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2:1-13> 좋은 병사
1. 디모데후서의 개관
AD 64년 로마 대화재로 도시의 2/3가 타버리자 정치적 궁지에 몰린 네로 황제게 그 원인을 신흥종교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면서 박해가 극심한 시기였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도 다시 투옥되었고 그의 죽음이 임박한 시점입니다 (딤후 4:6). 네로의 박해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도망 유리하기도 하지만 배교하여 믿음에서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사역자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2. 오늘날 우리의 영적환경도 바울의 시대처럼 다른 형태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전쟁을 할 수 있는 영적 병사가 군기가 빠진 모습입니다. 어쩌면 화려함에 풍부함에 취해져 비틀거리는 것 같습니다. 사탄은 마지막 때에는 심한 박해로 공격하지만 이제는 박해보다도 화려함, 풍부함, 쾌락, 통합과 능률, 평화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16-18세기처럼 여전히 지식과 이성, 과학으로 공격합니다. 이럴 때 어떠한 자세로 믿음생활을 할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가 병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병사입니다
▶ 최근에 꿈을 꾸었습니다.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하여 훈련소에 들어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해병대 훈련소이었으며 저도 꿈에서도 해병대였습니다. 아마 이것처럼 우리들 각자의 훈련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병과가 실제는 공병이었는데, 꿈에서는 수송병과 이었습니다. 꿈에 수송병과처럼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움직임이 보였고, 어떤 젊은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힘겨운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해병대는 특수부대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영적 특수부대로 훈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 병과가 실제는 공병이었으며, 꿈에는 수송병이라는 것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예레미야처럼 부술 것을 부수고 새롭게 건설하는 공병임과 동시에 전쟁터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공급하는 수송병의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교사역이며, 동원사역이며, 공급사역입니다. 이게 앞으로 제가 할 사명입니다. 선교사로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영적 전쟁터에 보내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는 사역인 것입니다.
▶ 귀신 잡는 해병대인 것처럼 영적 전쟁에 저는 관심이 많습니다. 앞으로 귀신도 많이 잡을 것입니다. 이 꿈은 제 사명을 깨닫는 꿈이요, 제가 다시한번 병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꿈입니다.
▶ 우리 모두는 병사요 군사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부르심이 있고 각자의 영적인 병과가 있습니다. 크게는 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가 있으면 내부적으로는 보병, 공병, 포병, 기갑, 수송, 통신 등 다양합니다. 어느 것도 없어서는 안됩니다. 이들이 각자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때 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군이며 병과는 무엇입니까? 믿는 자라면 반드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군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에 속한 것입니다. 사탄의 군대도 계급이 있고 다양한 종류가 있듯이 하나님의 군대도 다양하고 졸병도 있고 장군도 있을 것입니다. 중보기도자는 미사일 부대와 같습니다. 교사는 훈련소 조교와 같습니다. 선교사는 적진으로 침투하는 자와 같습니다.
▶ 이렇게 우리는 병사로 부름을 받았는데, 때로는 완전히 군기가 빠져 날마다 집 생각하고 가족 생각하고 불필요한 염려 근심하고, 고난을 받지 않으려고 피한다면 그는 아직 훈련이 필요합니다. 군복은 입은 모양새는 낼지 몰라도 좋은 병사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좋은 병사는 어떠합니까?
① 3절에, 함께 고난을 받을 줄 아는 병사입니다.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현재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바울처럼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자기 전우들, 동역자들은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데 혼자 편한 길로 가고자 하면 그는 좋은 병사가 아닙니다. 좋은 병사는 고난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함께 돌파합니다. 군인이 우회하는 길을 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돌파해 나갑니다 (지뢰밭- 파괴통, 부교 등)
마치 바울과 바울과 함께 수고하고 그들 도운 에바브로디도 처럼 말입니다(빌 2:25)
② 좋은 병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자입니다.
병사의 임무(사명)는 무엇입니까? 당연히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지키는 일입니다. 누가 병사를 불렀습니까? 국가가, 대통령이, 영적으로는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부른 것이죠
요새 군에서 과거에 비해 사생활이 많이 허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군기는 상대적으로 더 떨어질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병사라는 이유로 사생활은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자 자기 생활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병사라면 임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르신이를 기뻐게 하지 못합니다 (4절)
▶ 병사는 고향을 부모를 친척을 떠나서 군대 규율에 따라 사는 자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인 것은 내 뜻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군대서는 불가합니다.
▶ 군인들은 국가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지급합니다.
요새 월급마저 엄청 높습니다. 내년에 이등병이 30만, 병장이 40만 수준이 된다고 합니다. 최근에 제대병사가 장기 사병으로 재 입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먹을 것 입는 것 때문에 주의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대에 가서 자기의 먹고 입을 것 걱정하고 자기가 벌어야 한다고 하면 이상한 일입니다. 영적으로도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면 그것은 그냥 있어도 채워지는 것입니다. 군대서 밥 안주고 옷 안줄 것 같아서 자기가 돈 벌고자 한다면 이상합니다.
6절에,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7절에, 범사에 총명까지 주신다고 합니다. 수고하는 자에게 먼저 주신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망해도 법원에서는 국가 세금과 임금이 우선 청산대상입니다. 더구나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총명까지 주신다고 합니다. 다른 것도 필요한 것 줄것입니다.
2. 병사로 부름 받은 우리는 경기하는 자와 같은 자세로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5절) 빌 3:7-16절에서는 바울은 신앙생할을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경기하는 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 꿈 하나 이야기 해볼까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 트랙을 돌고 있습니다. 마치 쇼트트랙 경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이 달리고 있는데, 그 중간에 제가 트랙 바깥에서 새롭게 뛰어 들어가 같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힘에 의해서 제가 트랙 바깥으로 밀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달리지 못하고 트랙 바깥 담장을 넘어 비탈진 언덕 풀이 있는 바닷가에 내가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해석은 각자 해보세요, 저는 이것이 저의 최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트랙에 들어가 달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쇼트트랙 경기를 보면 상대방의 진로를 방해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서 넘어지기도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믿음의 경주에서도 동일하다고 봅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경기장 밖으로 몰아내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혹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도 달려야 합니다.
① 경기하는 자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향방 없이 무작정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하거나 돌아갑니다.
[고전 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잘못된 이단 사설에 빠진 자도 목표가 잘 못된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항상 경계하고 있음을 여러 서신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갈 2: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빌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 목표가 잘 못 잡히면 달음질이 헛되게 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목표, 푯대는 종극적으로는 천국과 부활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생명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이런 것을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요 잡은 줄로도 생각하지 않고 계속 뛰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 3:12-13). 이제 바울은 경기를 마치고 그가 바라던 천국에서 상을 받아 누릴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믿음의 경주를 마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이 땅에 있을 때 신앙생활을 마치 경주하듯이 달려간 것처럼 우리도 남은 삶을 경기하듯이 달려 가야 합니다.
② 그는 이 믿음의 경주를 위하여 그 좋은 모든 것을 다 배설물처럼 버리고 달려 갔습니다.(빌 3:7-8). 경기하는 자가 이것 저것 주렁 주렁 달고 뛰지 못합니다. 거추장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아직 죽지 않는 자아입니다. 욕심 등 세상 것들 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지나간 일들일 수도 있습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화려함으로 인하여 발목이 잡혀 있으면 안됩니다. 묶인 것을 풀어버리고 달려 가야 합니다.
③ 그렇게 뛴 결과는 상입니다. 부름의 상은 곧 영생이며, 구원이며, 천국이며, 부활입니다. 그리고 영광도 주어지며, 왕노릇까지 합니다 (10,12)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④ 경기 하다가 포기하거나 경기장 바깥으로 뛰쳐 나가서는 안됩니다. 경기를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도 넘어져도 끝까지 인내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갈 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설사 넘어지는 경우에도 다시 일어서서 달려야 합니다. 이 경기는 꼴지가 없습니다. 완주하면 다 상을 받습니다.
⑤ 경기이든 군사든 반드시 지켜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법이며 규정입니다.
[딤후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①법은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입니다. 내 마음대로가 아닙니다.
이것을 오늘 말씀에는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복음대로 경기하고 복음대로 병사로 복무해야 합니다. 군인이 군법을 지키지 않으면 감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합니다. 세상 법보다 더 엄격합니다.
<결론>
우리는 좋은 병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부르신 자를 기뻐게 하는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병사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묶고 있는 것을 풀어내고 달려야 합니다. 마치 경주하는 자처럼 말입니다. 목표를 향하여 상을 위하여 달려 가야 합니다. 반드시 상을 바라고 달려야 합니다. 법대로 말씀대로 달려야 합니다. 경주에 방해군은 당연히 있습니다. 이기고 승리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 자기에게 주어진 기름부음의 병과를 잘 감당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