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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의 의미
창세기 8장 13절
“육백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할렐루야!!
오늘은 거룩한 주일이며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설날입니다. 이렇게 주일에 설을 맞이하는 날짜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올해는 이렇게 주일에 설을 맞이합니다.
설을 생각하면 옛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어린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설을 기다리며 설빔도 얻을 수 있고 맛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하다가 이런 시가 있어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립니다.
설날 가는 고향길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 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 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 없이 찍혀있을 종종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 암 직만 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또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구요
자주 오도록 할게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길을 보고픔에 눈물로 녹이며 갑니다
- 오광수님 글 -
고향이 있어 부모님을 뵐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고향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을 찾아 뵙고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설, 가족들과 서로 축복하며 우애가 깊어지는 좋은 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나라의 설에 대해 궁금해서 자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설이란 말은 “사린다,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삼가다, 조심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설날이란 일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고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는 매우 뜻깊은 명절로 여겨져 왔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이제 새롭게 한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있어 경건하게 새해의 첫날을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것, 그러면서 탈 없이 한해도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이라는 명칭을 두었답니다.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인데, 농경의례와 민간 신앙을 배경으로 한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농경시대에 맞게 한해도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민간 신앙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은 신앙적으로 볼 때에는 그리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고민을 했습니다. 성경속에서 첫해의 하루는 어떻게 되어질까? 거기엔 무슨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어떤 복이 있을까? 고민하면서 성경을 찾다가 오늘 본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또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정월 초하루 즉 새해 첫날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정월 초하루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
오늘 본문 말씀은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하여 살아가므로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들이 생각하며 계획하는 것이 악한 것임을 보고 그들을 결국 심판하기로 계획하십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노아란 의인을 하나님께 부르시고 방주를 만들라 명령하십니다.
6장 3절에 보면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결국 그들이 심판을 받을 날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5백세에 방주를 만드는 명령을 내리시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연수가 120년이 된다했지만 결국은 노아가 방주를 짓기 시작한 후 100년이 지난후에 심판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들이 죄악이 얼마나 컷는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600세가 되던 해에 모든 육축들을 방주로 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육축들과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로 들어간 후에 하나님께서 문을 닫아 버립니다. 그후 40일동안 성경에 표현을 보면 “큰 깊음의 샘이 터지며 하늘의 창이 열려”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위로 아래로 물이 터지고 내려서 땅에 있던 배가 떠올라 다니고 천하에 높은 산들이 다 덮여 버립니다. 그리고 150일 후에 물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지면에 물이 마르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육백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가오기 시작한 것은 노아 600년 2월 17일에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600년 1월 1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새해 첫날로 시작하여 다시 세상을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역사를 다시 시작하시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둘째로 출애굽기 12장 2절에 보면,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라고 말씀합니다. 해의 첫달이며 첫날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30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새롭게 세운 날입니다.
출애굽을 향하여 준비하는 기간이 14일이며 그날 밤에 유월절 행사를 지내고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의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두가지의 이야기속에 보면 하나님께 시작하시고 하나님께 제정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홍수가 우연히 다 말라 새해 첫날에 물이 지면에서 걷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속에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달력에 의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한해의 첫날을 제정하시고 출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두사건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 새해의 첫날을 시작하게 하시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2. 정월 초하루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1) 과거에 매이는 생활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제 새로운 에덴에 생활을 펼쳐 주십니다. 온 세상에 방주속에 있는 가족들과 육축과 새들을 통해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매이는 삶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백년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그것도 땅위에서 방주를 지을 때에 악한 사람들이 노아를 향해 얼마나 많은 저주를 하고 조롱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 과거의 일을 노아가 잊지 않고 계속 매여 삶을 산다면 그의 인생은 홍수전과 홍수 후의 삶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에 매인 자들은 결국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쳐보니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가요의 가사가 있더군요.
그 내용을 보면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은 흘러
끝없는 대지위에 꽃이 피었네 아~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도 이렇듯 과거의 아픔들을 과감히 버리려고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지금이 더욱 좋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에 매이는 것을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에 매여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의 올무가 되는 것이 지난날에 내가 그렇게 성장해서 지금 이런 내모습이 된거야. 그때 조그만 잘 됐으면, 그 때 조금만 부모님이 나에게 이렇게 해 줬으면 한다고 지금의 이런 나는 아닐텐테 하며 과거에 상황에만 매여 있으면 그의 인생은 결코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6절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사도바울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6장 3절에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떠난지 한달밖에 안되었는데도 그들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 더 좋았다고 푸념을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고 체험하였으면서도 지난날의 과거에 매여 결국 그들 즉 이집트에서 나올 때의 20세 이상의 장정들은 결국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을 민수기 14장 2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육체의 삶에 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새로운 날을 세우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그 고백이 여러분의 믿음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새로운 삶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의 사건을 통해 이제 모든 죄악이 청소가 된 새로운 땅을 밟으며 살아가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마치 아이들이 놀고간 자리가 엉망입니다. 여기 저기 널려있는 옷들 책들 장난감도 바닥에 부스러기들과 먼지들 혼란스럽습니다. 거기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싹 청소하고 나면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게 되듯이 노아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새로운 삶이 그들 앞에 펼쳐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9장 1-3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육일동안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아담에게 하신 말씀과 똑 같습니다. 3절 마지막에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그들에게 있어서도 광야라는 것은 죽음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생명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노예의 삶에서 자유자의 삶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는 새로운 축복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인생의 길을 내시기 위해 새로운 날을 허락하시고 지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길을 위해 이렇듯 선한 것으로 준비해 놓으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에 대한 확실한 말씀이 이사야 43장 19-2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아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모든 준비하시고 열어 놓으신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과거를 버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우리의 인생길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삶,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이렇듯 성경에 나오는 새해의 첫날이 되어야만 묵은 과거를 털고 새롭게 시작한다면 우리는 수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린 언제나 무언가를 해야지 하면서도 작심삼일의 모습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신정이 지난지도 한달하고 보름이 되어갑니다. 우리가 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는 무엇을 해 보자고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잘 지켜지고 있는지요?
스가랴 4장 6절에 보면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듯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펼쳐 놓으신 복들을 보게 하시고 누리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과거에 매이게 만들고 부정된 생각으로 혼란스러운 삶,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도 모르고 살아가는 그런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 깨끗한 영혼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얀아이 검은 아이
어떤 초등학교에 피부가 백옥같이 하얀 애와항상 봄볕에 그을린것처럼 검은 애가 있었답니다.
검은 애는 하얀 애가 너무 부러워 자신의 얼굴도 하얗게 되고 싶은 마음에
하얀 애를 몰래 뒷조사하기 시작한지 며칠째, 하얀 애는 세수를 할 때면 항상
표백제를 풀어놓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대요.
검은 애는 당장 자기 집으로 가서 세면대에 표백제를 풀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죠.
다음날 아침.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던 검은 애는
얼굴색이 더욱 검어진 사실에 기절 할 뻔 했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표백제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검은 애는
표백제 봉투에 적혀있는 한줄의 광고문구를 보고 그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답니다.
'하얀 것은 더욱 하얗게! 색깔은 더욱 선명하게!!'
라고 써 있었답니다.
우리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깨끗해야 합니다. 결코 죄를 가지고서는 우리가 이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광야 같아도 천국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리에 장애를 가져서 제대로 생활 할 수 없는 이들이 예수를 만남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얻었습니다. 문둥병자도 그렇습니다. 앞을 못보는 시각 장애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길이 되었다는 것을 되었습니다.
'선데이 스쿨 타임즈'(Sunday School Times)라는 주일학교 교사들을 위한 잡지에서 실린 기사입니다.
미스 탐슨이라는 분이 그 주인공인데, 이 분은 교회에서도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중학교에서도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르치고 있던 학생 가운데 테디 스텔러드라는 학생이 오랫동안 무단 결석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집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적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선생님은 이 학생을 그냥 제적당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방과 후에 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예상한 대로 집은 엉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선생님은 잠들어 있는 아이를 깨워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학교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테디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테디야, 선생님에게 딱 한 가지 소원이 있단다. 뭐냐 하면, 선생님이 반에서 출석을 부르면서 '테디 스텔러드!'라고 했을 때, 네가 한 번만이라도 선생님, 나 여기 왔어요!"라고 대답해주었으면 하는 거란다. 이 한 마디만 들으면 선생님은 더 이상 원이 없겠다. 그렇게 해줄 수 없겠니?"
드디어 어느 날 테디가 학교에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 날 선생님이 학생들을 부르는 목소리는 전과는 어딘가 달랐습니다. 유난히 크고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로 선생님은 차례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비, 탐, 메리, 테디…" 했더니 테디가 뒤에서 아주 어색한 표정으로 "선생님, 나 여기 왔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그런데 며칠 후 테디의 모습이 또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 학생의 집을 다시 찾아가보았습니다. 그러나 테디는 집에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말로는 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 테디는 뇌암이어서 살아날 희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입원해 있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학교가 끝나면 병원에 들르는 일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병원을 찾아갑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러자 테디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제 병을 알아요. 저는 다시는 학교에 갈 수 없을 거예요."
선생님은 그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 너는 학교에 다시 올 수 없을지 몰라. 그러나 천국에 갈 수 있어. 천국에는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 예수님이 사람들의 이름을 부른단다. 선생님에게 간절한 소원이 한 가지 있는데, 천국에서 예수님이 네 이름을 부를 때 네가 '예수님, 나 여기 왔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야." 그러니까 테디가 "선생님, 저는 예수님을 잘 몰라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테디를 옆에 앉혀놓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테디에게 복음을 들려주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장사되어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주셨기에 그분을 영접하면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값없이 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날 테디는 선생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테디가 구원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탐슨 선생님이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테디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테디가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다면서 빨리 와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알콜 중독자 아빠가 거기 있었습니다. 집 나갔던 엄마도 있었고, 형제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조용히 다가가 테디의 손을 잡았습니다. 거의 의식이 없던 테디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눈을 뜹니다. 그리고는 힘없이 입술을 움직이면서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나 여기 왔어요."
정월 초하루 그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과거에 매이지 맙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며 올 한해도 하나님을 만나는 삶, 한 아이의 고백처럼 매일 매일 예수님 저 여기 있어요. 저와 함께 해주세요. 고백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