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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주:2013년1월3일 설교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이 범사에 복을 주십니다. 본문/ 시편 2:1-12
예)김삿갓 효심이 이러탖습니다. 그가 아버지 제삿날이 되었는데 상을 차릴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넘길 수는 없어 아버지의 위패(位牌)를 품에 안고 고급 식당으로 갔습니다. 매뉴판을 향해 서서 "아버지 맛있는 것으로 마음껏 드세요"하고는 한참을 지난 후에 과일점으로 갔습니다. 가계 앞에 서서 "아버지 싱싱한 것으로 많이 드세요"하고 얼마를 있다가 돌아오는데 생선가계가 있어 회를 좀 대접하기 위해 가서 보니 고기가 싱싱하지를 않아 해변가로 갔습니다. 마침 고기배가 들어오기에 "아버지 방금 잡아오는 것입니다. 실컷 잡수시소"하고 위패를 들고 서 있는데 이상하게도 구린네가 나서 가까이 가서 보니 오물을 실은 똥배였습니다. 어찌 아버지께 미안한지 위패를 거꾸로 들고 "아버지 토하이소 토하이소"라고 했답니다.
제사는 우상숭배입니다. 제사는 효도가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죄악입니다. 창조주란 피조물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식을 낳아 기르지만 그의 삶과 죽음을 임의로 주관하지 못합니다.
조상은 효의 대상이지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효는 살아 계실 때 해야 합니다.
죄중에 가장 큰 죄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안 믿고, 성령을 부인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어야 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려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이 내속에 역사하고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요한복음 1:12-14).
첫째: 복음을 대적하지 맙시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권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1-2)
열방과 열왕이 주님을 대적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한복음 1:11)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그를 대적했던 대표적인 두 사람을 소개하면 헤롯과 빌라도입니다. 헤롯은 주님의 탄생을 대적했던 장본인이요,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입니다. 주님을 대적한 자들은 다 멸망했습니다.
헤롯은 주님의 탄생을 대적했습니다. 주님은 헤롯과 그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왔는데 헤롯은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주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죽이기 위하여 베들레헴과 그 지경에 있는 두 살 아래 된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 도성과 온 지면에 통곡소리가 거치지 않았습니다(마태복음 2:16-18). 그는 나중에 세례요한까지 목베어서 죽입니다(마태복음 14:10). 그리고 최후에는 야고보를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까지 가로채려고 하다가 저주를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사도행전 12:23). 교회사가들은 그는 심한 악질과 복통을 일으키다 죽었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는 바나바를 놓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습니다(마태복음 27:2, 24, 58). 그는 스스로 손을 씻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 했으나 가이사에게 충성을 하기 위해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습니다(요한복음 19:12-16). 그래서 그는 지구상에 가장 흉악한 범죄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고 하심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죽은 자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웃고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4)
하나님이 웃으십니다. 사울은 유대인이며 바리새인으로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선 인물입니다(사도행전 7:58). 그것도 부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구인장을 받아서 다메섹으로 피난간 성도들까지 죽이려 갔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사도행전 9:1-2)고 했습니다. 너무도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니 정말 우습고, 가소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못고칠 인생은 없습니다. 그때 갑자가 하늘로서 강한 빛이 내려 비치었습니다. 사울은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사도행전 9:4-5)고 했습니다. 그 순간 인간 사울의 옛 기질이 다 죽어 버렸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불가능할 때 하나님이 직접 손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못 고칠 인간은 없습니다. 그의 계획에는 실수가 없습니다(사도행전 9:15).
셋째: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고 불변하십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6)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불변입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세력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인들이 항거한다고 하나님의 뜻이 굴절되지 않습니다. 열방과 열왕이 일어나서 메시야 왕국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도 하나님은 언약하신 그대로 시온에서 그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시온은 거룩한 산입니다. ① 아브라함에게 지시한 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후에 그는 약속의 선물 이삭을 받고,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산 모리아로 갔습니다(창세기 22:2). 하나님은 미리 오실 메시야의 표상인 대속의 제물을 그곳에 예비해 놓았던 것입니다(창세기 22:13-14).
② 다윗에게 언약한 산입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언약의 제단을 쌓았습니다(사무엘하 24:18-25). 그곳에서 솔로몬은 성전을 세웠던 것입니다(역대하 3:1).
③ 주님이 사도들에게 분부한 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사도들과 그 무리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4)고 했습니다. 바로 이곳은 명성교회가 태동한 곳입니다. 시온산은 구원역사에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인류 구원역사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태복음 1:1)고 하십니다.
넷째: 철장으로 질그릇같이 부수십니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9)
이방을 철장 권세로 깨뜨리십니다. 옛 고대 메소보다미아나 에집트 같은 곳에는 왕이 등극할 때 제관식을 합니다. 그때 왕의 권세와 위엄을 높이기 위하여 이방의 열국과 열왕들의 이름을 질그릇에 새겨 놓고 왕이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림으로 왕의 권세를 찬양하는 기념축제를 가집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15)고 했습니다. 주님은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서(마태복음 1:18) 갈보리 십자가에서 사망권세를 질그릇 깨뜨리듯이 완전히 정복했습니다(고린도전서 15:55-58).
주님을 대적하면 망합니다. 주님을 대적한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는 다 멸망받게 됩니다. 음부의 권세가 절대로 메시야를 대적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18). 복음을 대적했던 애굽의 바로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나, 로마의 황제들이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다섯째: 그러므로 여호와를 의지합시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10-12)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언 1:7)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편 14:1)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생이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탕자의 불행과 비극이 바로 그러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합시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편 73:2).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34:10)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합시다. 하나님이 세운 교회를 가까이 합시다. 하나님의 장중에 쓰임 받는 주의 종들을 가까이 합시다. 그리하면 모든 좋은 것으로 부요케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는 인류 역사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대적한 개인이나 국가는 다 망합니다. 인생의 행복의 비결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은 빛이십니다(창세기 1:3). 빛 가운데 창조사역을 행했습니다. 빛이 없는 세계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계입니다.
② 주님은 참빛으로 오셨습니다(요한복음 1:9). 참빛 되신 주님이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비추었습니다. 그를 영접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놀라운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③ 성령은 평안을 주십니다(요한복음 14:27). 성령은 항상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주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주 2013년1월13일
성령으로 헌신한사람 롬17:3-5
예)옛날 백여 년 전 어떤 부자 집 여인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읽었습니다. 그는 매우 부자였 지만 또한 매우 검소했습니다. 그런 여인이 자기 집에 제일 먼저 전기를 가설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드디어 전기를 가설하고 몇 주 후 계량기 검침원이 찾아왔습니다. 검침원이 전기가 잘 들어
오고 있는지 묻자 여자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검침원이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요. 부인 댁 계량기는 거의 제자리걸음입니다. 전기를 쓰고 계신 겁니까?"
"물론이죠."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녁마다 해가 지면 촛불 붙이는 데 필요한 시간만큼 전
깃불을 켜지요. 그리고는 꺼버립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이 여인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 지는 않습니까?
성령 충만한 은혜를 약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나약한 삶 을 살고 있지 않으세요?
어떤 안타까운 부자처럼 전기를 가설해 놓고도 여전히 촛불을 켜고 살 듯이, 성령 충만함을
축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촛불 인생에서 전기 인생으로 그 능력의 등급이 달라지게 해주십니
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능력이 흘러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능력의 영이 십니다. 나의 한계를 훨씬 능가하는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창조적 인생을 살게 해주십니 다.
예)존 맥스웰이 쓴「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워라」에 한 등대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암벽 해안에서 일하던 등대지기는 한 달에 한번씩 기름을 받아 등댓불을 지켰습니다. 등대 가 마을에서 멀지 않다 보니 손님들이 자주 왔습니다. 하루는 어떤 여자가 난방에 필요하다 며 기름을 구하러 왔습니다. 또 하루는 어느 남자가 등잔불을 켠다며 기름을 청했습니다. 모두 그럴듯한 요구인지라 이 등대지기는 달라는 대로 기름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대의 불을 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 척의 배가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이 등대지기를 다음과
같이 질책했습니다.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등대를 밝히라는 것이
었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 것은 헌신하라고 주신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 기름을 잘못된 일에 소모해서는 안됩니다. 등대의 기름은 배들이 항구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데 쓰이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좀 더 거룩한 일에 헌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함을 입은 후부터, 전 인생을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입은 후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전도를 위해 헌신했습니 다. 바울도 성령의 능력세례를 받은 이후로 그는 목숨을 다 바쳐 전폭적인 헌신의 삶을 살았습 니다.
저는 오늘 그런 한 인물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그리고 뵈뵈집사입니다.
그들 역시 사도 바울을 만나 성령세례를 받자마자 자신들의 인생을 전적으로 헌신하였습니
다. 자신의 인생을 과감하게 헌신했습니다. 크게 헌신했습니다. 미련 없이 헌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오직 성령 충만함을 입을수록 후회 없는 헌신의 삶을 살게 합니다. 할렐루야!
1. 인생의 목적이 달라진 헌신의 사람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천막제조업이라는 사업상의 이유로 사도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
리고는 헌신의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은 이후로 인생의 목적이 확연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들은 사업상의 동
업자가 사역상의 동역자로 바뀐 것입니다(행 18:1-4. 딛 3:13).
그래서 사도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이렇게 소개합니다(3절).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다.』
여기 동역자라는 헬라어는 "짐을 같이 지고, 매를 같이 맞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바쳐 헌신하는 동역 자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예수 믿고 성령 충만 받은 후에 주업이 바뀌었습니다. 돈을 추구하는
대신에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대신에 이웃의 생
명구원에 헌신하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예)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독 학을 했습니다. 독학을 하면서도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꾸준히 공부하여 능숙하게 구사 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케리의 친척 동생이 자기가 들어가기로 한 옥스퍼드의 단과대학에 케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단과 대학의 한 유명한 어학교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
다. 대화 중에 그 교수는 케리의 어학 실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케리에게 "
당신이 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 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오. 그리고 이 나라의 여왕
께서도 당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케리는 이렇게 거절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을 말씀하셨는데, 제게는 이미 저의 전 생애를 건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여왕보다 더 높으신 분의 부
름을 받았고, 그분을 향한 저의 충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케리는 그 교수의 제의를 거절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인도로 떠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내 인생의 비전과 목적에 새로운 헌신의 도약이 있기를 바
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
려가는 고귀한 인생』(빌 3:14)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부부가 함께 헌신한 사람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신약성경에서 여섯 번이나 소개됩니다. 참 훌륭한 부부입니다.
바울 서신에 세 번 소개되고(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누가가 쓴 사도행전에 세
번 소개됩니다(18:2,18,26).
그런데 여섯 번 모두 다 부부의 이름이 동시에 부각됩니다.
그래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그들의 이름이 항상 함께 언급됩니다.
성경에 이런 케이스가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부부가 함께 열정적으로 헌신했음을 상기시켜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사업상의 이유로 바울을 만나 선교의 헌신자가 됩니다. 그리고는 바울을
따라 에베소로 갑니다. 그리고 로마까지도 같이 가서 헌신합니다.
그들은 부부가 함께 생명 걸고 헌신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줍니다(4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명성교회 성도들은 모든 부부가 함께 헌신하는 거룩한 동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이 함께 헌신했습니다.
사무엘의 부모 *엘가나와 한나가 함께 헌신했습니다.
한나가 황소 세 마리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남편 엘가나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십일조를 허용해준 것 자체가 헌신 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를 주도면밀하게 섬겼던 *수넴 여인도 남편의 묵묵한 협조로 잘 헌신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함께 기도하며 헌신하는 경건한 부부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부인과 함께 몸바쳐 헌신하는 거룩한 부부였습니다.
빌립 집사는 부부와 자녀들까지 다 동원하여 열정적인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함께 헌신하는 동역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성령 충만하고, 함께예배드리고, 함께 구역성경공부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활동하는 헌신의 동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 중심으로 헌신한 사람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성령 충만함은 최고의 이상적 모델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곧 그
들이 교회 중심으로 헌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에베소에서도, 그리
고 로마에서도 여전히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5절). "저희 교회에게도 문안하
라." 그들은 자기 집 안에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 19절을 보면,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라고 소개합니다.
특별히 그들은 짚시 상인이었기에 나그네 인생으로 환경이 안정되지 못하였는데도, 온 가족
이 교회중심으로 헌신했던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를 세웁니다(고전 16:19). 로마교회를 세웁니다(롬 16:3). 에베소교회를 돕습니
다.(딤후 4:1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람은 철저히 교회중심으로 헌신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전 중심으로
삽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분이십니다. 교회 성장에 활력을 주십니다. 교회 성장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성령님은 교회의 전도에 불을 붙여주시고, 기도에 불을 붙여주시고, 봉사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헌신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더욱 사랑하는 가슴으로
불을 붙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충만할수록 교회가 힘차게 성장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욱 더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의 구원은 언제나 공동체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 공동체, 축복 공동체로 만들어주 십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말 자체가 공동체(Ekklesia)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만 모여서 기도해도 그 공동체 중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
다. 성령님은 언제나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합심하여 사모할 때 큰 은혜를 주시고, 능력으로 큰 기적을 일으켜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성령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더 교회를 부흥시키고 흥왕
시켜 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활동의 비중을 교회 중심으로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위하여 그 어떤 희생이나 헌신도 아끼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사람이 곧 성령의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헌신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롬 16:1ㅡ2
로마서 16장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략 26명 정도가 됩니다 그 중에 여자 이름이 6명이 기록 되어 있는데 제일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름이 여자로써 뵈뵈 입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16:1)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열심있는 여성도 입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뵈뵈를 로마 교회에 천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천거"한다는 말은 단순히 소개 한다는 뜻 이상으로 그 사람에 대해 보증하며 추천 한다라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을 추천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중의 하나 입니다
겐그레아 교회는 고린도 교회와 비교해 볼때 아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겐그레아 교회 처럼 작은 교회는 고린도 교회의 그늘에 가리워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뵈뵈는 이 작고 무명한 교회에 속해 있는 여자 집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은 교회에 속해 있는 뵈뵈가 사도바울의 눈에 띄었을까요?
사도바울은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 부릅니다
"일꾼"은 집사로도 번역됩니다 여기에서 뵈뵈가 사도바울의 눈에 뜨이게 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겐그레아 교회는 작은 교회이며 이름없는 교회입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가 비록 작은 도시의 교회이며 소수의 사람이 모이는 교회이며 이름없는 교회이지만 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 줄 알고 이 교회를 위하여 자기 생애를 드리며 교회를 충성되게 섬겼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뵈뵈가 사도바울의 눈에 뜨이게 된것입니다.
예)유명한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배후에도 세 사람의 신학자가 그를 돕고 있었다 합니다. 조직신학자,성서신학자, 사회학자,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일하시는 목사님이 크게 일하실수 있는 것입니다 뵈뵈는 사도바울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뵈뵈는 열린 눈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 집사였습니다.
교회중심으로 모입시다.
교회중심으로 서로이해하고 돕고 기도합시다.
2013년첮주 주일저녁설교
시128;1-6 고전9:24-27 새해에는 이렇게 살자
신년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해를 가장 복된 해로 만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어느 곳에 한 양치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을 하러 나가는데 깜짝 놀랐습니다.왜냐하면 그 집 마당에 온갖 꽃들이 아름답게 활짝 피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코 끝에 스며드는 향기며 난생 처음 보는 꽃 같아 이 꽃들을 보면서 하루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지만, ‘오늘은 양털을 깎아야 하니 빨리 털을 깎고 와서 이 꽃들을 보며 즐겨야지...’그러나 그가 양털을 깎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꽃들은 시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아름다운 새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한 새 소리이었습니다.
'지금은 우유를 짜야 하는 시간이니까, 일을 마친 후 저 새 소리를 들어야지...’ 그러나 양치기가 우유를 짜고 와 보니 이미 새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양치기는 집 밖에서 들려오는 말울음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아주 잘 생긴 백마 한 마리가 자신의 몸매를 자랑이나 하듯이 천천히 울타리를 돌고 있었습니다.‘저렇게 훌륭한 말을 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지금은 울타리를 고쳐야 하니까 빨리 고치고 와서 저 말을 타 봐야겠다...’ 그러나 그가 급히 일을 마치고 왔을 때는 이미 백마는 그 곳에 없었습니다.
양치기는 그처럼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뒤로 미루는 바람에 하나도 자기의 소원을 성취해보지 못한채 일생을 마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이 바로 이 양치기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1. 하나님은 새 해를 우리에게 기회로 주셨습니다.
새 해를 맞는 감회는 누구에나 다 있습니다. 모두 새 해의 바람과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흔히 '새 해에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합니다.
서로 덕담을 주고 받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이 새 해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연말에는 아쉬움과 후회로 남았습니다.
후회하면서도 또 반복하여 세월을 보냅니다.
2. 기회로 주신 새 해에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무화를 재배하여 성공한 농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농부의 마음은 열매를 바랍니다.
그런데 때가 되어 3년이나 열매를 얻으려고 하였으나 열매를 얻지 못한 농부는 과원지기에게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땅만 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과원지기가 주인에게 한 해만 더 참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거름을 주고 물을 주어 일년 동안 잘 돌볼 테니 그래도 열매가 없으면 찍어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결국 1년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열매 없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전도의열매를 엊자.
3. 하나님은 충분한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육체가 맺는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극명하게 대조시킨 말씀이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우리 모두 기회로 주신 이 한 해 동안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살아야 합니다.(1절 상)
본문 1절 상반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라 했습니다. 말라기 4장 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인생에 실패하지 아니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를 나의 삶의 최우선으로 삼는다>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내 인생의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요, 또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라 말했습니다.
예배를 성공하는 사람은 삶에 성공합니다. 예배를 성공하는 사람은 인생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2.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1절 하)
본문 1절로 하반절에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 도"가 무엇입니까?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신·구약 66권의 말씀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읽는 것도 복입니다. 묵상하는 것도 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이 완성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말씀을 실천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사는 삶이란 그럼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 경외하는 일"이요,
두 번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합니다.
첫째, 마태복음 22장 37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라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마태복음 22장 39절에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며 살아야 합니다.(2절)
본문 2절에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손은 움직이고 수고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일의 수고, 봉사의 수고. 그러므로 손은 계속 움직여야 건강합니다. 자기 몸도 건강하고 신앙도 건강합니다. 정신도 건강합니다. 삶도 건강합니다. 교회도 건강합니다. 나라도 건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좇아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또 마가복음 16장20절에 보니까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라고 말씀했습니다.
4.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4∼6절)
본문 4절로 6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 그랬습니다. 어떻게 살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뭡니까?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대로 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받고 누리면서, 나눠주면서 살 수 있게 만들어주시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설날에는 세배를 하지요. 이 세배가 새해를 맞이하여 첫 인사를 드리는 예절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설날이 되어서야 새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설날이 진짜 새해인 것 같지요.
새해가 되면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이지요. 요즘은 어느 광고 카피처럼 “부자 되세요~!”라고 하는 인사도 많이들 합니다만…. 한국 사람들은 “복”이나 “부자”라는 말을 참 좋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 역시도 돈도 좋아하고, 복 받는 것도 좋아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면 그렇게들 좋아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보다는 “새해에 복 많이 누리십시오”라고 인사합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수많은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 주님 안에 있는 모든 복이 송두리째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새로 떠오르는 새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5. 열심히 달리십시오(고전9:24절).
바울 사도는 모든 일에 열심을 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는 모든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무슨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할까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모든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공동체 예배에 열심히 참여해야 합니다. 다른 지체들을 향한 봉사와 섬김, 연약한 성도를 돌아보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에, 기도에,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에, 교회의 일이나 행사에도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업이나 직업에도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달리기 경주를 하는 사람은 대충 달리지 않습니다. 전력질주를 합니다.
올 한 해,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에,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들에 열심을 내십시오. 온 힘을 다하여 섬기시고, 드리십시오.
6. 목표를 가지십시오(26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꿈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새해 목표, 꿈은 무엇입니까?
어떤 이들은 새해가 뭐 대단하냐고 묻습니다. 매일 찾아오는 날들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합니다. 매일 태양은 떠오르는데 새해의 태양이 뭐가 중요하고 날은 매일 저물고 새로 밝아오는 것은 매번 같은데 새해가 특별한 것이 뭐가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 획을 그어 그 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새롭게 목표를 가지고 출발하는 것은 참 필요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로 새해는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룹니다. 그러나 꿈이 없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루어야 할 꿈이 없으니 당연히 꿈이 이루어질 수가 없지요.
꿈을 가지십시오. 현실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꿈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머리는 하늘에, 발은 땅에!” 사업에 대한 꿈, 가정, 인간관계, 교회에서의 섬김, 교회의 사역, 평생의 삶에 대한 꿈을 가지십시오.
부흥성회설교
고난 중에서 간구 본문 시 3:1-8
시편 3편은 표제에서 보이는대로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의 난을 피할 때 쓴 시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대적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다윗의 생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환난을 겪으면서 마하나임 지경까지 피신(삼하17:27)해 가서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다윗성, 시온산 성소를 바라보면서 이 시로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3편을 "아침의 시"라고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아들에게 쫓기는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압살롬은 누이 다말을 욕보인 그의 형 암논을 죽인 일로 인해서 가정에는 찬 바람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50명을 세워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런 압살롬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지 않으셨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다윗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사랑하던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믿었던 신하가 배신을 하여 대적했을 때 다윗은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는 얼굴을 가리우고 울면서 맨발로 감람산 길로 지나갔습니다. 그상황에서 다윗의 신앙적 자세를 볼 때 놀랍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환난 중에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1-3절)
다윗이 만난 환난은 첫째로 대적이 많은 것과(1절),
둘째로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2절)고 수근거리는 것 때문입니다.
다윗은 많은 대적이 있음을 보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의 친구요 모사인 아히도벨까지 압살롬 편에 섰으니(삼하15:12)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시편 41:9에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더욱이 믿었던 사람이 배반하고 적이 되어 자기를 해치려 할 때의 고통은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배신 당하는 고통은 마음을 오려내는듯한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16:15에는 압살롬의 편에 선 사람들을 "모든 이스라엘"이라 표현했고
17:13에는 "온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을 보면 다윗에게서 등을 돌린 대적이 심히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마음이 더 아팠던 것은 아들이나 친구의 반역보다 다윗이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수근거리는 말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는 용기를 가질 여망이 없습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무서운 대적들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경에서 다윗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3절)고 고백합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지만 하나님은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열왕기하 19:에 보면 히스기야왕 때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소개합니다.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겹겹이 포위를 했습니다. 부왕 아하스왕 때에도 침공을 받아 46개 성읍을 빼앗기고 2만명이나 포로로 잡혀 갔으며 매년 금 30달란트와 은 300달란트씩 조공을 바쳐왔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바칠 금이 없어서 성전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서 바쳤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때입니까?
또다시 산헤립이 쳐들어와 산헤립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대소변을 먹이겠다고 협박하고 히스기야 왕에게는 항복하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최대의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환난을 히스기야는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갖고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그 편지를 펴놓고 기도하기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여 눈을 떠서 이 편지를 보옵소서.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진에서 군사 18만 5천을 쳤는데 아침에 보니 모두 송장이 되었고 산헤립은 도망하다가 사례셀의 칼에 죽었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역경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하실 것을 믿으며 의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6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답답한 문제나 기막힌 역경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참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평강의 주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예)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밀림 오지를 선교여행 중에 물살이 센 강을 걸어서 건너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크고 무거운 돌을 머리에 이고 강 한 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도 따라서 크고 무거운 돌을 힘겹게 머리에 이고 따라나섰답니다.
그런데 강 한 복판에 들어서서야 깨달았답니다. 크고 무거운 돌을 이고 있어서 물살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주님이 보호자 되심을 확신했습니다.(4-6절)
4-5절에 다윗은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고 했습니다. 환난 중에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시고 그 캄캄한 환난에서 보호자가 되셨음을 확신한 것입니다. 큰 역경을 만났을 때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쫓겨나서 산과 들을 맨발로 피난 다니는데 언제 압살롬의 군사가 다윗을 죽일는지 모르는 상황에, 밤에 자고 아침에 무사히 깨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염려가 있다 하더라도 누워 자고 깨는 것을 감사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밤에 단잠을 잔다는 것이 축복인줄 알아야 하고 아침에 편안히 깨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염려 때문에, 불안 때문에, 원한 때문에 편안히 자지도 못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 이심을 확신할 때 단잠을 이루고 편안히 아침에 깰 수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니까 자기 자신이 보호를 받을뿐 아니라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세상에서는 몰려오는 두려움과 역경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가 되시고 우리의 자녀를 지키시는 보호자가 되시며 언제나 함께 하심을 믿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원수 마귀가 나를 둘러 진을 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게 합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임을 확신할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평안과 안식을 주십니다. 두려움을 다 쫓아내 버리고 주님의 평안이 자리잡게 해야 합니다. 믿는대로 됩니다. 이 확신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예)호주에는 이뮤라는 큰 새가 있다. 타조와 같은 모양이나 크기가 조금 작다. 호주가 지형학적으로 따뜻하고 먹을 것이 풍부하다 보니 이뮤는 멀리까지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날개가 몸집에 비해 턱없이 작아져 날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사람도 안락하게만 살면 갖고 있는 능력도 사장돼 아무 값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사람의 능력은 위기나 고난의 때 용량이 커진다고 한다.
셋째로, 다윗은 역경 중에 더욱 더 매달렸습니다.
본문 7-8절을 보면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했습니다. 나의 원수를 내가 치려고 하면 안됩니다.
1절에서 다윗은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를 치는 원수가 많은 것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고 실패하지도 않았으며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더 잘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아오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원수가 대적하거나 어려운 시험이 왔을 때 자기의 힘으로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께서 그 뺨을 치시도록 해야 합니다. 뺨을 치는 것은 수치를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예)하바드대학교 베이커 장학금은 수재 중 수재에게만 주는 장학금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베이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나 국가에 얼마나 기여했나' 통계를 냈는데 기여한 사람은 5%도 안되고 도리어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 부덕한 방향으로 나간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 하나님 없는 사상, 하나님 없는 정치, 하나님 없는 경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안되는 것 같으나 되고, 넘어진 것 같으나 우뚝 서게 됩니다.
8절을 보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했습니다. 구원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다윗은 정치가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정치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무력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시인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학문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다윗은 백성들이 자기를 배신했는데도 그들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배신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그의 마음이지만 원수까지 사랑하는 깊은 믿음을 봅니다.
그는 환난에도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았습니다. 미움을 받으면서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악으로 악을 갚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하고 은혜의 안목으로 사람을 보고 사건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감정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성품으로 선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나에게 복을 내리소서"가 아니라 "주의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의 백성이 아니라 다윗의 원수입니다. 다윗의 마음을 찢어놓은 배신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내 원수라고 말하지 않고 "주의 백성"이라고 했으며 그들에게 복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첫째 - 기도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많다』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대적이 많고』, 『치는 자가 많고』, 『비난자가 많았』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내 외의 적들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양을 칠 때에는 사자나 이리나 늑대나 곰 등의 맹수들의 위협이 계속되었고,
골리앗을 물리치고는 자신의 장인이기도한 사울왕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고,
왕이 되어서는 불레셋의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렸으며,
왕권이 안정되었을 때는 압살롬의 반역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난의 절정의 시간에 다윗이 취한 행동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광풍을 만났을 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땅에 바짝 엎드리든지 큰 바위를 의지하든지 해야합니다.
본문 3-4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방패』, 『나의 영광』, 『응답하시는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방패』가 무엇입니까? 화살과 칼을 막아내는 무기입니다. 불과 같고 물과 같은 시험이 닦쳐올때에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뿐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영광』은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살아 계신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는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기 때문에 때로 시험이 오고 환난이 와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은 금보다 귀한 믿음을 낳고
5-6절은 그 고난 가운데서도 다윗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이다』 어떻게 이렇게 담대해졌을까요? 근심이 있는 자는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단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 만인이 둘러 진쳐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기도하고 났더니 믿음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해질 때 절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불신할 때 밤잠을 자지 못하고 근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믿음이 생기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찬송가 434장에서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 내주 안에 있는긍휼 어찌의심 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하였습니다. 피를 말리고, 껍질이 벗어지는 아픔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고난 후에 영광의 부활을 준비하셨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 다윗과 같은 믿음의 승리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할렐루야!
2013년 29일 주일설교
갈5: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려면
나무는 곷을피우던지 열매를 맺는다.
성령의 열매를 우리가 어떻게 하면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가? 하는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해야 합니다.(13)
갈5장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율법의 속박 아래 있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선포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종이 아닙니다.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육체의 자유, 법적인 자유를 얻어도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은데 영적인 자유를 얻어 영혼이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게 되고 하나님이 주신 온갖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래서 성경은 선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여러분 이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죄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마귀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율법의 멍에도 메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잘 맺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까봐 해를 입을까봐 억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할 대상이 사랑스러워 자원하여 종이 되어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예)여의도에주일아침 교역자들 식사를 준비해오는 성도가 있다. 왜 사람 때문에...
교회에서 어떤 분들은 매 주 자기 차량으로 교인들을 태워줍니다. 어린이들을 태워 교회로 오는 분도 있습니다. 매 주 일정한 시간에 그렇게 봉사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자원하여 왜 그런 일을 합니까? 그 안에 사랑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청하여 사랑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맘에 사랑이 동기가 되어 서로 종노릇하기를 자청하면 죄의 권세는 우리 안에서 힘을 잃게 되고 성령의 열매는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아름답게 바라 볼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며 인생 자체가 변화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을 주님께 많이 이끌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사랑의 종이 되어 피차 사랑으로 힘껏 섬기시기 바랍니다.
예)자유를 박탈당하고 종이 된다면, 노예가 된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주권과 국권을 되찾은 것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광복절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그 교훈은 바로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유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공산주의, 김정일 정권에게 자유를 빼앗긴 북한 주민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자유를 빼앗긴 그 자체가 비극이요, 불행이요, 저주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성공적으로 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자유는 우리 생활의 기본이 되는 것이며,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자유를 주는 종교입니다. 사망으로부터의 자유, 미신과 우상숭배로부터의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마귀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유를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 귀신과 질병에서 자유케 하셨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6~17)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다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고, 큰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에는 마귀와 죄악은 모두 소멸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귀신과 질병과 싸워서 승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하루 평균 18명 이상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1년이라고 생각하면 6천명 이상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 순위 5위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살 증가율이 1위로 가장 높다고 합니다.
예)고려염업 회장인 이광경 집사의 ‘방귀 기적’이라는 제목의 간증입니다. 아내가 열심히 전도를 했지만 그는 교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동명목재의 인도네시아 시설 일체를 인수하고 현지에서 바로 목재 수출을 해서, 사업이 날로 번창하고, 정계 재계의 유명인사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지나친 폭음과 과로로 인해 위장이 거의 그 기능을 상실했고, 위장에 큰 구멍이 나서 출혈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려 6시간에 걸쳐 위와 십이지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 보통 3일이면 가스가 나와야 하는데 열흘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만약에 가스가 나오지 않는다면 장이 유착되고 썩게 되어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가스가 나오도록 도와 줄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근심하고 있을 때, 아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자며 목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 되자 그는 목사님을 붙들고 “내 생명을 살려주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나를 좀 살려주세요.”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배에 손을 얹고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그의 지난날의 잘못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고 ‘저를 살려주시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하나님께 충성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가스가 드디어 나온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병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대포소리를 내면서 가스가 나왔습니다. 이 가스는 사람의 생명을 살린 가스입니다.
그는 퇴원하자마자 교회에 등록을 하고, ‘죽을 제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제가 교회에서 무엇으로 봉사를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기도하면서 교회 차량봉사를 하였습니다.
사업은 사업대로 잘 되고, 건강도 누리게 되니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 친척들 중에서도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하고, 약으로 소용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 가난에서 자유케 하셨다 - 가난/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부요케 만들어 주십니다. 영적으로 부요케 만들어 주시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요케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세계지도를 보면 기독교 국가들 중에는 가난한 나라가 없습니다. 불교 국가, 유교 국가, 점쟁이, 무당, 무신론 국가, 공산주의 국가는 다 가난해도,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국가는 가난한 나라가 없습니다. 대부분 사회제도가 잘 되어 있으며, 경제가 튼튼합니다. 또한 의료, 교육, 주택, 연금 등에 있어서 최상의 복지를 보장해 주는 나라가 바로 기독교 국가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도 기독교 국가가 될 것을 믿습니다.
시편 112편 1~3절 말씀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올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재물의 축복을 주시고, 부요의 축복을 주시고, 자손을 번창케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모두 번창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저주에서 자유케 하셨다 - 저주/축복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3~14)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성령 충만을 받고, 능력을 받아야 이 세상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형통하게 됩니다. 자손들도 번창하게 되고, 모든 죄악과 저주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 말씀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똑같이 세상을 살아도 ‘나는 잘 될 것이다’ 하고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고, ‘나는 안돼, 망할 거야’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학교에서 공부를 해도 ‘나는 1등할 거야’ 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아무리 공부해도 낙제야’ 하고 공부를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믿음대로 될 지어다’ 하는 담대함으로 입으로 시인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해서 응답받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피카소의 작품 중에 ‘황소 머리’라는 조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값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수천만 원을 부르면 수천만 원이 되고, 수억 원을 부르면 수억 원이 됩니다. 그래서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피카소의 예술성과 독창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재료가 되는 자전거는 피카소가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것이라고 합니다. 피카소는 그런 자전거를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작품으로 변화 시켰습니다.
이처럼 누가 손을 대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버림받고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도 피카소가 공을 들여 작품으로 만들었더니 수천만 원, 수억 원짜리가 되었습니다.
피카소의 손만 닿아도 이렇게 달라지는 데, 만약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에게 닿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의 인생에 닿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해 주신다면 쓰레기 같은 인생, 저주 받은 인생, 버림 받은 인생도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서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주신 자유를 감사하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2. 항상 성령충만해야 합니다.(16)
예수를 영접하여 중생하는 순간부터 성령은 우리안에 내주하신다. 성령 내주와 성령충만은 다르다. 비유하면 성령 충만은 술에 취하거나 돛단배가 돛폭에 바람을 팽팽하게 타는 것이다. 배터리에 충전이 된 것이나 신들린 현상 같은 성령이 나를 전적으로 지배하고 인도하고 가르치고 힘입혀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풍성한 생활의 비결은 성령충만에 있다. 성령 충만은 반복해서 받는다. 사도들은 사도행전 2장에서 충만하고 4장에서 다시 충만하다(행4:31) 성령충만은 사랑충만. 기쁨충만, 평화충만이다. 환경이나 나의 소유와 상관없이 충만하다.
전도하는 힘, 기도하는 힘, 주를 섬기는 힘은 성령에게서 온다. 성경을 가르쳐 주시고 주를 닮게 하신다. 고난과 시련속에서 승리하고 기뻐하는 능력도 성령 충만에서 온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거에 얼마나 큰 성령의 체험을 하였느냐? 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날마다 성령을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성령을 사모하며 성령님의 충만을 구하여 매 시간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만약 성령님의 충만이 사라지면 그 순간부터 불신자와 차이가 별로 없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런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자기 힘으로 열매를 맺어 보려 하다가 잘 되지 않으니 쉽게 포기 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면 성령님이 그 안에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힙니다.
예)무디 목사님은 자주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성령님, 제가 성령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을 때는 말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충만하지 않고 말할 때 저는 너무 많은 실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 제가 성령충만하지 않을 때는 제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저는 너무나 자주 그릇된 결정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가려면 먼저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성령충만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일시적 감정의 충동으로 인한 흥분상태도 아니고, 어떤 일에 대한 열성도 아닙니다.
①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이 사람의 충추신경을 지배하는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지시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예수님도 성령충만함으로 광야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②성령충만은 곧 그리스도 충만입니다.
(요15: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믿음의 자랑, 열심의 자랑, 직분의 자랑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가 꽉 차있는 것입니다.
③성령충만은 곧 말씀 충만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충만해 질수 있으며, 성령충만한 자는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사는 자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성령님께 마음을 내어 드릴 때 성령의 열매는 자연스럽게 넘쳐 날 것입니다.
. 성령을 쫓아 사는 길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험상궂은 사람이 변한 것처럼 우리의 모습도 변해야만 됩니다. 어떻게 변해야 될까요? 이 사람은 사랑할 때 얼굴이 변했어요. 우린 어떨 때 변할수 있을까요? 성령을 따라 살 때 변할 수 있고 변화된 우리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해요. 그럼 어떤 열매들을 맺어야 할까요?
ⓐ 우리 마음속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사랑 - 하나님은 언제든지 누구든지 사랑하세요. 우리가 죄인 일 때도 우리와 원수 일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그리 고 옛날에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오늘만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든지 사랑하세요. 우리도 이런 사랑을 해야합니다.
희락 -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일 기쁠 때는 언제지요? 선물 받을 때, 칭찬들 을 때, 용돈 받을 때...이지요.
그러나 정말 기뻐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보호 하시고 함께 하시고 동행하신다고 느낄 때 오는 기쁨이에요.
화평 -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에요. 이 평안은 어떤 좋은 환경이나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안에 있는 화평은 세상이 빼앗을 수 없어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구원하심을 믿는 마음속 평화를 말해요.
ⓑ 다른 사람을 향해 맺는 열매 - 오래참음, 자비, 양선
오래참음(인내) - 농부 아저씨가 씨를 뿌리면 씨가 자라 열매를 맺을 때까지 참아야하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참아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어요.
자비 - 죄인이라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주는 마음이에요.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십자 가에서 돌아가셨어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 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어요.(선한 사마리아인)
양선 - 죄인을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선을 행하는 마음이에요.
손양원 목사님은 6.25때 공산당원이 목사님의 아들을 2명이나 죽였는데 목사님의 아 들을 죽인 그 공산당원을 목사님의 아들로 삼았어요. 이런 마음이 양선이에요.
ⓒ 어려울 때 맺히는 열매 - 충성, 온유, 절제
충성(신실) - 우리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해야하며 또한 나라에 충성하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만 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 충성한 사람이 큰 것에도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온유 - 어려운 일을 당해도 반항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요. 이런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온 유하고 하나님께도 온유해요.
절제 - 자신을 조절 하는거에요. 우리는 먹고 입는 것을 절제해야해요. 그리고 그뿐 아 니라 말이나 감정도 절제해야 합니다.
이런 9가지 열매를 맺을 때 우리는 죄와 싸워 이기게 되는 것이고 성령을 따라 살게 되는거예요. 우리 모두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친구들이 다 되길 바라요.
3. 성령에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18)
우리가 성령을 거스리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승리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열매맺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성령님을 거스르는 육체의 욕망이 있습니다. 성적인 범죄를 충동하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술수 같은 악한 영을 접촉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수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등과 같은 인간관계를 통하여 오는 죄의 유혹도 잇습니다. 그리고 술과 관계된 술취함과 방탕같은 죄의 유혹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로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우리 심령을 더럽힙니다. 이런 일들은 성령님을 근심시키고 우리의 삶속에서 성령의 능력을 훼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충만함이 나타나도록 도우심을 구하며 우리 마음을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으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끊임없이 올라오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기로 매 순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비로소 율법의 굴레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적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에 항상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 거스리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죄를 책망하실 때 즉각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도전하실 때 미루지 말고 즉시 시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열매를 맺으시고자 하실 때 자신을 내어 드리고 성령님이 기뻐하시는대로 시간과 재물과 은사를 드리며 새로운 생명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은혜로운 열매가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맺혀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성품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 성령충만함을 받고 날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면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상처를 많이 입히며 살던 사람이 상처를 싸매주며 사는 사람으로 바뀌고 쉽게 무너지고 흔들리던 사람이 잘 인내하고 풍성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기를 소원합니다.
어둡고 우울한 얼굴의 소유자가 하나님과의 바른관계를 통하여 마음에 평화가 넘치고 밝고 환한 기쁨으로 가득찬 마음과 얼굴을 갖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성령충만하여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으로 다가가 온 마음을 쏟아 친절하게 섬겨주는 놀라운 변화가 교회안에 넘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주의 일에 무관심하던 사람이 청지기정신을 갖고 주님과 교회에 충성을 다하며 열정의 사람이 되는 역사가 많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상처가 치유되어 미움과 원망이 사라지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용납하며 오히려 축복을 빌어주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들로 새로와지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우리 모두가 정말 아름답게 변하는, 그래서 주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영적인 거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