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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유래
♣ 삼한시대 : 진한(辰韓)12국중 근기국(勤耆國)의 영역
♣ 삼국시대 신라초기 : 근오지현(斤烏支縣, 또는 烏良友라고도 함)
♣ 통일신라시대 : 경덕왕 16년(757) 임정현(臨汀縣) 으로 고치고, 의창군(義昌郡:후의 興海郡)의 영현(領縣)
♣ 고려시대 : 태조 13년(930)에 영일현(迎日縣)으로 고치고, 현종 9년(1018) 경상도(慶尙道)의 경주대도호부
(慶州 大都護府)에 내속(內屬)
♣ 조선시대 : 영일현(迎日縣, 또는 연일현(延日縣)으로 경주부에 속함
▣ 1765년 : 8면(邑內·夫山·驛·古縣·南·舊邑·西·北面)
▣ 1789년 : 8면 82리(읍내면 11리, 북면 10리, 서면 6리, 구읍면 3리, 역면 2리, 남면 11리, 부산면 17리, 고현면 21리)
※ 부산면(夫山面) : 세계원(世界院), 일광(日光), 약전(藥田), 정천(亭泉), 중(中), 조사율(造士津), 임곡(林谷), 백덕(白德), 입암(立巖),
마산(馬山), 연화(蓮花), 하피곡(下波谷), 직환(稷串),오산(오山), 대동배(大冬背), 보천(甫川), 정족(鼎足)
▣ 1832년 : 7면 78리(읍내면 16리, 북면 9리, 서면 7리 남면13리, 고현면13리, 부산면 18리, 역면 2리)
※ 부산면(夫山面) : 세계원(世界院), 세곡(細谷), 정천(井川), 중(中), 도구(都丘), 약전(藥田), 임곡(林谷), 백덕(白德),
입압(立岩), 마산(馬山), 상흥(上興), 하흥(下興), 피환(皮串), 여사(余仕), 정천(爭川), 대동배(大冬背),
거사(居士), 보천(甫川)
▣ 1871년 : 7면 104리(읍내면 10리, 고읍면 18리, 서면7리,남면 18리, 고현면 22리, 부산면 27리, 역면 2리)
※ 부산면(夫山面) : 세계(世界), 신흥(新興), 일광(日光), 도구(都丘), 입석(立石),약전(藥田), 중(中), 염정(廉亭), 정천(亭泉),
금광(金光), 조사(造士), 저동(猪洞), 임곡(林谷), 흥덕(興德), 입암(立岩), 마산(馬山), 연화(蓮花), 상흥(上興),
하흥(下興), 직환(稷串), 오산(오山), 여사(余士), 거사(居士), 정족(鼎足), 정천(爭川), 구만(九萬), 보천(甫川)
▣ 1895년 5월 26일 : 전국 23부제(府制) 및 336군제(郡制) 실시로 영일현이 영일군(迎日郡)으로 되
어 동래부(東萊府)에 속함. 8면 102리 (동면, 북면, 읍내면, 서면, 남면, 고현면, 일월면, 동해면)
※ 동해면(東海面) : 도구(都邱), 입석(立石), 약전(藥田), 저동(猪洞), 조사(造士), 임곡(林谷), 흥덕(興德), 입암(立岩), 마산(馬山),
상흥(上興), 직환(稷串), 오산(오山), 여사(余士), 대동배(大冬背), 정천(爭川), 구만(九萬), 정족(鼎足)
▣ 1896년 8월 4일 : 13도제(道制)실시로 연일군(延日郡) 이 경상북도의 관할이 됨
♣ 일제강점기
▣ 1910년 10월 1일 : 8면 104리
※ 동해면 : 도구, 입석, 약전, 석동, 조사, 임곡, 흥덕, 입암, 마산, 상흥, 하흥, 직환, 발산, 여사, 대동배, 정천, 구만, 포천동
▣ 1914년 3월 1일 : 흥해·연일·장기·청하군을 영일군(迎日郡)으로 통폐합
▣ 1914년 4월 1일 : 면(面의) 명칭과 구역을 정함 (32面→17面 520里洞)
※ 장기면(장기군현내면), 봉산면(장기군서면), 창주면(장기군내북면·외북면),
동해면(연일군동해면),
오천면(연일군일월면·고현면),
대송면(연일군남면·동면),
연일면(연일군읍내면·서면),
포항면(연일군북면, 흥해군동상면),
흥해면(흥해군동하면·동부면·서부면),
달전면(흥해군서면·남면),
곡강면(흥해군북상면·북하면<청진동·오도동은 제외>),
신광면(흥해군신광면),
기계면(흥해군기계면),
청하면(흥해군북하면청진동·오도동, 청하군동면· 현내면·서면),
송라면(청하군북면·내북면),
죽남면(청하군죽남면),
죽북면(청하군죽북면)
▣ 1914년 8월 5일 : 리동(里洞) 명칭과 구역 변경 (520里洞→225里洞)
※ 장기면(30→12), 봉산면(25→11)
창주면(30→16) : 성동리(상성,하성,달길), 공당리(공당,수척), 상정리(대박,상정), 중산리, 중흥리(중흥리일부), 병포리,
하정리(당사,하정,임물), 장길리, 구평리 (도구,구평,조암), 삼정리(범진,삼정), 구룡포리(사라,신동,창주),
석병리(두일, 석병), 강사리(명월,강금,사지), 눌태리, 후동리, 대보리(대천,보천)
오천면(30→16) : 인덕동(인덕,상원,대송면동촌동), 원동(상원동일부,하원,죽전), 항사동(항사,경주군내동면왕산리),
문덕동(죽전동일부,문덕,신기, 신평,신흥), 갈평동(갈평,문성), 문충동(문성동일부,문충,신광),
진전동, 용산동, 광명동, 세계동(신흥동일부,세계,중흥동일부), 용덕동(용덕,일광동일부),
구정동(구정,일월동일부), 금광동(정천,금광,중흥,신정동일부, 봉산면냉천리), 일월동(일월,일광), 청림동,
신정동(신정동,중리동)
동해면(19→10) : 도구동(도구,입석), 약전동, 임곡동(조사, 임곡), 석동(석동리<=석동>), 입암동 (흥덕,입암), 발산동(발산,여사),
마산동, 흥환동(상흥,직환,하흥,창주면중흥동), 대동배동(대동배,정천), 구만동(구만,보천동)
대송면(25→15), 연일면(24→13), 포항면(10→8),
흥해면(6→4) 달전면(3→2), 곡강면(10),
신광면(13), 기계면(23), 청하면(19→14),
송라면(3→4), 죽남면(4→2), 죽북면(4→3)
▣ 1942년10월1일 : 창주면이 구룡포읍(九龍浦邑)으로 승격할 시 창주면의 공당(孔堂)리, 상정(上政)리, 중산(中山)리,
중흥(中興)리 가 동해면에 편입되고, 동해면의 구만(九萬)리가 구룡포읍에 편입
♣ 대한민국시대
▣ 1973년7월 1일 : 오천면의 일월동·금광동·신정동을 동해면에 편입 (16개 법정동, 31개 행정동)
▣ 1983년2월15일 : 동해면 일월동을 포항시에 편입 (15개 법정동, 30개 행정동)
▣ 1986년4월 1일 : 대보출장소가 대보면으로 승격될 시 동해면의 대동배동을 대보면에 편입 (14개 법정동, 28개 행정동)
▣ 1988년5월 7일 : 洞을 里로 통일 개정
▣ 1995년 6월 21일 : 동해면 금광리 일부를 장기면 정천리에 편입
▣ 2002년 7월 현재 : 14개 법정리, 28개 행정리, 면사무소 : 도구2리 648-2번지
동해면의 명칭유래
동해면(東海面) : 1895년에 전국8도제(全國 8道制)를 23부제(23府制)로 개정(改定)할 때 원래 경상도 경주부 영일현 부산면(慶尙道 慶州府 迎日縣 夫山面)이 동래부 영일군 일월면 (東來府 迎日郡 日月面)과 동해면(東海面)으로 되었으며, 본 동해면(東海面)은 “동쪽의 바닷가에 있는곳” 이라 하여 짓게 되었음.
도구리(都邱里)
동해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청림동과 경계를 접하며, 남쪽에 해병부대가 있다. 1리와 2리로 나뉘어져 있는 도구, 2리인 우물재, 3리인 농장(農場)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마을로 최근 포항 시세의 확장으로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도구(都邱)
면소재리로 파출소, 우체국. 단위농협, 시장, 동해초등학교, 포항동해중학교, 포항정보여자고등학교 등의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이 위치해 있다. 현재 1리에 해당하는 지역을 흔히 큰동네라고 부르며, 공공기관들은 2리에 분포되어있다. 동해초등학교의 선돌과 예비군훈련장 뒤의 고분군이 이 지역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으며, 시장터 위쪽에는 연오랑과 세오녀를 모신 일월사당이 있다. 매년 4월초 큰동네에서는 현씨 터주 신위를 모시고 아름드리 해송 세그루가 있는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다.
⊙우물재
마을 곳곳에 땅을 파면 시원한 물이 솟아난다고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이며, 천호라는 우물물은 특히 유명하다.
⊙농장(農場)
1929년 일본인 중야륭(中野隆)이라는 사람이 일본으로부터 대량의 포도 묘목을 가지고 와 대규모의 포도농장을 만들었는데 이에 연유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이다. 이육사(李陸史)의 시 \'청포도\'가 바로 이 농장과 영일만의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씌어졌다고 한다.
약전리(藥田里)
현 도구해수욕장인 어릿불 동쪽에 위치하여 석리, 상정리, 도구리, 신정리등과 경계를 접하는 마을로 1·2리에 해당하는 약전과 3리의 굼바우 등 2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부락을 합쳐 약전리라 하였다.
⊙약전(藥田)
조선시대 이 곳에 약초를 재배하던 밭이 많아 불리게 된 이름이다. 한약방도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약초도, 한약방도 사라져 버렸다. 면소재지에 가깝고, 포항시세가 확장함에 따라 최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등 크게 변모하고 있다.
⊙굼바우
이 마을 동북쪽 모래사장에 굼바우라는 구멍 뚫린 큰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 연유한 명칭이다. 또, 옛날 어떤 장수가 이 바위를 안고 가다가 떨어뜨려 아홉조각으로 갈라졌다 하여 구암이라고도 하며, 위쪽을 윗굼바우, 아래쪽을 아랫굼바우라 한다. 매년 2월 10일 마을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다.
석리(石里)
조항산(247m) 북쪽, 돼지산 남쪽의 포항∼구룡포 간 국도를 끼고 있는 마을로 안독골과 바깥독골 등 2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돌산(돼지산) 밑에 있으므로 돝골[猪洞]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음이 변하여 독골, 돌골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석동이라 하였으며 예로부터 감싸고 있는 돼지산 때문에 돼지 사육을 금기사하여 왔다 한다.
⊙바깥독골
서쪽 도로변에 위치해 있고 김씨가 처음 개척한 마을이다.
⊙안독골
동쪽 골짜기 안쪽에 위치해 있고, 방씨가 처음 개척한 마을이다 . 이 마을 동쪽 히날재 부근에는 흔히 백토라 불리는 벤토나이트(Bentonic)가 무진장 매장되어 있어 몇몇 광산업체가 들어와 채광 작업을 하고, 입암리와 경계를 이루는 사화랑산(150m)에는 옛 사회랑봉수대의 유적이 있으며, 조항산 산정에는 1971년설치 된 방송국 중계소가 있다.
임곡리(林谷里)
돼지산 북쪽 바닷가에 위치하는 마을로 입암리, 석리, 약전리와 경계를 접하며, 1리인 숲실, 2리 인 조사리(造沙里)등 2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 임곡포(林谷浦)란 지명으로 나오는 이 곳에는 조선시대에 해군기지인 영일진이 있었다고 한다.
⊙숲실[林谷]
숲이 우거져 있기 때문에 불리게 된 명칭이다. 임곡교회가 있고, 기자신앙(祈子信仰)을 간직한 애기바우가 애박골에 있다. 매년 3월 10일 마을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다.
⊙조사리(造沙里)
해풍으로 인해 군데군데 모래가 쌓여 모래산을 이루는 곳이라는 뜻에서 불려진 이름이다. 해안에 모래사장이 발달되어 있어 여름철에 피서객이 많이 찾아 든다.
입암리(立岩里)
예로부터 와룡득구지형(臥龍得球之形)이라 하여 명당으로 전하는 금오산(231m) 서북쪽 해안에 형성된 마을로 1리인 힌디기와 2리인 선바우 등 2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바우
마을 앞 해안에 선바우라 불리는 높이 6m 가량의 우뚝 선 바위에 연유한 이름이다. 평택임씨가 처음 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매년 9월 10일 마을 제당에서 지낸다. 입암(立岩)이란 지명은 '선바우'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힌디기
옛날 노씨(盧氏)가 처음 정착하여 살 때 좀 더 흥하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흥덕(興德)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힌덕, 힌디기로 불려졌다 한다. 매년 10월 2일 폭나무 당목에 동제를 지낸다.
마산리(馬山里)
금오산(231m)과 공개산(241m) 사이에 있는 술미산을 비롯한 작은 산들을 배경으로 하여 바닷가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뒤쪽에 있는 산의 형상이 머리를 육지쪽으로 두고 꼬리를 바다쪽으로 하여 뛰어가는 말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말미 또는 마산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산에다 말을 놓아 먹였으므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하는데, 마을 뒷산에는 말을 먹였다는 목장터가 있다. 하선대(下仙臺)와 검둥바우 등 경치가 수려한 곳이 많아 여름철에 피서객과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매년 9월 9일 마을 제당에서 원씨 터주 신위와 월성 이씨 골목 신위를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흥환리(興串里)
공개산(241m)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발원되어 영일만으로 흐르는 하천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마을로 1리인 배일, 피고지, 주막(酒幕), 2리인 진골[長谷], 장태 등 5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룡포읍 석문동에서 시작하여 눌태리를 거쳐 이 마을까지 연결된 옛 장기목장성의 흔적이 말봉재(140m) 일원에 남아 있다.
⊙배일[興洞]
마을 앞바다에 밸(불가사리)이 많이 난다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이며, 흔히 아랫배일이라고 불리는 피고지 위쪽에 있으므로 웃배일이라고도 한다.
⊙피고지[稜串]
옛날 이 곳에 있었던 목장에서 가끔 말을 도살할 때 피를 본다 하여 혹은 옛날이 지역에 피를 많이 재배하였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목장에서 뛰쳐나온 말을 골목으로 몰아놓어 붙잡은 곳이라 하여 말골목이라고도 하며, 웃배일 아래쪽에 위치한다 하여 아랫배일 또는 아랫각단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안곶으로도 불렀었다. 매년 9월 9일 마을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다.
⊙주막[酒幕]
옛날행인이 묵어가던 주막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며 ,지형이 연꽃이 피어 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하여 연화(連化)라고도 한다. 흥환초등학교가 이마을에 있으며,매년 12월에 마을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다.
⊙진골[辰谷]
긴골짜기에 위치한다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이며 ,아랫진골이라고도 한다. 매년 삼월 삼짇날 고씨 할배신위를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장태
옛날 장이 섰던 곳이라 하여 불려진 명칭이다. 매년 삼월 삼짇날 마을 제당에서 골목할매를 모시고 동제를 모신다.
중흥리(中興里)
흥환리에서 남쪽으로 약1Km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다. 본래 장기군(長 郡) 내북면(內北面)지역으로서 마을 뒷산이 배를 엎어 놓은 모양과 같다고 하여, 혹은 옛날부터 이 지역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일본을 배척한다는 뜻에서 배일골 또는 배일곡(排日谷)이라 불러 왔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일본인들이 이름이 좋지 않다고 중흥리라 고쳐 영일군 창주면 이 구룡포읍으로 승격될 때 동해면(東海面)에 귀속시켰다. 마을 앞 화전들에 수 기의 고인돌이 있어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남족 골짜기에 진불사가 있다. 매년 11월 마을 어귀에 있는 제당에서 김해김씨 터주할배와 월성이씨 골목할배를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발산리(發山里)
흥환리 북쪽, 대보면 대동배리 남쪽에 자리 잡은 어촌마을로 1리인 발산과 2리인 여사 등 2개의 자연부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발산(發山)
봄이 되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골짜기에 꽃이 만발한다고 해서 불려지게 된 이름이라 하는데, 지형이 바랑처럼 생겼다 하여 바랑골 또는 발미골이라고도 한다. 남동쪽 홍환리와의 경계지점에 있는 봉우재에는 옛 발산봉수대 터가 있고, 동쪽 골짜기에는 발산못이 있다. 80년 역사의 발산교회가 있으며, 이 마을 주민의 약 80%가 이 기독교 신자이다.
⊙여사(余士)
신라가 망한 후 한을 품은 선비가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는데, 모두가 선비행세를 하며 살았다고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이다. 마을 입구에 선돌이 있어 이 마을 역사를 말해준다. 대보면 강사리와 경계를 이루는 봉오재(180m)에는 옛 사지봉수대 터가 있다. 마을 뒷산 어부 보안림에 1992년 천연 기념물 371호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다.
상정리(上政里)
금오산(231m) 남쪽에 위치하여 히날재, 운장산(200m) 에 둘러싸인 마을로 1리인 안골, 대박, 히날재, 2리인 새암리, 거무골, 3리인 구정 등 6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골[內谷]
골짜기 안쪽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마을회관 앞에 느티나무 정자가 한 그루가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매년 10월초에 당목에 동제를 지낸다.
⊙대밭
마을 뒤 야산에 대나무가 많아 불리게 된 이름이며, 흔히 대박이라고도 한다.
⊙ 히날재[白日嶺]
신라 때 해가 빛을 잃었다가 다시 밝아졌다는 전설을 간직한 히날재(흰날재, 히나리재)에 유래한 이름이다. 외적의 침입을 받아 피를 많이 흘렸다는 또 다른 전설에 따라 피날재로 불리기도 한다. 히날재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는 흔히 백토(白土) 라고 불리는 벤토나이트(Bentonic)가 무진장 매장되어 있어 몇몇 광산업체가 채광작업을 하고 있다.
⊙ 새암
물이 맑고 차서 여름철에 마시면 생기가 솟는다는 샘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상양리라고도 한다. 매년 12월 3일 느티나무 당목이 있는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다.
⊙거무골
금오산 남동쪽 산골짜기에 위치하는 마을로, 산중턱에 검은 빛이 나는 돌이 많아 흔히 '거무산' 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 이름에 연유한 명칭이다. 이 마을 동북쪽에는 현재의 국도가 뚫리기 전 포항∼구룡포간 주통로였던 헛재가 있다.
⊙구정(九政)
옛날 이씨(李氏)성을 가진 한 정승의 후손이 마을을 개척한 후로 구성(九姓)이 모여 살았는데, 모두가 정승의 후손인을 자처한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이 마을 남쪽에 옛날에 장이섰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장터가 있다.
중산리(中山里)
운장산(200m) 남쪽에 위치하여 남쪽으로 공당리, 북쪽으로 상정리와 경계를 접하며, 마을 중앙으로 흐르는 구석보를 경계로 하여 형성된 모산과 중양 2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남쪽 들판에 3기의 고인돌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중양(中陽)
달성서씨가 처음 개척하였으며, 상정리의 상양리와 공당리의 하수리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마을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중양서원이 있다.
⊙모산(茅山)
이 마을에 못둑의 잔디가 고운 모산못이라는 못이 있는데, 이 못 이름에 연유한 명칭이며, 못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못안이라고도 부른다. 해주오씨가 처음 개척하였으며, 서쪽 관곡산 기슭에는 신라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석관묘가 도굴된 상태로 남아 있다.
공당리(孔堂里)
동해면 최남단에 위치하며 구룡포읍 성동리, 장기면 죽정리와 경계를 접하는 마을로 1리인 공당, 2리인 도래말, 새태말, 안말골, 3리인 뱃돌골, 하수리 등 6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 수기의 지석묘가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고 있으며,남쪽에 옛 내북면의 이름을 딴 내북초등학교가 있고, 학교 어귀에는 옛 숲의 흔적으로 300년생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세 그루의 노거수가 남아 있다.
⊙ 공당(孔堂)
조선 선조때의 학자 정응성(鄭應星)이 임란을 피하여 이곳에 와 공맹(孔孟)의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라 하여, 혹은 지형이 구멍의 형상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오천 정씨의 세거지로 정사하(鄭師夏)와 정동환(鄭東煥)을 추모하는 북계서사(北溪書社)가 있으며, 매년 11월초에 마을 앞 제당에서 부부 동신과 종 등 3신위를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 도래말[廻洞]
마을의 형세가 본동인 공당을 돌아 위치한다고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이며 창녕 이씨의 세거지 이다.
⊙ 새태말
본동에 있던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새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 안골말
안쪽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다. 2리에서는 매년 정월에 팽나무와 돌감나무가 있는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다.
⊙ 뱃돌골[舟石谷]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에 큰 바위가 있어 배 모양을 연상케 하므로 그렇게 불러 왔으며, 개울의 위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상수리라 부르기도 한다.
⊙ 하수리(下水里)
개울의 아래쪽에 위치하므로 아르무자골 또는 수척리라고도 불러오고 있다.
신정리(新亭里)
조항산(247m) 서쪽에 위치하며 석리, 약전리, 도구리, 금광리 등과 경계를 접하는 마을로 1리인 염장, 새정자, 2리인 중리 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염장(鹽場)
옛날 이곳에 소금시장이 있었다고 하여 불려지게 된 명칭으로, 흔히 염재라고도 하는데, 소나무가 우거진 염장숲 뒤의 경계로 윗염장과 아랫염장으로 나눈다. 주병에 수 기의 고인돌이 있고, 1963년 신정리 산19 번지 개간시의 다수의 토기가 발견된바있다.
⊙새정자[新亭]
염장에 있던 회나무 정자가 없어지고 새로 이곳에 소나무 정자가 생겼다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10여호가 살고있는 작은 마을이다.
⊙중리(中里)
신정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처음 영일정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하며, 남쪽의 금광, 동쪽의 염장, 북쪽의 약전이 세 부락의 중앙에 위치하여 중리라 불렀다 한다. 매년 10월 10일 소나무 당목이 있는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다.
금광리(金光里)
동해면의 서남단에 위치하여 오천읍 세계리, 장기면 죽정리, 정천리와 경계를 접하는 마을로 1리인 정천(井泉), 가는골, 2리인 등넘, 퉁지미 등 4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몽운사, 관음사 등의 절이 있고, 관음사 동쪽 약 1Km 지점에서는 나뭇잎 화석과 규화목(硅化木)이 발견되고 있으며, 마을 주변에 수 기의 고인돌이 있어 마을의 역사를 말해 준다.
⊙정천(井泉)
마을 한 가운데 있는 기도하면 아들을 얻는다고 전해지는 정천이란 샘에 유래한 명칭이다.
⊙가는골[細谷]
가늘고 긴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위쪽에 거북돌이란 바위가 있어 그 밑에서 물이 나오는데 예로부터 짝불알을 씻으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온다.
⊙등넘
산등성이 너머에 위치하며, 5호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퉁지미
장기면과의 경계지점에 위치하며, 마을의 일부는 행정구역상 장기면 정천리(井泉里)에 속한다. 옛날에 구리를 녹이던 퉁점[銅店]이 있었다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이다. 갈탄과 백토가 많이 매장되어 있으며, 광산업체인 금강광산이 채광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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