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이 지용과 만나게 된 것은 승현이 다섯 번째의 생일을 맞게 된 날이었다. 안녕, 그렇게 말하며 저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두 살 위의 형이 그렇게 빛나고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평소 주변에서 활기차고 사교적이란 말을 듣던 승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멋진 형 앞에서 수줍고 수줍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빠의 다리 뒤에 살짝 숨었더란다. 승현과 악수하기 위해 내밀었던 손이 허공에 붕 떴음에도, 지용은 별로 당황해하지 않고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는 새로운 동생에게 더욱 다정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7살 형아들도 누나들도 저렇게 어른스러운 사람은 없었는데. 보면 볼수록 지용은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느껴져서, 승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울상을 지었다.
“승현아. 형이 악수하자고 했는데, 악수 안 할 거야?”
“몰라아.”
“이승현.”
“하하, 내버려 두세요. 도련님이 수줍음이 많네요.”
“아, 권 대표님.”
승현이 아버지에게 한 소리를 듣게 될 무렵에, 지용의 아버지가 지용의 뒤로 다가오며 승현과 눈을 마주치고는 살짝 웃어주었다. 누가 한 핏줄 아니랄까봐, 눈매며 얼굴형이 지용과 매우 닮아 있었다. 그 때문인지 아까의 지용이 떠올라, 승현은 몸을 배배 꼬며 입술을 비죽였다. 제 짝꿍인 서우가 알면 깔깔 웃으며 손가락질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고 기집애는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기를 잘 한다. 제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금세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너 그것도 못하니? 어쩌구 하며 마구 웃어대기 때문이었다. 승현은 서우가 정말 싫었지만, 아버지는 승현이 서우와 잘 지내기를 바랐다. 그 집안과 잘 통해두면 나쁠 게 없단다. 그렇게 말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하지만 아직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승현은 그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하나 확실한 건, 지용은 서우처럼 그렇게 밉살맞게 굴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 제가 무슨 실수를 하거나 바보 같은 짓을 하더라도, 지용은 아까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겠지. 아아, 정말 멋진 형이었다.
“사장님.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그건 제가 할 말이죠. 권 대표님, 믿고 있습니다.”
“네에, 네. 이번에는 조금 더 사업을 확장해 볼 생각입니다.”
“아무렴요. -그건 그렇고, 아드님이 참 잘생기셨네요.”
“하하하. 이 녀석, 이래봬도 저희 소속사 연습생으로 올라가 있답니다.”
“아니, 지용이 아직 7살 아닙니까?”
“그런데 능력이 워낙 좋아서 말이죠. 아직 실력이 부족하니까 아역 단역 배우로만 활동 중입니다.”
권 대표의 큰 손이 지용의 머리통을 조금은 거칠게 쓰다듬었다. 아직 여린 목이 거친 쓰다듬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그러나 그게 싫지는 않은 듯, 지용은 슬쩍 권 대표에게 눈길을 던졌다가 그대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승현처럼 냅다 아버지 다리 뒤로 숨지는 않았지만, 신발 끝을 꼼지락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쑥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승현은 아버지의 다리 뒤에서 그 모든 걸 눈에 새겼다. 지용의 오른쪽으로 말린 가마, 동그란 코 끝, 붉게 물든 귀-. 저 형, 멋있다 했더니 연예인이었구나. 아직 어린 승현의 머릿속에서 연습생과 연예인의 구분은 어려웠다. 그래도 텔레비전에 출연한 사람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승현의 말간 두 눈동자에 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권 대표의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가 승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 녀석, 제 아들이지만 큰 별이 될 겁니다. 장담합니다.”
아버지의 인정이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여전히 수줍어하는 상태였지만,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가 지용의 앳되고 단정한 얼굴에 슬며시 퍼져나갔다. 그 한 순간의 얼굴이 짜릿한 감각이 되어 승현의 뇌리에 콱-하고 박혀들었다. 아, 역시 자신은 지용과 친해지고 싶었다.
이승현, 나이 5살에 권지용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저희 집안이 하는 일에 대해 빠삭하게 된다. 어쩔 수 없었다. 그 일을 모조리 자신이 이어야 했으니. 그건 겨우 15살 먹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제가 지금 나이에서 10년을 더 먹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에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고, 그 운명을 뒤트는 것은 목숨을 버리더라도 힘들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승현은 목숨을 버릴 생각도, 운명을 뒤틀 생각도 없었다. 그저 순순히 제 앞에 놓인 것을 붙잡을 뿐이었다. 싫든 좋든? 그런 것을 선택할 자유조차, 승현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승현의 집은 이전부터 뒷세계의 그림자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버지의 대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그리 오래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된 이들보다 더욱 크고 확실하게 권력을 드리우고 있었다. 승현은 어릴 적 제 생일파티에 와주었던 사람 좋은 삼촌 고모들이 사실은 아버지의 고객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소름이 끼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고운 말만 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조폭과의 연을 두텁게 하려고 왔던 거라니. -심지어 그 지용의 아버지조차도. 지용과 닮은 얼굴로 난감하게 웃는 권 대표의 얼굴을 떠올리며, 승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안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그걸 떠올리며, 승현은 샤프펜을 고쳐잡으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젯밤 지용이 저에게 걸었던 전화 내용이 떠오른 탓이었다. 5살 때 만났던 그는 그렇게 어른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난 그의 모습은 오히려 순수하고 어려보이기 그지없었다. 어젯밤, 평소에도 독특하게 날아다니는 그의 목소리가 잔뜩 신이 나선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것에 오히려 자신이 당황했더랬지. 도대체 그렇게 좋을 건 뭔지. 그렇게 생각하며 승현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옆에서 승현을 가르치던 과외 선생님이 당황스러워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태도가 좋지 않으면 자연스레 아버지에게 말이 흘러들어간다. 그것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도련님.”
“아, 죄송해요. 저 다 풀어서 끝난 줄 알았어요.”
“어머나. 괜찮아요.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저, 선생님. 오늘 저 이거 다 맞으면 빨리 끝내주시면 안돼요? 저 기다리고 있는 연락이 있어서.”
축 쳐진 눈초리를 더욱 아래로 늘어뜨리며 올려다보는 것에, 과외 선생님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외 선생님의 허가를 받아낸 승현이 세상 더 할 나위 없는 모범생처럼 무릎을 모으고 가지런히 앉자, 선생님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승현의 문제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현도 선생님도 알고 있었다. 이 채점은 말 그대로 겉치레뿐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승현은 과외를 하면서 어떤 문제도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크게 인사한 승현이 과외 선생님이 나가기 무섭게 문을 닫고는 그대로 침대로 쓰러지며 핸드폰을 켰다. 번쩍, 빛이 들어오는 액정 위로 노란 네모 칸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지용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활짝 웃음지은 승현이 몸을 뒤집어 엎드리며 그대로 핸드폰의 패턴을 해제하고는 지용의 연락을 확인했다.
[뭐해?]
단순한 한 마디였는데도, 지용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퍼지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과외, 중이었어. 스마트폰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더듬더듬 움직이는 엄지손가락이 기특하게도 오타 하나 없이 무사히 문장을 만들어 송신한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떠 있던 1이 없어지더니, 바로 지용의 답변이 날아왔다.
[고생하네]
[형이야말로. 오늘 어떻게 됐어?]
[잘 안 됐지 뭐]
[왜? 왜 안 돼? 형 데뷔 못 시켜준대?]
[아니...아무래도 내가 안내켜서]
[뭐가?]
[그래도 우리 아빠가 소속사 사장님인데, 아들인 내가 거기 박차고 나와 버리면 말이 되겠냐. 데뷔는 아빠 소속사에서 하는 게 도리겠지]
꽤 긴 문장으로 돌아온 답변을 가만히 읽던 승현이 차오르는 답답함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마음인지는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버젓이 이름 있는 소속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아들이 다른 곳에서 냅다 데뷔해버리면 권 대표의 소속사 명예가 추락하는 일이 되고 말테니까. 심지어 그 아들이 외모도 능력도 잠재된 끼도 탑클래스라면 더더욱. 지용은 권 대표의 말대로 분명히 될 사람이었고, 그것은 승현도 일찌감치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승현은 더더욱 지용이 빠르게 데뷔했으면 했다. 지용이 제 아버지의 소속사 연습생이 된지 올해로 10년째였다. 도대체 언제 정식 데뷔를 시켜줄 건지 알 수 없었다. 지용이 제 아버지에게 슬쩍 말을 꺼내보아도, 때를 기다리란 말만 수십 번을 들었다.
[잘 할 수 있을거야]
[그래야지]
[진짜야! 형은 최곤데!]
[ㅋㅋㅋㅋ우리 승현이 말 들으니까 좋네]
우리 승현이. 지용은 가끔 승현을 그렇게 지칭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벅차오르는 승현을 모르는 듯 했지만. 갑자기 들어온 타격에 승현이 저도 모르게 눈을 깜빡거리며 지용의 굴을 몇 번 읽어보았다. 우리 승현이, 우리 승현이. 아, 정말 좋았다. 제가 동경하는 사람에게 받는 애정이라니, 최고의 행복이었다. 뭐라고 답변해야 할까, 하다가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아 어색하게 지용을 따라 키읔만 여러 번 적어 보냈다.
“아, 빨리 내가 일을 물려받아야 형 데뷔할 때 팍팍 밀어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린 목소리가 빈 공간에 울려 퍼지며 어쩐지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승현이 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을 거리낌 없이 물려받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슬쩍 내비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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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뇽님과 릴레이소설 시작합니다~~~~!!!ㅎㅎ
말머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파트를 쓴 사람은 말머리로 확인 가능하십니다!!
오늘은 저의 턴!!!
첫댓글 미뇽님과 반님의 릴레이소설이라니ㅠㅠㅠㅠ제가 좋아하는 두분이서 한다는 말에 벌써 설레네요ㅎㅎㅎ다음편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당><
제가 너무 좋아하는 두 분의 릴레이..! 진짜 너무 기대됩니다 담 편이 궁금해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