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은 빅토리앙 사르두의 희곡
<토스카>의 원작자인 빅토리앙 사르두는 당시 프랑스에서 '멜로 드라마의 왕'으로 통했을 만큼 최고로 대중적인 인기작가였는데, 그는 당대 최고의 비극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이 희곡을 썼으며 전 5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명한 독설가이자 희곡작가였던 버나드 쇼는 이 사르두의 극을 '마치 공장에서 생산한 것 같은 뛰어난 드라마'라고 그다운 풍자를 곁들여 칭찬했다. 전성기의 사르두는 흔히 '사르두 황제'라고까지 칭송될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연극 <토스카>는 1887년에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푸치니는 1890년에 이 연극을 밀라노에서 보고 감격한다. 하지만 <라 보엠>의 작곡으로 바빠서 <토스카>에 눈돌릴 겨를은 없었다. 그러던 중 <라 보엠>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특히 파리 오페라 코믹에서의 성공적인 <라 보엠> 데뷔는 푸치니의 명성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이 때의 파리 방문에서 푸치니는 <토스카>의 원작자인 사르두와 만났다. 두 사람은 저작권에 대한 15%의 로열티와 5막짜리 희곡을 3막의 오페라로 고치겠다는 것에 합의했다. 자코사와 일리카가 대본을 맡았으며, 1900년에 로마에서 레오폴드 무노네가 지휘를 하여 초연했다. 토스카 역엔 루마니아의 소프라노 하리클레아 달크레, 그리고 카바라도시 역은 테너 에메리오 데 마르키가 맡았다. 초연을 시작하기 전에 약간의 혼란이 있었으나, 관객들에게 갈채를 받았고, 아리아의 앙콜 요청 및 일곱 번의 커튼 콜이 있었다.
<토스카>는 그 당시 이태리의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사실주의 오페라이므로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좀 살펴 보겠다.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
<토스카>의 무대는 1800년 6월 당시의 로마인데, 나폴레옹이 마렝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때가 그 시점이다. <토스카>가 전개되는 1800년 6월 당시의 로마는 문자 그대로 비밀경찰국가 같은 공포와 위협에 가득찬 무서운 도시였다. 이탈리아는 1861년에 사르디니아 왕국으로 통일을 이룩하기까지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줄곧 강대국의 침탈을 받았는데 프랑스 혁명에 의해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 상륙한 이후엔 이탈리아 전토가 나폴레옹 체제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군대가 작전상 일시 후퇴한 1798년 12월에 오스트리아의 메크 장군이 이끄는 나폴리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게 되는데, 일련의 전투에서 메크가 프랑스 군대에 의해 줄곧 패배당하기 전의 수주일 동안 나폴리의 페르디난트 왕과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는 로마의 나폴리 대사관인 파르네즈 궁에 살고 있었다. <토스카>의 2막이 진행되는 곳이 바로 이 파르네즈 궁이다.
1800년에 들어오며 다시 프랑스군이 역전 기세로 승리하기 시작했고 <토스카>에 언급되는 결정적인 프랑스군의 승리가 마렝고 전투에서 있었다. 그것이 1800년 6월 14일이고 사르두의 원작에 의할 것 같으면 <토스카>의 시간설정이 마렝고 전투 사흘 후로 되어 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사건 진행은 1800년 6월 17일부터 이튿 날 새벽까지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렝고 전투는 당시 통신 기관의 미비로 말미암아 처음에 이탈리아의 승리로 와전되었다. 그리하여 1막에서 성당지기가 기뻐 날뛰는 것이다. 2막에 와서 콘서트가 한창 진행되고 나서야 이탈리아의 승리가 아닌 패배였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다 죽게 된 카바라도시가 그래도 몇 마디 외칠 기운이 솟아난 것은 그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통일됐을 때 세 살이었던 푸치니는 이른 바 '신국가'의 제1세대에 속했다. 그러므로 <토스카>의 배경이 된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은 푸치니에겐 이탈리아인으로서의 교육의 일부였던 만큼 사르두의 희곡을 보기 전에 이미 그것은 그의 정신 속에 배어 있었다 할 수 있다.
2. 줄거리
* 작곡: 푸치니 (G.Puccini, 1858 - 1924)
* 대본: 사르두(V.Sardu)의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일리카(L.Illica)와 자코사(G.Giacosa)의 협작 (이태리어)
* 등장인물: 플로리아 토스카 (Floria Tosca 프리마 돈나) S
마리오 카바라도시 (Mario Cavaradossi 화가로 그녀의 연인) T
스카르피아 남작 (Baron Scarpia 경찰 서장) Br
체사레 안젤로티 (Cesare Angelotti 정치범) B
성당지기 Br
스폴레타 (Spoletta 경찰관) T
그밖에 교도관, 양치기, 경찰, 귀족, 사형 집행인 등
* 때와 곳: 1800년경 로마
* 초연: 1900년 1월 14일 로마
- 제 1 막 -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이다. 오른쪽에는 아띠반티의 기도실이 있고 왼쪽으로는 그림을 그리다 말은 높은 단이 있다. 때는 1800년 6월이다. 탈옥한 정치범 안젤로티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들어온다. 그는 여동생을 시켜 간수를 매수하여 탈옥했으며, 여동생이 편지 속에서 지시한 대로 한가운데 있는 성모상 밑의 수반으로부터 열쇠를 찾아내자 살며시 성당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 때 화가 카바라도시에 이어 성당 문지기가 등장한다. 문지기가 붓을 깨끗이 빨고 있을 때, 단 위의 카바라도시는 자기의 애인 토스카와 엇비슷하게 그려진 마리아 상의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 속의 여인과 메달 속의 토스카의 사진을 비교해 보며 아리아 '오묘한 조화'를 노래한다.
문지기가 아직 입도 대지 않은 채 둔 카바라도시의 점심 바구니를 눈여겨 보면서 퇴장하자, 인기척에 놀라 도망치려던 안젤로티가 화가에게 들켜 버린다. 그러나 카바라도시는 안젤로티가 그 전의 로마 공화국 영사였음을 알아 차리고는 뭔가 도와 줄려고 한다.
그 때 마침 토스카가 카바라도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얼른 안젤로티에게 점심 바구니를 주며 다시 숨게 하고 그녀를 맞는다. 그녀는 문이 잠겨져 있는 이유와 함께 안에서 누군가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며 함께 얘기를 나눈 여자가 누구냐고 다그친다. 카바라도시는 그녀의 의혹을 가라앉히면서, 사랑의 2중창을 부르며 전원생활의 미래를 노래한다. 그들은 저녁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그녀는 돌아가면서 문득 자기의 눈 색깔인 검정색 대신에 푸른 색으로 칠해져 있는 마리아 상을 시기라도 하듯 쳐다본다. 카바라도시는 질투심을 드러내는 토스카를 잘 무마해 보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카바라도시의 모델이 된 여인은 바로 안젤로티의 누이동생인 아따반띠 부인이었고 그녀는 성당에서 기도하는 척하며 안젤로티가 갈아입고 도망할 옷을 숨겨 놓았었다. 안젤로티를 여동생의 옷을 입혀 가장시키는 사이 안젤로티의 탈옥을 알리는 대포소리가 성으로부터 울려 나오고, 카바라도시는 그를 자기 소유의 말라 버린 우물로 데려가려고 서두른다. 이태리 군대가 나폴레옹을 격퇴시켰다고 외치면서 성당지기가 다시 들어오자 그들은 급히 몸을 숨긴다. 성당지기는 카바라도시를 찾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성직자와 신도들이 모여든다. 성당지기는 그들에게 나폴레옹 군이 크게 패하여 오늘 밤은 그 축하연이 궁전에서 거행되는데 토스카가 새로 작곡된 칸타타를 부르기로 되어 있다고 알려 주어 모두들 기뻐한다.
떠들썩한 교회 성가대의 소리가 들려오던 중, 비밀경찰 서장인 스카르피아가 안젤로티를 찾기 위해 들이닥치자 모두들 두려움이 잠잠해진다. 스카르피아는 안젤로티가 이 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아따반티 성당 안에서 안젤로티의 누이동생인 아티반티 부인의 부채와 음식 바구니가 빈 채로 발견된다. 성당 안에 그려진 그림의 여인은 아띠반티 부인이 분명했다. 스카르피아는 그것을 그리는 화가가 친프랑스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 카바라도시라는 것을 알아낸다. 순간적으로 스카르피아에게 그가 탐욕스럽게 원하고 있는 토스카를 손아귀에 넣고 동시에 연적과 정치범을 한꺼번에 차지할 구상이 떠오른다. 그 자리에 갑자기 토스카가 들어온다. 그리고 카바라도시가 없음을 알고는 맥이 풀린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다가가 부채를 흔들어 보이며 질투심을 부추기고는 부드럽게 그녀를 위로하며 자기가 토스카에게 호감을 품고 있음을 은근히 풍긴다. 토스카는 오늘 밤 카바라도시와 함께 시골 별장에 가기로 했으나 갑자기 궁전의 축하연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어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혹시 카바라도시가 그 부채의 주인공인 여자와 별장에서 만나기로 된 것이 아닌가 하여 당장 가 보려고 나서는데 스카르피아는 따뜻이 그녀를 배웅한다. 그는 곧 스폴레타에게 미행을 명령한다. 스카르피아는 승리라도 한 듯이 '가라, 토스카, 스카르피아가 그대의 마음 속에 스며있다'라고 노래를 부른다.
오르간이 울리며 추기경의 행렬이 나타난다. 성가대가 '테 데움'을 부르고 축포와 종소리가 울린다. 추기경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대합창이 그 뒤를 잇는다. 막이 내려지면서 스카르피아는 열정적으로 찬송가를 따라 부른다. 그는 카바라도시를 제거하고 토스카를 차지할 음모를 꾸민다.
- 제 2 막 -
파르네제 궁전 안에 있는 스카르피아의 방이다. 그는 저녁을 먹으면서 스폴레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시아르로네를 불러 종이 쪽지에 적은 무언가를 전해 주며 토스카를 불러 오라고 명한다. 이때 스폴레타가 들어와 안젤로티는 놓쳤지만 카바라도시를 체포해왔다고 알린다. 스카르피아가 문초를 시작했으나 카바라도시는 완강히 대답을 거부한다. 토스카가 들어오자 카바라도시는 재빨리 그녀도 입을 다물라고 말한다. 카바라도시는 옆방인 고문실로 끌려간다. 애인이 고문을 견디는 소리를 들려주며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안젤로티의 은신처에 대해 아는 바를 말하라고 종용한다. 그녀는 스카르피아에게 용서를 빌로 모든 것을 말하려 하다가 카바라도시의 '입을 열지 마라'는 소리가 들려와 망설인다. 그러나 고문이 점점 더 심해지자 토스카는 체념하여 정원에 있는 낡은 우물 속이라고 자백한다. 그것은 안 카바라도시는 안타까운 나머지 기절하고 만다. 이 때 시아르로네가 들어와 마렌고 전투에서 이긴 쪽은 나폴레옹 군이라고 알리므로 그 말을 들은 카바라도시는 기운을 회복하여 자유의 부활을 노래하면서 스카르피아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스카르피아는 화가 나 그를 반역자로 몰아 사형 선고를 내린다.
그는 질질 끌려 나가고, 스카르피아는 카바라도시의 목숨을 흥정이라도 하듯이 토스카를 유혹한다. 그녀가 오늘 밤 자신과 함께 지내준다면 그녀와 카바라도시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제의한다. 절망은 그녀는 유명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른다. 애원하지만 소용이 없는 것을 안 그녀는 카바라도시와 함게 이탈리아를 떠나도록 해줄 것을 조건으로 몸을 허락하기로 결심한다. 스카르피아는 스폴레타를 불러 카바라도시를 처형하되 '팔미에리 백작에게 했던 방식'처럼 사격수들에게 실탄이 없는 총을 지급하여 거짓 총살집행을 지시하면서 의미심장한 눈짓을 곁들인다. 토스카는 그의 포옹을 받아들이기 전에 카바라도시와 국외로 탈출할 수 있도록 통행 허가증을 써달라고 요청한다. 스카르피아가 그것을 적는 사이에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칼을 가슴 속에 숨긴다. 그가 팔을 벌리면서 그녀에게 다가오자 안김과 동시에 그를 깊이 찌른다. 그녀는 칼을 식탁 위에 놓고 냅킨을 물에 적셔 피묻은 손을 닦고 나서 흐트러진 머리칼을 매만지고 옷깃을 바로한 뒤 스카르피아가 아직도 손에 움켜쥐고 있는 허가증을 빼앗는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 전에 그의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고 머리맡에는 촛불을 놓아준 뒤 떠난다.
- 제 3 막 -
성 안젤로의 궁정의 옥상이다. 이곳에서 카바라도시는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토스카에게 작별의 편지를 쓴다. 그는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흐느껴 부른다. 조금 후 토스카가 사형 집행장으로 달려와 그에게 안전 보증서를 보여 주며 거짓 사형 집행이 실시될 것임을 일러 준다. 어찌된 영문이냐고 다그쳐 묻는 그의 조급한 질문에 그녀는 스카르피아를 자기 손으로 죽였노라고 고백한다.
그는 그녀의 손에 키스를 하고는 '오, 부드러운 손이여'라면서 다정하게 노래한다. 두 사람은 '죽음이란 그대에겐 가혹하도다'라는 애정이 담긴 2중창을 부른다. 사형 집행수가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환희에 차 있다. 집행인이 다가서서 눈을 가리우려 하자 그는 거절한다. 그리고 벽에다 등을 대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사격수들의 일제 사격이 있고 그는 쓰러지나 토스카는 잔잔한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사격수들이 퇴장한 후 카바라도시의 곁으로 간 그녀는 그를 일으켜 세우려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총엔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토스카는 자신이 끝까지 속고 있었음을 깨닫고 절규한다. 이 때 스카르피아의 시체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녀를 잡으려고 밑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면서 성 위로 뛰어올라가 그대로 몸을 던저 버린다.
3. My Review
<토스카>는 박정희가 마지막으로 봤던 오페라였다. 그는 1979년에 호세 카레라스와 몽세라 카바예가 <토스카> 내한 공연을 했을 때 아들 지만 등을 데리고 가서 직접 관람했다고 한다. 1막만 보고 떠났다지만 어쨌든 주인공이 총살 당하는 이 오페라를 본 후 몇 개월 뒤, 공교롭게도 박정희도 김재규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 정말 '오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 그만 못살게 굴고 일찍 물러났더라면 남은 인생을 오페라 실컷 보며 보내지 않았을까?
오페라 <토스카>엔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가 많이 나온다. 오페라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 반할 만한 '별은 빛나건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내가 처음으로 들은 '별은 빛나건만'은 코렐리가 부른 것이었다. 내가 처음샀던 아리아집인 '10대 테너 가수의 10대 아리아'라는 음반에서 코렐리는 '별은 빛나건만'으로 마지막 장식을 했다. 그가 내뿜는 너무도 격정적이고 우렁찬 목소리는 나를 압도했다. 그 이후로 나는 아직도 그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그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인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너무도 아름다운 '별은 빛나건만'이 흘러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질리의 음성이었는데 나는 그 전까지 질리의 음성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터라 그의 미성에 매료되어 당장 그의 아리아집을 샀다. 코렐리와 질리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은 사뭇 틀리는 분위기지만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도밍고가 카라칼라 콘서트에서 부른 것과 마리오 란자가 런던 공연 실황에서 부른 것도 상당히 기억에 남을 만한 연주이다.
토스카 역으로 유명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그 유명한 1958년 파리 데뷔공연에서, 무대를 꾸며 티토 곱비, 테너 알베르 랑스와 함께 <토스카> 2막을 공연했다. 나는 이 날의 실황 공연을 담은 비디오 테잎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의 카리스마적인 토스카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칼라스는 올림머리를 하고 반팔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를 땐 벽에 걸린 십자가 아래에 있는 작은 테이블 비슷한 곳에 한 손을 얹고 시작한다. 그러다가 앞으로 약간 나오며 부른다. 그녀의 손 연기와 비통한 표정의 연기는 칼라스이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아의 절정 부분에 가서는 두 손을 깍지끼고 부르고는 주저 앉고,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친다. 그녀는 답례로 머리를 숙여 깍지낀 두 손 위에 올려 놓는다. 곱비는 이 아리아를 부르는 동안 잠시 문 밖 쪽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곱비의 악기 가득한 연기와 칼라스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이 장면을 들을 때마다 떠오른다.
그리고 1964년에 역시 곱비와 공연했던 2막 장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른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 때의 칼라스는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58년 공연 때 보다 얼굴이 야위어 있었고 고음이 이전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의상은 이 때가 58년 공연 때보다 아름다운 것 같았다. 이 공연에서 칼라스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스카르피아의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부르다가 고음 부분이 가까워지면 일어서서 부른다.
칼라스는 정말 토스카처럼 질투심 많은 프리마 돈나였다. 그렇게 자존심 강하고 거만하던 칼라스는 결국 파리에서의 <토스카>공연을 끝으로 실질적인 은퇴를 했다.
테발디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영상으로 본적이 있는데 그녀는 의자같은 곳에 앉아서 부르다가 중반부를 넘어서는 서서 부른다. 거기서 부른 것이 레코딩에서 부른 것 보다 훨씬 윤기있고 뛰어나다. 외모로 보자면 칼라스에게 밀리지만 그녀도 못지 않은 실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우람한 체구에서 나오던 고음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라이타 카바이반스카와 도밍고가 찍은 <토스카>영화에서 카바이반스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른다. 그녀는 극적 효과를 위해 남들이 부르기 어려워하는 자세에서 노래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지만 내가 볼 땐 자세만 괜찮을 뿐 표정연기는 별로였다.
난 아직까지 데 사바타 지휘의 전곡 녹음에서 칼라스가 부른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능가하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훗날 칼라스 자신도 능가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레트르 지휘의 전곡 녹음에서 부르는 같은 곡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직접 본 <토스카>공연은 2000년 11월에 대구에서 있었던 영남 오페라단의 <토스카>였다. 지방민간오페라단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공연이었다. 그리고 감상 에티켓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삼일 간 공연되었는데 내가 둘째날 표를 샀으니 배역진은 당연히 첫날이나 마지막에 비해 떨어질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었다. 그 날의 공연을 한마디로 바리톤 때문에 망친 공연이었다. 첫날의 스카르피아 역은 대구경북에서 유명한 박영국 선생님이었고, 마지막 날은 역시나 유명한 김원경 선생님이셨다. 내가 본 둘째날 공연한 바리톤 남모(?)씨의 노래는 처음 듣는 것이었는데 실망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으며 공연 끝까지 딕션이 명료하지 못했고 성량이 테너, 소프라노에 비해 현저히 약해서 가장 긴박감 넘치는 2막의 중요한 장면을 밋밋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막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합창단의 소리에 파묻혀 바리톤의 목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2막 장면을 볼 때 소리가 하도 답답하여 빨리 끝나고 3막이 열렸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영남오페라단의 그 <토스카>공연은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었고 아리아만 원어로 불렀다. 이태리어로 부르게 되면 딕션에 크게 신경을 안쓰게 되지만 우리말로 부르니 신경이 갈 수밖에 없었다. <토스카>를 잘 모르고 온 사람들은 더더욱 가사를 들으려고 신경을 썼겠지만 스카르피아가 부르는 부분은 알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카바라도시 역은 대구를 위주로 활동하는 최덕술씨가 맡았고 소프라노 역도 역시 대구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최윤희씨가 맡았다. 최덕술씨는 '오묘한 조화'를 부르기까지는 긴장이 풀어지지 않은 것 같았지만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좋은 노래를 들려 주었다. 지방에서 우리말로 공연된 작품을 보고 마리아 칼라스와 스테파노의 레코딩과 견주어 부족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윤휘씨의 연기는 긴박감이나 순발력 등은 부족했지만 참 열심히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3막 끝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나 2막에서 스카르피아를 죽이기 전까지의 장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