기는데, 아내가 느닷없이 찜질방에서라도 자겠다며 같이 간다고 성화다. 다시 실랑이를 벌이기도 그렇고 해서 "그럼 그렇게 하자"며 내 차편을 모두 취소하고, 2명분 열차표를 예매했다. 당일임에도 다행히 좌석이 남았다.
내원~ 참........ 아내의 고집도 대단하다. 어쨌든 남편을 챙기겠다고 부득이 따라 나서는 아내, 언제나 어렵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아내가 곁에 있어서 늘 고마울 따름이다.
부산 해운대 요트경기장에서 울산 진하해수욕장까지
조직위측으로부터 받은 유니폼을 입고 「1327 이홍선」배번을 가슴에 달았다. 출발장소인 광장으로 나서는데 수염이 덥수룩한 대전사이언스마라톤의 정광진(배번에는 정삼진?) 선배님을 만났다. 서로 연락을 해서 함께 신청을 하거나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멀리 원정경기에 나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함께 사진도 찍고, 몸도 풀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18:00 정각 출발신호가 울린다. "살아서 돌아올게" 아내의 손을 맞잡은 채 눈맞춤을 하고서는 정선배님과 함께 시동을 걸고 250리 길을 나섰다.
울트라마라톤대회를 앞두고 장거리훈련을 했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일과 저런이런 핑계로 훈련을 소홀히 한 상태인데다 무슨 배짱으로 음식조절도 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전날 술까지 마셨다. 난 항상 요 모양이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되어있질 않다. 완주가 걱정이다. 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
몸이 무겁다. 한 두달 전만해도 5kg만 빼도 상당히 가벼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저히 몸무게가 줄지를 않는다. 수영장을 다니면서 조금 빼긴 했어도 워낙 먹어대는 먹깨비가 어떻게 체중을 줄일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제와서 어쩌겠나. 지금이라도 열심히 부닥쳐 봐야지.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의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13:27 안언산 "홍선아 최선을 다해라 파이팅!", 13:30 이평희 "이홍선 울트라 100키로 완주해라 홧팅팅팅", 15:15 김현정 "주임님 울트라 잘 뛰삼~~ 날도 더운데 컨디션 조절 잘 하세요. 홧팅", 15:22 이상근 "울트마라톤 안전 완주기원, 원한다면 얻으리라" ^^ 모두들 고맙습니다. 한결 힘이 납니다.
현대아이파크 공사장 옆 해안도로를 지나 동백섬에 들어선다. 숲으로 우거진 아름다운 동백섬을 한바퀴 돌아 조선호텔을 지나고 해운대해수욕장 해변산책로를 따라 피서인파 사이를 달린다. 막바지 피서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래 반 사람 반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쭉쭉빵빵이 눈에 막~ 들어온다. 오매~~~^^ 내 옆에서 달리던 어떤 여성마라토너도 "내가 보기에도 기가 막힌데, 남자들은 오죽할까나........." 한마디 하면서 감탄을 한다.
아쉬운 해운대해수욕장을 지나 미포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오르막을 오른다. 아직은 힘이 있어서 오르막도 달려간다. 이제 1.5km의 달맞이고개를 만난다. 정선배님은 나보다 한참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앞장서 그 가파른 고개를 뛰어 올라가고 있다. 뒤 쫓아 올라가기가 벅차다. "형님 먼저 가세요. 전 천천히 갈께요." 뒤로 처질 수 밖에 없다. 3년 전 장대비가 쏟아지는 이곳 달맞이고개를 사아미(서명숙)님과 함께 버스럭거리는 1회용 비닐우의를 입고 걸어 올라갔었던 생각이 난다. ^^
달맞이고개와 이어진 와우산 길을 내려가 19:13경 약 11km 지점인 송정해수욕장이다. 가족단위 피서하기에 꽤 괜찮을 듯한 아담한 해수욕장이다.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해운대온천'이라는 찜질방에 무사히 안착했단다. 다행이다. 날 기다린다고 해수욕장에서 밤을 새울까 걱정을 했는데......... 19:52경엔 메시지가 왔다. "뛸만해유? 난 때 밀러 갈거유" "오케이 푹 쉬어요. 절대 내 걱정이랑 말구" ^^
출발할 때 배낭에 넣어 둔 물 한 병은 벌써 다 마신 상태고, 땀은 쏟아져 내리고, 갈증이 난다. 지난 대청호울트라마라톤대회 때 대청댐전망대에서 권영규 회장님이 사준 콜라 맛이 간절하다. 조그만 가게에 들러 시원한 콜라 한 병을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마셔 버렸다.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는 콜라지만 그 시원하고 달콤한 콜라의 맛은 그 무엇과 비교가 안 된다. 기가 막히다.
어? 그런데, 내 뒤를 따라온 어떤 두 명의 주자들은 캔맥주를 사서 하나씩 마신다. 갑자기 나도 캔맥주가 먹고 싶다. 그러나 참기로 했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반환점 돌아서 가는 길에 사 먹자. 꾹~ 참았다. ^^
부산 기장의 유명한 '짚불곰장어' 상호가 보이는 어느 작은 항구 해변도로를 달린다. 3년 전 이 곳을 달렸던 내 기억으로는 이름이 특이한 '대변항'인데, 항구 주변의 멸치횟집이나 상점 간판이 '대변'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대변파출소도 안 보인다. 이상하다. 내가 잘 못 알고 있나보다.......
20:15경이다. 이제 출발한지도 벌써 2시간을 넘겼다. 폭염주의보에 아열대 현상까지 있는 모양이다. 아름답게 이어지는 기장해변엔 온 기장사람들이 다 나와 있는 모양이다. 해변가 들마루에 삼삼오오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회 쳐먹고(?) 있다. 야~ 나는 진땀을 흘리며 달리고 있는데, 저 사람들이 엄청 부럽다. 싱싱한 생선회에다 쐐주 한 잔 크~~~
기장군청 입구 삼거리 25Km 지점이다. 주최측에서 물과 초코파이를 나누어 준다. 우선 물 한병과 초코파이를 단숨에 먹어치우고, 다시 물 두 병을 받아 한 병은 배낭에 넣고 한 병은 손에 들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재촉한다.
어디를 얼마나 달리고 있나를 모르겠다. 22:00경 한 없이 이어지는 울산쪽으로 이어지는 편도 1차선 도로가를 달리다 해변도로를 달리고 있다. 오늘 물 엄청 마신다. 물 두 병을 다 마셔버리고도 부족하다. 이번에는 사이다를 한 병 사서 완샷........ 시원하면서도 무언가 부족하다.
22:07경 대회측에서 길을 안내하면서 35km 지점임을 알려준다. 이제 겨우 35? 4시간째 달렸는데? 아직도 15km가 남았단 말인가. 난 40km 이상은 달렸을 것으로 생각했다. 온 힘이 쭉~ 빠진다. 종아리와 허벅지는 아우성이고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인상을 박박쓰며 이를 악물고 달린다. 이건 달리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상황이 자꾸만 연출된다.
내가 항상 포돌이런너스 회원 등 다른 달림이들에게는 절대 무리하지 말고 즐겁게 달리자고 강조를 해오곤 했는데, 지금의 나는 엄청난 고통이다. 당장 주저앉고 싶다. 참가신청을 하면서 소속팀 적는 란에 '충남포돌이런너스'로 기록한 것이 후회스럽다. 완주를 기대하는 나의 많지 않은 팬들에게는 무어라고 할 것인가. 적어도 50km는 가야하지 않는가. 왜 이렇게 고통을 자청해서 겪고 있는 것인가. 많은 질문이 나에게 쏟아내고 있다.
법륜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인생이란, 길가에 피어있는 한포기 풀과 같다. 그 풀꽃처럼 그냥 살면 된다.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인생은 피곤해진다." 나는 정말 능력도 부족하지만 특별해지려고 억지 쓰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내 온라인명도 산과 들에 흔하디 흔하게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개망초'라고 지었다.
그러나, 속세에서 가정을 이루고,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욕심과 욕망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낮은 직급으로 오랫동안 부딪쳐 오면서 무언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그래서 누구 말대로 이 말도 안 되는 밤샘달리기에 목숨을 걸어 놓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자 가슴이 아려온다. 아~~ 그렇구나....... 그 특별함의 욕심이 나를 이렇게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구나.
23:00경 약 40km 지점 '서생'이라는 마을을 지난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선두가 여유있게 손을 흔들며 지나친다. 벌써? 그럼 선두와 나는 20km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이 아닌가. 대단하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한쪽 길에서는 마라톤계에서 최고로 유명한 '58개띠마라톤' 응원팀에서 고함을 질러가며 주자들에게 물과 오이를 제공한다. "오팔 개띠 기억해주세요" 정말 강아지들마냥 늘 요란스럽고도 적극적인 마라톤 전국모임이다. 어쨌든 고맙다.
안언산 친구로부터 다시 메시지가 들어온다. "홍선아 많이 달렸지 최선을 다해라 파이팅이다 언산 2번째 메시지" 역시 고맙다. 내 욕심으로 스스로 피곤하고 힘들지만, 타인의 응원과 격려가 힘이 되어주고 있다. 조금 더 지나서 다시 해변도로로 들어섰다. 파도소리가 참 듣기 좋다. 비릿한 갯내음도 참 좋다. 그래 이런 맛도 있구나. ^^
그럭저럭 달려서 반환점 3.5km 남겨 둔 11:40경이다. 휴대폰 폴더를 열어보니 11:20경 아내가 보내온 메시지가 있다. "미안하네 나만 편한 거 같아서" 답장을 하지 않았다. 혹시 자고 있는 아내가 깰 것만 같아서 ^^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다 뛰다 반복하다 00:07 기어이 반환점에 도착했다. 50km를 달려온 약 6시간이 꿈만 같다. 그 것도 악몽으로....... 식사를 제공한단다. 줄을 섰다. 아니? 그 먼 길을 달려와 피곤과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사람들을 줄을 세워놓고 있다. 한 아주머니가 비빔밥을 준다고 밥을 퍼서 나물 이것저것을 담아서 고추장 넣고 참기름 넣고 아주 슬로우 모션이다. 여기저기서 불만들이 쏟아진다. 주최측 욕을 막 해댄다. 나도 한 몫 거든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밥 먹는대유~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먼" ^^
온 몸이 땀으로 적신 채 축축한 몸으로 역시 젖은 배낭을 매고 있는 상태로 서서 두어 숟가락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콜라를 사 마셨다. 좀 쉬려고 앉아있는데, 어떤 사람이 샤워를 했더니 개운하다고 한다. 샤워? 땀을 좀 씻으면 괜찮을 듯 싶다. 천막속에 임시 샤워장이 있다. 비누도 없고, 수건도 없지만 과감히 옷을 벗었다. 어차피 땀으로 적신 몸, 물로 적시면 어떠냐. 시원한 물줄기가 잠깐의 행복을 주었다.
울산 진하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00:27 다시 마라톤화 끈을 고쳐매고 오던 길을 되짚어 출발!!!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 샤워도 하고, 조금 쉬어서 그런지 몸이 한결 가볍다. 01:00경 54km 지점인 간절곶 등대 옆을 지난다. 편의점에서 참고 참았던 캔맥주를 사 마셨다. 원했던 것보다 덜 시원했지만, 그런대로 꽤 괜찮다. 한 입에 털어 넣고는 서둘러 다른 주자들 뒤를 쫓는다. 1등할 것도 아니면서, 반환점에서 체크아웃(01:00)된 것도 아니면서 뭐가 그리 급한지 원.........
조금 더 달려 언덕길을 걷는데, 어? 거의 출발지점인 달맞이 고개에서 앞질러 가셨던 정광진 선배님이 맞은편에서 오고 있다. "아니 형님 어떻게 된거예요? 나보다 한 참 더 가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선배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리 부상이 도져서....... 힘들 것 같어....... 먼저 가요" 힘없이 대답을 한다.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헤어지고, 나중에 전화를 해보려고 해도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아서 안부도 여쭈지 못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01:35 사랑스런 딸 한별이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아빠 파이팅~ !!! ㅋㅋㅋㅋ ♥♥♥♥"
아니 이녀석은 이시간까지 안 자고 뭐하냐? 엄마 아빠 없으니 제 세상인 모양이다. ^^ "땡큐" 답장을 보냈다. 한별이 녀석은 아빠 마라톤 주말운동에 같이 가겠다고 해서 유니폼과 마라톤화까지 사 주었더니 겨우 2번 따라오고, 그 다음부터는 새벽에 일어나질 못한다. 돈만 날린 게 약 올랐지만, 자식 이길 부모가 어디있겠나. 흐이구~
메시지 한 통에 힘이 났는지 약 30분간은 그냥저냥 달렸다. 02:03경 포돌이런너스 막내회원이자 유일한 SUB-3 주자 조형정 회원으로부터 응원메시지가 왔다. "지금쯤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겠네요 무사완주 기원합니다. 회장님 파이팅입니다." 어허~ 지금이 몇신데? 지구대에 근무하니까 순찰근무시간일 수도 있다. 하여간 이 시간에 잊지 않고 응원메시지를 보내 준 성의가 참으로 감사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머냐? 가도 가도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다. 달리고 달려도 도저히 줄어들지를 않는다. 악을 쓰고 달리다 보니 다시 기운 소진되는 것 같다. 02:22경 카톨릭마라톤클럽 응원팀에게서 물을 한 잔 얻어 마시고, 02:40경 편의점에서 꿀맛같은 캔맥주를 사서 벌컥 벌컥 단숨에 마셨다. 차가운 맥주를 한 입 가득 물고서 목젖을 자극하면서 넘기는 그 짜릿함이란....... ^^ 먹어야 산다. 이번 대회는 유난히 더운 날씨고, 워낙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인지 엄청 먹어댄다. 03:05경에는 아이스크림 레몬바를 입에 문 채 달리고 있었다. ^^
혼자 이 먼거리를 이 긴시간을 달린다는 것 자체도 고통이다. 지난 5번의 울트라마라톤대회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달렸다. 바로 옆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홀로 달리는 주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모두 삼삼오오 클럽사람들끼리 몰려다닌다. 주로에서 회원들과 가족들의 응원도 받아가면서 달리는 모습이 부럽다.
나 홀로 주로와 싸우다 보니 어느새 04:15경 기장군청 앞이다. 주최측에서 물과 두부를 제공하고 있다. 좋아하는 두부를 조금 먹다가 그만뒀다.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다. 먹깨비의 몸이 음식을 거부하고 있다.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젠장~
여기가 75km 지점이란다. 그럼 아직도 25km를 더 가야한단 말인가? 까마득하다. 나머지 25%를 달성해야 하지 않겠나. 벌써부터 떨어진 물을 배낭 옆구리에 찔러넣고, 또 한 병을 손에 들고는 천천히 걷는다. 도저히 뛸 수가 없다.
휴대폰 폴더를 열어본다. 달릴 때는 휴대폰 진동을 잘 느끼질 못한다. 03:13경 아내의 문자가 와있었다. "힘내요 아자아자 파이팅" 다시 04:14경 "어디유?" 회신을 해주어야 겠다. ^^ "기장군청 앞인데,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났어?" "오늘은 왠지 일찍 들어올 것 같은 예감"이란다. 허~참, 출근했다 일찍 퇴근하는 사람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25km를 더 달릴 생각을 하니 두렵기도 하다. 이 상태의 몸으로 완주할 수 있을지 아직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04:36경 월전마을 어스름한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아내한테서 다시 문자가 온다. "거친 숨소리가 옆에서 나는 거 같아, 많이 힘들지?" 뭐라고 답장을 보낼까 잠시 생각을 하다 "미치갔어" 정말이지 미칠 것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에이 젠장~~~ 비싼 참가비 내고, 거금의 경비를 써가며, 자청을 해서 이렇게 밤새도록 온 몸을 혹사하고 있다니. 그 또한 미친 짓이다. 속으로 다짐을 한다.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울트라마라톤 안 한다."
05:00경 가던 길에 보았던 둥그스름한 조그만 항구다. 호젓한 해안도로에는 포장마차촌이 있고, 길가에는 멸치횟집 등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이름이 특이한 '대변항'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는데, 내 기억이 맞았다. 3년전에 보았던 음식점 간판 등에서 '대변' 글자가 안 보여서 헷갈렸는데, 언뜻 '대변 1길'이라는 길 이름 표지판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 맞다. 여기는 대변항이 맞고, '대변'이라는 이름이 느낌상 좋지 않아서 '대변횟집, 대변식당, 대변회관, 대변 멸치회, 대변 장어, 대변슈퍼 등 등' 각종 간판에서 모두 '대변'을 빼 버린 것 같다. *^^*
05:12경 대변항을 벗어나 앞서 가던 주자들이 편의점에서 음료수 등을 사 먹고 있다. 나도 차가운 캔커피를 사서 마셨다. 커피향과 함께 달작지근한 맛인 정말 기가 막히다. 약 17km쯤 남은 듯 하다. 이젠 송정해수욕장을 지나 달맞이고개를 넘으면 해운대다.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럭저럭 떨어지지 않는 발을 끌면서 05:37경 송정해수욕장을 지난다. 아내 "여기 요트경기장이예요 천천히 조심해서 오이소" 송정해수욕장 벗어나는 지점에서 58개띠클럽에서 음료수를 제공한다. "식혜도 있고, 콜라도 있습니다. 무얼 드릴까요?"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둘 다 주세요." ^^ 종이컵으로 한 잔 씩 마시고, 찹쌀떡을 입에 문 채 물도 한 병 손에 들었다. 먹을거리 욕심은 최고다. 상당한 도움이 된다. 긴 고갯길을 힘차게 걷는다.
약 2km는 족히 고개를 오른다. 92.2km 지점 와우산 송정고개 정상이다. '부산 금정산 마라톤클럽' 응원팀에서 소속 주자들 사진을 찍고 있다. 아는체를 했더니 콜라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는다. "주면 고맙지유 난 대전에서 왔는디 부산사람들 마라톤 참 많이 하는 개벼유?" 너스레를 떤다. 부산에는 마라톤클럽이 70개가 넘는단다. 워낙 큰 도시라서도 그렇지만 마라톤운동하기 좋은 많은 코스도 한 몫 하는 듯 하다.
05:49경 김재순 포돌이런너스 총무님의 응원메시다. "완주 잘 하세요" 고맙습니다. 일찍도 일어나셨네. 우리 포돌이런너스가 이처럼 활성화되고 발전하는데에는 총무님의 많은 노력과 희생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06:40경 송정고개를 조금 내려가 다리를 지나 달맞이고개를 넘어간다. 골인지점까지 7.2km 남았단다.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서 오라는 아내의 메시지도 받았다. 이제는 더 이상 무리할 것도 없다. 걸어서 가더라도 제한시간 내에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달맞이고개 내리막을 천천히 달린다. 응원을 나온 건지 운동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뛰어 올라오면서 파이팅을 외쳐준다.
해운대해수욕장에는 아침부터 막바지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인파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천천히 달린다. 피서객들은 땀으로 흠뻑 적신 채 배낭을 메고 눈이 풀린 상태로 달리는 마라토너를 약간 이상하게 바라보는 듯 하다.
동백섬이다. 동백섬을 한 바퀴 돌아서 가야만 한다. 달리기 참 좋은 동백섬 코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준다. 외국인도 많이 보인다. 누리마루 앞을 지나 동백섬을 돌아나오면서 휴대폰 1번을 길게 누른다. "동백섬 지났어...." "다 왔네? 조심해서 천천히 오세요."
해안도로를 따라 요트경기장으로 가는 약 1.5km도 엄청 멀게 느껴진다. 벌써부터 햇볕이 참 뜨겁다. 많은 주자들이 걷고 있다. 나도 조금 걸어본다. 뛰는 거나 걷는 거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럴 바에는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 좀 쉬자는 생각으로 달려본다. 마지막 힘을 다해서.........
Finish line이 보이기도 전에 아내가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어댄다. 아내를 잠시 뒤로 하고 모퉁이를 돌자 어제 출발한 그 Start line이 Finish line으로 변해있고, 입구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있다. 09:27경 힘차게 달려 골인지점을 통과한다. 두 손을 번쩍 들어 밤새도록 그 고통을 이겨내고 100km를 기어이 완주하고야 만 바보같은 이홍선이를 기쁜 마음으로 환영했다.
아! 고통 끝. 어떻게 13시간27분18초 동안 100km를 달렸나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 나의 6번 째 도전한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하였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허허롭기도 하다.
고생했다며 땀으로 범벅이 된 내 손을 잡아주는 아내에게 "기다리느냐고 고생했지? 그리고 이제 울트라 땡!" 아내는 "글쎄? 그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네?" 웃는다. 정말이다. 이제 울트라마라톤대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나중에 대회측 홈페이지를 보았더니 100km 완주한 사람은 355명이고, 전체 1위는 양중환 8:46:24이고, 여성 1위는 김옥희 11:59:40란다. 엄청난 사람들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게임 자체가 안 된다. 나 이홍선 13:27:18, 전체 102위 ^^ 그래도 30% 안에는 들었구나 ㅋ
이렇게 완주하도록 멀리 부산까지 따라와 함께 고생해 준 아내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응원해 주신 친구, 가족, 포런회원님 등 많은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 울트라라는 걸 어떻게 혼자 할 수 있는가? 나를 아껴주는 많은 팬들에게 머리숙여 깊은 감사들 드립니다.
그 이후
시원한 콜라나 캔맥주를 하나 마시고 싶지만, 부근에 상점이 없다. 안타까운 아내가 대회본부 측에 가서 뭐라뭐라 하더니 부산 생막걸리 1병을 얻어 온다. 몇 모금 먹어보지만 물로 가득찬 위장에서 잘 받아주질 않는다.
샤워장에서 비누도 없는 샤워를 한 후 부근 벤치에 누어 자꾸만 내려오려고 하는 눈꺼풀을 잠시 잡아둔다. 12:40분 기차시간이 아직 멀었다. 아내에게 부산 대표적 명소인 자갈치시장에 가서 생선회를 좀 사달라고 했다. 택시기사가 자갈치시장까지 좀 먼 거리이고 택시비도 2만원 정도 나온단다. 그리고 자갈치시장이라고 해서 그렇게 싸지도 않고 별거 아니란다. 차라리 이 근처 미포에 가면 싸면서도 싱싱한 자연산 횟감을 파는 곳이 많단다. 정말 3만원어치 주문한 생선회에다 부산 소주 '시원'을 마시는데, 양도 꽤 많다. 생선회 킬러 이홍선이 다 먹질 못했다. 많은 것도 많은 거지만 몸에서 잘 안 받아준다.
졸면서 졸면서 부산역까지 전철을 타고 갔다. 대합실에서도 졸고, 대전까지 오는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도 졸았다 깼다 하면서 어떻게 왔는지 잘 모르겠다. 옆에 아내가 있었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집에 돌아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전에서 택시를 타고 간 아파트 입구에서 내려 아내가 소고기를 산다. 몸이 얼마나 축났겠냐며 몸보신을 해준단다. 감칠맛 나는 치맛살을 먹고는 뻗어 버렸다. 본격적으로 잔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문득 잠을 깼는데, 아내가 나를 뉘었다 제쳤다 하면서 허벅지 종아리 등에 맨소래담을 바르고, 무릎에는 냉찜질을 하고 있다.
아~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
감사드린다.
끝. *^^*
첫댓글 진짜 고생많으셨어요....
^^!... 매형 쓰신 글을 보니.. 제가.. 직접.. 뛰고 있는 것 같네요.. 완주 축하드립니다.
언제 읽어 보아도 정말 존경 스럽네요 다음 대회하면 저도 불러 주세요 응원(구경)가게요 ㅎㅎ
읽는 동안 내가 다 숨이 차네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며칠전 달빛 걷기대회 21k를 걷는데 다리가 내다리가 아닌듯 했는데.. 형부에 집념과 용기에 박수가 절로 나네요. 언제나 멋쟁이이신 울 형부!!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