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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1강 - 1 (2010. 03. 01)
一心頂禮(일심정례) 盡十方三世(진시방삼세) 一切諸佛(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일체현성승)
我弟子等(아제자등) 講論三藏(강론삼장) 唯願三寶(유원삼보)
爲作證明(위작증명)
南無本師釋迦牟尼佛(나무본사석가모니불)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隅(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意(원해여래진실의)
그동안 문수경전연구회에서는 2년 전에 법화경을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에 임제록을 공부를 다 마치고, 공부하신 스님들께서 화엄경을 공부하자고 이렇게 요청이 있어서, 그래서 이달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화엄경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준비를 하느라고 했습니다만,
많은 스님들이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동참을 하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법회라고 하는 것은 법사가 아무리 잘 하더라도 청중의 호응이 있어야 하는데, 공부하신 스님들이 이렇게 일단은 호응이 좋아서 저도 참 보람이 있고, 그동안 준비한 의미가 있다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특히 저쪽에 계시는 태고종 의연스님은 처음부터 아주 용기 있게 오셔서 인사 탁~ 하고, 공부하겠다고 이렇게 동참 하셨는데 그래서 지금 2년여 공부했습니다. 오늘 마침 태고종스님들이 몇 분 더 보이셔서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환영합니다. 박수 한번 치십시오. 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여기는 超宗派(초종파)로써 오로지 출가한 스님들만을 위한 그런 교육의 장입니다. 그래서 천태종이고 무슨 법화종이고 일승종이고 할 것 없이 스님들의 僧籍(승적)을 가졌으면 다 오셔서 공부하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을 가졌는데, 제 소원이 조금씩, 조금씩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일체 다른 조건도 없고... 교재는 항상 준비했듯이 제 개인이 준비를 하는 것이고, 여러분은 자체 운영을 위해서 그저 오시는 분들 회비나 제대로 꼬박꼬박 내시고 하면 그걸로 자체에서 운영 해나가고 하는 것입니다.
또 말난 김에 거기에 “화엄산림에 동참합니다.” 하는 메모지가 있을 겁니다. 제가 누가 오는지 얼굴 좀 익히 아는 몇 몇 분외에는 누가 와서 공부를 하는지 전혀 몰라요. 그래서 이번 화엄경부터는 수고스럽더라도 꼭 그것을 적어서 제출해 주시면 ‘어느 사찰에 계시는 어떤 스님이 와서 공부 하는구나.’ 저는 그것만 알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도 좀 알고 싶어서 그렇게... 또 명단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벌써 3년째 이렇게 접어들었는데 너무 우리는 전혀 조건도 없고, 제약도 없고 하기 때문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이야기가 전혀 없어서 너무나도 자유스럽게 해서 그 점이 분위기가 참 좋은 점인데요. 단 누가 와서 공부 하는가 이것이라도 제가 알고 싶어서 메모지를 하나씩 돌렸으니까 꼭 기재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많은 분들이 이렇게 성황을 이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책을 250부를 준비를 했는데 아직 좀 덜 찼어요. 마저 250명이 차기를 허허허 바랍니다.
지금은 한 150명쯤은 오신 것 같은데 100명 더 채웁시다. 허허허.
수행자 입장에서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 하는 것은 본분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의무지요. 그리고 ‘불교와 인연을 맺었으면 그야말로 우리가 화엄경은 제대로 한 번 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요약해서 가르쳐 주면 좋겠나.” 이렇게 주문을 하셨는데 제가 여러 날 고민 끝에, 그 요약하기도 쉽지가 않고, 그래서 경전도 완전하게 보든 안 보든 그냥 법보로 모셔 두더라도 완전한 경전으로 한 벌씩 소장을 해야 그 경전으로써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민족사에다가...
이것이 강원에서, 종단에서 정한 화엄경 교재로 정해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국정 교과서와 같은 것이지요. 현대적으로 새롭게 편찬한 경전을 그대로 한 벌 모시고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어디서 화엄산림을 할 때,
여러 스님들이 법사로 나가서 이것을 펴놓고 화엄산림에 설법하기도 좋을 것 같은 그런 생각에서... 얼마를 공부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의
문제이고, 일단은 완전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시간은 걸리겠지만 화엄경 全篇(전편)을 감히 겁 없이 시작을 했습니다. 신문사에서 인터뷰할 때, 제가... -기사에 그런 말 났대요. “10년 결사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년 결사하는 마음으로... 또 그 10년이라고 하는 것은 화엄경의 이치에 맞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열
이라고 하는 숫자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화엄경현수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유하건대 캄캄한 방에 보물이 가득 있다고 하자.
그럴 때, 거기 등불이 없을 것 같으면 그 보물을 볼 수 없듯이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한 불법의 세계. 우리 불교의 세계.
이것이 아무리 위대하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으면 개개인으로서 아무리 타고난 지혜가 출중하다손
치더라도 능히 알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ㆍ사람이 다 본래로 우리부처이지만, 그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부처님께서 먼저 깨달으시고, 우리들에게 그것을 일깨워줌으로 해서 우리가 정말 부처로써 보다 더 차원 높은 삶을 당당하게 살 수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비유를 들면, 어떤 사람이 눈에 병이 있을 것 같으면 이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봄이 됐든
여름이 됐든 가을이 됐든, 산천초목의 색깔이 아무리 잘 색칠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듯이, 우리 마음에 깨끗한 마음이
없을 것 같으면, 그야말로 불법을 공부하고자 하는 그런 신심.
불법에 대한 그런 관심. 그것이 곧 신심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을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 또한
볼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 밝은 태양을 눈 먼 사람은 능히 보지 못하지요.
태양이 아무리 눈부시게 내리 쬐어도 눈이 먼 맹인은 그것을
보지 못하듯이, 지혜의 마음이 없을 것 같으면 부처님의 깨달음이
아무리 위대하고 그 깨달음에 의한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
더라도 그것을 마침내 볼 수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은 정말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부처님의 그 설법을 열심히 우리가 정진 하면서 공부해야 정말 불법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라고 하는 그런 말씀이 됩니다. 다행히 이 말세에...
세상은 여러 가지로 편리하게 살도록 되어있는데, 먼 길을 마다 않고 신심을 내서 공부하겠다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서 큰 화엄회상을 이뤄준 것은, 이것은 참 희유한 일입니다. 무슨 승려생활 하는데, 무슨 주지임명 나가는데 高價(고가) 점수로 포함 되는 것도 아니고, 꼭 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소문 듣고 그저 자발적으로 이렇게 오신 것은 순수한 신심이다 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화엄경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한국 불교, 화엄경의 분위기를 조금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우선 인물로 살펴보면요? 의상스님이 있습니다.
의상스님은 중국에 가서 11년간 유학을 하시면서 화엄경을 공부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돌아 오셔가지고 전국에다가 화엄십찰을 건립하고, 그 많은 제자들을 전국에다가 파견을 해서, 화엄경을 전파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화엄시식을 하든, 아니면 관음시식을 하든, 최후에 燒臺(소대)에 나가서 이생의 마지막 이별을 할 때에, 그 이별 곡으로 불러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화엄사상을 엑기스만 뽑아서 정리한 의상스님의 법성게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의식 속에, 불자들의 생활 속에 화엄경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또 원효스님은 화엄경의 서문과 광명각품의 소를 쓰신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원효와 의상 그리고 심상스님이라고 하는 분은 일본에다 화엄경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저 나라에 화엄경 총 본산인 동대사, 비로자나부처님을 건립하는 계기를 우리나라 스님이 만들었던 것이고 또 백제의 행기스님이라든지ㆍ양변스님ㆍ심상대덕ㆍ이런 이들은 정말 이 땅에 불교가 제대로 뿌리 내리기 전에, 정말 화엄사상으로써 이 땅에 불교로써 뿌리 내리게 된 것입니다.
특히 또 고려에 와서는 균여대사가 화엄경 普賢十願歌(보현십원가)를 지어가지고 문학사상 鄕歌(향가)로써 역시 고려 때 썼습니다만,
신라향가에 속하는데 그 향가로써 우리 국문학상에 정말 아주 빛나는 업적을 남겼고, 지금도 그것을 연구를 많이 합니다. 이것이 전부 화엄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의상스님의 10대 제자, 오진스님ㆍ지통스님ㆍ표혐스님ㆍ진정스님ㆍ진장스님ㆍ도융스님ㆍ양원스님ㆍ상원스님ㆍ명인스님ㆍ의적스님ㆍ이런 의상스님의 10대 제자가 전국에 화엄사찰을 건립해 가지고 화엄경을 이 땅에 뿌리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로 인해서 화엄십찰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는데,
해인사ㆍ범어사ㆍ화엄사ㆍ부석사ㆍ보광사ㆍ보원사ㆍ심지어 불국사도 그 당시로서는 화엄사찰로 기록이 되어있고 그렇습니다.
스님으로 보나 또는 사찰로 보나 한국불교는 면밀히 살펴보면 화엄불교가 3ㆍ40%는 차지하고 있어요. 지금 뭐 선불교가 우리 한국불교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우리의 생활 속에는 그와 같이 화엄사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불하고 나서 신중단에다가 반야심경을 외웁니다.
화엄신중 빠뜨릴 수 없는 겁니다. 이것 역시 화엄사상이 기인한 것이고,
여러분 정초에 다 신중기도 하셨지요? 화엄 신중기도... 이 역시 화엄사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또 화엄시식이라는 것도 그렇고요.
또 금세기 최고의 도량석이라고 이렇게 명명하는데 약찬게로써 도량석을 한다든지, 또 지금 곳곳에서 화엄산림을 한다든지, 또 승려의 교육과정에 대교반에서 화엄경을 공부 한다든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또 그동안 한글로 번역한분들로 볼 것 같으면 용성스님ㆍ운허스님ㆍ탄허스님ㆍ이런 이들. 또 그 외의 많은 이들이 화엄경을 번역하거나 논문으로 그렇게 정리한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화엄학자들이 한국을 보면요? 아주 부러워합니다. 일본에는 거의 법화경풍토라고합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볼 때 “한국은 화엄의 풍토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한국에는 화엄경이 살아있다.” 이렇게 합니다. 왜냐? 늘 법성게가 소리 높여 울려 퍼지고, 약찬게가 소리 높여 울려 퍼지고, 또 화엄신중에다가 늘 기도하고, 예불 끝에 마다 항상 화엄신중을 모셔서 도량신을 삼는 그런 것들이 일본에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에 화엄학자들은 한국을 그런 차원에서 아주 부러워할 정도로 “한국에는 정말 화엄경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갖춘 사찰에 보면 으레 비로전이 있습니다.
또 유명한 산에는 으레 비로봉이 있습니다. 곳곳에 비로봉이 있어요.
또 비로암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전부 화엄사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화엄경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그냥 잊고 살아요.
이번 기회에 우리가 이런 것들도 새롭게 상기하면서 아~~, 화엄경이 정말 우리와 이와 같은 깊은 관련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인식하시고,
초기 한국불교에는 제대로 사상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는데, 의상스님이 화엄경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전파하면서부터 비로소 불교다운 불교가 한국에 뿌리내리게 됐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것은 제가 간단하게 인물과 사찰과 그리고 의식. 또 우리 승려의 교육과정. 이런 것을 간단하게만 살펴봤습니다만, 이런 분야에 여러 스님들이 좀 더 많이 연구해 보면, 보다 더 많은 화엄경과 관련된 역사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화엄경은 부처님의 一代時敎(일대시교)와 연관 시켜서 우리가 생각해보면, 물론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500년 600년경에서부터 말하자면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 했고, 그 때부터 대승경전이 세상에 등장하게 됩니다만, 그러나 우리 불교는, 이 불법의 이치는 어느 때 어떻게 설명했다. 설했다. 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현시점에서도 항상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있는 그런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래서 언제 누가 설했느냐 관계없이 부처님의 一代時敎 전체를, 부처님의 일생에다 맞추어서 배대를 하는 그런 소위 敎相判釋(교상판석)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阿含十二(아함12)ㆍ方等八(방등8)ㆍ二十一載談般若(21재담반야)ㆍ終談法華又八年(종담법화우8년)ㆍ最初華嚴三七日(최초화엄삼칠일). 이렇게 간단하게 敎相判釋을 하는데, 그 가운데 보면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나서 그 날로부터 삼칠일, 21일 동안, -우리가 삼칠일 기도도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1일 동안 부처님은 깨달음의 法悅(법열)속에서 계셨습니다. 그 때까지는 ‘중생 제도하겠다.’
그런 생각 없었어요.
당신이 깨달으신 그 깨달음의 내용을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크~~ 기뻐하고 그 法喜禪悅(법희선열)에 도취해 있다가, 내가 제대로 깨달았는가? 또 검토하고, 21일 동안 그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완전히 깨달음의 法悅속에서 보낸 그런 시간이었지요. 바로 그 때의 부처님의 ‘그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표현해보자.’ ‘그 깨달음의 세계를 고스란히 표현해보자.’ 라고 한 것이 화엄경이 됩니다.
그래서 화엄경을 -거기에 부처님의 제자 한 사람도 없을 때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전부 10대 제자가 다 나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옛날 전통으로, 전통의 어떤 상식으로 생각을 하면 이것이 논리적으로 안 맞고, 역사적으로 안 맞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만, 이치로 이해하기로 들면 그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최초에 화엄경을 삼칠일 동안 설했는데, 뭐 흔히 그런 표현을 하지요.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만 열반에 들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범천왕이나 제석천들이 “중생들을 위해서 수준을 낮춰서 설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권유를 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것이 아함경. 소승 경전부터 시작한 것이, 소승 경전인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고,
그 다음에 조금 더 차원을 높여서 방등부를 8년동안 설하고, 그 다음에
반야부를 21년 동안 설하고 마지막으로 법화경 열반경을 8년 동안 설했다. 이렇게 전통으로는 부처님의 全一代時敎(전일대시교)를 그렇게 배대를 합니다. 49년에다 이렇게 탁 배대를 하면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것은 아주 상징적으로 참 좋은 배대입니다. 상징적으로 정말 좋은 배대입니다. 왜냐? 언제 설해졌더라도, 언제 결집이 됐더라도, 그 화엄경의 내용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그 순간에다가 초점을 맞춰서 설해놓은 겁니다.
법화경이나 열반경은 언제 설해졌든지 관계없이 처음부터 의도가,
편집의도, 결집의도가 부처님의 열반에 맞춰서 결집된 겁니다.
전부가 이렇게 됐어요. 그리고 예를 들어서 반야부 경전 같은 것은 초기 대승경전이기 때문에 한참 空(공)이나 無相(무상)이나 無我(무아)에 대한 이치에 목 말라 있을 때에, 그 때의 그 분위기에 맞는 그런 내용으로써 반야경을 설했다든지, 이러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법화경에서 궁자의 비유로써 잘 표현하고 있지요? 窮子驚愕華嚴時(궁자경악화엄시). 화엄경을 설하니까 모두들 깜짝 놀라서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더라. 驚愕하더라. 이런 표현을 하지요?
그 다음에 除糞定價阿含時(제분정가아함시). 그러니까 아함경을 설할 때는, 말하자면 아주 거친 일을 하면서 품팔이를 하는 그런 때다.
그 다음에 또 出入自在方等時(출입자재방등시). 그 집에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는 방등경을 설할 때다. 그리고 令知寶物般若時(영지보물반야시)라. 반야경을 설할 때는 그 집의 재산상황, 보물이 어디 있느냐?
보물창고에 그 보물의 목록은 어떠냐?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때가 반야경을 설할 때다. 그리고
傳付家業法華時(전부가업법화시)라. 해서 부처님의 일생살림살이를 전부, 자식에게 물려주듯이 우리 중생들에게 和盤托出(화반탁출)해서 다 물려준 그런 시기가 말하자면 법화경을 설할 때다. 이런 식으로 전통적으로는 그렇게 우리 공부해오고 교상을 그렇게 과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염두에 두고, 화엄경은 언제 결집이 됐든 관계없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법열을 누리는 그 삼칠일 동안의 정신세계를 그린 것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요. 그 다음에
간단한 화엄경의 제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 우리가 그렇게 하지요. 대방광불화엄경. 스님들은 습관적으로 어디 유행 길을 가다가도 축생을 보면, 소나 개나 말이나 보면 “大方廣佛華嚴經”하고 이렇게 최고 대승경전의 이름을 한 번 들려줍니다. 그 大方廣佛華嚴經이라 하는지 내가 너를 잡아먹고 싶다 하는지 못 알아듣습니다. 말은 못 알아들어요. 그러나 우리가 그 축생에게 大方廣佛華嚴經이라고 하는 경의 이름을 들려주고자 하는 그 마음은 전달됩니다. 축생이 그 마음은 알아들어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알아들어요.
그래서 그런 경우에도 화엄경을 읊조려 주듯이, 감히 우리가 모시고 있으면서도 이 화엄경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내는 그런 경전이었습니다만, 이제 이러한 인연으로 한 번 공부를 해보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평소에 축생에게 그 제목 한 번 전해주는 것으로써 우리의 의무를 다 했는데, 그 뜻을 우리가 한 번 작정을 하고 새겨보겠다 하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래 大方廣佛華嚴經 이렇게 할 때, 앞으로 경제목에 대해서도 아주 복잡하고 아주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제가 따로 프린트를 해서 기회 때 마다 나눠드리면서 사이사이에 자세한 설명은 또 그 때가서 하도록 하고, 우선 간단하게
大 = 크다. 뭐가 크냐?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위대하다.
方 = 방정하다 그러지요? 바르다. 정확하다. 아주 똑 바르다 하는 것입니다. 뭐든지 기우러져 있거나, 삐뚤어져 있지 않고 바르다는 것입니다.
위대하고 바른, 그리고 넓을 광 자.
廣 = 광대하다 이 말입니다. 광대한 佛. 大方廣佛.
부처님의 세계를, 그 다음에
華嚴 = 보살의 다양한 실천의 꽃입니다. 그냥 식물로 된 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꽃 같은 실천. 꽃 같은 아름다운 마음씨. 꽃 같이 아름다운 말씨.
이것이 보살의 모습이거든요. 그래서 보살이, 다양한 꽃처럼 아름다운 실천의 꽃으로써
嚴 = 이 세상을 꾸미는 내용을 설한
經 = 경전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大자만 가지고도 몇 페이지 설명하고,
方자 하나만 가지고도 몇 페이지 설명하고 그렇습니다만, 다시 정리해드리면 위대하고ㆍ바르고ㆍ광대한 부처님의 세계를ㆍ보살의 다양한 실천의 꽃으로써 꾸미는 것을 설하는ㆍ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설하는 경전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 화엄경은 앞에 한문만 꽉 차있는 그런 경전을 받아들었을 때 아마 처음 보신 분은 ‘이걸 언제 공부할까?’ 이런 생각부터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가 어디를, 한 지역을 여행을 하면 저는 그렇습니다.
事前(사전)에 지도를 구해서 그 지리를 공부하지만, 또 현지에 가면 현지의 가장 자세하게 잘 된 지도부터 구입합니다. 그래서 그 지도를 가지고 지금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은 어디쯤에 있고, 우리가 앞으로 갈 관광지는 어디쯤에 있고, 동쪽인지 서쪽인지 남쪽인지 변두리인지 중심인지 이것부터 아는 것이 참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길을 잃어도 찾아오기도 쉽고요.
그래서 지도라고 하는 것이 여행에서도 필요하듯이 우리가 이 10년간의 대 장정을 화엄산림의 여행을 하는데, 간단하지만 지도를 한 장 그려 봤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나눠드린 화엄경 구성표입니다.
이것을 보면 그 화엄경이 방대하다 해도 한 눈 안에 들어오고, 한 손 안에 들어온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좀 익숙하게 눈에 익혀서 이 그림을 다 외우시면 아주 좋을 겁니다. 그래서 화엄경은 어떻게 구성이 됐는가? 화엄경을 지도로 그리면 어떻게 그려지는가? 이 점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화엄경 구성표를 넣지 못해 죄송합니다. 동영상 게시물을 프린트해 놓고 보시며 공부하면 머리에 쏙쏙...)
제일 위에 왼쪽부터 분차ㆍ주차ㆍ품수ㆍ회차ㆍ회장ㆍ방광별ㆍ회주ㆍ입정별ㆍ설법별거ㆍ←이렇게 쭉 나와 있는데요.
맨 처음에 분차를 보면, -불교공부는 우리 종교인의 한 수행과정이기 때문에 흔히 우리가 信ㆍ解ㆍ行ㆍ證(신해행증). 이 네 가지 단계를 거쳐서 우리가 수행해 나간다 이러지 않습니까? 그것도 화엄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분차를 보면
거과권락생신분. 이렇게 되어있지요? 擧果, 과를 들어서. 부처의 결과를 들어 보여 가지고, 하~~, 이것은 근사한 거야. 이것은 즐거운 거야. 이것은 행복한 거야. 이것은 좋은 거야. 이것은 우리의 삶의 평화를 가져온 거야. 라고 하는 것이 勸樂입니다. 그래서 生信, 믿음을 내게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여행할 곳을, 근사한 곳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야~~, 거기 한 번 가고 싶다.’ 거기 한 번 가고 싶다 하는 그런 생각을 내도록 만드는 것. 그 다음에 밑으로 내려가서 보면
수인결과생해분. 修因, 인을 닦아서 契果, 결과에 계합해서 生解, 어떤 이해를 내게 하는 것. 아~, 이러이러한 과정으로 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알려주는 그런 내용이 됩니다. 그 다음에
탁법진수성행분. 이것은 하나하나 법에 의탁을 해서 進修, 닦아 나가면서 成行, 어떤 실천 행동을 이루어가는 그런 부분이 되고요.
그 다음에
의인증입성덕분. 이것은 구체적인 인물을 하나 딱 등장시켜요.
두말 할 것 없이 그는 선재동자입니다. 선재동자라고 하는 구체적인 인물을 하나 딱 등장시켜서 依人, 사람에 의지해서 證入해 들어간다. 증득해 들어가면서 덕을 이루며, 佛德(불덕). 부처의 덕을 이루어 가는 그런 부분이 의인증입성덕분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제 9회 입법계품 내용인데 주차를 보면
소신인과주ㆍ차별인과주ㆍ평등인과주ㆍ성행인과주ㆍ증입인과주ㆍ
아주 전문적인 화엄경공부의 용어로써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차별인과주에도 差別因ㆍ差別果. 이렇게 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약찬게를 외울 때 六ㆍ六ㆍ六ㆍ四ㆍ及與三(육육육사급여삼) 一ㆍ十一ㆍ一ㆍ亦復一(일십일일역부일)이렇게 됐지요? 이것이 39품 아닙니까?
39품을 제 1회.
회차에 보면 초회→ 6품이지요? 세주묘엄품에서 비로자나품까지 6입니다. 그 다음 2회에도 6품입니다. 3회에도 6품입니다. 六ㆍ六ㆍ六
4회에는 4품입니다. 四품을 설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모르면 화엄경약찬게 六ㆍ六ㆍ六ㆍ四ㆍ及與三. 아무리 외워봐야 그것이 무슨 비밀주인지 모릅니다. 그 다음에 及與三이지요?
5회째에 가서는 3품을 설했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법회 회수가 아홉 번 벌어진 겁니다. 화엄경은 법회 회수가 아홉 번 벌어지고 장소는 일곱 곳이다. 그래서 7처 9회 이렇게 합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 6회에 가서는 10지품 한 품만 설했어요.
그것이 一입니다. 그 다음에 7회에는 11품입니다.
六ㆍ六ㆍ六ㆍ四ㆍ及與三 하고 一ㆍ十一ㆍ一ㆍ亦復一 이렇게 됐어요.
그러니까 7회에는 11품이고, 그 다음에 8회 1품이고, 9회 1품이고요.
이렇게 해서 一ㆍ十一ㆍ一ㆍ亦復一 하는 것이 이렇게 딱 회와 품이 배대가 됩니다. 이렇게 39품이라고 하는 이것이 참... 한 품만 하더라도 보통 다른 경전 몇 배가 될 정도로 량이 많습니다. 물론 짧은 품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네 권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 한 권은 入法界品(입법계품)입니다. 그래서 요즘 강원에서도, 공부 잘 하는 강원에서 해봐야 기껏
入法界品 그저 한 품 보는 정도고요. 그 전에 우리 때는 入法界品도 안 보고, 본문도 안 보고, 현담이라고 해서 화엄경槪論書(개론서)거든요.
그거 한 1년보면 끝이라고요. 화엄경본문은 구경도 못하고 그만 끝나요.
그것이 참 졸업이 바빠서 그렇게 화엄경 강의라고 하면서도 제대로 화엄경공부를 못하게 된 그런 일이 됩니다. 그 다음에
회장 하는 것은, 이제 이런 것이 눈에 삭~ 들어오고, 아주 입에 익숙하고 그래야 됩니다. 지도가 익숙해야 돼요.
처음에는, 初會(초회)에 법문을 설 할 때에는 보리장이라고 하는 그야말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바로 그 장소. 거기에서 설했다고 해서 보리장회입니다. 그 다음에 보광명전으로 옮겨서 2회가 설해지고,
그 다음에 도리천으로 올라갑니다. 저~ 하늘 도리천궁으로 올라가서
3회 법문이 설해지고, 그 다음에
야마천궁에 올라가서 4회째 법문이 설해지고,
도솔천궁에 올라가서 5회. 타화자재천궁에 올라가서 6회. 그 다음에
재회 보광명전 했는데, -저 앞에 두 번째 보광명전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또 보광명전에 와서 7회 11품을 설하게 됐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삼회 보광명전 그렇게 되었지요?
이세간품 한 품은 8회인데 다시 세 번째 보광명전에서 설했다 해서
삼회 보광명전. 재회 보광명전. 그렇게 합니다. 그 다음에
입법계품 제 9회. 이것은 기타림에서 설하게 된 내용이기 때문에,
기타원림 이렇게 장소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다음에
법회 때마다 부처님이 放光(방광)한 것이, 이 화엄경에는 방광이 여러 번 나오는데 방광한 것도 달라요.
처음에는 미간에서 방광했지요? 자나방치광미간광했는데, 이빨 사이하고 미간사이에서 방광을 놓았다. 그 다음에
세존방양족륜광. 두 발바닥에서 광명을 놓았다든지, 양족지. 발가락 끝에서 광명을 놓았다든지, 발등에서,
양족부 그랬지요. 발등에서 광명을 놓았다든지, 그 다음 차츰차츰 올라오지요? 올라와서 양슬륜. 양 무릎에서 광명을 놓았다든지 이것이 전부 상징하는바가 있습니다. 의미가 아주 깊어요. 그 다음에
여래방미간호상광. 미간에서 또 한 번 놓고, 그 다음에
여래방미간구광. 입에서도 놓게 되고, 차회불불방광. 또 방광을 하지 않는 것도 있고, 마지막에는 방미간백호광.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고,
또 회주도 다 달라요. 사실은 화엄경은 佛說(불설)이 아니라, 보살이 부처를 설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어떤 세계를 설하는 것이 아니고, 보살이,
부처님은 그냥 앉아계십니다. 앉아계시기만 하고 보살이 나와 가지고 부처님을 대신해서 전체를 설하도록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단 두품만 설하는 내용이 잠간 비치는 정도고 그래요.
그래서 회주가 처음에는 보현보살이 회주가 되고ㆍ문수보살이 그 다음 회주이고 법혜보살ㆍ공덕림보살ㆍ금강당보살ㆍ금강장보살ㆍ이렇게 회주가 늘 바뀝니다. 참~~ 이 화엄경 전체를요? 우리가 공들여서 공부를 하면 그 화엄경의세계가 복잡 하면서도 정말 아름답고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게 짜임새가 잘 되어있는가? 도대체 아무리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어떤 머리로, 머리가 도대체 어떠하기에 이렇게 구성을 할 수 있었는가? 정말 감탄해 마지않는 그런 내용들을 우리가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7회에 가서는 여래가 회주가 되고, 요즘 우리 불교에서 회주, 회주, 회주라는 말 잘 쓰는데 이 회주도 화엄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법회의 주인이다.” 이런 뜻이지요.
그 다음에 보현이 회주가 되고ㆍ여래와 선우, 선지식들이 회주가 됩니다.
말하자면 53선지식을 찾아가는데, 그 선지식을, 덕운 비구를 찾아가면 덕운 비구가 회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善友, 선우라는 것은 선지식인데, 선지식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회주가 되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삼매에 들어가는 것도 다 달라요.
삼매에 들어가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삼매도 다른 것을 여기다 딱~ 표시해 놨고, 그 다음에 제일 마지막에 설법별거라고 했는데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초회 6품의 내용은 도대체 어떤 내용이냐? 무엇이 중심이냐? 여래 의정법 그랬어요. 여래의 의보와 정보에 대한 것. 의보는 부처님의 생활환경. 우리가 이 산천초목을 본다고, 부처님이 산천초목을 보는 것하고 같지 않습니다. 자기 깜냥만치 산천초목을 봅니다.
오늘 이 법회도 각자 느낌이 다릅니다. 자기의 어떤 심성만치, 자기의 불교 수준만치, 자기가 이 법회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신심의 정도만치 법희를 느끼는 것이지요. 그래 부처님의 입장에서 느끼는 소위 이 세상. 그것이 依보지요. 그리고 正이라고 하는 것은 정보인데 부처님 그 자신. 부처님 그 자신입니다. 그래 부처님의 그 생활환경과 그리고 부처님 그 자신에 내한 내용. ←이것을 설명해 놓은 것이 초회 6품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대개 화엄경이나 대승경전에서는 보살의 수행점차를 42위라고도 치고, 그 다음에 52위라고도 치는데 어떤 수행단계를 거쳐서 佛果(불과)에 이르느냐? 이러한 것이 화엄경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되어있는데요.
“2회 6품경은 10신 법문이다.” 그렇게 되었어요.
十信法門(십신법문). 이 명칭도 나중에 또 낱낱이 인쇄해서 나눠드릴 것입니다. 10신의 명칭ㆍ10주의 명칭ㆍ10행의 명칭ㆍ이런 것을 전부 일목요연하게 나눠드릴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10주법문이고요.
그 다음에 10행법문이고... 예를 들어서 수미산에 올라갔지만 그것은 서론에 불과해요. 본론은 10주법문 입니다. 10주품이 있거든요.
그 다음에 “10주의 결론에 해당 되는 품들이다.” 이렇게 보면 되고요.
주된 품은 10주품ㆍ10행품ㆍ10회향품ㆍ10회향품에도 10회향품을 설하기 위해서 도솔천에 올라가지요. 도솔천에 올라가면 게송으로 노래를 아주 멋들어지게 열 곡을 부릅니다. 무조건 한 번 시작했다하면 10곡입니다.
화엄경에서는 무조건 10곡입니다.
그래서 열 명이 나와 가지고 번갈아 가면서 열 곡의 찬불가를 그렇게 부르고 나서, 10회향 법문이 척~~ 나온다든지 그 다음에 10지품은 좀 독특한 것이 돼서 그런 과정 없이 바로 10지법문으로 등장합니다, 그 다음에
등묘각법문이라고 했는데 등각 묘각법문입니다. 그래서 52위. 혹은 또
10신은 이것은 믿는 단계지 지위의 단계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10신을 보살지위에서 빼요 또... 빼 버리면 이것은 42위가 됩니다.
보살 42위. 또는 보살 52위. 52위하면 10신까지 쳤을 때 그렇고요.
그러나 10신은 대개 보살지위로 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심이 있다고 벌써 한 단계가 올라갔나요?
신심이 꽉 차면 10신 만심에 10주 초주가 된다. 바로 제 1주. 10주중에 제 1주가 된다. 이렇게 칩니다. 10신 만심과 제 1주를 동일시 봅니다.
이것이 경전에 다 나오는 내용인데요. 뭐 주로 그런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제일 밑에 가서는 2천행문 해가지고, 여기는 아주 정말 한 대담에 100가지의 답이 착~ 쏟아집니다. 200문에 2000가지의 답이 쏟아져요. 이런 식으로 되어있는 그런 어떤 법문의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2천행문 이고요. 그 다음에
과법문. 이렇게 또, 입법계품을 이렇게도 표현을 합니다.
그 다음에 여기는 기록이 안 되었습니다만, 다시 보면 처음 6품,
이것은 “비로자나부처님이 성불한 과정이다.” 말이 좀 모순되지요?
‘비로자나부처님이 무슨 또 성불하느냐?’ 어쨌든 모순되더라도 들어두십시오. “처음 6품은 비로자나부처님이 성불한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또 표현합니다.
그 다음에 나머지는 2회에서 8회까지 전체가 이것은 뭐냐?
“보살이 성불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보살이 성불한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 다음에 9회.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면서 수행해 나가는 그 내용은, 이것은 뭐라고요?
“중생이 성불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뭉뚱그려서 표현하는데 아주 근사해요. 빨리 알아듣기는 참 좋습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이 부처가 성불하는 과정ㆍ보살이 성불하는 과정ㆍ중생이 성불하는 과정ㆍ이것이 아주 제대로 그린 내용이다. 라고 이렇게, 화엄경을 공부한 이들은 그렇게 또 아주 단순하면서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늘 책 사이에 끼워 다니면서 수시로 살펴보고, 우리가 어디까지 갔는가?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 이런 이정표와 똑 같으니까 그렇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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