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소주(蘇州) 항주(杭州) 여행기
송병완
졸업여행에 앞서
전남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자과정 37기 졸업에 앞서 원우 44명 가족과 함께 87명이 중국에 두 번 째 여행이다. 출발에 앞서 순천대학교 중문과 한병곤 교수로부터 중국 동남부의 '역사와 문화의 도시, 소주와 항주‘에 대한 예비지식을 들었다. 거대한 중국을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은, 8세기 당나라 장계(張繼)시인의 풍교야박(楓橋夜泊) 한수의 시(詩)라 할 수 있다. 2002.11.22(금)부터 2002.11.25(월) 3박4일 짧은 기간에 2500년 역사의 소주항주 문화 답사는 매우 짧은 기간이지만 의미 있는 추억의 여행이다. 그러나 상해 임시정부 방문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계기로 삼고 그 정신을 아로새겨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광주공항 가면서
2002.11.22 오전 07시 38분 광주 두암동 집에서 출발하였다. 도심속에 붉게 물들어간 가로수, 도로마다 정체되어 서있는 자동차 물결을 뚫고 동광주 톨게이트로 통과 서광주 IC로 진입하였다. 광주문화예술회관 주변에 앙상한 가로수는 예술인의 서있는 모습이다. 회색 빛 동녘 하늘에 해 구름이 붉게 퍼지면서 거리마다 밝은 생기가 가득 차 있었다. 송원고등학교앞 지나 기아자동차공장사이 무진로를 달렸다. 공장굴뚝에 내뿜는 하얀 연기 그리고 소각로 연기가 도심을 흐려놓은 주범이었다. 특히 소각로는 쓰레기와 전쟁의 산물로 말도 많았고 극락강변에 지하철공사로 차들이 줄지어 서있어 마음이 바뻤다. 우리를 맞이하는 비행기 폭음소리에 오전 08시 30분 공항에 도착하였다. 뒤 따라 들어온 완도반 29명이 좋아한 원우끼리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소주 두박스 니누며 폭소를 터트렸다.
" 소주 가는데 왠 소주야?"
오전 10시 30분, 일행들은 KAL 873호에 탑승하여 중국 상하이로 날아갔다.
“무등산아래서 청해진에서 달 타고 별 타고 달려왔네.
꼴뚜기에 소주잔 때리며 정다운 모습으로 지난 추억 뒤로하고
새로운 추억 그리면서 서해바다 건너 중국으로 가네
장계시인 만나러 김구선생 배알(拜謁)하러“ - 송병완, 광주공항에서 시 전문 (2002.11.22. 오전 10시 작)
상하이 푸동비행장에 도착하여
광주공항을 이륙하여 간단히 기내식으로 오찬을 들고 정오 12시 20분 상하이 푸동비행장에 안착하였다. 여기서 중국시간으로 오전 11시 20분이다. 포동국제공항은 1999년12월 일부 준공하여 운영하고 2010년 완전 완공을 목표로 공사중에 있다. 정오 12시 30분(이하 중국시간) 연변 조선족 가이드 교포 3세 조홍화와 중국인 왕 운전기사 운전한 1호차에 탑승하여 2호차와 함께 국제 무역항구도시이며 밤이 없는 도시( 밤10시 30분 시청에서 일제소등) 포동으로 들어갔다. 아가씨는 중국의 현황을 줄줄 설명하면서 중국어 몇 마디 가르쳐주었다.
”리하오마 (안녕하십니까) 싱콜라(수고하셨습니다) 쎄쎄(감사합니다)호아호아(좋아합니다)쇼우져(아가씨)“
그리고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노래로 설운도 이야기를 하였다.
상하이는 송나라 때에 조그마한 부두였고 도시로 1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라 한다. 포동 포서는 황포 강을 중심으로 나누어지며 공항에서 7분 이내로 포동 무역 금융 중심도시로 이동할 수 있는 시속505Km 자기부상 열차 2003년 개통을 추진하고 있다. 상하이는 포동특별개발구역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도로변에 대나무, 수양버들, 꽃으로 아름답게 정비되어있었다. 북한 김정일위원정이 상하이를 보고 '천지개벽'이라고 말이 실감났다. 중국 중에서도 상하이는 고색창연함과 약간의 우중충한 붉은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포동(浦東)신구는 초현대적 고층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1990 강택민에 의하여 개방하여 경제발전과 젊음이 살아 숨쉬는 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상하이 검찰청과 법원 도로변에 빨간 사루비아가 예쁘게 피어 지나가는 우리 나그네에게 미소 지며 서있었다. 그러나 처음지은 아파트에는 만국기가 걸려있었다. 만국기는 아파트에 간지대를 밖으로 꽂아 걸어둔 빨래다. 중국에 도착하여 금강주가(錦江酒家)로 가서 첫 번째 점심식사를 하였다. 빨간옷 입은 작은 슈우져는 요술램프 들고 녹차를 따라준다. 당근 어묵 감자 보리떼콩 생선 양배추 콩나물 잡채 파 고추 쌀밥 볶음밥 수박 맥주 사이다가 회전식 밥상이다.
홍구(虹口) 공원에서
중국 시인 노신선생의 이름으로 노신공원으로 불러 지고있다. 공원에는 많은 노인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으며 조각배에 남녀가 노를 저의며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 주변에 아기단풍은 아름답게 피어 있어 관광객들이 붐비었다. ‘윤봉길 의사’에 대하여 임중빈 문학평론가는 ‘세기적 의열의 광채’라는 제하에 천추의열(千秋義烈)윤봉길을 25년 생애를 대자연과 수난의 역사가 세계적인 걸작으로 묘사하였다. 윤의사는 1908년 6월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광현당에서 파평 윤황과 경주김씨 원상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 우의(禹儀), 호 매헌(梅軒),봉길(奉吉)은 별명으로 6세에 천자문 수학하고 11세 에 덕산공립보통학교 입학하였다. 12세 때 3.1 만세운동 시위대열에 따라 나서고 2학년 재학중 자퇴하여 한학에 정진하였다.1922년 15세 성주 배씨 용순과 결혼 시회에서 장원하였다.19세때 각곡 독서회와 야학 개설 20세 때 농민독본을 지어 농촌 개혁운동과 월진회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었다. 뺐뺏이 말라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 철권으로 적을 즉각 부수어 水火수화에 빠진 나라를 건지고자 23세때3월 6일 집을 나섯다.
"장부는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 돌아오지 않는다"
만주을 유랑하다가 24세 때 홍구에서 소채장사를 하면서 빈번히 백범 김구선생과 접촉하여 1932년 25세에 4월26일 거사준비를 마치고 4월29일 홍구공원에서 대 의거 결행 후 일헌(日憲)에 피수 5월25일 사형선고 12월19일 일본 가네자와에서 형 집행 순국하였다. 순국 14년 만인 1946년 5월 중순 유해 환국 7월 7일 국민장 엄수 효창공원 의열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홍구공원에는 매원으로 조성 조그마한 비에 업적소개와 매정 정자에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플라타너스 신우대 그리고 아기단풍이 어울려 호수로 변한 사건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본천황 생일 축하 현장에서 결행한 윤봉길의사와 ‘광인 일기 미치광이’ ‘차부도 선생’ 을 쓴 중국 노신선생 (중국 독립정신 사상의식을 심어준 작가) 비와 함께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노신(1881-1996)선생은 상하이 출생 일본 유학하여‘아퀴정전 고을기’를 보고 귀국하였다. 중국 국민들에게 독립정신을 심어주었으며 천원 짜리 물건을 백원에도 팔고 삼백원 짜리를 3만원에 파는 대충 대충 자기합리화사상을 차부도 선생의 유명한 이야기이다. 관광객에게 몰려든 중국 장사꾼의 현장을 목격하면 충분히 이해리라 믿는다.
“25세 꽃다운 나이로 백범에게 동경 사건 같은 계획 있으면 주시시오
검붉은 혈색 짙은 눈썹 투지에 찬 눈 이글거리는 정열
매헌이여! 조국에 대한 순수한 열정 나라위해 몸 바처
이제 당신과 나 호수에 노 저어가며 아기단풍 구경하며 살리라
평화 위해서 의열한 홍구에 삼가 머리숙여 조아립니다“ -송병완, 매헌이 계신 매원에서(2002.11.22 오후1시)
일행은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상하이 마당로 306 농 4호로 들어섰다. 한국 관광객이 줄지어서 나라사랑은 나만이 아니었다. 마당로는 당시 보경리로 1925년에 건설된 도로이며 청사는 중국 근대식석고문 구조의 건축물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 상해서 창설되었으며, 수차(상해-항주-가흥-진강-무한-장사-기강-중경)이전을 거쳐 1926년 보경리 4호로 옮겨왔다. 1932년 5월 홍구공원 폭팔사건이 있는 후 부득히 상해를 떠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집에서 7년간 공무활동을하였다. 김구 흉상이 있고 김구선생 글씨가 있는 "독립정신""양심건국"을 바라보며 비디오 시청하였다. 임시정부 회의실 김구주석 집무실 임시정부 주방 임시정부 집무실 요인숙소를 구경하고 방명록에 " 나의조국 대한민국" 사인하고 5천원을 기부하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 친필 "愛己愛他(애기애타)" "光明(광명)" 마음에 다 왔다. 김대중 현 대통령 전 노태우대통령 전 김영삼 대통령도 방문하였다. 당시 임시사료 편찬위원회 이광수 김병조 이원익 장붕 안창호 김홍재 김홍서 차균상이라는 사진도 있었다. 여러가지 고증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으랴만 자주 독립정신과 민주화의 요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중국국민의 우정을 생각하면서 한민족의 위대한 정신을 찬양하였다. 독립의 노랫말 보고 애국애족 사상을 맘껏 이야기하고 되새겨보는 시간이었다. 태가촌 대주점으로 가서 소수 민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흥겨운 식사 한마당
운남성 12개 소수 민족이 운영하는 태가촌 대주점 들어설 때 징 꽹과리 북 나팔 불며 환영이 요란하였다. 오랑캐 민족으로 문자도 없고 언어로 살아오고 있으며 서빙 아가씨 보면 키가 작다.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남자 여자 서로 마주보고 노래 주고 받는데 남자가 작사 작곡 노래 부르지 못하면 장가못 간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 집에서 3년간 공일 해주어 장모가 인정해주어야 결혼 할 수 있다고 한다. 식사를 하는데 무대에서는 춤추는 아가씨들이 내려와 빨간댕기에서 빨간 털실 우리 손목에 차주어 그것은 행운을 준다고 한다. 아리랑 피리소리 구슬프고 무대 올라 묘족 아가씨 그리고 총각들과 손에 손잡고 춤추었다. 서빙 총각은 긴 주전자로 대나무 술 미주(3도)를 따라주어 마셨다. 담양 대나무 술 맛이다.
“말로만 듣던 오랑케 민족 아름다운 묘족 아가씨
타향도 아닌 중국에서 손에 손잡고 춤을 추었네
문자도 없고 언어로 살아가네
징 꽹과리 북친다 우리 닮았구나 모습도 닮아
붉은 댕기 너울 너울 가는 길손 마음 설래 -송병완, 태가촌 식당에서 시 전문(2002.11.22 오후 6시 40분)
일행들은 음식점에서 노래와 춤을 구경하고 소주시 명양 방직읍 유한공사 천화공업구로 갔다. 장사하는 사람들 우르르 몰려와 바이올린 사라 보챈다. 한 개 만원 한 개 천 원 값이 갈수록 떨어진다. 돈 바꾸어줍니다 우리 돈 들고 만 원짜리로 바꿔라 보챈다. 뒤로하고 별 없는 강소성 소주에서 발 마사지를 받았다. 한방에 40여명이 들어 누어 아가씨들이 1시간 20분 동안 발 주무르고 비비고 두둘어 시원하였으나 아가씨 모습은 처량하게 보였다. 가이드 말대로 나는 3천원(모두)의 팁 주어 밝은 모습보아 마음이 편했다. 아직 농촌인 중국은 잠자고 있는 것 같았고 깨어나면 세계를 뒤흔드는 나라로 보였다. 악착 같이 돈 벌어야 산다며 일감 찾는 중국인이며 그런데 중국사람은 ‘꺼들거리면 같이 살자’ 가만 안둔다고 하며 ‘있어도 없는 척’한다고 한다.
“별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칠흑 같은 소주 땅에서 들어 누었네!
처량한 아가씨 물통 들고 와 구경하는 이 나그네
두드리고 비비어 발 마사지하며 까만 눈동자 굴리고 있구나!
그래도 플라타너스 가지에 홍등 걸렸있어 다행이도
-송병완, 별 없는 소주 땅에서 시 전문(2002.11.22 마사지 아가씨 뮤자진(劉家琴)보고)
강소성 소주는 큰 호수도 있고 물이 많은 고장으로 물고기가 많이 생산되며 날씬하고 미인의 고장이라 동방의 베니스라 한다 띵오와 왕서방 말만 듣고 중국 소주 금산로198호 가던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른 일행들은 새벽 3시까지 술 마셨다고 자랑하지만 나모르게 한 짓이라 알 수 없고 집사람과 첫날밤이라 한수 읊고 고국으로 편지를 썼다.
“당신과 나 타국에서 첫날밤 사랑하였어라
새롭게 태어나라 마지막 황혼의 순간에서 우리는 함께 하여라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 은하의 별 그리며
별 속에 들어가서 살리라 아름다운 모습으로“ -송병완, 중국 소주 가든에서 시 전문(2002.11.22)
중국의 첫밤을 보내면서(남천 송병완)
아름다운 소주 교통질서는 없어도 순리로 사는 고장이라 당신과 나의 새로운 추억 작은 거인 큰 대륙에 많은 인구 조선인에 바람 상혼의 미소 포크댄스 발 맛사지 중국의 밤 은 깊어만 간다 독립운동의 아픔을 간작 한 채
소주(蘇州) 한산사(寒山寺)관광
2002년11월 23일 아침 부페식사로 잘 먹고 소주 금남로에서 안평로 타고 1500년 역사 지닌 한산사로 출발하였다.
소주는 총면적은 8.488 ㎢에 평원이 4.654㎢이고, 인구는 571만 명에 시내 거주인구는 105만 명이다. 기온은 온난 습윤하며, 토질이 좋아 자원이 풍부하고 교통이 매우 발달되어 있으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 ‘상유천당(上有天堂),하유항소(下有蘇杭) ‘이 있을 정도로 항주와 함께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양자강 삼각주 평원에 있으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진 물의 도시, 정원과 물로 대변되는 중국 남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소주는 기원전 514년에 도시가 성립하여 현재까지 2,500년 역사를 가졌다. 서한 초기에는 동남부의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여 비단의 도시, 바다와 가까워 살기좋은곳, 정원의 도시로 자랑하고 있으며, 송 대에 이르러 비단의 생산지로 명성을 날렸다. 이때 소주에 세워진 탑들이 많아 지금도 송 대의 탑들이 많이 보전되어 있고 소주의 자랑인 정원도 이때 많이 만들어졌으며 명, 청대에 견직물 산업이 발달 부유한 상업도시로 그 명목을 유지되었다. 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그 중 소주의 정원이 가장 으뜸이다 그래서 소주 정원은200가구에 이르렀으나 지금 10군데 정도가 복원되어 외부에 개방되고 있으며 그 중 송 대의 창랑정, 원대의 사자림, 명대의 졸정원과 유원이 강남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정교하고 중국남방고전원림건축예술 정화라 특징이 있다. 소주는 2,500년전 오나라 수도이고 항주는 또한 2,200년전 진나라때 건설된 도시이다. 이 도시는 수나라대 대운하(大運河)가 건설되면서 중국동남부 지역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이며, 부(富)와, 부(富)를 제대로 달를 줄 아는 고장이라 한다. 온화한 자연환경, 그것을 바탕으로한 축적된 부(富), 그 부를 바탕으로 한 세련된 문화 뛰어난 학자와 문인을 배출하여 중국을 이끌어간 정신적인 시라 할수 있는 장계의 풍교야박이다. 특히 이시를 일본인들이 좋아한 시라 한다.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와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선도객선) “달은 지고 까마귀 울며 서리 하늘에 가득하는데 강가 단풍사이 고깃배의 불빛이 시름겨운 잠을 비치네 고소성 밖 한산사 한밤 종소리, 나그네 뱃전까지 들려오네.”
고소성은 춘추시대 오나라 수도이며 지금의 소주이고 한산사는 고소성 서쪽 십리에 있는 절로 원래 풍교사인데 당나라 시승(詩僧)인 한산자가 이곳에 살아 한산사라 불렀다. 시인 장계는 과거에 3번 낙방한 후 이곳에 잠시 들려 머물며 지은 시다. 장계가 노를 저어 마을로 들어가던 중 밤 중에 풍교에 배를 정박해 두고 있는데 그 때 마침 한산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 시를 지었다한다. 한산사절에 도착하니 잡상인 우르르 모여들어 손이 없는 장애인에게 돈을 주고 우측 한산별원(別院) 홀겨 보고 우선 한산사로 향했다. 시에 나온 강풍(江楓)다리 강촌교와 풍진교가 나란히 운하위에 건설되어 있고 다리옆에 도선이 그때나 지금이나 한가로히 잠들고 있었다. 한산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종소리 울리고 염불소리와 소원을 비는 중국인들로 향피워 코가 막힐정도로 진동하였다. 법당 부처님 향에 그을릴까 두려워 실크 옷을 입고 있었다. 강남 명촌 한산사에서 폼 잡고 한산사 경내 정원처럼 다듬어진 물위에 떠있는 절로 아름다운 시(詩)의 모습이라 돌아보았다. 여기 운하는 소주와 항주간 1,794㎞ 뱃고동 울리는 도선이 왕래하는 거대한 운하! 한산신성 종소리 듣고 홍 법당에 삼장법사 만나보고 수월도장 실크 옷입은 부처님 구경하고 운하위에선 법당 진명보탑(晋明寶塔)을 슬렁슬렁 돌아보며 찰칵찰칵 사진도 찍었다. 나한전 대웅보전 구경하며 아기단풍에 윙크하고 호두나무에 끄덕하면서 시 한수 읊고 오전 9시 45분 호구산으로 향했다.
“풍진교 올라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어라. 강촌교아래 잠든 객선(客船)아 잠이 들겠냐
때도 없이 울리는 종소리 염불소리 뱃고동소리에 호두 떨어진다.
비단옷 자랑마라 나한전서 불래 삼장법사 따라 갈래
아기 단풍아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라 아차하면 물속에 잠들라 -송병완, 풍교일화(楓橋逸話) 시 전문 (2002.11.23 오전 9시 한산사 돌아보고)
한산사는 중국어로 한샨쓰로 남조 양천감(梁天監)이 지은 사원으로 원래 묘보명탑원(妙普明塔院)이었으나 당나라 고승 한산자가 이곳에 머물며 한산사라 했는데 대웅보전 높이가 12.5m이며 당나라 광서 32년 일본인이 청동을 바쳐 유두 종을 모방하여 만든 유명한 종이 있어 일본인들이 장계시를 좋아하는데 연유하며, 현재 일부 건물이 파괴되어 신혜혁명이 일어난 1911년 다시 복원 한 것이다.
속담의 호구산에 갔더니
가이드 조홍화는 소주 호구산은 해발 34m로 높은 산이라 한바탕 웃고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속담의 현장(이선정 사람이 말함)이다. …. 호구(虎丘)는 중국어로 후치우라하며 소주의 상징으로 북서쪽으로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踊山)으로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한다. 이곳에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왕 함려가 연못 아래 무덤에 명검 3천자루와 함께 묻었다고 하여 일본에서 발굴비용을 줄테니 제안에 중국에서는 바로 위에 동양의 피사탑이라 하는 호구사탑이 있어 명검말고도 탑 구경하는 관광객이 많은데 발굴해야? 그대로 두어 보전하고 있다한다. 왜냐면 발굴하면 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 통일한 진시황은 자신이 직접보는 앞에서 도굴하는데 갑자기 호랑이 한마리가 튀쳐나와 도굴을 중지하였다. 그후 이곳에 물이차서 연못이 되었고 검지라 불렀다한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소주에 와서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말을 했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40m 높이의 정상에 호구탑이 있는데 높이가 47.5m로 수나라 때 지어진 건축물로 몇차래 보수공사에도 북서쪽으로 약간 기우러져 내부에 출입금지를 하고있다. 오월동주의 속담대하여 오나라와 월나라가 사이가 나쁘지만 상황이 다를 때 서로 의지한 사이라 한다. 한때 월나라 월광구천이 힘센 오나라가 쳐들어온다고 하자 사형언도 받은 3천죄수들에게 죄명을 씻어준다 하는 조건으로 전선 선두에서 자진하도록 하여 죄수들은 자신들의 불명예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전선 선두의 일열이 적들이 보는 앞에서 활복자진 하고 쓰러지자 다음 줄도 자진하여 계속 지켜본 오나라 군사들이 의아할 때 오나라 군사 후방을 쳐 승리한 월나라 그래서 이를 오월동주라 일부 사연이라 말한다. 호구 사람은 잘난 티를 내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으며 소주 호구산 입구에 만발한 국화향기 따라 계단 계단 오르며 시검석(바위에 검을 시험)을 구경하였다. 잠든 자미에 피사 호구탑을 촬영하였다.
천인석 암반에서 천명의 일꾼들이 명검을 묻고 축하연에서 축하주 마시고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전설의 암반을 구경하였다. 그 때 흘인 피의 자국을 사실인지 아닌지 보고 필체의 대가 왕희지 검지 글씨 구경하고 쌍정교에서 검지를 보고올라 호구탑을 돌았다. 소주 운암석탑이라 하며 천년 고탑 7층 팔각탑이다. 소무당으로 나가면서 동방불패 중국영화에 나온 장면 처럼 보였다. 일행은 오전 11시 소주 실크공장으로 가서 패션쇼를 구경하고 실크명주 제조 과정을 구경하였다. 오고 가는 관광객은 한국인과 외국인 약간이다. ‘남자라는 이유로’ 태프 노래들었다.
이곳에서는 뽕나무를 1년에 6번 따 누애를 기른다고 한다. 누애의 신비한 모습도 구경하고 이불솜 제조 과정도 보았다. 오후 1시 49분 고소 반점에서 점심을 먹으며 시 한수 썼다.
“뿌연 안개 가르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사이로 낙엽을 타고 달린다.
당신과 나 목도리 감고 힘찬 페달 밟아 달린다
아름다운 삶 위해 당신 싣고 사랑 싣고 달린다.
하얀 구름 나르는 지평선으로 희망찬 내일 위하여
아름다운 당신 위해 사랑해요 당신을!“ - 송병완, 사랑실은 자전거 시 전문(2002.11.23 플라타너스 소주에서)
졸정원 (拙政園)에서
중국 4대 정원 중 하나인 쭈오쩡위엔에갔다 소주 동북쪽에 있고 명나라 정덕(鄭德) 4년(1509년)에 지어졌다.
중국 4대 정원인 유원(留園), 이화원 승덕이궁과 함께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아름다운 경치로 홍루몽 대관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졸정원은 명나라의 왕헌신이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며 화원은 동 중 서 세부분으로 나뉘며, 명나라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창살 무늬가 모두 다를 정도로 섬세하며, 건물은 용의 형상을 뜨게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였다. "졸자(拙者)가 정치를 한다"
졸정원 총면적은 5만㎡로 그 중 5분의 3정도가 연못이 차지한다. 연못으로 한 정자나 복도, 산을 본떠 만든 석가산이 만들어져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견산루 파산랑 이색적인 건물로 무아지경이다. 주인이 18번 바뀌고 19번째 국가소유인 졸정원은 졸부시인이 지었다고 하며 멋있는 정원으로 주인이 죽는다는 전설이다. 운하를 이용한 문화 소주 정원 문화이다. 어느 중국어인 사인 받으며 코리아 코리아에 고개 살래살래 저어 대한민국 부르니 따라서 대한민국 고개 끄덕끄덕 올림픽 성과 만점이라 졸정원 구경하고 항주로 달렸다.
“구름 밟고 오른 신선아 비파소리 들었느냐
기구한 돌 울음소리더냐 대나무숲 울더냐!
머리 헤치고 달려온다. 늘어진 수양버들 춤추며 온다.
영산홍에 미친 졸부 오고 갈길 헤매는구나.
실낱같은 인생아 정신 차려라
소주(蘇州) 미색 좋아하다 언제 항주갈래“ -송병완, 졸정원에서 시 전문(2002.11.23 오후 소주에서 항주로가면서)
항주로 가면서
항주는 중국 절강성의 성도 경치가 수려하며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13세기무렵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항주에 들렸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전해진다. 항주는 총면적이 16㎢이고 인구는 608만여명 이라 한다. 아열대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이 분명하고, 항주는 2,100년 중국의 여섯 개의 역사적인 수도중 한곳이며 (북경 남경 하남성등)항주와 북경간 1,794㎞ 대운하가 건설되었으며, 9세기 부터 237년 동안 14명의 황제가 항주를 수도로 선택하였다한다. 항주는 절약정신이 강한 부자고을이고 잘사는 동네이다. 소동파시인 그리고 백낙천 시인이 인간 천당 항주에서 시를 읊었다. 항주는 용진차로 유명하고 민물 진주양식으로 유명하다. 항주는 옛 월나라 수도로 오월동주 와신상담 속담으로 근원이 되고 있다. 월나라에는 미인이 많아 오나라와 싸울때 미인계를 많이 썼다한다. 일행은 4시간 반 을 달려 오후 9시 항주 食爲天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 하고 사회 자청 노래자랑 한 후 황룡 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날이 새지 않는 중국 줄지어간 자전거 행열
고개숙인 노동자들 깜박거리는 신호등 은하수에 기대어 사는 15억 인구
하늘은 회색빛이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거리를 밝힌다
운하와 같이가는 도로망 모래 싣고 나무 싣고 가는 도선
21세기 사는 사람 그래도 손에 휴대폰들고 철없는 아이들
한 아이 낳기 운동 왕자 공주 되어
별보고 산다 대한민국 가수에 반해 -송병완, 중국 항주 황룡반점(中國抗州黃龍飯店)에서 시 전문 (2002.11.23 항주 드라곤 호텔에서)
모닝콜에 기상하여 호텔마당에 피어난 사루비아 주목나무 구경하고 자전거 행열 바라보았다.
신령이 숨어있는 영취산 가서
오전 08시 37분 계수나무가 있는 영취산 영언사에 도착하여 산전체가 338 석굴조각 불상이 영은사(靈隱寺)이다. 항주 서북쪽에 위치한 비래봉 마주하고 있는 영은사! 동진시대 승려 해리에의해 지어졌으며 신종 10대 사찰중하나이다. 비래봉 입구에 써있는 '天外天(천외천)' 글자,해리스님 부도탑 이공지탑(理公之塔)구경하고 19번 훼철되고 19번 복설한 영은사로 들어갔다. 천왕전에는 청나라 강희 황제가 남쪽 지방 순찰하던중 항주에 들려 북고봉에 올라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덮인곳에 영은사가 있는것을 보고 "云林禪寺(운림탄사)"라는 편액 걸었다한다.
명나라 주원장의 포대(자루)미륵불 둘러보고 대웅보전옆 9층탑에서 향들고 소원빌어 목조로된 높이 19.6m석가모니 부처님상이 1952년 무너지고 1954년 재건하였다한다. 20천왕 12원각 150개 진흙불상은 신라 김교각 지장보살이 719년에 부처님위에 배치하였다. 월강보조, 월강보살 12지축, 부처옥불 구경하고 찰칵찰칵 사진찍고 나왔다.
영은사 입구 항주 천당이라는 동남제일산 영취산에 냉천에 냉천정등 두 개정자가 아름다운 모습이다. 매년 10월10일 쌍십절에는 하루 30만명이 관광한다고 한다. 대충 대충 구경하고 한 수 읊고 차에 올라 서호로 갔다.
“달나라 계수나무 영은산에 심어놓고
신라 지장보살 불러 천외천(天外天)하늘에 낙엽그리어 동남 제일산 자랑하구나
338 포대 달마 화상 영취산에 숨겨놓고
혜리스님 부도로 갔어 영천정자 선비야
영은사 부처님 언제 알현하고 갈거나
- 송병완, 영은산 영천에서 시 전문(2002.11.24 오전10시15분 영은사 둘러보고)
유명한 미인을 기념한 서호에 가서
서호는 항주 서쪽에 있다하여 서호라 불으며 인공호수다. 총면적 60,8㎢이고 그 중 수역면적은 5,66㎢로 호수에는 소영주, 호심정, 완공돈 3개의 섬이 있다. 서호는 3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안개가 끼었을 때나 날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서호는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 부르며 이는 월나라 구천왕이 오나라 부차왕에게 바쳤던 미인으로 결국 월나라 구천왕 계략대로 오나라 부천왕이 서시의 미모에 빠져 나라 일 보지않아 오나라가 멸망하였다한다. 중국의 역사상 양귀비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이라 한다. 오전 10시 20분 수양버들이 기다리는 서호 풍우정에 도착하여 유람선에 올라 사진을 찰칵 찰칵 찍고 나서 시한 수 읊었더니 시 내용에 물결이지 파도가 말이 되냐고 폭소하였다.
“오고 가는 유람선마다 안개 뿌리고
바람 타고 가는 님 그리워하네.
천리 타향 돌아온 당신 수양버들 춤추며 반기네
하얀 파도 칠때 마다 객고를 풀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고산(孤山)은 간곳없어
-송병완, 항주 서호에서(2002.11.24 오전 10시30분 서호 유람선에서)
천호주보(天湖珠寶) 돌아보고 용정차 마시면서
4계절 아름다운 서호!
늘어진 수양버들과 매화꽃이 활짝 피어 호수에 어울려 있고 조각배 타고 낚시하는 강태공! 연꽃 피는 푸른 호수에 물든 가을, 시들어져 서 있는 연꽃! 쌍무지개 하늘로 뻗어 정자마다 시 읊은 소리 낭랑하게 들려오듯 항주 서호 아름다운 모습이다. 3면이 산인데 고산(孤山)은 보이지 않고 달만 기다린다. 시인 소동파는 이렇게 표현했다.
“서호에서 우는 새 아름다운 서호모습 일까 여자는 상을 찌푸려야 예쁘다한다”
일행은 서시의 고장에서 차창으로 녹차밭 구경하며 천호주보 진주 가공공장에 가서 예쁜 서호 진주를 구경하였다. 그리고 노진의 고향 소 홍주라 부른 절강대학교 부근에 있는 백합화 반점으로 가서 점심 먹었다. 후식으로 용정차 공장 구경하며 차 맛 음미하면서 대한민국 전라도 보성녹차이야기를 들었다.
육화탑돌이 하고서
오후 항주의 마지막 관광지인 육화탑을 구경하였다.
전단강은 중국에서 다섯번째 큰강으로 북송 개보 3년 (970년)에 지어진 건축물로 전단강 북쪽 연안에 위치하며 외관은 13층이며 내부는 7층으로 나선형 계단 이용하여 올라 갈 수있게 되어 있다. 전체높이 59.89m 중국목조건축 분야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진강이란 아이가 전단강에 돌던지는 전설이 묻은 육화탑옆 수강정(秀江亭)에 국화가 만발하고 "秀千島湖(수천도호) 六和泉池(육화천지)" 글씨가 다가섰고 내려서며 계단 세어보니 100개였다.
돌아가는 길에 상하이 추억
오후 4시 43분 고속도로 타고 통일관에서 중국에서 처음으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써커스 구경하고 외탄을 관광하였다.
“잠든 용 찾아 중국에 갔네 선녀들 용타고 내려와 춤추는 넷 선녀 아름다워라
새로운 세상으로 타고 들어온 용봉반 완도반 친구들아 접시와 같은 인생 돌고 돌아 아름다운 꽃이되어 빙글빙글
써커스 한마당 공놀이 원통타는 인생의 길 장대오른 원숭이 세월
원탁의 스케이팅 춤 묘기 여섯 아가씨 줄놀이에 세월은 덧없이 지나가
비파타는 아가씨 하늘 나르네 칼날에 누운 선녀 마술같은 세상
시계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선녀되어 춤추며 다가오네
자전거 타는 아가씨들아 덧없이 가는 세월 붙잡지 말라
가는 세월 못 막는 우리 질주하는 오도바이 우리의 삶
하늘 나르려는 중국인의 꿈 우리는 보았네 꿈속에 헤메는 잠든 용 깨어나면
여의주 물고 하늘 나른다 중국인들!
-송병완, 중국 써커스 인생 보면서 시 전문(2002.11.24 밤 9시)
사진 촬영하랴 구경하랴 시 쓰랴 그만 카메라 놓고 나왔으나 가이드에게 연락되어 잃어버린 것 찾게 되었다. 밤이 없는 야경이라는 외탄으로 갔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상하이 밤하늘에 수 놓아진 건축물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하였다. 외탄은 상해 상징이며 현대 역사 축도이다. 다양한 국가 건축양식이 모여서 "세계 건축 박물관"이다. 영국 여왕 왕관형으로 화려하고 동방명주탑 불빛이 외탄을 더욱 밝게 하여 황포강 운항하는 여객선 배경에 연인과 함께 좋은 추억이 될겄이다. 우리는 기념사진 찍고 마지막 중국의 밤으로 갔다. 중국 상해 중산서로888호 은하빈관(銀河賓館,Galaxy Hotel)에서 여장 풀고 원우의 모친상 아픔 함께 하고 아침은 연예청 식당에서 식사하였다.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황포강 주변을 구경했다. 어제밤 동방명주도 새롭게 구경하면서 말숙이 정리된 상해모습도 보았다. 상하이 빌딩은 모두 높고 기발한 디자인이며 젊은이들에게 개성적인 패션으로 여기가 과연 중국일까 놀랐다.
상하이는 공업도시며 항구도시이고 북경 천지와 함께 중국 3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이다. 경재 무역 기술 문화 중심도시로 총면적 6,184㎢ 인구 1200만명이다. 원래 양자강 입구 어촌에 불과한 것이 아편 전쟁 후 영국에 의거 개항되면서 국제적인 항구도시로 변모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열강에 계속 조치 승계 과학 무역 산업 기술의 중심지로 발달되어 왔다. 정오 12시 45분 칼 874호기로 기내식으로 점심먹고 서해의 새털과 같은 황해를 건너 광주 공항에 돌아왔다. 돌아와 오후 6시 30분 한국무역협회 /동원그룹 김재철회장"동북아 중심지 시대를 맞는 우리의 과제" 전남 대학교 용봉포럼에 참석하여 강연듣고 중국여행 갈무리하다.end, |
첫댓글 대단한 중국 기행문입니다.역사에 남을 명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