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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울림 공동체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였다. 세월이 유수같이 빠르다 하더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지나간 세월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가 보다. 역사의 격랑속에서 하나님과 민족앞에 바로서기 원했던 우리의 공동체, 민중들의 고통과 민족의 아픔에 온몸으로 참여하려 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며 소박하게 우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려 한다. 남은 자료가 많지 않아 지나온 족적을 드러내기엔 역부족인 줄 알면서도 한세월을 정리하고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화보를 꾸며 보았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에벤에셀 | |
한울림교회 창립 8주년 기념예배후 현판식을 마치고 | |
86년 10월 / 이승봉 전도사님이 다니던 공장에서 위장취업 혐의로 해고된 후 교회 개척을 준비했습니다. 전도사님 가정에서 청년 몇 명이 교회 창립을 위한 준비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이승봉 전도사, 김은주 사모, 이민근, 김은천, 김희제, 이은빈이 함께하였습니다. 87년 3월 1일 / 드디어 그동안 준비해 왔던 교회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구로 전철역 부근에 있는 상가건물 2층, 10평을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을 내기로 하고 세를 내었습니다. 일주일에 걸쳐 교회 시설을 꾸미고 첫예배를 준비하였습니다. 87년 3월 8일 / 한울림교회 설립 첫예배를 드렸습니다. 구로지역 민중교회 교우들과 교단의 가까운 선배들 60여명이 모여 축하해 주었습니다. 창립교인은 이승봉전도사, 김은주, 이민근, 김영남, 김은천, 김희제, 이은빈이었습니다. 87년 4월 말 / 창립 이후 우리들은 어떤교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했고 민중교회의 주체성을 세우기 위하여 진지하게 학습하였습니다. 재미있게 교회 생활을 하던중 경찰당국의 압력으로 집주인의 퇴거 통고를 받았습니다. 87년 5월 15일 / 새로운 교회 공간을 물색하던중 철산 4동 산동네가 우리 교회의 창립 취지에 적합한 것으로 결론 짓고, 산 꼭대기 방 두칸을 보증금 80만원, 월세 6만원에 세내어 이사를 했습니다. 이때에 김명선 교우가 함께 하였습니다. | |
"선교지역으로 택한 철산4동의 모습 옮긴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 |
87년 6월 / 김희제 형제의 인도로 김선호, 정장희, 강윤식,강정구 형제가 합류하였고, 지역의 김광훈 목사님 소개로 이종칠 형제가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교우 모두가 6월 민주화 대 투쟁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87년 8월 14 - 15일 / 첫 여름 수련회를 일영으로 12명의 교우가 함께 떠났습니다. 새벽까지 큰 비가 내려 우리 일행은 작은 언덕안에 고립되었으나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였습니다. 밤새 추위에 떨다가 아침에 장비를 회수하여 산넘고 물건너서 교회로 무사히 귀한하였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죽음을 함께 넘은 경험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놓았습니다. 87년 9월 / 본격적으로 예배와 공동체 학습을 시작하였고 김규관, 김건희, 나승희 형제가 출석하였습니다. 공동체 학습은 성경공부와 사회과학 공부로 이루어 졌습니다. 87년 11월 / 교회의 활동 폭을 넓히기 위하여서는 교회 공간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데 뜻을 같이하고 교회 공간 마련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건축헌금도 시작하였습니다. 88년 1월 / 첫 번 당회를 열어 교회 공간 마련을 위한 예산을 믿음으로 세우고(1200만원) 4월말까지 입주키로 결의 하였습니다. 88년 2월 / 구로지역 민중교회연합에 정회원 교회로 가입했습니다. 제 1회 동계수련회가 원당 '평화의 집'에서 열렸습니다. | |
" 교회의 미래,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 '평화의 집'에서 열린 동계 수련회는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한 데 모으는 시간이었어요. | |
" 우린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 수련회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가기 전입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 |
88년 4월 30일 /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4월 30일에 철산 4동 564-79 소재 대지 22평, 건평 12평의 건물을 1200만원에 구입하고 입주하였습니다. 88년 5월 15일 / 2주간에 걸쳐 수리 공사를 마치고 창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중부연회 안양동지방으로 소속) 교우들은 퇴근 후 새벽까지 교회 수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땅을 무려 30Cm나 파서 산 아래까지 져 날랐고, 시멘트와 자갈, 모래, 벽돌을 져 날라 손수 개조 공사를 하였습니다. 일을 마치고는 전도사님 집(철산 주공 11평 아파트)에서 포개잠을 자기도 하였습니다. 창립 예배날에는 새벽 6시까지 도배공사를 하였구요. 힘은 들었지만 모두가 뿌듯한 마음으로 일하였습니다. 창립 예배를 마친후 뻐근한 잔치도 벌였습니다. | |
"개조 공사의 한 장면" 김희제 형제가 미장이로 나섰습니다. 이승봉 목사님 모습도 보이네요. '꼼꼼하게 잘좀해" | |
88년 6월 / 첫 지역선교 프로그램으로 노동자 교양교실(기타반, 한문반)을 시작하였습니다. 지역의 반응이 좋았고 자원봉사 선생님들도 열심히 일 하였습니다. 88년 8월 / 오랫동안 계획해 왔던 탁아방 개원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황은희 선생님을 일꾼으로 보내셨습니다. | |
" 한울림교회 창립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 가파른 골목길을 지나 한울림 창립을 축하해 주러 오신 분들과 축하 케잌을 자르고 있습니다. | |
88년 9월 1일 / 드디어 탁아방을 개원하였습니다. 탁아방은 지역의 맞벌이 노동자 부부들을 위한 지원과 빈민지역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비가 새들어 오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탁아소에 대한 호응이 컸고 20여명의 새싹들이 한울림 탁아방을 통해 자라났습니다. 어려운 시절 김창숙 선생님의 도움도 컸습니다. | |
" 탁아방 친구들 다 모여라 " 아침 7시가 되면 아이들이 하나 둘씩 |
" 전, 지금 고등학생이에요 많이 컸죠 ? " 한울림 탁아방에 다녔던 한 꼬마가 벌써 고등학생이 됐답니다. 탁아방에서 울고 웃고 싸우던 기억들이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을텐데요... |
89년 1월 / 이민근 전도사님이 교육전도사로 임직하셨고, 주일학교를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그간 교우들도 많이 늘었구요. 제2회 동계 수련회를 지난해와 같은 장소인 '평화의 집'에서 가졌습니다. | |
" 한겨울 날씨도 녹일 동계수련회 " 점차 새로운 얼굴의 한울림 식구들이 보입니다. | |
89년 3월 / 청년회를 창립하고(회장 나승희) 한국 기독노동자 연맹에 가입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89년 8월 / 한울림 탁아방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장소는 철산 아파트 앞 작은 공터였는데 많은 분들이 오셔서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 |
"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 탁아방 자모들과 선생님들, 교인들이 합심해서 첫 번째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 |
89년 10월 / 구로민중교회 연합 체육대회(서울대)에 참여하여 준우승하였습니다. 89년 11월 / 제 1회 선교정책협의회를 개최하였고 교회 사업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