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일상 생활 동안 고개를 들어 산에다 눈을 맞추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산(줄기)을 좋아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산과 눈을 맞추는 것을 즐긴다.
(일반인들은 산에다 눈을 맞추지만, 풍수를 하는 사람은 산과 눈을 맞춘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경주시 동천동이다. 이곳에서 보이는 경주의 산줄기들은 그 아름다움이 탁월하다. 기세가 너무 강해 나를 압도하지 않으면서, 반대로 너무 나약해 밋밋하지도 않으며,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이 마치 올망졸망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닮은 산봉우리 산줄기들이다.
그래서 나는 점심 식사 후 믹서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며 경주 시가지와 잘 어우러진
산줄기들을 쳐다 보는 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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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9월 12일, 두 번의 큰 지진이 있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난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우리가 계속 안고 가야될 불안감이다. 사실 지리학을 전공하고 산줄기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우리 경주가 역사적으로 지진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속으로 알고 지냈던 것과 몸으로 체험한 것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두 번의 지진 이후, 산줄기들과 눈을 맞추는 일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 변했다. 전에는 그저 아름다움과 흐뭇한 기분에 도취될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일상적인 기분에서 마지막 눈길은 항상 지진의 진앙지였던 내남면(점선 일대가 진앙지)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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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산봉우리들은 풍수에서 말하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길봉(吉峰)이다. 망산은 예부터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냈던 유서 깊은 산으로 풍수에서 부(富)와 귀(貴)를 관장하는 형태의 산이다.
망산 좌측 뒤로 보이는 성부산은 요즘 TV 프로그램 '썰전' 통해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풍수적으로 연관된 산으로서, 귀를 관장하는 산이다.
이 두 개의 산봉우리는 나의 산줄기 감상 목록 중에서 단연 앞자리를 다투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멋진 모양 뒤로 지진의 잔상이 겹쳐진다. 그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여전히 그윽한 모습으로 나를 반기지만, 지진 이후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해 버렸다.
내 머리 속 표면의 이성은 과거의 시선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뇌의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과 본능은 그 날의 잔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풍수는 땅을 어머니에 비유한다. 땅은 사람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베풀고 감싸주며, 사람은 땅에 기대어 살아가기 모습이 마치 우리와 어머니의 관계를 닮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내 어머니이듯이, 땅 또한 그러하다. 땅에 기대어 살다가 흠이 생겼다고 버린다면, 이는 어머니를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태어나서 자란 경주를 떠날 수 없다. 단지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계속 터를 일굴 이곳이 지금처럼만의 모습이라도 계속되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산줄기 물줄기를 공부하는 일인으로서, 미약하나마 이에 도움이 되도록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