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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저자; 홍성욱
선교적 교회에 대한 열망을 품은 홍 목사는 그가 시무하는 교회를 통해 선교와 목회의 합일을 이루고 있다. 신학생을 위한 선교학 교재 ⌜선교학 개론⌟⌜선교와 디아코니아⌟⌜선교와 교회성장⌟을 공저하였고 선교적 교회와 일꾼들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교회만이 희망이다⌟를 저술하였다. 현재 안양제일교회 담임목사, WEC선교회 이사장, 아시아 빈곤 선교센타(C.A.M.P)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Ⅱ.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으며 제 1부는 구약에 예표된 교회로서 성막을 통해 본 교회, 성막 기물을 통해 본 예배, 성막 건축을 통해 본 섬김으로 되어 있다. 제 2부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로서 첫 사랑의 감격이 있는 교회,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 예수님의 증인 된 교회, 바른 신학 위에 선 교회, 살아 움직이는 교회,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 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교회로 되어 있다. 제 3부는 교회의 동력은 성령이다. 첫 성령 강림, 사마리아 성의 성령 강림, 고넬료 가정의 성령 강림, 에베소의 성령 강림에 대해 다루고 있다.
Ⅲ. 저술의도와 목적
이 책을 통해 성경의 기초 위에서 세상의 희망인 교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세상의 희망으로 세워야 할 교회의 모습을 예표해 주셨다. 저자는 1부에서 구약에 예표된 교회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오늘날 존재하는 교회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는 일곱 교회에게 주신 칭찬과 질책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절대적 기준이다. 이 교회들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거울이다. 저자는 2부에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의 모습을 통해 건강한 교회의 기준을 제시한다. 또한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시작되었다. 3부에서는 사도행전을 통해 나타난 네 번의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세상에 희망이 되는 성령 충만한 교회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Ⅳ. 책의 요약
제 1부: 구약에 예표된 교회
1. 성막을 통해 본 교회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은 지 오래 되었지만 다시 국가를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아픔을 잊지 않고 간직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의미는 상징을 통해 보존된다. 칼 바르트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 상징으로 다가온다. 나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죽임 당하셨다는 것과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대신 죽음으로써 살릴 만큼 고귀한 존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막은 교회를 상징한다. 성막은 하나님 임재를 경험하는 곳,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그들의 중심에 두었듯 우리도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교회를 두어야 한다.
성막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낮고 간단한 성막처럼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다. 또한 하나님은 백성과 함께 이동하는 성막처럼 백성이 가는 곳마다 함께 하시는 분이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제사 가운데 거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다.
성막은 교회의 본성을 이야기 한다. 성막이 그렇듯 교회는 거룩해야 하고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성막의 모든 재료가 연합해서 하나를 이루는 것처럼 교회는 연합과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하고 세상의 가치관과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질서로 세워져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때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성막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거룩해야 하고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이는 세상에서 횡행하고 있는 가치관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쾌락주의, 배금주의, 이기주의와 같은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좋은 교회를 만날 때 신앙의 방황이 끝난다.-
2. 성막 기물을 통해 본 예배
-성막기물로 본 예배의 여섯 기둥-
1. 번제단: 자신의 죽음을 선언
2. 물두멍: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봄
3. 등잔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밝음
4. 진성병대: 생명의 떡, 설교말씀
5. 분향단: 성도의 기도
6. 언약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번제단과 물두멍: 성막의 동쪽 문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번 제단이다. 번 제단은 짐승들을 죽여서 하나님 앞에 희생 제물로 드리는 장소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러 나오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나의 죽음 없이는 하나님의 영이 나를 새롭게 할 수 없다.
번 제단을 지나 물두멍이 있다. 오늘의 예배 시간에 회중을 대표하는 기도를 드리는 바로 그 순간이 바로 물두멍 앞에 자신을 비춰보는 순간이다. 대표 기도자는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지 못한 부분들을 회중을 대표해서 고백한다. 그리고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한다.
하나님의 밝음을 보여 주는 등잔대: 등잔대는 오직 제사장만 볼 수 있다. 등잔대는 일곱 개의 금 촛대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밝음이다. 참된 예배는 우리의 걱정과 염려를 물리치고 밝음과 긍정의 마음을 주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하나님의 밝음이 예배에서, 성도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교회이다.
말씀과 기도를 상징하는 진설병대와 분향단: 진설병대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떡을 놓는 곳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수여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성소의 기물인 떡을 먹는 것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분향단은 성소의 마지막 기물이다. 이것을 지나면 지성소로 들어가게 된다. 성경에서 향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성도의 기도를 상징한다.(계5:8) 제사장의 중요임무는 제단에 향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늘 하나님의 밝음을 드러내는 선교의 불이 타오르고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교회, 이것이 교회의 바른 모습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 지성소는 대제사장도 1년에 한 번 들어가는 곳이다. 지성소 안에는 작은 궤짝이 하나 있는데 이 안에는 만나,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십계명이 적힌 돌판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다. 만나는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고 이끄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임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권위를 존중하며 그 말에 순종하라는 교훈을 준다, 십계명은 항상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이 법궤를 두 천사가 날개를 펴고 덮고 있다. 이것을 시은소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예배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며 은혜를 나누는 것이다. 예배란 선포되는 말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찬양을 통해, 같이 앉아서 예배드리는 이들의 모습과 태도를 통해서도 서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는 예배이다.
제사를 통한 예배의 종류
- 5대 제사의 의미 -
번제: 전적인 헌신, 소제: 모든 열매를 드림, 화목제: 은혜를 나눔으로 화평을 이룸, 속죄제: 죄의 회개, 속건제: 구체적인 행위의 회개를 의미한다.
희생제물을 태워 드리는 번제는 하나님 앞에 마음과 뜻과 정성과 시간가 몸과 물질까지 다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예배란 나의 삶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내 모든 것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다.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생명을 드림과 같이 나의 열매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 육신의 열매인 지식, 물질, 지위, 재능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 드려져야 함을 고백하는 제사가 소제이다.
기쁨을 나누는 화목제는 유일하게 제사 드린 사람이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제사 이다. 하나님과 화평하듯이 사람들과 화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예배자이다.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야 한다.
죄를 회개하는 속죄제는 인간의 깨달음에 의해 드리는 제사이다. 예배에는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한다. 말씀을 듣는 중에 마음에 떠오르는 죄가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영을 충만히 받는 것이다.
속건제는 구체적인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여 회개를 하고,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한다. 예배란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 그리고 예배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앙이 성전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나야함을 보여준다.
-현대교회가 지향해야 할 예배정신-
예배는 내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제물로 올려 드리고 죽음을 선포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생명을 주관하고 이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
바람직한 교회는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예배에는 많은 기도가 있다. 하나님의 밝음을 전하는 선교의 불이 타오르고,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 교회의 바른 모습이다.
예배의 기쁨을 나누고 은사에 따라 섬겨야 한다. 예배를 드린 후 얻은 기쁨을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과 화평하듯이 사람들과 화목해야 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재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받은 것이므로 은사에 따라 교회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성막 건축을 통해 본 섬김
한국교회의 부흥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 정책은 현지 지도자 양성, 성경공부를 강조, 자립적 신앙이다. 자립(自立), 자전(自傳), 자치(自治)의 원리이다.
헌물을 하는 사람의 자세는 감동된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이다.
헌신은 지혜와 지식을 겸비한 사람이 필요하다. 지식은 공부를 통해 얻고, 지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얻는다. 하나님의 일은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헌신은 자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후대에 가르쳐야 한다.
진리 위에 선 헌신이 승리한다. 이스라엘의 승리의 비결은 공동체의 헌신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기독교는 끝인 줄 알았고, 바울이 죽었을 때 끝난 줄 알았던 기독교가 더 번성한 것은 진리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 일에 동참 할 수 있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고, 그 일에 충성하는 교회가 건강하고 바른 교회이다.
연합하여 하나 됨을 힘쓰는 교회, 세상의 가치관과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질서로 세워지는 교회,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다.
2부. 우리가 꿈꾸는 교회
1. 첫 사랑의 감격이 있는 교회(에베소교회)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오늘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들의 일곱 가지 모델이다.
온갖 죄악이 난무했던 도시 에베소교회이다. 아데미 신전이 있어 우상이 범람했고 여 사제들의 매춘 등을 통해 성이 문란한 곳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3년을 머물며 복음을 전할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디모데를 보내 목회하게 하였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있게 했다. 말년에 바울이 이곳에서 목회하다 순교한 곳이다.
교회의 일꾼은 주님의 종이다. 사도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쳤다. 에베소 교회에게 주님이 말씀하셨다.“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계2:1) 붙잡다 는 것은 온전히 손 안에 감싸 쥐다는 뜻이다. 오늘의 교회의 일꾼은 주님의 종이다. 주님의 일꾼을 존경하고 믿고 따라야 한다.
첫 사랑을 회복하라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훌륭하고 자칭 사도라 하지만 사도가 아닌 니골라 당의 악한 자들을 물리친 것을 칭찬하셨다. 그리고 오랫동안 수고하고 견디며 부지런히 교회를 섬긴 것을 칭찬하셨다. 그러나 책망한 것이 있는데 바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모습이 바로 현재의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주님의 약속은“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첫사랑을 회복한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다.
교회가 첫사랑을 회복하고 십자가의 감격으로 나간다면 모든 상처와 질병이 치유되고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이런 교회만이 세상에 참 사랑을 전해 줄 수 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2.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서머나 교회)
에베소가 그 당시 큰 도시였다면 서머나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다.
예수님이 있는 사람은 부요하다. 당시의 서머나 교인들은 가난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 자들이었기에 실상은 부요한 자들이었다. 세상은 부요의 관점을 소유에 두고 있지만 성경은 존재자체에 두고 있다.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고난과 핍박을 당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은 “죽도록 충성하라”이다. 폴리갑과 같이 교회가 건강해지려면 지도자가 주님께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3. 예수님의 증인 된 교회(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는 황제숭배와 의학과 문학이 발달한 내륙 도시였다. 그들은 제우스신을 섬겼으며, 뱀을 상징하는 아스클레히오스라는 의술의 신도 섬겼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충성된 증인.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란 표현을 했다. 신실한 기독교인은 황제를 숭배할 수 없었기에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겪었다.
증인이란 단어의 헬라어는 ‘마르투스’인데 여기에서 순교자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초대교회에서 증인은 순교자를 의미했다.
잘못된 가르침과 탐욕에 대한 책망. 버가모에는 안디바와 같이 순교의 각오로 주의 복음을 전하며 황제 숭배에 무릎을 꿇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살아간 사람도 있고, 발람과 같이 돈에 눈이 어두워진 교역자,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권사, 장로, 집사들도 있었다.
-믿음으로 이기는 자에게 약속된 복-
감추었던 만나를 받게 될 것이다.“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계2:17) 주님은 안디바와 같이 하나님 편에 서는 사람에게는 예레미야가 감추었던 이 만나를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받게 될 것이다.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
이 말은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여김을 받고 승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이 이기지 못하는 교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충성스러운 교회가 바로 우리가 꿈꾸는 교회이다.
4. 바른 신학 위에 선 교회(두아디라 교회)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계2:18)이 표현은 예수님이 사람의 심령을 꿰뚫어보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네 사업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2:19) 두아디라 교회는 구제와 선교에 열심이었고 기관도 활성화되어 지역사회를 잘 섬기며 많은 일을 하는 교회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열심을 내는 교회, 번성하고 부흥하는 교회였다.
잘못된 신학을 용납하면 망한다.“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2:20) 이세벨이라 이름 하는 선지자를 통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그릇된 신학을 목회자가 용납을 했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받는다. 오늘날 지식인들 사이에 포괄주의, 종교 다원주의 등의 출현으로 인해 다양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소개한다. 모든 종교와 화목하게 지낼 수는 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어야한다. 예배의 시간과, 음악, 복장, 형태 등은 바뀔 수 있지만 예수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시고, 그분만이 나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구세주라는 고백은 어떤 상황에서도 바뀔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계2:22-23) 하나님은 다른 일에 대해서는 참으시지만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강력한 철퇴를 내리신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계2:26-28)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셨다. 하나는 철장 권세를 주시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새벽 별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철장권세는 세상의 어떤 힘과 권세도 파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새벽 별을 갖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당했던 믿음의 선배들은 다시 살아 천국에서 고난 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고 있다.
5. 살아 움직이는 교회(사데 교회)
난공불락의 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데 사람들은 깨어 있지 못해 다른 어떤 국가보다 외세의 침략에 가장 많이 시달렸다.
하나님은 위선적인 사람을 싫어하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리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죽은 자로다”(계3:1) 겉만 그럴듯하지 내용물은 없다는 것이다.
사데 교회는 다른 소아시아 반도에 있는 교회들과 다른 두 가지의 특징이 있는데 이단과 핍박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까지 예수를 바로 믿고자 할 때 핍박을 받았다. 당시 페르시아의 간교한 문화정책에 휘말려 사데 사람들은 야전성과 본성을 잃어버린 채 음악과 술과 방탕에 취해 버렸다. 그들이 멸망당하게 된 이유는 난공불락의 요새에 살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타협하는 삶 속에 사단의 궤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흰 옷 입은 자와 함께 하신다.“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계3:2-3)영적으로 잠들지 말고 깨어있으란 이야기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3:4) 주님은 사데 교회에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다. 흰 옷을 입은 성도란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와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에서 도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성령의 사람이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흰 옷을 입은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결코 지워지지 아니할 것이다.
주님을 위해 손해를 보고 주님의 이름 때문에 희생하는 사람들, 성령의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적당한 고난이 있다는 것 자체가 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고난을 통해 그 분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그분의 은혜를 맛보게 하시고 그분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기 때문이다.
6.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형제간에 우애 있는 아름다운 교회였으나 지진으로 인한 아픔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시다.“빌리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그가 이르시되”(계3:7)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회당에 모였는데 열쇠를 압수당하고 쫓겨났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열쇠를 쥐고 있는 나를 보아라 내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내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절대적인 권세를 가진 내가 너희의 주인이 됨이라”고 그들을 위로하셨다.
초대교회는 선교가 목적이었다. 그들은 작은 능력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켰고, 작은 능력으로 인내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했으며 작은 능력으로 열심히 선교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이런 역경과 고통과 환경을 이겼기에 충성된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
자신의 면류관을 잘 지켜라“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면류관은 개인의 신앙 행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진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면류관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이기는 자에게 약속된 복“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나가지 아니하리라”(계3:12)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란 견고성과 부동성을 의미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강력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주님의 증인으로 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어떤 어려움과 고난을 겪는다 해도 인내하며 열심히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선교에 열정을 쏟는 교회만이 세상이 참 생명을 전해 주는 생명력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7.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교회(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처음에는 뜨겁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의 신앙이 식었다. 열정이 습관으로, 충성이 아집과 독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열정을 회복하라:“내게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5)처음에 열심을 갖고 하나님을 섬겼으나 점점 편한 생활이 신앙의 타락을 가져왔다.
영의 관점을 회복하라: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계3:14) 주님은 창조의 근본이시다. 창조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 말씀하신다.“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양모산 코드를 자랑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벌거벗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안연고에 대한 자랑을 영적 소경된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현대의 우리에게 육적인 소유의 자랑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첫사랑을 기억하라:“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누군가가 나를 책망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 때 주님이 들어오실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처음 주님을 믿었던 그 감격과 뜨거움과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신앙의 타락은 신앙이 미지근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편해질 때 마음을 더 굳게 먹어야 한다. 우리에게 돈이 많아지고 핍박이 그칠 때 환경이 좋아질 때 우리는 더욱 깨어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야 한다.
3부. 교회의 동력‘성령’
1. 첫 성령강림
성공하는 인생은 순환적 관계가 선순환적일 대 가능하다. 열심히 공부하니까 성적이 오르고 그래서 신이 나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그러다보니 지능이 더 발달하게 되고, 그 결과 성적이 더 오르는 것이 선순환의 관계이다. 사도행전에는 성령강림이 네 번에 걸쳐 역사하신다. 그 기준이 오늘 성령강림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표준이 된다.
성령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한다: 사도행전의 첫 번 째 성령강림은 2장에 기록되어 있다. 1장에 보면 성령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임재 하는지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행1:2) 이 당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순종했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성령 강림과 방언: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성령이 임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방언이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우리가 하는 방언과 다른 언어 방언이었다. 각국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여들었는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각기 자기 언어로 들을 수 있었다. 각 나라의 말로 기도하게 된다는 것은 그 나라와 그 민족을 품고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미래를 바라본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미래를 바라본다.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선포한다.“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예언, 환상, 꿈을 꾼다는 것은 다 미래 지향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의 영은 과거에 집착하게 한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열등감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이었기에 과거에 붙들리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룰 미국의 내일을 바라보았다. 고통과 신음 속에 있는 흑인 노예들을 해방하는 비전을 바라보았다. 눈을 들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갖고 있는 놀라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성령이 임하시면 공동체가 변한다. 성령께서 공동체에 임하시면 변화가 일어나는데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많아진다. 평양 부흥회, 웨일즈 부흥운동이 그 예이다. 교회 성장은 성령의 임재로 인해 부흥을 경험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나아갈 때 얻게 되는 결과이지 교회 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둘째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다. 인간의 눈에는 기적이지만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는 아주 일상적인 일 뿐이다. 셋째로는 물질적 가치를 초월하는 전인적 교제가 있었다.“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2:44-45)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뛰어넘는 전인적인 교제가 있었다.
2. 사마리아 성의 성령강림
인간은 겉으로 보기엔 똑똑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은 부족하고 결점 투성이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 중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위로자 되시고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이 이끌어 주실 때만 우리는 비로소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고난은 축복의 열쇠: 초대교회가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7장의 스데반 집사의 죽음으로 낙심하고 있을 때 8장은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두 번째 성령강림 사건이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이란 전무후무한 선교사를 얻게 된다. 그리고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핍박이 일어났고 그 핍박을 통해 흩어진 복음 전도자로 인해 사마리아 땅에 성령이 임하셨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 낙심하고 절망하며 원망하고 저주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고난은 악순환으로 계속 다가온다. 그러나 고난을 인정하지 않고 축복의 열쇠로 믿고 그 고난 가운데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펼치신다.
성령님은 치유와 기쁨을 주신다.“성령이 강림할 때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7-8)먼저 귀신이 떠나갔다. 그리고 중풍병자와 걷지 못하는 자 같은 중한 환자들이 나았다. 성령이 오시면 전인적인 치유가 일어난다. 성령을 받은 가장 뚜렷한 증거는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다. 빌립 집사가 사역할 때는 기적과 능력은 있었으나 성령님이 내려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성령님이 오셨다. 성령 강림은 영적 질서를 통해 성령님이 임하심을 보여준다.
성령은 내가 부리는 종이 아니라 내가 모시는 분이고, 내 삶의 주인이다. 그분이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나의 전 인격을 바꾸시고 내 삶을 복되게 하시고 내 삶을 평안히 하시고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분이다.
3. 고넬료 가정의 성령 강림
신앙이란 끊임없이 자신을 변혁시키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고 끊임없이 내 삶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고쳐나가는 것이다.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내 생각과 이성과 철학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정되는 고통의 순간을 날마다 겪어야 되는 것이다.
성령님은 개인의 가정에도 임하신다. 인간의 역사 가운데 임하신 성령 강림은 사도행전 10장에 기록되어 있다. 고넬료라고 하는 군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회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그는 경건한 사람이다.
로마 백부장 고넬료: 경건한 사람이었다. 경건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별된 삶을 살아 거룩한 사람이란 의미다. 죄가 있고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 하였다. 고넬료의 삶이 그만큼 훌륭한 삶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구제 할 이유가 없는 로마 군 지역 사령관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종답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성령님은 순종하는 이에게 임하신다. 기도하는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하여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주둔군 사령관이 천민이 일하는 곳에서 당국의 감시를 받는 베드로를 데려 온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넬료는 순종했고, 성령강림의 역사는 그들의 순종을 통해 일어났다. 그들은 성령 앞에 자신의 고집과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기도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얻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을 본다.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임하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과 대속과 부활에 대해 설교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것을 말씀을 전하는 중에 성령이 임하셨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님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10:44)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말씀 가운데 또한 말씀을 전하는 중에 임하신다. 성령이 임재하신 결과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10:46) 행전 2장, 8장,10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방언이 터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찬양이었다.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 항상 있다. 성령님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시기 위해서 바꾸시기 위해서도 임하신다.
언제 성령님이 강림하시는가? 자신의 고집과 지식과 경험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성령님이 강림하신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계시를 얻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을 본다.
4. 에베소의 성령강림
인생의 승자는 몸을 바치지만 패자는 혀를 바친다.
승자의 입에는 솔직함이 있고, 패자의 입에는 핑계가 있다.
승자는 넘어지면 앞을 보지만, 패자는 넘어지면 뒤를 본다.
승자는 과정을 위해 살고, 패자는 결과를 위해 산다.
승자는 구름 위의 태양을 보고, 패자는 구름 속의 비를 본다.
승자는 문제 속으로 뛰어들지만, 패자는 문제의 변두리에서 서성거린다.
승자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들지만, 패자는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승자는 실패를 거울삼지만, 패자는 성공도 휴지 삼는다.
승자는 바람을 돛을 위한 에너지로 삼지만, 패자는 바람을 보고 돛을 감는다.
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 다시 한 번 해보자는 것이지만, 패자는 해 보아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승자의 주머니에는 꿈이 있지만, 패자의 주머니에는 욕심이 있다.
승자는 차라리 용감한 실패자가 되지만, 패자는 비겁한 성공자가 된다.
승자는 땀을 믿고, 패자는 요행을 믿는다.
승자는 새벽을 깨우지만, 패자는 새벽을 기다린다.
승자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지만, 패자는 상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한다.
승자는 오늘을 살고, 패자는 어제와 내일을 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 만을 주셨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내 것이 아니고, 내일도 내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현실에 충실하며 현실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 지금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오늘을 얼마만큼 누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노예로 살아간다.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의 교훈은 기억하지만 과거의 노예로 살지는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에 매여 살면서도 과거가 주는 교훈은 기억하지 못한다.
성령님은 임재하실 필요가 있는 곳에 임재하신다.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된 마지막 성령 강림 사건이다. 1, 2, 3차 성령 강림은 베드로가 집회를 인도하고 기도할 때 일어났다. 그러나 4차 성령 강림은 바울이 말씀을 전하고 안수할 때 일어난 것이다. 사람이 성령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주인이고 사역자는 도구임을 기억해야 한다.
에베소의 성령 강림의 특징은 바울 사도에 의해 주도되었다.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타났다. 선교 사역 중에 나타났다. 열두 명쯤 되는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성령님은 제자를 세우시는 영이다. 성령님은 사역자를 훈련시키고 헌신자를 파송하는 파송의 영이시다. 삼년의 공생애 동안 12명의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파송하였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무기가 필요한데 그 무기가 은사이다. 그리고 동시에 반드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할 것은 성령의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나무의 종류는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열매를 통해서인데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오늘의 한국 교회에 부정보다는 긍정의 요소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 말들이 많은 것이다. 건강한 교회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교회이다. 건강한 성령 운동이 통전적 성령 사역이 은사와 열매가 함께 나타나는 성령의 사람이 우리나라에 가득할 때 한국 교회는 열방의 등불이 될 것이다.
예수의 주위에 있던 많은 무리들도 구원은 받는다. 그러나 무리에게는 상급이 없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한 사람들, 충성한 사람들, 제자들은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이 있다. 그런 제자들에게만 성령님이 임하신다.
Ⅴ. 책을 통해 느낀 점
건강한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이다.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병들어 가고 있다. 본질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순전한 사랑을 전하며,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 소망하는 순수한 열정, 그리고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간절함이 있었다. 이 책은 구약의 성막을 통해,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모델로 삼아 우리가 추구할 현대 교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약의 네 번의 성령 강림을 예시로 현대 교회에 성령이 역사하기 위해 성도들의 자세를 성경을 통해 나타내 주고 있다.
교회가 건강해야 성도들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가 변할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가 변해야 세상의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제 목회자가 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제시하므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교회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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