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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제 수업과 저출산시대, 주일학교 성장의 전략은 무엇인가? 1. 저출산, 핵가족화, 개인화, 전문화, 다양화 2009년 현재, 합계출산율 1.15명의 저출산 시대,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도 이러한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지 이미 오래전이었습니다 특히 초대형 교회들의 메머드 신축건물들에 사람이 없는 세대가 올 것이라는 암울한 예고는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일학교 뿐만 아니라 주 5일제근무와 수업으로 인한 토요일 공백기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채 방치하고 있을때, 저출산이라는 문제까지 겹쳐서 다가오게 된 것은 사실 교회의 잘못입니다 교회학교의 성장이라는 이슈가 어제 오늘의 일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슈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문제만 제기될 뿐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이러한 해결책이 제시되어도 실천하지 않는 ACTION의 문제가 교회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출산의 문제가 국가적인 아젠다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핵가족화가 가속화할 1980년대부터 였습니다 대가족 중심의 우리나라 사회에 대도시가 형성되고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대가족 중심의 사회는 급격한 속도로 무너져 갔습니다 사실상 대가족제도는 농경사회를 받치는 기본적인 구성원이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사람은 누구든지 꼭 필요한 인재였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이도 노동력과 오랜 경험과 전통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 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가 산업화의 발전으로 도시가 형성되고 그 대도시를 중심으로 기업과 학교와 주택가들이 집중되면서 대가족제도는 조금씩 해체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 특별한 기술만 있으면 농촌사회에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고 잘 살수 있다는 기대감은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도시로 내 몰았습니다 그들은 온갖 어려움과 철인과 같은 강한 노동력의 요구속에서도 인내를 감내하며 저축을 최고의 낙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흙과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살았던 그들에게 있어서 희망은 오직 돈과 명예와 권력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들었던 고향과 고향의 늙은 노모를 남겨두고 도시로 대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가족의 붕괴원인을 낳는 시초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농촌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고, 아기들의 탄생과 어린이가 입학할 초등학교가 사라지는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 하며, 60대 노인이 청년에 속하는 초고령화 현상이 일반화가 되었고, 이로서 그나마 남아있는 농촌지도자들도 그들에게 시집올 처녀를 구하지 못해 외국에서 수입을 해와야 하는 국제결혼이 성행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핵가족화는 핵가족화라는 작은 규모의 가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아파트의 등장으로 소규모의 가족구성원 마져 자기 방을 소유하게 됨으로서 개인화의 경향으로 치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개인화는 산업화라는 경이적인 발전을 정보화라는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를 생성시킴으로서 이 땅에서 사람의 노동력은 이제 비용부담이라는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한사람의 인재가 백만명을 먹여 살리는 전문화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사람의 특별한 인재와 인재를 서버하는 지원그룹들에 의해 국가와 기업은 성장하고 그 나머지 인력들은 이러한 극소수의 인재들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유동성인력, 즉 소모품과 같은 인력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가 되기 까지 무려 2,000년이 걸렸는데 산업화가 정보화로 가는데는 불과 100년도 걸리지 않게 되었으며, 정보화가 다시 속도의 전쟁으로 가는데는 10년도 걸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대가족중심의 사회에서 핵가족화로 가는데 걸린 시간과 유사한 점을 가지게 되었으며, 핵가족화에서 다시 개인화로 가는데 걸리는 기간은 불과 20년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은 속도를 느낄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서울과 부산을 출퇴근할 수 있는 시대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개인화의 진전은 전문화로 이어졌고, 전문화는 또다시 다양화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농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교회는 점차로 쇠퇴하고 역사적인 가치로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교회들은 대형화, 전문화, 다양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여 주면서 세상과 흡사한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한분 만으로도 모든 것이 가능하였던 교회는 세상의 정보화와 전문화를 도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찬양과 방송과 공연문화에 이르기 까지 전문화의 영역은 교회안으로 급속히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기업에나 있을 법한 로고와 로고송이 등장하고 카페와 노래방까지 등장하는가 하면 심지어 골프연습장까지 교회안으로 밀고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장점이 있으나 교회에 전문영역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기독교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가 일부 퇴색되어 가고 있음을 증빙하는 기초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을 웹에 담고, 웹으로 관리하며, 웹으로 통제하는 사이버상의 인적자원관리가 형성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보화의 영역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비판적으로만 볼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산화를 통한 인적관리는 1년 단위의 조직관리를 분기 또는 월별과 주별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개인과 그룹단위로 콘트롤 할 수 있어서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에는 사람의 수고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수고가 정확하고 정직해야 그 통계의 신뢰도도 높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봉사자들이 편리해진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열심을 내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봉사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열심만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세밀하고 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개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능력이 요구되었습니다 이것은 교회밖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들이 교회의 내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기능을 가지게 되었으며, 초신자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교회에서 봉사하며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신앙의 선배들로 부터 신앙의 교육을 배우고, 자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교회의 선배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게 됨으로서 새가족의 정착은 더욱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문화센터등의 발전은 컴퓨터, 서예, 공예, 도예, 스포츠, 이미용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형태로 성장하였으며, 교회는 이러한 문화센터를 이용하여 불신자들에게 교회를 소개하는 장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교회의 전문화는 교회의 세밀한 부분을 보다 정교하게 변모시키는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교회의 외적인 효율성은 예전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으며 교양의 범위 또한 확대되어 갔습니다 문제는 주일학교입니다 이와같은 교회의 외형과 외적인 면에서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을때, 교회학교도 비례하며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학교의 교사들에게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학교 교사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교사들 또한 전문화에 근접하는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해 졌다는 것입니다 교회학교의 교사들에게 있어서 전문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인 동시에 주일학교 학생과의 관계이며, 피할 수 없는 사랑과 열심과 열정입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들에 대한 이해와 태도의 변화입니다 교사들이 예전의 습관과 관례와 같은 방식으로 주일학교 학생들을 대하여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은 인터넷과 지식검색, 정보화, 세속화의 영향으로 본인의 연령보다 높은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놀랄만큼 성숙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정보의 습득과 훈련이 교사들에게 요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들에게 학습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사는 학생을 이길 수 없고 극복할 수 도 없게 되었습니다 2. 세상과 교회의 리더를 세우는 주일학교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 주일학교에 있어서 교사들의 역할이 더 없이 중요성을 가지는 세대에서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비열성적인 교사들을 억지로 세워나간다면 이러한 현상들은 보다 가속화할 여지가 많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가 갖는 위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 스스로에게 있어서 교사란 무엇이며 주일학교 학생들은 또 무엇인가? 더 나아가 주일학교 교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무엇이고 교회는 무엇이며, 신앙은 무엇인가? 교회학교는 우리나라 근대교육과 함께 성장해온 윤리와 도덕의 기준점인 동시에 원동력이었습니다 모든 개방화된 교육과 현대화된 커리큘럼들은 교회를 통하여 생산되었고, 수많은 미션 스쿨들이 이 시대에 설립되어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들을 담당하였습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비롯하여 한동대 등에 이르는 미션스쿨들은 전국토를 망라하며 연결되어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교회와 미션스쿨들의 기능들이 어느순간 제 기능을 상실한채 세상의 교육에 뒤쳐지는 역구조의 모순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기능과 역할들이 정보화와 첨단화의 시대를 리더하지 못한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의 도덕과 정의적 기준점을 상실한 것이 더욱 더 큰 요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전쟁에 대한 억지력과 힘의 균형에서 오는 외형적 근간도 중요한 요인이 되겠지만, 실상은 지도자의 부패와 타락의 정도에서 기인하는 사례가 더욱더 많은 것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기능은 세상을 비추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을때 정상적이었으며, 이것을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았을때 교회의 역할론은 무용지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학교에서의 교사란 이렇게 하나의 작은 개체교회의 소수학생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근간을 육성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위대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즉, 교사의 열심과 노력에 의해 좀은 의미에서는 교회학교의 성장은 물론 넓은 의미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이어갈 윤리와 도덕적 균형을 갖는 중요한 포지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일학교 교사가 갖는 위상과 의미는 교회의 미래와 국가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된다는 측면에서 지속적인 교육과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특히 주일학교 교사가 갖는 신앙적 사상과 사조는 그가 가르치는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교사교육에 관한 교회의 지원과 커리큘럼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자기에게 주어진 학생들과 학생들의 조직이 확대되고 성장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장에 비례할 만큼의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 측면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성장은 원하지만 성장에 견줄만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사가 갖고 있는 성격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교사가 처한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인들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형태의 문제들로 인하여 열심을 내지 않는 원인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주일학교의 교사가 이러한 자기 자신을 둘러싼 여러가지 변화와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와는 다른 방향과 다른 각도로의 사고가 전환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곧, 주일학교 교사로서 새로운 성장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10개월간의 임신기가 필요하고, 그 이후에도 각종 영양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사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고 그와 같은 노력이 실질적으로 행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사들에게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베이스가 되는 것입니다 교사에게 있어서 학생은 주일에 한번 정도 만나는 관계가 아닙니다 설령 몸으로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만날 수 없는 관계일지라도 마음으로는 한주간 내내 그들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미사어구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 작은 실천의 문제가 주일학교 교사와 세상의 교사가 다른 차이점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교사는 주일학교 교사와 정 반대의 생활을 합니다 초등학교의 교사는 한주간 내내 자기반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의 습관을 관찰하고 수업에 임하는 태도와 성격을 분별하고 공동체 안에서의 규범과 생활을 지도하며 성적도 함께 관리합니다 이렇게 지도된 학생이 주일이 되면 주일학교 교사로 연결되어 집니다 이러한 관계가 일년 내내 지속되는 원리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학교의 교사로 부터 학생을 단절시키고 그들이 배우는 학문을 도외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의 교사 또한 주일학교 교사를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교훈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에게는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자녀에 관한 정보와 관심들이 있습니다 학교의 교사는 주일학교 운영방식과 관계에 있어서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사는 학교의 교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평소 생각을 학교의 교사로 부터 들을 수 있고 자녀의 가정환경에 관한 보다 근접한 단계의 정보들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 가운데 생활의 어려움으로 급식비가 계속 미납되는 학생이 있을 수 있고, 과제물이나 학용품을 제 때에 챙겨주겨나 구입할 수 없는 정도의 학생도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을 둘러싼 문제에 관하여 학교의 교사가 주일학교 교사보다 더 많은 관심과 신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교회안에 무엇인가 잘못된 방식의 학사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의 교사는 학생의 미래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래에 학생이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지, 또 그것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칭찬과 격려를 통해 학생을 지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도록 나름대로는 신경을 써가며 지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는 방과후의 학습관리까지 연계하여 특활활동을 지원하며 교내의 안전을 위하여 다양한 대책들을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안에 그들의 휴식공간을 확보하고, 도서관의 출입을 보다 근접하고 자유롭게 함으로서 자연스러운 독서관리를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주일학교의 교사는 학생의 미래에 관하여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학생의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지금 그가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지, 이러한 세밀한 부분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학교의 학생이 반별로 30여명에 이르는 것에 비해 교회의 반구성은 10명 내외로 차이가 납니다 차이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의 학생관리가 학교의 관리보다 편리한 측면이 있는 반면에 시공간적으로는 학교보다 교회가 훨씬더 좁고 짧은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직접 더 많은 시간을 부여하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러한 일들은 불편하고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의 교사와 주일학교 교사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의 교사는 단지 학생을 지식과 윤리와 사회적 인간으로서 양육하는 초보적인 단계에만 머물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론 사회적 관습과 세상에서 취할 부와 권력에 비한다면 지극히 중요한 사안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시각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자신이 맡고 있는 학생이 단지 교회를 다니는 어떤 집사님이나 권사님의 자녀로서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교인들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주일학교 교사는 더 많은 관심과 열정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학교와 세상의 초등학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의 교사는 제 아무리 훌륭한 제자를 양성한다 할지라도 한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교사는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능력을 부여받은존재로 그 가치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그 생명이 영원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학교의 교사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가치있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3. 주일학교의 성장을 위해서는 준비된 예배가 필요하다 주일학교 교사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는 복음자의 역할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는 자신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사의 주일관과 주일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는 것은 모든 행실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는 것은 그 날에 예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중요성은 그 날을 거룩하게 여길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단지 예배를 드리는 시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준비하는 마음과 헌신과 태도와 예배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진 말씀과 은혜와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는 삶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드리는 예배가 바르게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드리는 예배가 가인의 예배가 되어서도 않되고, 사울의 예배가 되어서도 않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아벨의 예배와 아브라함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삶이 필요합니다 그 삶속에는 회개가 필요하고 정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 없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사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 적용되는 공통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번제물은 우리의 마음과 몸이 들어있는 대속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우리 자신들의 진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가장 정직하고 진실된 예배를 준비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배속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의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를 단지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드리는 의식과 예절로 생각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사람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 크기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람과 비교될 수 있는 분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표현되는 가치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연결되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 구역예배로 이어지는 교회의 행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모든 주어진 시간속에서 이루어지는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이 유지되고 있는가 하는 생활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속에서 신앙이 정직하게 구현되고 있을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르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주내내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서 모든 시간을 허비했다면 그것은 세상과의 관계는 회복되었을 지 모르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적절하게 되어졌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토록 첨예하게 대립되어 경쟁관계가 지속되는 세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것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인가 아닌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 직면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영원한 삶을 기대하며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길어야 100년도 못사는 세상에 너무 많은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바로 주일학교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바르게 연결하는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즉, 교사의 바른 관계가 학생과도 바른 관계로 연결 되어지는 동일한 영역의 카테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속에 말씀과 찬양과 경배와 축복과 은혜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예배위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배가 바로 드려지는 교사가 하나님이 말씀하고 찾으시는 교회의 참다운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4. 주일학교의 성장을 위해서는 과정마다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準備, preparation)라는 단어는 "미리 마련하여 갖춘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미리 마련하여 갖출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을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에게 있어서 미리 마련하여 갖출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 즉 성경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교육은 자신의 지식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과 능력이 중요한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사용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주일학교 교사에게 기도의 준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결해야 하고 이러한 것들은 행위가 필요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생각이나 고민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금기사항입니다 세상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영혼을 위해서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언어도단이 아니면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모든 통로를 열어가는 첫번째 순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에는 주일학교가 있고 그 속에 당신이 양육해야 할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학교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교사는 자신이 드리는 기도의 능력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기도가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회와 자신의 양육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기도에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의 키워드가 있으며 모든 되어지는 일들의 결말이 숨어있습니다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곧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무는 것이 되고, 서로를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신으로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기도를 무시하거나 기도를 게을리해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 준비입니다 말씀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씀은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해서 오는 세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성경에 대한 본인의 개인적인 견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되 주일학교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전하는 것일뿐 자신의 사상이나 사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교사 스스로 판단하여 학생들이 아직 어려서 이러한 말씀들이 무슨말인지 잘 모를 것이라고 미리 생각하여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말씀을 증거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는데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지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으로 부터 도래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좋은 메세지가 주일의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말씀은 일주일 내내 준비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말씀을 찾고 묵상하며 되새김질 하여서 자신에게 적용되어진 사례들을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교사 자신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생각속에 담아두는 것으로 끝난다면 주일, 아무것도 전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트에 정리하고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기록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지 생각해 보고 이것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말씀을 전달할 도구의 준비입니다 말씀을 전달할 도구가 혹시 교회에서 사용하는 교재와 도서 그대로 인가요? 그래서 준비없이 그 책을 그대로 읽는 수준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말씀을 전달할 도구에 대하여 관심있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노트북이 있다면 그것을 활용할 파워포인트나 동영상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것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도구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사가 주일학교 학생을 위해서 배우고 익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이가 많고 지식이 없어서 모든 일들이 잘 않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고 익히면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편리하고 본인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 학교의 교사들도 방학을 이용하여 해외연수를 다녀오거나 체험학습을 통하여 여러가지 도구들을 익히고 배우는 활동들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교사들이 방학내내 휴식이나 즐기고 노는 것으로 소일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미래와 반 아이들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사항들에 대하여 공부하고 익히고 학습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교회학교의 교사들도 이에 뒤지지 않는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교회학교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많은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간과하며 보내는 교사가 있다면 그것을 귀찮고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보다 전문화되어 가는 교사로서의 바른 자세이며 자긍심이라 생각하고 실천에 대한 결단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 교제와 관계를 위한 도구들의 활용입니다 휴대폰 문자메세지와 싸이월드, 그리고 카카오톡과 미니홈페이지같은 정보의 활용입니다 주일학교 자기반을 위한 카페를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일입니다 잘 모른다면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만들수 있는 것들이고 배우기도 쉬운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카페를 만드는 일에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과 노력은 필요합니다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좋은 찬양과 동영상을 올려 놓으면 학생들은 관심을 가지며 찾아옵니다 이러한 도구들을 통하여 그들과 더욱 더 친밀해 질 수 있고 직접 만나지 않아도 마음속에 있는 심도있는 대화를 연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말보다 사이버상에 더 익숙해 져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장점이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이러한 도구의 사용에는 물질이 거의 들어가지 않습니다 특히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던 장면들을 디카에 담아 동영상과 함께 올려 놓으면 학생들은 더 없이 좋아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도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활용의 용도가 매우 높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도 사용해야만 하는 실천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와같이 모든 일에는 계획도 있지만 그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실천도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차량의 활용입니다 차량이 없거나 운전면허가 없다면 배워야 하고 차도 사야 한다면 사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차를 구입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의욕만으로는 부족한 사항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주일 사용가능한 차가 있다면 그것을 백분 활용해야 합니다 교통편이 가져오는 편리함은 주일학교를 성장시키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4~500미터 정도 거리에만 있어도 부모들은 자녀를 도보로 교회로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더우기 자녀가 초등학교 3학년 이하거나 가는 길에 횡단보도라도 있다면 사정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차량을 사용할 수 있는 교사가 있다면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래서 반의 성장을 꾀하는 가장 경제적인 도구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멀리있는 반 어린이와 가장 가까이 있는 어린이의 동선을 잡고 시간표를 작성하며, 그 시간에 맞게 어린이가 준비하는 과정에 관하여 부모님과 상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미리 준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지원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준비되지 않은 어린이로 말미암아 시간이 지체되면 마지막에 있는 어린이는 20분 이상 기다리는 일이 발생하여 오히려 차가 약속을 깨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차량은 운전뿐만 아니라 안전이 필수적이고 배차의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세가지 원칙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차량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차량을 통해서 반 아이들의 결석과 지각을 방지하는 동시에 관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량 운행중에 함께 타고 있는 반 아이들의 한주간 생활을 미리 점검함으로서 반원 모임의 시간을 더욱더 최적화의 상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가 없는 교사가 있다면 교회차량운행시간표에 맞추어서 활동량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차량운행의 동선을 잘 활용하여 반원들이 차량을 가장 적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부모님과 상의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차에 함께 탑승하여 자녀들을 직접 데려오는 역할을 해주면 차량을 직접 운행관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거둘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의지는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시간의 준비입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자기 반원들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모든 예배와 공동체의 모임들을 포함하여도 1시간 남짓하며, 모든 시간을 빼고 반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길어야 30분 이내로 매우 짧습니다 그것도 지루해 하는 반원들이 있게 마련이고 출석율이 떨어지면 그러한 경향은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준비하여 짧은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인가를 항상 연습하고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산만해지거나 떠들게 되고 수업이 반아이들 조용히 시키다가 끝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석부와 한주간의 동향은 예배전에 미리 체크하여 알아두는 것이 교사의 바른 습관이 될 것입니다 특히 한주간의 동향은 토요일 학교앞 하교길과 심방전화를 통하여 미리 알아두는 것이 유익합니다 토요일 학교앞 전도 활동은 주일학교 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동 사항이 됩니다 그 때 반 아이들과 반 아이들의 친구들을 만남으로서 자연스러운 전도활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토요일 하교길 학교앞 전도는 절대로 빠져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 시간, 그 때 만나지 못한 반 학생과 통화하는 것은 물론, 특별히 부모님과 통화하여 자녀의 관심사나 염려사항과 건강체크 등을 미리 점검함으로서 다양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의 통화는 부모의 입장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선입견이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주일 아침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늦잠을 자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깨워주는 부모님들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한 내용이 되므로, 부모님과 교사와의 좋은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야 말로 교사가 가장 잘 활요하여야 할 과제입니다 시간은 지나가고 나면 다시 그 시간이 오기 까지 일주일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교사는 일년을 출석체크와 잡담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미리미리 배분하여 성경공부와 모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방안들을 연구하고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도 부족한 시간들은, 1~2개월에 한번씩 토요일등을 활용하여 식사와 기타 모임등을 통하여 관계를 유지해 나가되 이러한 스페셜한 프로그램도 교사가 시간대별로 미리 준비하여 알차게 꾸며줌으로서 시간의 낭비와 비효율적인 측면들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 것입니다 5. 토요성경학교의 부활과 다양한 커리큘럼의 운영 1)주일학교 홈페이지와 반별 블로그& 카페 만들기&반별 앨범 만들기 2)토요성경학교 개설(주일성경공부프로그램을 토요일로 변경실시) 3)토요학교 연극반 운영(토요학교에서 특별활동으로 운영하며 공연도 함) 4)토요학교 축구단 운영(토요학교에서 특별활동으로 운영하며 타교회와 단체들과경기도 함) 5)성경인물 조각만들기(1주~1개월에 한가지의 성경인물을 주제로 성경공부를 하고 성경인물을 나무 조각&점토,공예 등으로 만들어 보고 분기별로 전시함) 6)토요학교 지역문화탐방(부산경남지역의 각종 박물관과 을숙도, 공원등을 함께 관람하고 사진도 찍고 오는 문화탐방) 7)토요영화상영 & 영화관람 8)교회주변 청소하고 교회에서 삼겹살 파티하기 9)우리교회 그리기대회, 우리 목사님 그리기 대회, 우리 선생님 그리기 대회, 전도할 친구 그리기 대회, 우리반 그리기 대회 10)주일학교 텃밭운영(김해지역에 주말농장을 임대하여 주일학교 학생들과 함께 농장체험) 주 5일제 수업의 영향으로 토요휴무일, 각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텔레비젼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이 돌아올 때 까지 과자류로 끼니를 떼우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닌텐도를 가지고 손에서 뗄 수 없는 나홀로족이 증가하는 이유가 닌텐도라는 게임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외톨이 경향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토요일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주일학교의 활용만으로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교사들에게 주5일제 수업이라는 호기가 왔슴에도 불구하고 활용면에서 저조한 것은 의지의 문제였습니다 교사도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교사에게도 가족이 있고 휴식이 필요하다보니 토요일까지 봉사의 자리로 나아오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토요일 본래 봉사를 하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큰 부담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본래부터 토요일에 봉사를 않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토요일까지 봉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일에 버려진 아이들을 담아낼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 졌다는것입니다 그래서 토요일 부족한 성경공부와 각종 특별활동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일에 동참해야 하고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교회학교의 일은 모든 것이 실천을 요구하는 것들입니다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피곤하고 귀찮은 일들입니다 주일 하루도 억지로 맡은 사람들이 교사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을 해야 하는 일이 주님의 일이고 교회의 사역들입니다 특히 교사의 소명은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저출산 시대, 사람들은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생활이 침해받고 아이들로 인하여 자기의 능력개발이나 취미활동들이 제한을 받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사람들 조차도 그러한 경향에 동참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을 찾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더우기 교사들의 소명은 다른 어떤 모양의 봉사보다도 책임이 더 큰 것입니다 그것이 스스로 지게 된 것이든,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게 된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학교에게 있어서 어쩌면 기회와도 같은 주 5일제 수업으로 인한 토요 휴무제도를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토요학교는 성경공부를 보다 심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토요일마다 이벤트로 시간을 채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벤트는 잠시잠간의 유흥을 줄수는 있어도 계속되면 그만큼 식상한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요학교에 대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고민하여 편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례로 성경공부와 관련된 영화상영이나 연극공연, 주제별 성경인물 인형 만들기와 성경지도 만들기 등도 괜찮은 프로그램들입니다 이렇게 월별로 주제를 정하여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완성하여 교회에 전시하는 활동을 하면 보다 유익한 교회활동과 동시에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청량제가 될 것입니다 교사는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사는 제 2의 어버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만큼 반원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남다르게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교사에게 아킬레스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사와 반원들을 임의로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녀들을 문밖에 버려두고 도망가는 인면수심(人面獸心)과 같은 교사가 되지말고, 끝까지 품고 사랑하는 친자녀와 같은 아름다운 관계의 스승과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제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실천한 교사와 실천하지 않은 차이가 모든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과 혁신적인 제안이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기획서는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교사들에게 제안하는 가장 혁신적인 제안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지한 실천입니다 6. 저출산 시대, 주일학교는 통합과 개인화의 길로 간다 자녀를 더이상 낳지 않으려는 시대, 30대 초반이 되어도 결혼을 미루는 미혼남녀들은 자유분방한 서구적 관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족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습니다 가족보다는 개인이 우선이며, 집보다 차를 우선시 하고 누군가로 부터 통제받거나 구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편리하고 안락한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주며 시정을 요구합니다 교회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갖거나 그물망 같은 연락망에 가두는 것을 제한하려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에 대해서도 동일한 자세를 취합니다 그들의 자녀를 부모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 세대가 맡아 키우거나 유치원 교사들이 양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들은 자기 아이들의 즐거움과 웃음만 보려 합니다 자신들의 자녀라 할지라도 자신을 구속하거나 스트레스를 주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자녀를 낳지 않습니다 1~2명의 자녀를 출산하되 할머니와 유치원 교사들에게 맡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스포츠와 취미생활을 즐기고 나름대로의 문화를 여전히 즐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의 표현도 적극적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 뿐만아니라 자신이 기르는 애완견에게도 깊은 사랑을 베풉니다 그들과 함께 사는 애완견은 거리의 노숙인은 물론 서민들의 생활보다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즉, 자신이 사랑하되 자신을 구속할 수 없는 범위의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아주 귀한 성장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불가능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오면 않되는 것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양육하는 주요대상이 할아버지 할머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서의 즐거움 보다 자신의 영역으로 회귀하려 합니다 이러한 핵가족화의 분열을 가져온 저출산시대에서 교회의 역할은 매우 어려워 졌습니다 이제 그들은 존귀한 자녀가 아닙니다 그동안 집에서 너무나 존귀한 자녀로 살았기 때문에 존귀라는 단어로 교회에서 그들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그들에게 안겨져야만 그들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쩌면 닌텐도 보다 못한 분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진 것 처럼 보여지지만 실상은 언제나 혼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대화는 인터넷상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TV만화이거나 인터넷 게임, 닌텐도 등이 전부 입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이라고는 자기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할머니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 쉴틈도 없이 다시 학원으로 보내집니다 초등학교에서 부터 영재교육과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 전사처럼 길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눈에 보이지 조차 않는 하나님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복음은 전해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교사의 몫이든, 목회자의 사명이든 누군가는 반드시 전해야 할 목적이 되었습니다 자녀의 저출산은 나무에 열매가 맺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과나무에서 열리는 사과가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존귀한 과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래알 처럼 퍼져 나가야 할 민족들이 민족의 확장을 멈추고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허물며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여하지 않는 통합은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는 모순을 낳을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교회의 교사들은 이러한 암흑의 시대에 누구보다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반의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주장하고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존귀하게 살아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닌텐도와 휴대폰없이는 살수 있어도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않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말하고, 또 전하며, 그들이 믿을때까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기해서도 않됩니다 교사가 포기하면 그들에겐 더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의 부모가 희망이 없을 지라도 교사에게 맡겨진 학생들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줄어드는 학생들로 인하여 교회는 다시금 예전의 유년부와 초등부가 유년주일학교로 통합되어 갈 것입니다 중등부와 고등부가 통합되고 대학부와 청년회도 통합의 길로 갈것입니다 외적으로는 통합되어 가지만 내적으로는 지극히 개인화의 길로 접어들 것입니다 그들은 무리지어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구속되는 것도 싫어 합니다 자유로운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사가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혁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사가 가르친 학생들이 변화를 꿈꿀수는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교사들의 희망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사의 소명이고 사명인 것입니다 7. 시대의 치명적 오류에서 성장의 해법은 철저한 준비다 기본을 실천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항상 피곤한 상태에 있지만 그에게 붙여진 영혼을 사랑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곤 작은 몸과 그 몸에 쥐어진 성경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보다 친밀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컴퓨터를 사용하고 각종 자료들을 모으는 일을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들을 취합하여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를 점검하고 체크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한 소년이 아프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그를 바라보며 가족들은 놀라움을 경험하였습니다 또 한 소년이 전화를 하여 억지주장을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그 말을 끝까지 경청하며 함께 울어주는 장면에서 모두는 감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왕따라고 하는데 그는 그를 최고의 존재라고 존경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아주 작은 생각들을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준비함에 있어서 마치 100만명의 청중을 모아 놓고 하듯이 연습에 연습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자기 생각이 어느 한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도록 하게 하여 달라는 간절한 기도의 염원이었습니다 자기도 때로는 이해를 잘 못할때도 있지만, 이 말씀을 듣는 아이들은 하나님의 이 독특한 방식에 적응하고 감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성장의 비결이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훌륭한 교사들이 교회안에 넘쳐 있습니다 그의 실력으로 볼때 아마 100번째 안에 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그가 교회의 학교를 일으키고 부흥시키며 성장하도록 하는 것은 그가 가진 가벼운 재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교회와 반을 세우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련하게도 보이는 그는, 현재 구포제일교회의 전도사이며 초등부를 담당하고 있는 임화라 전도사입니다 우리는 지난 10년간에 걸쳐서 2~10배의 성장을 거듭해온 임화라 전도사로 부터 해법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또한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미련하고 어리석은 분류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주일학교와 교구와 기관은 물론 그가 일으키는 교회의 사업에서도 남다른 성장의 효과를 일으킴으로서 항상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른사람이 하지 못하는 성장이라는 과제를 그는 왜 매번 일으킬 수 있는가? 그 해법은 철저한 준비와 준비된 프로세스에 따른 실천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해법에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빠짐없이 메모하고 그것에 따라 실천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가 갖고 있는 프로세스는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던 6대 실천사항들에 관한 세밀한 관찰과 적용이었습니다 첫째, 임화라 전도사는 모든 사업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의 사업은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사업이라는 생각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업은 하나님의 사업이 되고 그 사업은 필연적으로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귀결적인 사업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을때에는 시대의 사상과 조류에 대하여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단지 그가 세상에서 취하는 것은 컴퓨터와 동영상 같은 도구들이었습니다 그는 시대와 사상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벤트를 특별하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곳에서 가장 진실된 음성이 들린다는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어떤 일을 시행함에 있어서 두가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과 주일학교 학생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자신과 주일학교 학생이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특별한 것은 그 자신과 주일학교라는 단체가 아니라 주일학교 학생이라는 개인 개인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였던 것입니다 셋째, 말씀을 찾고 찾는 작업을 마치 모래알속에서 결혼반지를 찾듯이 연구하는 세밀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관한 노력을 말씀안에서 찾는 것은 쉬운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고 그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질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넷째, 말씀을 적용하고 가르치는 도구의 사용입니다 컴퓨터에서 파워포인트 작업과 동영상에 관한 자료를 찾아 말씀을 보다 빠르고 쉽게 가르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모습에서 그의 낮은 자세를 목격하였습니다 또한 성경에 관하여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배우고 익히는 작업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면 시간을 측정하고 그 시간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연습한다는 것입니다 연습과 연습, 복습과 예습은 그에게 있어서 이미 습관으로 자리잡은 프로세스였습니다 여섯째,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의 전화를 끝까지 받아준다는 것입니다 옆에서 들어보면 별 내용도 없는 것이 전화통을 붙들고 끊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메모하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소통하려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른의 입장에서 들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의 단순한 이야기에 함께 울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쇼가 아닙니다 진심은 진심으로 통한다는 진리를 실천하려는 노력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에겐 다툼과 분쟁이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화라를 좋아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도 않습니다 자랑할 것도 많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어진 시간과 내용에 대해서는 그것이 설령 남의 일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남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 사람, 그래서 그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심방입니다 전화로 하든 무엇으로 하든 반드시 평일에 한번은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에서 결코 멀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학생들과 얼마나 관계가 좋았으면 자기의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말할까요? 그의 가방속에는 언제나 연락망이 존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생각이 나면 바로 전화해서 관심을 나타냅니다 형식도 아니고 겉치례도 아닙니다 그의 마음을 전하는 아주 작은 실천이 그에게 습관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여덟째, 차량으로 학생들을 태우러 다닌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한사람 한사람 태워가며 그들의 한주를 점검하고 소통하여 스킨쉽을 즐겨해 준다는 것입니다 안전운전은 물론 필수일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위하여 차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로 차를 운행하였습니다 그것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혼자 타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이 꼭 누군가와 동행하며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아홉째, 예배입니다 그의 예배는 시장통이나 아수라장이 아닙니다 그는 예배를 집중하게 하는 작은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의 모든 탓을 학생들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반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준비를 보다 철저히 하면 학생들은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마력같은 것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학생을 믿고 학생은 선생님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열번째, 기도입니다 기도가 열번째 있는 것은 기도는 그를 평생토록 이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기도에서 응답을 찾았고 발견한 경험이 넘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멋있게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를 통하여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를 우리는 곁에서 직접적으로 목격하였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은 기도에는 엄청난 힘이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해의 폭이 넓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와 동일한 보통사람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고 적용해야 할 모멘텀이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관계에 앞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참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관계에 관하여 우리는 지나쳐 버릴 때가 많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한사람의 특정인을 스페셜하게 만들어 나가려는 의도에서 적혀진 글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람이 지난 10여년에 걸쳐서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고 그것이 주일학교든, 교구든, 기관이든, 전도든, 공부든,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일이라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 내었다는 측면에서 함께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연구의 결과로 짐작해 볼때, 어떤 특정인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점이 있다면 성경에서 요구하는 간단한 내용의 지침들을 실천하는 사람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의 지극히 낮은 차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주일학교에서 성장을 원한다면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생각과 변명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실천이 쉬운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천이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떤 한 사람이 이루었던 결과가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목적도 어떤 한 사람을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의 이루어내었다는 측면에서 우리 모두도 실천할 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다시 이글을 덮고 새로운 변명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자기 합리화를 찾으려 하지 말고 간단하고 쉬운것 부터 실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첫댓글 윗글은 주일학교 성장에 관심있는 교역자와 교사들을 위한 자료로 연구한 것으로 쎄이영의 글에서 나머지 두개의 주일학교 테마글과 함께 보시면 유익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