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과 절의 위치 / 모든 절들은 왜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나요?
① 죽은 가치와 살아있는 가치
수미산 우주론은 인도문화의 보편적인 측면이다. 보통 우주론과 같은 경우는 문화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수미산 우주론은 힌두교와 불교 및 자이나교의 공통되는 가치이다. 다만 불교라는 다른 종교와 변별되는 특수성에 의해서, 그것은 수용되면서 불교적으로 변형된다. 즉, 수미산 우주론은 불교가 창안한 것은 아니지만, 불교의 수미산 우주론은 불교만의 특징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불교인들조차 불교우주론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이는 불교우주론이 현대과학이 제시하는 우주론과 너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교우주론을 다루는 불교전적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상당히 세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기에 어려움이 더 크다. 바로 이 점이 불교우주론이 외면 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종교는 현실을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종교는 ‘행복론’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나름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또한 불교의 우주론은 우주 당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창 되었다기보다는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서 파생한 요청적인 가치이다. 즉, 불교는 어디까지나 ‘인간학’인 것이다.
또한 우주론이 성립되면 이러한 우주론은 해당문화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즉, 불교의 우주론은 불교문화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불교의 가람배치는 불교의 수미산 우주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한 원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대승경전들도 불교우주론을 기반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중세를 대변하는 불교시대는 곧 불교가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관점과 역사인식에 있어서도 불교우주론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된다.
불교우주론은 현대의 세계관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불교우주론은 죽은 지식이다. 그러나 불교경전과 불교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는 아직도 충분히 유효한 살아있는 존재이다. 또한 가람배치와 같은 부분은 과거인 동시에 현재이다. 즉, 사찰은 과거의 유산인 동시에 현재도 건립되는 가치인 것이다. 이러한 사찰이 불교우주론에 바탕을 두고 건립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불교우주론은 현재에도 살아있는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즉, 불교우주론은 죽은 지식인 동시에 살아있는 가치인 것이다.
② 일반미술과 종교미술
일반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요청되는 것은 독창적인 창의력이다. 그래서 구도와 관점만이 아니라, 현대에 들어와서는 재료와 기법에 있어서도 가히 혁명적인 발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미술과 같은 경우는 이와는 좀 다르다. 종교미술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은 ‘의궤성’이며, 이는 독창성을 거부한다. 즉, 일반미술과 종교미술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지는 영역의 미술인 것이다.
종교미술과 같은 경우는 해당종교의 성인聖人관련 사건이나 경전의 내용, 또는 신앙심의 고취와 관련된 종교적인 감동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해당종교의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 미술이 완성되어야만 한다. 혹여 개인성이 강조될 경우 작품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해당종교에 있어서 그 작품은 고유기능과 생명력을 잃게 된다. 표현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도 전체적인 구조가 같아야만, 누구나 이해하고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체계가 파생하는 것이다. 종교의 포교관점은 바로 이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종교미술은 몇몇 구조만 파악하게 되면, 의궤성을 통해서 전체를 읽어 볼 수가 있다.
③ 절의 구조와 수미산
산사에 가보면, 대체로 절들이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와 일주문,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천왕문. 그리고 그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탑과 대웅전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양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동일한 관점에 따라서 가람배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식케 한다. 이러한 동일성으로 인하여 우리는 같은 한옥식의 복합건물인 향교나 왕궁과 사찰을 혼동하지 않는다. 물론 사찰 안에서는 각기 다른 차별성이 내포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점은 동일성 속의 차별일 뿐이다. 이는 마치 사람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람과 동물을 혼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면 사찰이 위치하는 방식, 즉 가람배치의 밑그림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불교의 수미산 우주론인 것이다. 절은 수미산 우주론을 설계도로 해서 수미산정인 도리천에 붓다를 모신다. 이것이 우리사찰,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사찰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미산 우주론에 대한 선행지식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또한 수미산 우주론에 조금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앙코르와트와 같은 힌두교 사원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불교건축 및 탱화나 만다라까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종교미술은 의궤성에 기반을 두며 이는 대동소이한 측면에서 끊임없이 반복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미산 우주론에 대한 이해는 불교문화를 올바로 파악하는 첩경이 된다.
① 냇물과 다리 : 수미산 우주론에서 성聖과 속俗을 분기하는 향수해香水海를 상징함.
② 일주문 : 수미산의 최하단으로 성역聖域의 시작점을 상징함.
③ 천왕문 : 수미산의 중턱으로 동東/지국천왕持國天王, 남南/증장천왕增長天王, 서西/광목천왕廣目天王, 북北/다문천왕多聞天王을 남향의 일향성一向性 관점으로 재편하여 상징화함.
④ 해탈문 : 수미산 정상의 방형공간에 대한 공간분할을 상징함.
⑤ 대웅전 : 수미산정須彌山頂인 도리천忉利天 안의 선견성善見城을 상징함.
⑥ 강 당 : 선견성 주위의 부속건물을 상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