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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얼간이: 내가 휴학을 했던 이유
2014년 4월, 중간고사를 앞두고 나는 돌연 휴학을 선택했다.
다른 이들은 많이 선택하지 않은 학기 중 휴학을 한 것이다.
부모님과 교수님들을 비롯하여 친구들까지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은 휴학을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휴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더 다니며 공부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내 할 일을 해나갈 용기도, 힘도 없었다.
결국 나는 내 고집대로 4월 2번째 주 금요일에 휴학 접수를 마쳤고
4월달 한 달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봉사활동을 제외하고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학교도 가지 않았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행을 하지도 않았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방 안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작품성 있어 보이는 책 몇 장 넘기다 다시 집어던지다가
재미있는 예능 찾아 한 두개 보다가
드라마 몇 개 보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쉰다고 쉬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나니, 이번에는 몸을 조금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이렇게 쉬기만 하다가 인생을 쉬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느껴져서.
5월 달에는 조금 움직였다.
둘째 주까지는 시험이 끝난 친구들과 만났고, 그 다음주부터 6월 첫째 주까지 지방선거 캠프에서 자원 봉사를 했다.
느낀 건 이것, 저것 있었으나 여전히 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왜 내가 지쳤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이 영화를 접하게 됬다.
밤에 잠도 안 오는데 영화 한 편 보자해서 찾아봤던 영화가 이 영화였다.
그냥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영화였고, 재밌는 영화라고 다들 후기를 써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세얼간이 포스터,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55287>
약 세시간에 걸쳐 영화를 본 후,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정리하기 힘든 말들을 컴퓨터 메일에 무작정 적어대기 시작했다.
< 세얼간이 영화 부분 중 이미지, cafe.daum.net/nowwetalk/89rR/27095>
찾았다.
내가 왜 휴학을 하고자 했는지 그 이유를, 명백한 이유를 찾았다.
진짜 공부를 하고자 했던 것, 나의 다짐을 잊은 것이다.
나의 모든 생각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던 것.
그랬다, 나는 심리학 공부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모든 수업에서 듣는 교양 과목도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강의 시간 내내 잠 들어 본적이 없다.
항상 깨어있었고, 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나온 성적에 후회가 없었다.
내가 휴학을 하고자 했던 이유들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너무 많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찾았다.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보며, 이 새벽에 그 영화를 보며 나는 찾았다.
오늘 내가 이 영화를 보며 휴학의 이유를 찾으려고, 책을 읽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핑계로 잠에 들지 못했나 보다.
다시 내가 돌아가라고, 진짜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그 공부를 할 수 있는 장소로 어서 돌아가라고
그걸 깨닫게 하려고 신께서 지금 이 시간까지 내가 잠에 들지 못하게 했나 보다.
누군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써놓은 것을 보면
기독교 인들에게 이는 신이 정해주신 계획이었고, 불교 인들에게 이는 전생에 내가 쌓아둔 업 덕분이라 한들,
부모님은 나 스스로가 깨우친 것이라고 하며 서로들 누구의 덕으로 돌리겠지만
그 어떠한 들 어떠랴.
어찌 되었건 나는 그 이유를 찾았는데
행복하다.
속이 너무 후련하다.
맞다. 나는 경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속여가며 공부를 했다.
놀고 있다고, 공부 안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보다 더 많이 공부하는 친구들은 없을까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
과제가 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고, 과제를 할 때에 쓸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은 공유하지 않았다.
나의 1년 동안의 성적은, 특히 2학기의 성적은 그렇게 만들어진 성적이다.
내가 모르겠는 부분이 있었다.
예전의 나는 그것들을 모아 가져가 질문을 했지만,
2학기의 나는, 그것들을 외우기만 했다.
질문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시험에 나오는 것은 나의 궁금한 질문에 답을 쓰라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래서 그저 교수님들의 말씀을 받아적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성적을 위해서. 등수를 위해서, 장학금을 위해서.
분명 나를 고까워하는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다.
항상 공부 안했다면서 성적이 잘 나온다며.
노는 척하면서 공부한다며.
그래서 실제로 마음이 무거운 적도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다.
시험 성적을 친구들에게 속인 적은 없다.
내가 공부를 할 때 만큼은 정말 열심히 했고, 그 열정만큼은 스스로 인정한다.
그렇지만, 열심히 한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너무 기특하고 의젖했지만, 나는 변해갔다.
나에게서 공부의 자극을 받아 시험을 잘 치룬 친구를 보며 나는 화가났다.
나도 그 친구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점들이 분명 많았고, 그 친구에게서 받았던 것들이 너무 많았음에도
나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단지, 그 친구가 시험을 잘 봤다는 것을 보고.
그리고 그 시험을 잘 보게 도와준 사람이 나라는 것을 보고.
나는 미쳤었다.
사람의 소중함을 외치며, 인간 윤리와 실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자들의 글에 감명을 받았던 예전 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경쟁에 미쳐 정작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잊고 있었다.
내가 바쁘니, 저 사람의 마음을 깊게 파고들지 않으려했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항상 겉돌았다.
정말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그런 횟수도 줄어갔다.
나는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위했다.
지금, 현실에 적응해가고 있는 거라고.
지금,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지금, 공부하며 성장하고 있는 거라고.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경쟁하고, 끌어내리고, 눈치보고, 차갑고, 무관심하고, 어두운 것이라고 정의하지만
현실은 마냥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런 현실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이라 아니라, 스스로 그런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었으며.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베풀지 못하고, 그 누구도 되돌아보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나는, 공부를 하며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없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반기문 UN사무총장님의 새해연설 중에서는 이런 말이있었다.
'지식을 늘었으나, 지혜는 줄어들었고'
나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경쟁을 하며, 성적을, 장학금을 바라며 지식은 확실히 늘었던 것 같다.
질문 없는 학습과 깨달음 없는 암기가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전공뿐만 아니라 교양지식도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낸 후,
결국 나는 책을 보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었다.
마음을 울리는 글이 없어졌고,
감정도 메말랐다.
웃음도 줄었고, 울음도 줄었다.
그저 그런 기분과 습관적으로 올린 입꼬리.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었다.
내가 원하던 공부가 아니었다.
몸은 항상 긴장상태였던 것 같다.
지금 되돌아보니 긴장상태였다는 이 말은 그냥 꾀병이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무슨 상태이기는 한데,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니 몸이 핑계거리를 하나 만들어 줬던 것이다.
나는 경쟁에 지쳤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쟁에서 정말 경쟁만 하고 있는 내 모습에 지쳤던 것이다.
휴학을 하고 많은 일을 겪었다.
정말 직장 같은 사회생활을 해봤고, 그동안 보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다시는 겪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람의 죽음을 접했다.
그러면서 내가 예전에 가졌었던 소명의식을 다시 깨우칠 수 있었다.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를, 내가 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를 다시 깨우쳤다.
그리고 오늘 이 영화를 보며 내가 왜 이렇게 지쳐있던 것인지
내가 왜 이렇게 자존감이 무너져있던 것인지
내가 왜 힘들었으며, 내가 왜 사람의 소중함을 잊어버렸고,
내가 왜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를 어색해하게 되었는지
다 깨달아버렸다.
너무 속상하고 괴롭다.
사람을 잃은 느낌이 갑자기 너무 든다.
일단, 위의 그 친구였던 영지에게 너무 미안하다.
느껴졌다. 그 친구는 나에게 진심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감추고, 도망갔으며, 거리를 두었다.
영지의 진심에 미안하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초심으로 돌아가야한다.
공부가 재미있었던 그때로,
전공 공부를 하면 신이 났던 그때로,
시험 공부를 하다보니 재미있어서 밤을 샜던 그때로,
나는 돌아가야한다.
나의 공부를 위해서, 나의 인간됨을 위해서, 내 인생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장학금, 돈, 인정, 명예 그 모든 것에 내가 이끌리는 것이 아닌, 그것들이 나를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
내가 했던 공부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솔직한 말로 1년 동안 습관이 되어 버린 습관들이다.
견제하고, 거리를 두고, 내 것만 챙기는.
그래서 바로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
너무 큰 기대를 설정하여 스스로 실망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바꿀 것이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나의 모든 목표가 설정되었었다.
바꿔 나갈 것이다.
경쟁의 체제에 지지 않을 것이다.
진짜 지는 것은 꼴등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체제에 반문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며 자기를 그에 맞추는 것.
그 체제에서 1등을 하기 위해 자기를 설정해두는 것.
그게 꼴등이다.
그게 최악이고, 스스로를 버리는 일이다.
휴학을 하길 잘했다.
적당한 시기에, 정말 필요한 반성을 하고 있어 다행이다.
깨우쳐서 다행이고, 알게되어 다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학문을 멀리하지 않게 만들어라.
더 이상 장학금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타인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시선에 얽매여 나의 깨달음마저 연기가 되게 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그동안 머릿속에 모아둔 것을 버리지 말되, 행동은 바꾸자.
사실 글을 쓰면서도 아직도 속이 후련하지 않다.
더 많이 반성하고, 더 많이 실천해야한다.
세 얼간이 영화도 두 번, 세 번 잊혀지려 할 때마다 돌려봐야겠다.
수동 말고 능동
끌리지 말고 끌고가라
힘내자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