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베드로의 논쟁(렘브란트)
그리고 삼 년 후에 나는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 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읍니다. - 갈라디아서 1장 18절
렘브란트는 ‘프로테스탄트의 화가’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대단히 불운한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깊은 영성에 도달한 듯 보인다. 그에게는 성경의 인물이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하나의 설교라고 부른다. 그만큼 그의 그림에는 깊은 묵상과 성서에 대한 통찰이 독보적인 빛의 처리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전형적인 베드로와 바울의 모습을 그린 ‘바울과 베드로의 논쟁’(혹은 ‘두 학자의 논쟁’, 1628,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이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근거 구절로 갈라디아서 1장 18절이 제시되는데, 그러므로 이 그림은 그 구절에 대한 렘브란트의 주석이 되는 셈이다.
그림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바울과 베드로가 ‘논쟁’을 했다는 것이다. 그림에서 바울은 약간 높은 의자에 앉아 권위 있는 늙은 선생처럼(그러나 바울이 당시 이렇게 늙었을 리 없다) 손가락으로 성서의 한 부분을 가리킨다. 반면 베드로는 측면 뒷 모습을 보인 채 바울의 주장을 듣는다. 일견 베드로가 수세인 듯 하나 베드로는 지금 펼친 본문과 다른 두 곳에 손가락을 끼워놓고(물론 베드로와 바울 당시 렘브란트가 그려 넣은 오늘날과 유사한 ‘책’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울의 말이 끝나면 이것들을 인용하며 ‘반박’할 준비를 마친 듯 하다. 하여 비록 당대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바울이지만 어부 출신의 베드로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기가 녹록치 않다는 점이 암시된다.
바울과 베드로의 만남에 대해서는 신약학자들 사이에 떠도는 농담 같은 말이 있다. “그들이 만나서 날씨 얘기를 했을 리는 없다.” 회심 이후 독자적인 사역을 하던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수제자격인 베드로를 만나 그가 직접 뵙지 못한 예수의 행적에 대해 물었을 것이다. 이 과정 자체가 ‘논쟁’인지, 아니면 이 과정 속에 ‘논쟁’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충분하여 굳이 사도들을 만날 필요가 없었다는 점(1.17)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름 동안이나 베드로와 함께 지냈다는 사실을 병기한다. 이를 통해 사도들로부터의 독립성과 연관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성경을 펴 놓고 논쟁하는 바울과 베드로, 이 모습은 성경 연구의 중요성을 이상화한다. 가톨릭을 상징하는 베드로도 프로테스탄트의 대표자격인 바울도 모두 성경을 놓고 서로 토론하며 주님의 뜻을 캐물어야 한다. 렘브란트는 그 특유의 빛의 초점을 베드로나 바울에게 두지 않고 그들의 손이 동시에 닿아 있는 성경에 둠으로써 이 두 교파가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는 듯 하다.
현대 신약학의 입장에서 보면 렘브란트의 그림은 고고학적 측면(성경의 형태)이나 바울의 나이 추정에서는 어긋남이 있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와 바울이 만난 그 사건의 역사적 정황과 그 의미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첫째, 복음에 관해 아직 완전한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이론(異論)을 확인하는 주요한 지도자들과 초대 교회‘들’의 신앙적 다양성이다. 그들은 렘브란트의 그림에서처럼 ‘논쟁’하였고, 심한 경우 서로 다투고 갈라서기도 하였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나 주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고 생각하고자 노력하였다. 렘브란트는 바울이나 베드로가 아니라 그들의 손이 함께 닿은 성서에 빛을 비춘다. 그리하여 하루 저녁 사이에 시들 한낱 풀의 꽃 같은 인생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히 서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삶의 주제이자 궁극적 관심이었음을 형상화하였다.
그리고 삼 년 후에 나는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 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읍니다. - 갈라디아서 1장 18절
렘브란트는 ‘프로테스탄트의 화가’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대단히 불운한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깊은 영성에 도달한 듯 보인다. 그에게는 성경의 인물이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하나의 설교라고 부른다. 그만큼 그의 그림에는 깊은 묵상과 성서에 대한 통찰이 독보적인 빛의 처리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전형적인 베드로와 바울의 모습을 그린 ‘바울과 베드로의 논쟁’(혹은 ‘두 학자의 논쟁’, 1628,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이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근거 구절로 갈라디아서 1장 18절이 제시되는데, 그러므로 이 그림은 그 구절에 대한 렘브란트의 주석이 되는 셈이다.
그림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바울과 베드로가 ‘논쟁’을 했다는 것이다. 그림에서 바울은 약간 높은 의자에 앉아 권위 있는 늙은 선생처럼(그러나 바울이 당시 이렇게 늙었을 리 없다) 손가락으로 성서의 한 부분을 가리킨다. 반면 베드로는 측면 뒷 모습을 보인 채 바울의 주장을 듣는다. 일견 베드로가 수세인 듯 하나 베드로는 지금 펼친 본문과 다른 두 곳에 손가락을 끼워놓고(물론 베드로와 바울 당시 렘브란트가 그려 넣은 오늘날과 유사한 ‘책’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울의 말이 끝나면 이것들을 인용하며 ‘반박’할 준비를 마친 듯 하다. 하여 비록 당대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바울이지만 어부 출신의 베드로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기가 녹록치 않다는 점이 암시된다.
바울과 베드로의 만남에 대해서는 신약학자들 사이에 떠도는 농담 같은 말이 있다. “그들이 만나서 날씨 얘기를 했을 리는 없다.” 회심 이후 독자적인 사역을 하던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수제자격인 베드로를 만나 그가 직접 뵙지 못한 예수의 행적에 대해 물었을 것이다. 이 과정 자체가 ‘논쟁’인지, 아니면 이 과정 속에 ‘논쟁’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충분하여 굳이 사도들을 만날 필요가 없었다는 점(1.17)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름 동안이나 베드로와 함께 지냈다는 사실을 병기한다. 이를 통해 사도들로부터의 독립성과 연관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성경을 펴 놓고 논쟁하는 바울과 베드로, 이 모습은 성경 연구의 중요성을 이상화한다. 가톨릭을 상징하는 베드로도 프로테스탄트의 대표자격인 바울도 모두 성경을 놓고 서로 토론하며 주님의 뜻을 캐물어야 한다. 렘브란트는 그 특유의 빛의 초점을 베드로나 바울에게 두지 않고 그들의 손이 동시에 닿아 있는 성경에 둠으로써 이 두 교파가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는 듯 하다.
현대 신약학의 입장에서 보면 렘브란트의 그림은 고고학적 측면(성경의 형태)이나 바울의 나이 추정에서는 어긋남이 있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와 바울이 만난 그 사건의 역사적 정황과 그 의미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첫째, 복음에 관해 아직 완전한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이론(異論)을 확인하는 주요한 지도자들과 초대 교회‘들’의 신앙적 다양성이다. 그들은 렘브란트의 그림에서처럼 ‘논쟁’하였고, 심한 경우 서로 다투고 갈라서기도 하였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나 주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고 생각하고자 노력하였다. 렘브란트는 바울이나 베드로가 아니라 그들의 손이 함께 닿은 성서에 빛을 비춘다. 그리하여 하루 저녁 사이에 시들 한낱 풀의 꽃 같은 인생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히 서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삶의 주제이자 궁극적 관심이었음을 형상화하였다.
류호성 교수(한국성서대)
출처 : 류호성의 마라톤 신학 (www.marathontheolog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