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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행 복 한 나 그 네
* 화암약수(제1경)
화암약수 주변은 공원구역으로 깔끔히 정비되어 있다.
계곡 경치 자체는 썩 뛰어난 곳이 아니므로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화암약수는 1910년 경 마음이 어진 문명부란 이가 발견한 약수로, 피부병과 위장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약수는 상·중·하 세 곳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나면서 기포가 올라온다.
샘물에는 철분이 들어 있어 샘 주변이 붉은 녹물이 묻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문명부가 꿈에 구슬봉의 높은 바위아래 돌연히 청룡과 황룡 두 마리가 서로 뒤틀며 엉키어 몸부림치더니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가는 것을 본 후, 잠을 깨어 새벽 일찍 그곳에 이르러 땅을 파헤치니 갑자기 땅속에서 물이 거품을 뿜으며 솟아오르는 약수를 발견했다고 전해온다.
그 물맛은 마치 계피가루를 탄 것처럼 씁쓸하면서도 쏘는 듯 시원하였다는 전설이다.
지금도 화암약수는 철분, 칼슘, 불소외에 9 가지의 필수원소가 함유되어 있고 마치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맛을 내고 있다.
이 약수는 위장병, 눈병, 피부병, 빈혈, 안질 등에 좋은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로 인해 물을 마실 차례를 기다리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화암약수의 전설에 의하면 사악한 마음을 품고 물을 먹으려 하면 약수물에 구렁이가 보인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약수성분: 탄산이온 854.3㎎, 철분 26.9㎎, 칼슘 82.9㎎, 불소 0.6㎎, 기타 9종의 건강 필수품 함유)
화암약수터에는 정공채 시인의 시비가 새겨져 있다.
[화암약수찬비 華巖藥水讚碑] / 글 정공채 (鄭孔采)詩人
神仙이 마시면
靈驗한 화암약수
오늘 와 우리도
고이 마시니
바로 仙人 인양
마음도 하맑고녀
* 삼내약수
정선군이 최근 삼내 약수에 대한 수질검사 결과 비소와 알루미늄이 초과 검출되 약수터 폐쇄가 불가피한 실정으로 특히 비소 등은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물질로 주변 오염원에 의한 오염이 아닌 자연 발생적 상황이어서 개선이 여의치 않다고 밝혔다.
정선군은 그러나 삼내약수의 명성을 감안, 수질개선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펼치기로 했다고 한다.
* 거북바위(제2경)
정선군 동면 화암리 화암약수 진입로 우측 위로 기암괴석 절벽 위에 보이는 둘레 6m의 거북모양과 같은 바위가 서남쪽을 향해 기어가는 듯 쭈그리고 엎드려 있어, 네 다리와 머리, 꼬리부분이 거북과 닮아 거북바위라 불리워 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거북바위를 이 고장의 수호신적 존재로 여긴다.
거북의 수명이 천년을 산다하여 정성껏 지성을 다하면 무병장수하고,
그 해의 액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신선바위를 바라보면 신선들이 바둑 두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뻐꾸기 산새 소리와 어울려 자연의 경이와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특히 봄철에는 철쭉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다.
거북바위에서 약수터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구암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허가 된 절터만 남아 있는데, 이 절터에는 약 9m가량의 바위틈이 있어 이 틈을 통하여 속세의 못된 바람이 불어와 승려들이 바람을 피우게 된다 하여 절을 폐쇄했다고 전해온다.
* 용마소(제3경)
거북바위(상) 조선후기의 용마소 그림(중) 용마소(하)
정선군 동면 화암리(화암약수 진입 500m전 하천변)에 위치하며,
화암리 그림바위 앞에 광활한 반석이 있고, 이 반석 아래로 맑은 물이 바위를 감싸고 흐르는 곳으로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는 명소이다.
조선중엽 김씨라는 촌부가 옥동자를 낳았는데,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이곳 저곳 날듯이 뛰며 방 윗목 선반 위에 올라가 놀고 있음을 보고 필시 장수가 태어났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정으로서는 아기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일족이 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잠자는 아이를 불로 지지고 암반으로 누르고 맷돌을 얹어 강제로 죽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 후 며칠 안되어 뒷동산 산기슭에서 주인을 잃은 용마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주인을 찾아 동네를 뛰어 다니다가 이곳 소에 빠져 죽었다 하여 용마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일명 용사소(龍死沼)라고도 한다).
계곡의 맑은 물이 끊일 줄 모르고 흐르는 용마소는 부모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 아이의 슬픈 넋이 용마와 더불어 잠겨 있다는 애달픈 전설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선군 동면 화암 2리에 위치한 동굴로 2,800㎡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석 동굴로, 입구에서 약 20m 들어간 곳에 직경 100m, 높이 40m의 대광장( 大廣場 )이 있다.
시도지방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된 화암동굴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부터 1945년까지 금을 캤던 천포광산이 있던 곳이다.
연간 순금을 22,940g을 생산했던 이 금광은 당시 국내 5위의 생산량을 자랑했다.
금광 갱도를 파들어 가던 중 1934년 지금의 화암동굴을 발견했다.
석회동굴인 화암동굴의 지질이 생성된 연대는 약 4억∼5억년 전으로,
길이는 476m이며, 최대 높이는 45m다.
굴안에 약 250평의 대광장은 현재까지 알려진 석회동굴 공동(空洞) 가운데 가장 넓은 것이라고 한다.
이 굴에는 동양 최대의 붉은빛 유석(流石)폭포(높이 16m, 너비 20m)가 있고, 굴 정면에는 높이 8m, 둘레 5m에 달하는 대석순이 있다.
그밖에 종유석, 동굴 호수, 높이 30m의 하식애(河蝕崖), 마리아상, 불자상, 석화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동굴 호수에는 이무기가 성모 마리아상을 보고 놀라 호수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화표주(제5경)
전설에 의하면 옛날 산신들이 이 돌기둥에 신틀을 걸고 짚신을 삼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 소금강(제6경)
소금강은 화암팔경중 제6경으로서 정선군 동면 화암1리에서 몰운 1리까지 4km구간에 걸쳐 광범하게 전개되고 있다.
백전리 용소에서 발원한 어천을 중심으로 좌, 우 에 100 ∼ 150m의 기암절벽이 버티고 있는데, 그 기묘하고 장엄한 형상이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하여 소금강이라 일컬어진다.
봄에는 진달래, 철쭉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숲이 돋보이며, 가을의 단풍과 겨울철 백설이 4계에 따라 장관을 이룬다.
* 몰운대(제7경)
정선군 동면 몰운리에 있는 몰운대(沒雲臺)는 층암 절벽 위에 백여 명이 설 수 있는 넓은 암반이 펼쳐져 있다.
정상엔 약 300년이 넘는 소나무가 서 있어 운치를 더해 주었으나 아쉽게도 1990년대 말에 고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절벽에서 보는 풍치는 여전히 아름답다.
몰운대는 수십m의 암석을 깎아 세운 듯한 단애절벽 위에 노송이 좌우 건너편의 3형제 노송과 함께 천고흥망(千古興亡)의 세월을 지켜보고 있다.
옛 전설에 의하면 천상선인(天上仙人)들이 선학을 타고 내려와 시흥에 도취되었다고 하며, 구름도 아름다운 경관에 반하여 쉬어 갔다고 하는 층층 암벽으로 이루어진 몰운대 절벽 아래에도 수백 명이 쉴 수 있는 광활한 반석이 펼쳐져 있다.
계곡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옛부터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하절기에는 피서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몰운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시원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빼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정선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경치이기 때문이다.
몰운대에서 한치고개를 넘으면 바로 광대곡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보면 몰운대 전경을 한누에 볼 수 있다.
* 광대곡(제8경)
화암팔경 가운데 8경인 광대곡은 이름과 그 경치에 비해 그렇게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다.
들어가는 계곡입구를 보면서 실망을 하다가 깊숙이 들어가면서 실망이 감탄으로 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계곡의 특징은 폭이 매우 좁다는 점인데, 그 점이 좌우로 높이 솟은 산세와 더불어 이 계곡을 더욱 돋보이게 하지만, 수량이 적어 비가 온 뒤에 들어가면 더욱 그 운치를 실감할 수가 있다.
광대곡은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붙은 신비의 계곡으로, 태고적부터 부정한 사람은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금하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은 부정한 음식물(닭고기나 개고기)을 먹고 입산하면, 모든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이기도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부상을 당하는 예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명산인 광대곡을 탐방하기 위하여는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야 한다.
유두(음력 6월 15일)와 칠석(음력7월 7일)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광대곡은 촛대바위, 병풍바위 등의 기암괴석과 더불어 12개의 용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열둘이라는 숫자를 신성시한 선인들이 병풍바위 아래의 못까지 합해 12용소라고 일컬었던 것 같다.
주차장에서 1.6㎞쯤 올라가면 병풍바위, 선녀폭포, 골뱅이소, 바가지소를 차례로 지나 영천폭포에 닿는다.
금강산의 구룡연을 연상케 하는 절묘한 자태가 눈길을 끄는 절경이다.
등산로는 이곳까지만 개설되어 있으므로 특별한 장비가 없는 일반 관광객들은 영천 폭포에서 쉬다가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또한 비 온 뒤에는 바윗길이 매우 미끄럽고 물이 넘쳐서 계곡을 건너기가 위험하므로 영천폭포까지 오르기도 쉽지 않다.
광대곡에는 동굴과 12용소, 폭포등이 있는데 이것을 대략 소개하면, 기도굴.골뱅이소.바가지소.양동이소.가마소.선녀폭포.장와리굴.영천폭포.장대폭포.구영소.남비소.단지소.피용소.뱀용소.치소.버들골 등이다.
영천폭포에서 8백 미터 위쪽에 있는 피소에는 애절한 전설이 어려 있다.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12선녀 중에 한 선녀가 나무꾼에게 옷을 빼앗겨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자 이를 비관한 선녀는 지상에서 살기보다는 죽음을 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피소라고 불리는데, 실제로 황혼 무렵의 이곳 물빛은 피처럼 붉게 보인다.
광대곡은 명산으로서 심마니들이 이곳에서 산신께 기도를 드리면 산삼을 캔다고 하여 지금도 많은 심마니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동면 몰운리에
그는 이것이 필경 산신령님의 조화로서, 평소에 나의 소행이 옳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고, 얼마 후 다시 이 골짜기를 들어갔더니 전과 같은 일이 전혀 없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전설로는 이 골짜기에 깊숙이 들어가면 신선할머니 한 분이 홀로 움막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이 마을 조(曺)씨댁의 부인이 평소 신선할머니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데, 하루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신선할머니의 산막에서 잠을 잔일이 있었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으나 치성을 드리러 온 사람들은 모두 거적떼기 하나씩만 덮고 누었어도 전혀 추위를 못 느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역시 신선할머니라 추위도 접근을 못하는구나 하였더니 신선할머니는 나는 본래 호랑이를 벗삼으며 살고 있는데, 호랑이가 밤마다 옆에 와 그 털과 체온으로 추위를 막아준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이 산은 명산이 아니라 영산이구료! 신선할머니가 호랑이를 벗 한다니 호랑이 눈썹을 하나 뽑아줄 수 없겠소?” 하고 졸라댔다.
이를 약속한 신선할머니는 어느 날 밤 호랑이가 옆에 와 누운 것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치 사람에게 하듯이 여러 가지 얘기 끝에 슬그머니 눈썹을 하나 뽑으려 하자, 호랑이는 노하여 달아난 후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신선할머니 외에는 아무도 호랑이를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신선할머니 소생의 딸 하나가 있었는데, 아랫마을에 사는
그날 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이르기를 메밀떡 7개만 해놓고 빌면 고씨 일가는 죽거나 병신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신선할머니는 꿈에 산신령님이 일러준 대로 하였더니 아비는 병신이 되고 귀룡은 전신이 퉁퉁 부어 이유 없는 파혼의 죄를 받아 죽었다고 한다.
명승제14호 정선 어라연일원
동강의 일부인 영월 어라연 지역은 하천지형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천혜의 보고로서 한반도의 구조운동(융기)의 증거인 감입곡류 하천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며 하식애(어라연 일대의 수직절벽), 협곡(어라연 계곡), 구하도(상·중·하선암), 소, 여울, 급류 등의 지형·하천 경관 및 하천, 암반, 산림지대 등으로 형성되어 있는 식생경관과 정선아리랑 등 문화적 요소가 어우러져 천혜의 아름다움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첫댓글 후회없는 관광이되실겁니다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