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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힘, 지역의 문학 2
― 대전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김 화 선**
1. 서론
80년대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지역의 구체적인 현실에 바탕을 둔 문학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90년대 지방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이래 지역문학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지역문학 연구에 대한 당위성과는 별도로 실제 지역문학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앙문학에 밀려 일종의 변두리 문학으로 치부되어 왔다. 그 저간에는 서울(중앙)과 지역(지방)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시각과 각 지역의 빈약한 문화적 토대가 지역문학 연구를 활성화하는데 장애로 작용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세계주의(globalism)와 지역주의(localism)가 결합된 ‘글로컬리즘(glocalism)’의 시각이 부각되면서 지역을 이해하는 관점 역시 재구성되고 있다. 전지구적 보편주의와 지역중심주의의 한계를 넘어 지역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려는 시도들이 지역문학 장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기실 지역의 문제가 더 이상 지역만의 문제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한미 에프티에이(FTA) 문제를 비롯하여 거대 자본이 지역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현실에서 지역의 문제는 곧 우리 모두―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의 문제인 동시에 세계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렇듯 지역문학을 바라보는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고 각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연구 성과들이 축적되면서 지역문학 장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지역 구심주의(local centripetalism) 의식을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부산.경남 지역문학을 연구한 박태일의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청동거울, 2004),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1』(청동거울, 2004)나 지역문학을 ‘주변부적 시각’에서 주목한 구모룡의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신생, 2005), 지역문학사 서술을 위한 서술방법론을 본격으로 모색한 양영길의 『지역문학과 문학사 인식』(국학자료원, 2006) 등은 지역문학 장이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 논의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역문학의 범주를 형식의 차원(해당 작가가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는 실존적 조건), 내용의 차원(‘지역성’을 담보하는 문학의 내적 기제―주제.표현방식 등), 실정의 차원(상징권력, 인맥, 명망성, 발표지면 등)의 세 가지 범주로 제시한 남기택의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작가마당》 8호, 2005년)은 지역문학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본고는 대전충남 지역문학의 정체성과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1) 대전과 충남 지역문학에 관한 논의는 주로 시문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으며, 소설의 경우 『대전문학사』(박명용 편, 한국예총대전광역시지회, 2000)에서 소설문학사와 지역 소설가의 범위와 관련되어서만 논의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본고는 대전충남 지역문학 연구가 깊이 있게 진전되기 위해서는 실증적 차원에서의 연구가 꼼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대전충남작가회의 기관지인 《작가마당》에 수록된 소설을 중심으로 대전충남 지역문학의 정체성과 특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지역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전제되는 것은 지역성의 함의라 할 수 있는데,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대전충남의 경우, 지역적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타 지역에 비해 지역색이 다소 약하며 문화적으로 소외된 대전충남 지역은 양반과 선비 정신의 충청도―대전을 포함하여―와 과학의 도시 대전이라는 담론이 지역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이 진정한 지역성을 담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역성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실제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연관되는 물음이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사회.존재론적인 물음이어야 할 것이다.2) 그러므로 지역문학은 “모든 삶의 터전을 지역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이 작품 속에서 형상화 된 것”3)이어야 하며, 단순히 작가의 출신 지역이나 생활 반경 등 물리적으로 추정 가능한 지역주의를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경험 가능한 삶터를 인식의 중심에4) 세워야 할 것이다. 요컨대 대전과 충남지역에 뿌리를 두고 그 곳을 삶의 현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문학이야말로 진정한 지역문학이라 할 수 있다.
본고의 분석 대상인 《작가마당》은 2007년 12월,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변경한 문인단체의 대전충남지회, 즉 대전충남작가회의에서 발간한 문예지이다.5) 1999년 봄 창간호를 시작으로 2009년 상반기 제 14호에 이르기까지 《작가마당》은 대전과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 문인들의 문학적 욕구를 꾸준히 담아내는 공간으로 기여해왔다.6) 특히 2007년 들어 연간지에서 반년간지로 체제가 바뀌면서 《작가마당》은 문학의 새 영토를 찾고 있는 지역 작가들의 고민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작가마당》이 보여준 행보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앙과 지방(지역)의 이분법적 구도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난 지역의 문학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창간호부터 14호까지 《작가마당》에 발표된 소설 작품의 목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9년 봄 창간호에는 서순희의 「바다에 뜬 얼굴」, 조재도의 「돼지꼬리」, 김종광의 「전당포를 찾아서」가 발표되었고, 1999년 겨울 제2호에는 채진홍의 「인도에서 온 여자」, 한윤희의 「멀미」, 김종광의 「전설, 기우」가 수록되었다. 그리고 2000년 겨울 제3호에 채진홍의 「황토 저고리」, 오내영의 「청라 언덕 우에 꽃 필 적에」, 신인작품으로 유은선의 「여관에서 TV를 본다」와 박성실의 「존마이 김경일 傳」, 심정리의 「첫서리」가 게재되었다. 2002년 가을 제5호에는 강병철의 「아버지의 꽁치」, 김종광의 「웃음과 고생」이, 2003년 제6호에는 서순희의 「미인공예」와 심정리의 「불감증」, 이전오의 「고독한 사냥꾼」이 발표되었다. 2004년 제7호에는 노창환의 「좁고 어두운 골목」, 유달상의 「다이아몬드 성」이 게재되었고, 2005년 제8호에는 김탁환의 「어떤 만찬」, 김동민의 「궁상각치우」, 김상배의 「올무」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2006년 제9호에는 조동길의 「고마나루 別詞」, 2007년 상반기 제10호에는 김종광의 「옷은 어디에」, 2007년 하반기 제11호에는 이강산의 「칼자국」이 수록되었고, 2008년 상반기 제12호에는 강병철의 「1977 한탄강」이, 2008년 하반기 제13호에는 서희(서순희)의 「화이트 캐슬」, 2009년 상반기 제14호에는 김종광의 「우라질 양귀비」가 실렸다. 이밖에 작가집중조명 코너를 통해 한창훈의 「강」과(《작가마당》 제7호) 강병철의 「병실 206호」(《작가마당》 제9호), 서희의 「노랑 저고리」(《작가마당》 제10호)가 발표된 바 있다. 이 소설 작품들을 중심으로 대전충남의 지역적 정체성이 드러나는 방식과 그를 통해 알 수 있는 대전충남 지역문학의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지역과 삶, 민중성의 발견
《작가마당》에 발표된 소설 작품들의 작가들은 모두 대전충남 지역 출신이거나 중앙 문단에서 주로 활동을 하더라도 대전충남 지역과 연고가 있는 이들이다. 물론 지역 작가가 창작한 작품이 모두 지역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역문학은 삶의 뿌리가 되는 지역의 현실에 관심을 두고 지역적 삶을 형상화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작가마당》에 발표된 소설 작품들이 형상화하고 있는 삶의 양상들이 대전충남 지역의 구체적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를 증명하는 것은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는데 있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작가마당》에 게재된 소설 작품들을 일별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많은 작품들이 서민들의 일상에 밀착하여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들은 다소 투박하지만 그야말로 ‘리얼’하게 소시민의 삶을 들려주는데 그 속에는 술 냄새 풍기며 힘겨운 일상을 버티고 있는 아버지와 남편들의 모습, 억척같이 살아가는 여인네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그들의 삶은 “곰팡이 냄새가 떠나지 않는 지하방에” 누운 이주 노동자이거나(노창환, 「좁고 어두운 골목」),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이 방향을 바꿔 다단계 사업의 괴상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억척 여성 혜미이자(유달상, 「다이아몬드 성(城)」), 아가씨인지 총각인지 헷갈리는 우람한 몸매를 지니고 힘든 육체노동으로 돈을 버는 대학졸업생이며(서희,「미인공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그로 인해 생을 접은 여인과(심정리, 「불감증」/ 김상배, 「올무」), “WORLD INN-旅館 명찰이 붙은 T골목에서 나고 자”란 스물여섯 수빈의 일상으로 구체화된다. 그들은 모두 “좁고 어두운 골목”에 서서 “세상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이 비관적이지만 않은 것은 그들이 서 있는 삶의 공간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라”(이강산, 「칼자국」)는 인식 때문이다.
“뜨더라도 골목 사람들 무시하지 마라. 나처럼 물장사를 하든, 돼지뼈를 삶든, 가랑이를 벌리든, 코피 터지게 열심히 산다. 이 바닥에서 살다보면 누가 누구를 무시하는 게 얼마나 같잖은 일인 줄 아니. 여기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남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아. 남들 등쳐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든 돈푼이나 있다고 꼴값하는 눈 먼 놈들이든 서로서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7)
가진 것 없이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자세는 이토록 치열하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든 그들은 누구보다 진지하며, 타인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다. 또한 예문에 제시된 바와 같이 그들은 자신의 개별적 삶이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진리를 이미 깨닫고 있다. 현재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책무에 충실하면서 그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소외된 개인들의 삶이 공동체적 삶의 차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비단 T골목―T골목은 대전의 한 골목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무방하다.―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마당》에 게재된 소설들 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제시된 곳은 서해안 바닷가라고 할 수 있다. 충남 보령이 고향인 서희(서순희)의 「바다에 뜬 얼굴」(1999년 봄 창간호)과 「미인공예」(2003년 제6호), 「노랑 저고리」(2007년 제10호), 「화이트 캐슬」(2008년 제13호)은 서해안 바닷가, 즉 보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동민의 .궁상각치우.(2005년 제8호)도 보령 지역이 공간적 배경이며, 오내영의 「청라 언덕 우에 꽃 필 적에」(2000년 제3호)의 “사과를 씹는 여자”가 사랑했던 애인과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다시 찾아간 곳도 대천이다. 지금은 보령으로 지명이 바뀐 대천을 「미인공예」의 주인공 ‘아름’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대천은, 인구가 십만 명 남짓한 조그만 도시다. 내가 태어날 무렵만 해도 반농 반어에 폐허와 비슷한 상가들과 대포집 뿐 병원도 중국집도 드문드문 있는 읍 소재지였다. 차츰 조개껍질로 된 모래사장이 유명해지면서 바닷가에 있는 솔밭들이 야금야금 파헤쳐져 횟집, 나이트클럽, 맥주홀, 다방, 노래방이 지천으로 생겼다. 지금은, 도로가 넓혀지고 모텔, 수산물센터 등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들어서서 낯선 도시를 보는 것 같다.8)
다섯 편의 소설에서 배경이 되고 있는 대천 혹은 보령은 단순히 공간적 배경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이곳은 「미인공예」의 ‘나’에게는 “해마다 기말 시험을 끝내고 긴 겨울 방학동안” “그 대천항 골목 안에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삶의 터전이었고, .바다에 뜬 얼굴.에서는 아버지가 실직한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머물러야 했던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과 선원들과 부둣가의 노점상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변하면서 고향이라는 공간이 갖는 모성적 생명력은 훼손되고 만다. 대천 곧 보령은 “기업인들이 그 넓은 바다를 메워서 농토나 공장 부지를 만드느라고 파괴시킨 뻘빹”이 늘어나면서 “개펄은 오염되어서 무엇인들 제대로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작중인물들에게 있어 대천/보령은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구체적 삶의 현장이다. 대천은 헤어진 애인과의 아픔이 있는 부재와 상실의 공간이며(오내영, 「청라 언덕 우에 꽃 필 적에」) “회사원이었던 아버지”가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에 실직을”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서 엄마와 나를 데리고 갈 때까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실직의 어려움을 견뎌내야 했던 아픔의 공간이다.(「바다에 뜬 얼굴」) 어렵게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쉽게 취직을 하지 못하고 힘든 육체노동으로 현실을 버텨야하는 고통과 좌절의 공간인 동시에(「미인공예」), “심성을 갉아먹는 몹쓸 곳처럼 여겨”지는(「노랑 저고리」) 공간이기도 하다.9)
이와 같이 《작가마당》에 수록된 소설들은 대천/보령을 지역민들의 삶의 공간으로 형상화하면서 지역의 구체적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고통을 겪고 있는 민중들의 현실을 텍스트화하는 차원에 머무른다면 지역문학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거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희의 「노랑 저고리」는 생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여성 인물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말희는 생계수단으로 운영하던 한복집 ‘노랑 저고리’의 문을 닫고 "묵묵히 글만 쓰면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글을 쓸 수 있다면 이제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았"으나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세상과의 괴리감이 견디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 그녀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은 ‘노랑 저고리’라는 한복집으로 상징되는 공간을 이해하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다.
대천시내를 바라보았다. 동부 아파트단지 앞 신작로를 따라 가면 주유소, 슈퍼마켓, 꽃집, 동물병원, 약국, 세탁소, 자전거포를 지나면 시장이 시작된다. 거기 손님들과 웃고 떠들며 어울리던 튀김닭집과 분식집과 보리밥집을 더듬다가 굳게 잠겨있는 노랑 저고리에 눈길이 멎는다. 그곳엔 활기 있고 자유스럽고 강렬한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것 같은 회한이 가슴을 적신다. 수많은 손님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가게에서의 아귀다툼들이 아픔처럼 슬픔처럼 떠올랐다. 이제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성 싶자, 노랑 저고리가 견딜 수 없이 그리워진다.
그녀가 만들어 주는 커피를 마시며 사랑방처럼 들락거렸던 사람들이 때로 그 앞에서 머뭇거리면서 아쉬워하면서 지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자 달려가서 문을 따 주고 싶다.10)
한복집 ‘노랑 저고리’는 작중인물 말희의 생활 현장인 동시에 대천 사람들의 사랑방이자 대천 지역민들의 삶의 공간이다. 시장 골목을 들끓던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는 보령에서 출생한 소설가 서희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11) 비록 말희는 ‘노랑 저고리’의 문을 닫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글쓰기가 대천 지역민의 삶과 멀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역적 정체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소설가 서희의 글쓰기를 지켜보며 우리는 지역문학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서희의 「노랑 저고리」에서 재발견된 공동체적 삶의 가치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는 「멀미」의 인영과 남편이 사랑했던 자신의 친동생을 결국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첫서리」의 ‘나’가 보여준 태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일종의 사랑의 연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비록 현실은 냉정하고 아이러니할 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에 주목할 때 지역문학은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코를 높이면 취직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성형수술을 하지만 딸기코를 갖게 된 「미인공예」의 ‘나’와 같이 삶의 터전은 여전히 냉혹하지만 그 터전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지역민들은 혼자가 아니라 우리이며, 서로서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기에 묵묵히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적 삶의 가치에서 발견한 끈끈한 연대의식은 “갯비린내를 맡으면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띵하”거나(서희, 「바다에 뜬 얼굴」), “속이 뒤틀리는 욕지기”(심정리, 「불감증」)로 고통스러울지라도 “나를 찾기 위한 사투”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편 지역의 공간성을 강조하는 방식 이외에 주목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인간 군중의 삶을 서사화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에피소드식 구조로 소박한 서민들의 일상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것인데, 강병철의 「병실 206호」(2006년 제9호)와 「1977 한탄강」(2008년 상반기 제12호)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병실 206호」와 「1977 한탄강」은 병실 206호와 군대 취사장을 배경으로 인간 군상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딱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없는 대신 환자들과 병사들 모두가 서사의 주요 인물이 된다. 작가는 작중인물들 각자가 그려내는 다양한 삶의 흔적들과 꿈틀거리는 욕망들을 하나하나 묘사하면서 인생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묻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서술자의 요약제시와 논평이 사용되었는데, 가령, 「병실 206호」는 같은 병실에 입원해있는 환자들의 병력이나 형편을 단락을 바꿔가며 요약해준다. 예컨대 “박박머리 서병오는 일 년째 병원살이 중이다. 평소엔 얌전하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건 그의 성품과 아무상관이 없다. 수 없이 반성하지만 주파수가 빨라질 때마다 상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으므로 누이들만 닦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병오는 팔의 신경이 죄다 끊어져 손찌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12)나 “취사병 중에서 학사 가호철 상병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은 도대체 뭐 하나 건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13)와 같은 식이다.
작중인물들의 출생년도를 인물의 이름 옆에 병기한 김종광의 「우라질 양귀비」(2009년 상반기, 제14호)는 양귀비꽃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을 중심으로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스케치하고 있다.
안채에서 시어머니 서창자(40년생)와 애들(1998년생 딸, 2002년생 딸)이, 슈퍼에서 남편 최명청(65년생)이, 식당채 부엌에서 서편댁(56년생)과 동편댁(52년생)이, 그리고 민박채에서 엠티 왔다가 밤새 술 처마시고 해뜰 때 마지못해 잠들었던 대학생들이, 모두가 뛰쳐나와 놈의 시끌벅적한 비행을 입 딱 벌리고 구경했다.14)
예문에서와 같이 작가는 처음 등장하는 작중인물을 소개할 때 출생년도를 표기함으로써 각 인물들의 존재에 사실감을 불어넣는다. 71년생 ‘고음순’을 주축으로 「우라질 양귀비」의 작중인물들은 기르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 양귀비 때문에 일련의 사건들을 겪게 된다. 작중인물의 이름 옆에 병기된 출생년도는 실존하는 인물들이 겪은 일들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듯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마치 한 편의 신문 기사를 읽는 것처럼 서사를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당포를 찾아서」부터 김종광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각 장면마다 “장덕호(68세)”, “정인혜(35세)”, “정인자(19세)” 등 개별인물들을 전경화하고 다른 인물들은 주변으로 분산시키는 서술전략을 구사하여 주변부 인물을 사사로운 일상에 가두지 않고 우리 사회의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보다 현실적인 리얼리티에 성공적으로 다가가고 있다.15)
이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작가마당》에 수록된 일련의 작품들은 균질화될 수 없는 이질적인 욕망의 움직임을 능청스럽게 서사화하면서 우리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삶의 양상을 제시하고 있다. 주변부적 삶의 진실은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전충남 지역의 실제 공간인 보령을 배경으로 하는 이들 작품들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충청도 사투리가 갖는 효과
문학 텍스트에 사용된 사투리는 잠재된 지역성이 공식적으로 발현되는 최상의 수단이다.16) 흔히 충청도 사투리는 속도가 느리고 어눌하여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어리숙하고 순박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소통의 원활한 흐름을 차단하여 고집스러운 자기만의 세계를 전달하거나 의뭉스럽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책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전충남 지역의 소설가들은 지역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충청도 사투리를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대전충남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규명해보기로 하자.
《작가마당》에 수록된 소설 중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고 있는 작품은 강병철과 김종광, 서희, 김동민, 채진홍의 소설들인데 각각의 텍스트에서 사투리 구사가 갖는 효과는 사뭇 다르다. 작중인물들의 입을 통해 구사되고 있는 충청도 사투리는 단순히 작가의 고향이 충청도임을 말해주거나 텍스트의 공간적 배경을 암시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대전을 포함한 충청도 지역을 삶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이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예컨대 어머니에게 애증의 양가감정을 지닌 아들의 심리를 어머니가 입고 있던 낡은 황토 저고리에 묻은 코피로 상징화한 채진홍의 「황토 저고리」(2000년 겨울 제3호)는 삶의 터전인 대전충청 지역의 현장감을 작중인물들의 말투로써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서희의 「화이트 캐슬」(제13호, 2008년 상반기) 역시 표준어와 사투리를 서울과 보령이라는 지역적 거리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여자’는 탱화를 그리기 위해 보령에 잠시 머무는데 그곳에서 만난 낯선 인물들은 모두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작가는 보령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 보령을 찾은 ‘여자’의 심리적 거리를 언어의 차원에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화이트 캐슬.과 마찬가지로 「노랑 저고리」도 보령 시장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이 생생한 사투리로 묘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동민의 「궁상각치우」에서도 충청도 사투리는 서술자의 표준어와 대비되어 보령의 지역색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충청도 사투리는 서사가 진행되는 구체적인 배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 현실감을 획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채진홍의 「인도에서 온 여자」(1999년 제2호)에서 충청도 사투리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암자에서 기거하는 방처사의 능청스러운 사투리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여성 인물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낼 뿐 아니라 암자를 찾아온 ‘여자’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다음으로 충청도 사투리는 작중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그 예를 강병철의 「아버지의 꽁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물잡화상으로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던 아버지, “수전노 키 작은 근수 씨”는 대화를 할 때면 늘 앞 뒤 맥락을 잘라버리고 꼭 필요한 가운데 토막만을 불쑥불쑥 내놓곤 한다. 유장한 가락으로 느릿느릿 구수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서술자의 충청도 사투리와 대조적으로 투박한 아버지의 충청도 사투리는 무뚝뚝하지만 여린 심성을 지니고 있는 아버지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기둥 뿌리 뽑혀두 나 몰러라 헐껴.”, “깅가.”, 말을 아끼며 짧게 툭툭 던지는 아버지의 사투리는 가난한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따뜻한 속내를 감추는 동시에 드러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한편 앞서 언급한 김동민의 「궁상각치우」는 음주운전을 하다 뺑소니 사고를 낸 주식이 어머니 몰래 “땅문서와 저금통장을 들고” 현주와 함께 고향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이 주요 서사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주식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횡단하는 늙으신네”를 차로 치고 도망쳤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다방에서 일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된 현주 또한 빚 독촉에 쫓겨 “자신의 빚 절반의 돈”에 해당하는 땅문서며 패물을 부모님 몰래 건달들에게 건네주고는 남은 빚 때문에 결국 고향을 등지는 인물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주식이 뺑소니 사고를 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고라니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후반부이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주식의 불안감과 주식의 돈으로 사채업자들로부터 도망치려는 현주의 영악함은 후반부의 반전을 돋보이게 한다.
음매! 비 똥줄 나게 오네. 이러다 시상 나무뿌리고 뭐고 다 뽑혀 남아나는 것 읎겠구먼. (이주식은 대청에서 전화를 받으며 마당을 힐끗 훔치었다. 마당 밖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네 집 기둥 아직 안 뽑혔냐. 나야 지금 집 기둥 뽑혀 노 젖고 있다. 이참 떠내려가는 것 부산까정 떠내려갔음 좋것는듸. 근듸 시방 워쩐 일이냐, 식정부터. 아직 닭도 울지 않았구먼. (지난 밤부터 장맛비가 퍼붓고 있다. 이주식은 전화벨이 울리기 전 새벽 일찍부터 잠에 깨어 있었다.) 뭣이여! 긍께 어젯밤부터 식정까정 상가 집에서 술 믁고 오다 전봇대 받았다는 거여! 거기가 어듸쯤이여. 병원. 많이 다쳤는가. 아이구 다행이구먼, 타박상만 입었다니. 차는 개 박살나고야. 요즘 시상에 곤드레만드레 헐레벌떡 취해갔고 운전대 잡는 늠이 워딌냐. 뉘 말 따라 살인면허여. …뉘 전봇대가 과부인줄 알고 달겨들었지. 기왕지사 받을 거믄 기철이네 담장에다 황소 뿔로 들이 박듯이 꼴아 박을 것이지, 전봇대가 뭔 잘못 했다고.17)
위에 제시한 예문은 「궁상각치우」의 첫 장면이다. 다소 수다스럽게 주절주절 쏟아지는 충청도 사투리는 작중인물의 입말 형태로 제시되고, 괄호 안에 묶인 서술자의 표준어는 작중인물의 행위를 묘사하고 상황을 설명하거나 논평하고 있다. 작중인물 주식의 사투리는 언뜻 소탈해 보이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망치는 그의 이중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보령 출신의 작가 김동민은 충청도 사투리로 작중인물 주식의 의뭉스러운 태도를 암시하고 있는 바, 이는 곧 겉과 속을 알 수 없는 충청도식 말하기가 갖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강병철과 더불어 충청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작가는 김종광이다. 사실 김종광에게 서울과 지역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는 김종광이 지역적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가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작품 세계가 충청도라는 지역을 중심에 두되 특정 지역에 고립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김종광 문학의 특성을 ‘충청도적 의식의 확산’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터인데,18) 충청도 사투리가 넘쳐나는 그의 작품에서 충청도는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지역적 의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김종광 식의 ‘충청도 의식’은 현실의 아이러니를 꿰뚫어보면서도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충청지역에 근거를 두되 서울과 대한민국, 나아가 자본주의적 현실 전체를 연관시키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작가 김종광이 지니고 있는 충청도 의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충청도 의식을 표출하는 수단이 충청도 사투리의 구사임은 물론이다.
“학교 발전 기금으로 적립된 삼십억 원 중 십억 원을 탁월한 수작으로 빼돌려 저와 제 가족만 잘먹고 잘사는 데 할애하셨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이사장의 비리를 규탄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 순박한 대학 새내기 박무현의 서울상경기를 서사화한 「전당포를 찾아서」(1999년 봄 창간호)는 충청도 사투리를 작중인물의 성격을 암시하고 나아가 자본주의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재고하는 서술의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차비도 없고 서울 지리에도 어두워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박무현은 파출소에 찾아가 통사정을 한다. 눈물을 훔치며 “저는유 한민대학교 혼주캠퍼스 사학과 일학년 박무현이라고 하는듀, 제가 오늘 서울로 데모허러 왔다가 잽혔거든유." "제가 뭘 알아유. 서울에 온게 두 번짼가, 세 번짼디 뭘 알아유. 돈은 하나두 웂지. 잡어갔으면 책임을 져야 될 거 아녀유. 책임지세유.”라고 막무가내로 사정하는 장면에서 “스무 살쯤 되었을까 앳된 얼굴”에 “키가 작고 옷은 싸구려티가 덕지덕지”한 박무현의 “충청도 쪽 억양이 다량 묻어 있는 어눌한 말씨”가 그대로 드러난다. 박무현의 입에서 나오는 충청도 사투리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리숙한 시골 청년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낸다.
김종광의 충청도 사투리는 박무현의 예에서 보듯 현실을 풍자하지만 해학성을 잃지 않는 묘미가 있다. 어눌하고 어정쩡하며 느리고 답답함마저 유발하는 박무현의 충청도 사투리는 욕설과 직설적인 표현으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비극적 현실을 해학적으로 변주시키는 작가적 역량을 유감없이 증명한다. 소설가 김종광이 「웃음과 고생」(2002년 가을 제5호)에서 말하고 있는 분노의 역설적인 표출인 웃음과 타락한 자본주의 삶의 소비의 역설인 고생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19) 박무현의 사투리는 비극적인 상황을 해학적으로 변주하면서 따뜻한 인간미로 주변부 인물들의 삶을 품어안는다. 이러한 자세는 《작가마당》 제14호에 발표한 「우라질 양귀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독하게 무더웠던 여름, 서울까지 올라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모에 참여했다”가 “연세대 종합관에 갇힌 학생들 중 1인이 되어 배고픈 일주일을 견뎌야만 했던” 경력 때문에 정치적 인물이 되어버린 고음순의 일상은 개인의 삶이 정치적 실존의 문제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긴밀한 상관성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작가 김종광은 충청도 사투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모순투성이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민중들의 의지를 웃음의 세계로 끌어올려 서사화하고 있다.
4. 결론
지역문학에 대한 연구는 문학과 삶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문학이 곧 삶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지역성을 사고하는 작업은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현재적 삶과 그 삶이 맞닿아 있는 오랜 역사를 아울러 사고하는 것이며 자연적 태도에서 벗어나 현실에 작용하는 모든 권력에 문제제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교통통신 수단이 발전하면서 각 지역 간의 공간적 이동이 수월해지고, 정보를 동시대적으로 공유함에 따라 지역성의 의미를 숙고하는 일이 다소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여겨질 위험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논의는 인간이 처한 토대를 살펴보고 현실과 문학을 통합하여 사고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배담론과의 끊임없는 거리두기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와 문학의 가치를 물을 때 비로소 지역문학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지역문학에 대한 연구가 문학장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깊이 있는 실증적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본고는 소설을 중심으로 대전충남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탐색하기 위해 대전충남작가회의 기관지인 《작가마당》에 수록된 소설 작품들을 분석해보았다. 《작가마당》에 발표된 소설 작품들을 근거로 대전충남 지역문학의 대체적인 성격을 추론해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소시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서사화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들은 서민들의 일상에 밀착하여 그들의 아픔과 시련을 서사화하되, 아이러니한 현실을 해학적으로 승화하거나 휴머니즘적 차원에서 타인을 따뜻하게 끌어안으려는 인간미 넘치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특히 강병철과 김종광, 서희의 소설 텍스트들에서 두드러진다. 이때 충청도 사투리는 아이러니와 해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지역민의 삶을 구체화하는 서술 전략으로 기능한다. 어눌하지만 거침없고, 의뭉한 인물들의 내면은 그들이 뱉어내는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 표출된다.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힘없는 존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함께 살아갈 공동체적 삶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면서 작가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이 지니는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 그 가치는 일종의 연대의식의 소산인 바, 현실 비판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따뜻함을 놓지 않는 작가들이 추구하는 문학적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들 또한 연대의식에 동참하여 지역의 작가들과 소통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역문학에 힘을 불어넣는 책임은 비단 작가들만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마당..의 지역적 실천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유의미한 의미를 보여주는지 향후의 걸음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작가마당》 제1호-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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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Region and Regional Literature 2
Kim, Hwa-Seo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hed light on the characteristics in Daejeon.Chungnam regional literature. Especially this paper gives attention to short stories in Jakgamadang which is an organ of Daejeon.Chungnam branch of ‘Writers Association of Korea’.
This article scrutinizes the localty of Daejeon.Chungnam and its literary configurative aspect and meaning focusing Jakgamadang that has played the central role of literary activities in Daejeon.Chungnam region. The short stories which are published at Jakgamadang reflect the people’s daily lives. Specially Boryung(Daecheon) is a background of Daejeon.Chungnam regional literature, for example Seo-hee’s .face on the see., .Beauty technology., .The yellow jacket. and .White castle..
Above all the writers of Daejeon.Chungnam regional literature concern about resident's lives at Daejeon.Chungnam region and describe daily lives of the lower middle class with Chungcheong dialect. The Chungcheong dialect shows inside of characters and represents pleasantry. Particularly Kang, Byung-Cheol and Kim, Jong-Kwang have an excellent command of a Chungcheong dialect.
■ 주제어 : 지역(region), 지역문학(Regional literature), 대전충남 지역문학(Daejeon.Chungnam Regional literature), 지역성(regional characteristics), 작가마당(Jakgamadang), 충청도 사투리(Chungcheong Dialect)
각주)-----------------
* 이 논문은 ..경계와 소통, 지역문학의 현장..(남기택.김화선 외, 국학자료원, 2007)에 수록된 필자의 글 .지역의 힘, 지역의 문학 ―..작가마당..에 수록된 소설을 중심으로.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후속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대전충남작가회의 기관지인 ..작가마당.. 제1호부터 6호까지를 분석 대상으로 한 .지역의 힘, 지역의 문학.을 참고로 하여 ..작가마당.. 1호부터 14호까지를 연구 범위로 삼고, 대전충남 지역문학의 정체성과 특성을 규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 배재대학교
대전충남 지역문학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연구로는 다음의 글을 들 수 있다. 남기택 외, ..경계와 소통, 지역문학의 현장.., 국학자료원, 2007. 남기택, .탈식민과 지역문학에 대한 고찰., ..비교한국학.. 15권 2호, 국제비교한국학회, 2007. 송기한.김현정 엮음, ..대전.충청 지역의 고향시.., 다운샘, 2004. 이형권, .지역문학의 탈식민성과 글로컬리즘-대전.충남 문학을 중심으로., ..어문연구.. 52집, 어문연구학회, 20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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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하반기부터 대전충남작가회의는 대전과 충남 지역을 분리할 예정이다. 따라서 창간호부터 분리되기 전 마지막 호인 14호를 분석하는 이 논문은 지역문학사적으로 나름의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김화선, .지역의 힘, 지역의 문학 ― ..작가마당..에 수록된 소설을 중심으로., ..경계와 소통, 지역문학의 현장.., 211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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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선, 앞의 글, 214면.
김동민, .궁상각치우., ..작가마당.. 제8호, 2005년, 126면.
김화선, 앞의 글, 216면.
김화선, 위의 글, 217-218면 참고.
각주)-----------------
약력)
김화선
평론<틈새의 힘으로 보는 소수성의 미학>외. 공저<친일문학의 내적 논리>외.
배재대학교 교수. hermes925@p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