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최초로 발명한 인마살상용 개인화기는
화승총이 아닌 '총통'이었습니다.
총통은 말 그대로 쇠대롱 형태였는데, 총신 뒷쪽의
밀폐된 공간에 약실을 만들고 그곳과 통하는 가느다란
'불길 구멍'(火口)을 뚫어 사수가 지화식(持火式; 손으로
직접 불을 댕김)으로 점화시켜 화살이나 탄환을
발사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총통은 '경희고총통'
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 총통은 총강(銃腔) 내부구조로
미루어 고려말 화통도감에서 만들었거나 최소한 조선의
세종대왕 시절 이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 경희고총통. 20여cm 길이의 구리로 만들어진 총열입니다.
구리표면에 생긴 은은한 녹색은 '녹청'[綠靑; CuCo ·Cu(OH)]이라
불리는 부식물(녹)입니다. 구리는 녹청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의
부식이 진행되지 않으므로, 경희 고총통이 최소한 500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어 낸 것이지요. 만약에 이 총통을 쇠로 만들었다면,
산화철 부식으로 말미암아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삭아버렸을 것입니다. 경희고총통은 화살을 꽂아 발사했던
'구형 총통'이어서 '고(古)총통'이라 불립니다.
세종임금 당시 우리나라의 총통은 대폭 성능개량을 했고
그때부터 화살대신 탄환을 장전하는 총통이 등장했습니다.
경희고총통은 "경희대 박물관이 소장한 구형총통" 이란
뜻이며, 이름 자체에 별다른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닙니다.
● 카페지기의 '경희고총통' 복제
카페지기는 최근 '경희고총통'을 복원했습니다.
소설 '총의 울음'과 관련된 tv 프로그램을 녹화하면서
화승총을 자세히 설명해야했는데, 그 이해를 돕기위해
화승총 전단계인 총통의 원리도 알려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복제물(이미테이션) '경희고총통'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최초의 화약무기'로 추정되는 만큼
역사적 의미도 큰 유물입니다.
우리 카페가 복원하려는 강화화승총처럼 "실제 사격이 가능한"
총통이 아닌 단지 '시청각 자료'로 쓰기 위한 복원이었습니다.
작업과정은 지점토로 모양새를 잡아(실물보다는 다소 크게 만들었음)
실물과 비슷하게 만든 뒤 3~4일간 말려, 녹청과 비슷한
색깔을 칠했습니다.
복원과정을 다음의 사진으로 보고합니다.
▲ 알미늄 봉에다 지점토를 일정 두께로 펴고 발라서, 경희고총통과
비슷한 외형을 만들었습니다. 알미늄봉을 끼운 이유는 총통의
단단한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점토만으로 총신을 만든다면,
튼튼한 틀을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점토가 완전히 마른 뒤에는
알미늄봉을 잘랐습니다. 물론 총통내부에는 알미늄봉이 남아있지요.
▲ 지점토가 충분히 마른 뒤 경희고총통에 쓴 녹과 비슷한
녹청(綠靑)색 물감을 칠했습니다. 사진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실물의 색깔은 강화고총통과 비슷해보입니다.
▲ 총신모형을 만든 뒤에는 총통의 뒷부분에 끼울 '목병'(木柄;총자루)을
만듭니다. 쓰고 버린 마대걸레의 나무자루를 재활용하면 좋습니다.
▲ 총자루 끝을 칼로 뾰족하게 깍아, 총통 뒷부분에 잘 꽂히고
또 꽉 물려서 박히도록 합니다. 그래야 총통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 총자루에 총통에 꽂은 모습.
▲ 자, 이제 완성됐습니다. 흠... 지금으로부터 오백년 전, 아니
칠 팔백년 전 어느 날에 - 우리 조상 가운데 용감하셨던 한 분이...
이런 총통을 들고 출정하여 우리나라 북방 국경을 유린하던 여진족
무리를 물리치셨을지도 모릅니다.
- 카페지기.
첫댓글 우리가 저런 무기를 들고 침략자와 맞서 싸웠다는게 자랑스럽네요 ^^
ㅎㅎ
카페지기는 머스킷군도 자랑스럽다오!
나라를 지키신 조상님들에게 감사하는 착한 후손이니까 말이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