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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하나 ’ - 김 옥 미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
어김없이 학교 가는 날 아침에는 엄마와 나의 합동 작전이 시작된다. 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잠이 쏟아져도, 얼른 일어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한다. 그리고 수신음이 3번쯤 울리면 전화를 끊는다. 지금 대체 뭐하는 거냐고? 우리 집은 가난하기 때문에 통화료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한 합동 작전이래도!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아침잠이 많아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빈번하다. 엄마가 깨워주시면 그만이겠지만 엄마는 새벽 6시에 일을 하러 나가신다. 그래서 나 일어나라고 6:40분쯤 집으로 전화하셔서 ‘어서 일어나 밥먹고 학교가라’며 말해주시고 얼른 끊곤 하셨지만, 그 몇 초 안 되는 통화에 들어가는 돈이 아까우셨는지,
‘ 6시 40분 쯤 너 일어나라고 집에 전화할테니까, 일어났어도 전화는 받지 말고 내 전화가 끊기면 네가 일어나서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해 수신음이 3번쯤 울리면 끊거라. 이렇게 하면 통화료 안내고도 네가 일어날 수 있겠지? ’ 라고 몇일 전 엄마가 내게 말씀하셔서 시작된 작전이라는 거다.
통화료 그거 얼마나 나간다고 그러시는 지 원…. 이런 일을 다른 아이들이 알게 될까 내심 두렵다. 부끄러우니까, 틀림없이 다들 비웃을 테니까……. 가난은 죄다. 다 자기가 노력하지 않아서 생긴 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와 나는 죄인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결론이 내려진다.
아버지가 엄마와 이혼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재산이 넘치고 넘쳤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와 이혼하면서 날 버리고 엄마에게 양육권을 양보했다. 그래서 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썩혀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늘 원망스럽다. ‘ 자식을 낳았으면 자식을 책임져야 할 것 ’이 아니냐고 늘 마음속으로만 외치곤 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멍한 표정으로 학교에 가고 있는데, 누가 ‘ 어? 정원아! ’하며 내 등을 친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유진이다.
“어. 왜?”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표정의 유진이.
“왜?”
“몇 년 친구인데 네 컨디션도 모르겠냐? 얼굴에 써 있잖아, ‘으아아- 나.오.늘.기.분.별.로.다!’ 라고.” 라고 말하는 유진이의 능청스런 말에 그만 웃음이 나고 말았다
“그냥 기분이 별로네, 내가 저번에 말해줬지? 엄마가 몇일 전에 만든 작전. 오늘 아침 그 작전에 장단 맞추자니 괜히 우울해져서.”
“알겠다! ‘가난은 죄다’같은 심오한 거 생각한 거지?”
역시!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한 15년 친구라 그런지 정확하군. 이거 뿌듯한 걸?
“뭐, 그런거겠지”
“그런 생각 하지 마, 왜 자꾸 널 몰아세우고 그래….”라며 걱정스레 말하는 유진이에게 ‘고맙다. 노력해볼게’라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2학년 입학 첫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교실이 어김없이 ‘난장판’이 된다. 모두가 미친듯이 잠수한다. 질문의 바다로!
“야, 너 잘생겼다- 작년에 1학년 몇 반이었어?”
“너 나 본적 있지? 왜에, 나 1학년 때 1반 반장이었는데. 모르겠어?”
“근데 네 옆자리, 쟤 말이야 쟤. 여자 친구야? 이름이…. 유진이라고 했던가?”
“이유진인가 뭔가 쟤랑 매일 붙어 다니던데 진짜 안 사귀는 거야 너네?”
쏟아지는 질문에 파묻혀 죽을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 그런 덧없는 질문을 계속 물으려는 걸까? 유진이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선수 쳐야만 한다.
“시끄러워. 꺼져.”
난 유진이를 핑계로 한시라도 빨리 저들에게 화를 내고 싶었던 것 뿐이었는지도. 유진이가 ‘말이 심했어’라는 신호로 내 옆구리를 꼬집는다. 어쩔 수 없다. 난 성격이 그리 좋지 않으니까. 학기 초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벌어지는 이 난장판을 난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난 매번 참지 못하고 화를 냈는데, 언제나 내가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면 상대방도 당연히 그런 태도를 보이곤 했다.
“뭐야? 얼굴 좀 괜찮 길래 말 걸어줬더니 뭐?”
“이거 얼굴만 곱상하지 완전 기분 잡치는데 선수잖아?”
“야, 너네 엄마 아빠 이혼했다며-, 이혼 가정에서는 분위기 망치는 기술만 배우나보다?”
“뭐 되는 것도 없는 게 말을 그런 식으로 해?!”
나는 슬슬 무감각해지기 시작했으므로 상대하기가 귀찮아 지는 만큼 더 이상 화나지도 않았다.
‘어디서 개가 짖나보다’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계속 앞에서 쫑알대는 그 여자아이들에게 슬슬 마지막 종지부를 찍는 말을 해야 했다.
“나더러 어쩌라고. 알게 뭐야! 그냥 꺼져달라니까?” 라고.
“뭐, 뭐야?!”
나에게 달려들 태세를 보이는 그 아이를 잡아 세운 건 다름 아닌 어떤 선생님이었다. 아마도 이 반의 담임이겠지.
“학기 초부터 사람 건들면 쓰나, 미인은 웃어야지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있으면 안 되잖니?”
담임으로 보이는 그 선생님이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아이에게 말했다. 그 아이는 양심은 있는지, 얼굴이 벌게져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그 선생님은 자신이 담임이라며 여러 가지 소개를 했다. 역시나. 담임일줄 알았어.
정상 수업 후. 종례시간이 찾아왔다. 담임선생님께서 말했다.
“서정원. 정원이가 누구니?”
나는 말없이 손만 들었다.
“그래 정원아, 작년 12월 급식비가 미납이라네?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내야한다고 하는구나, 얼른 내도록 해라.”
오늘 아침 시비를 건 그 여자아이들 중에 한 명은 바로 내 뒷자리였는데, 그 여자아이가 작년 12월 급식비가 미납이라는 말을 듣고,
“작년 걸 지금까지 안내고 대체 뭐 한거야? 역시 이혼한 집이란….” 라는 말과 함께 나를 향해 비웃는 것을 듣고야 말았다. 머리 속이 하얘져서 내가 송두리 째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영혼이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영혼은 내 얼굴 앞, 내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비웃으면서, 곧 눈을 흘기면서 말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널 그렇게 보고 있는거야, 이혼 가정의 가여운 아이야.’라고…. 나는 내 필통에 있는 칼을 꺼내 손목을 긋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나는 살고 싶었으므로.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온갖 자기합리화를 동원하여 산소호흡기를 만든 후 억지로 뛰고 있는 내 심장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무시해야 한다. 나는 살고 싶으니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지만, 나는 살고 싶으니까. 바보같게도. 점점 내가 미쳐가는 것 같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아니냐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당신! 한번 내가 되어봐. 한번만 바꿔서 살아보자고. 옷이 마음에 드는게 없다고? 신발은 메이커 있는 것 사고 싶은데 부모님이 안 사주신다고? 핸드폰이 없어서 짜증난다고? 영화 볼 돈이 없어서 창피하다고? 쉬는시간 마다 매점에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간다고? 오늘 급식은 맛이 없으니까 그냥 매점에서 라면을 먹겠다고? 부모님께서 용돈을 올려주지 않아서 부모님이 너무 싫다고? 복에 겨운 소리는 더 이상 그만하라! 옷 살 돈이 없어서 몇 년간 계속 쓰고 있는 나는? 메이커는 커녕 5000원짜리 시장 표 신발도 조르고 졸라야 겨우 살 수 있는 나는? 핸드폰은 커녕 집전화도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나는? 영화 보러 가는 건 불가능 한 일이고, 비디오 빌려 보는 것도 엄청 눈치를 봐야 하는 나는? 쉬는 시간 마다 매점은 커녕 가까운 마트에서 과자 한봉지 사는 것도 한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인 나는? 급식비가 자꾸 밀려서 급식 먹는 것도 영양사 아주머니께 눈치뵈이는 데다가 하루에 2500원씩이나 하는 급식이 너무 아까워서 아무리 싫은 반찬이라도 결국엔 남기지 않고 다 먹게 되는 나는? 용돈은 바라지도 않고, 준비물 사는 돈 받게 될 때마다 엄마에게 죄송하기만 한 나는? ……. 오늘 초면인 아이의 비웃음 하나 가지고 이렇게나 망가져가는 나. 이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에겐 죽음이 어디 여행을 가는 것처럼 너무나 친숙해져버린 생각이 되어있었으니까.
종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진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원아. 걔가 한말 신경 쓰지마, 정신연령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응? 알았지? 그렇게 싸우고 싶어서 환장한듯한 애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니잖아, 정원아. 부탁이니까 그냥 아무 생각 말고 잊어버려, 나는 네가 피눈물을 흘릴것처럼 아예 얼어버리는 널 볼때마다 너보다 2배로 큰 상처를 입을 것만 같으니까. 응?”
“…….”
유진아. 넌 모를거야……. 너희 집은 화목하잖아? 넌 모를 거라구, 이혼한 가정 속 외아들의 비참함을, 급식비 하나 못 내서 비웃음을 사고야 마는 절망감을. 틀림없이 넌 모를 거라구.
유진이의 ‘잘가’라는 인사를 뒤로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방 거울 앞에 섰다.
‘내가 뭘 잘못했지?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내게만 이러냐구. 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저녁 7시. 겨울이라 그런지 밤11시인 것처럼 새까만 밤하늘이 창문에 그려졌다.
“정원아, 엄마 왔다-”
“다녀오셨어요.”
“오냐.”
나는 다소 퉁명스럽게 ‘엄마.’하고 불렀다. 엄마는 무슨일이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작년 12월 급식비가 아직 미납이래요.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내야한다구요.”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시더니,
“비정규직은 어떻게 먹고살라고 그렇게 달마다 돈을 걷는지 원……. 돈 안내믄 미납이라고 세상천지 알리고 싶을 것이다. 얼른 내게 할라꼬. 신경쓰지 말거라 아가.”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벌써 작년일 이라구요. 지금까지 미뤄두시면 어떡해요, 제가 오늘 얼마나 창피했는지 아세요?”
마음속에 품어둔 말이 탈출하다.
“…….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 아가?”
“아니요. 없었어요.”
“없기는 뭐가 없어야, 얼른 엄마한테 말해봐라. 응?”
“……. 그만하세요! 이제 작작 좀 하시라구요! 통화료 하나 때문에 아침마다 그 작전 장단 맞추는 것도 짜증나고, 이혼 당하면서 아버지께 위자료 한 푼 못받은 둔한 엄마가 정말 싫어요! 싫다구요!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제 양육권을 고집하셨어요? 이럴 거면 아버지께 양육권을 양보하셨어야죠, 자식 책임 못 질 거면 낳질 말았어야죠!! 이젠 이런 가난한 생활 때문에 미칠 것 같다구요. 알아들으셨어요? 미치기 일보직전 이라구요!”
“찰싹.”
잠시 고요해진 정적을 가르는 엄마의 손찌검.
“뭐여? 죽기 살기로 악착같이 내 몸 바쳐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뭐라고? 자식 책임 못질거면 왜 낳았냐고? 사지 멀쩡한 놈으로 낳아줬더니 뭐라고? 내가 언제 너보고 돈 벌어 오랬냐? 공부하지 말고 밥 굶고 일해서 돈 벌어 오라 그랬어? 이 바보같은 자슥아, 내가 언제 너 안책임지고 너 죽일라고 설쳤더냐? 이것에 복에 겨워 갖고……. 어디서 엄마한테! 부모가 자식 책임져주면 됐지, 출세라도 시켜줘야 돼냐? 니가 지금 한말. 그게 애미한테 할 소리여?! 어?!”
엄마는 급기야 눈물을 글썽이셨다. 엄마는, ‘내가 죽어야제…. 내가 미친년이제….’라고 연신 중얼거리며 방에 들어가셨다. 금새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못난 아들이다. 살아생전 나만 보고 살아오신 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꽂앚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죄송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그럴 면목도, 그럴 자격도 없다. 이런 날에는 잠이 들 때까지 자기 혐오에 시달리곤 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말만 되뇌이며.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지금까지도 엄마와 얘기 한번 하지 못했다. 말 거는게 얼마나 어려운 거라고…. 나 자신이 너무 밉다.
종례시간. 담임선생님께서는 몇 일전부터 계속 똑같은 얘기만 하신다. ‘자살하지마라, 담배피지마라, 놀지 말고 공부해라…….’ 어제 종례시간에는 자살하고 싶은 사람? 하며 손을 들라고 했다. 기가 막혀서 피식, 하고 웃었는데 나는 그 날 교무실로 불려가 야단을 맞아야만 했다. ‘선생님이 우습게 보이냐’는 말만 계속 들었는데, 정말 지겨웠다. 자살이 장난도 아니고, 손들라고 해서 손들 아이가 어딨냐고. 하는 생각으로 기가 막혀서 웃었는데 불려가서 그렇게 혼나야 한다니. 억울했지만 귀찮기만 했으므로 반성하는 척하며 모범생을 연기했다. 지금의 담임선생님뿐만이 아니다. 그저 의무감으로만 뭉쳐진 테엽으로 감긴 인형처럼 입만 열면 저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것 같은 선생님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때, 행정실에서 본 적이 있는 직원이 담임 선생님께 달려와 쪽지를 건네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쪽지를 보고 바로 나를 부르시더니,
“정원아. 너희 어머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구나! OO 병원으로 어서 가보렴!”
“……?!”
믿겨지지 않았다. 하늘에서 바위가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나를 짓누르는 기분.
“정원아, 정원아!”
…유진이의 목소리.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병실이었다.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정신을 잃었었나 보다.
“드디어 일어났네, 몸은 괜찮아?”
“유진아……. 엄, 엄마는?”
“……. 그게, 교통사고 후에 차바퀴가 너희 어머님의 다리를 밟고 지나갔나봐. 그래서….”
“괜찮으니까 얼른 말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의 생사가 정해지는 듯 숨이 가빠져왔다
“…이제 다리는 마비되어서 쓰실 수 없을 거래.”
“…!! 가해자는? 어디있어? 어디있냐고!”
내가 병실을 뛰쳐나가려 하자 유진이가 ‘정원아,’하고 나를 붙잡는 것이었다
“야 이유진. 네가 왜 울어….”
“정원아…. 너희 어머님 뺑소니 당하신거래…….”
유진이의 말을 듣자 하늘에서 떨어진 바위 정도가 아니라 이번에는 하늘 전체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나를 무너뜨릴 것처럼 악랄하게.
“…….”
나는 갑자기 나 자신도 놀라울정도로 지나치게 침착해졌다.
“엄마는 지금 어디 계셔?”
“중환자실….”
“가자.”
중환자실에 가보니 엄마는 산소 호흡기에 목숨을 의지하고 계셨다. 엄마에게 심한 말을 해서 죄송했다고 말씀드리지도 못했는데…. 산소 호흡기를 통해 숨을 쉬고 있는 엄마를 보자니 내 심장에 바늘이 무수히 꽂히는 것처럼 괴로웠다.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목숨을 건진 것도 기적인데 정신 멀쩡한 것만 해도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리가 차바퀴에 밟힌 모양이라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하겠고, 수술을 하게 되면 다리를 절단할 필요는 없어지겠지만, 다리가 마비되어 있으므로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술비 700만원에 입원비 약 200만원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으니 내일부터라도 당장 알바를 시작하고 친척 분께 부탁을 해서라도 1000만원을 준비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났다. 어째서 목격자는 나타나질 않는 건가. 정말 그 뺑소니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단 말인가? 내가 지나치게 비관적인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틀림없이 엄마의 그 뺑소니 사고 현장에 목격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 현장을 목격했으나 귀찮은 마음에 모르는 척 무시하고 자기 갈 길 가버린 거겠지. 사고 당시, 엄마가 바로 병원에 갈 수 있었더라면 다리가 마비되는 일 만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내 발목을 잡은 것처럼 떠나가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나 이기적인 사람이 많게 되었다니. 하지만 나의 이 억측이 틀린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까지 우리 주위에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하루 하루를 살아온 나니까.
하루 종일 엄마 옆에 앉아 엄마를 간병하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 돈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엄마의 화장대 서랍에서 통장을 하나 발견했는데, 충격적이었다. 자그마치 2000만원 가량의 돈이 저축되어 있는 것이다. 날짜를 미루어보아 정확히 아버지와 이혼 했을 때부터 모아온 듯하다.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나 많은 돈이 저금되어 있는 걸까. 얼마나 절약하며 사셨길래 이렇게나 많은 돈이 모이게 된 걸까. 통화료 그거 얼마나 한다고 아침마다 그런 작전에 장단을 맞춰야하냐는 식으로 투덜대던 옛날의 내가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나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엄마를 만나러 갔다가 의사선생님께 수술을 하겠다며 돈을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문서작성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을 새가며 몇 백장의 문서를 작성해야했지만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밤을 꼬박 새가며 일해도 많이 벌어야 고작 일주일에 15만원.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다. 딱히 보상금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가해자를 만나고 싶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우리 엄마를 친 거냐고, 사람을 차로 받아나고 어떻게 그리 도망가 버릴 수가 있었느냐고 당장이라도 묻고 싶기 때문이다.
한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보니 유진이었다. 유진이는 바로 옆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주 집에 오곤 했다
“아르바이트 중이야?”
“응.”
유진이는 과일 주스를 건네면서, ‘커피는 몸에 안 좋으니까 과일 주스라도 마시라고 사왔어’ 라고 말했다
“고마워, 들어와. 방 꼬락서니는 네가 늘 봐왔다시피 엉망이지만.”
“알어. 그래서 내가 늘 네 방을 대신 치워주곤 했었잖아.”
내가 ‘그랬지. 그것 참 그리운걸?’ 하고 말하자 유진이와 나는 마주보고 실컷 웃었다. 유진이는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역시 엉망이네?’하며 웃었다. 그리고 책상에 어질러져 있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으며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유진이에게 과일주스를 컵에 부어 건네며 말했다
“매번 도움만 받고. 정말 미안하다”
“괜찮아, 새삼스럽게 뭘. 그건 그렇고 너희 어머님은 어때?”
“의식은 돌아오셨어, 엄마 통장에 든 2000만원 중에 1000만원을 빼서 수술을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나중에 너 커서 쓰라고 모아둔건데 그걸 왜 쓰냐’고 되려 호통을 치셔서 식겁했다니까.”
“그래도 수술 하게 되셔서 다행이다. 뺑소니 범인은?”
“못 찾았어. 목격자도 안 나타나고….”
“큰일이네.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1인 시위? 귀가 솔깃했다.
“1, 1인 시위라고? 뭐 어떤식으로?”
“음, 예를 들어 ‘뺑소니 범인은 어서 자백해주세요-’하고 크게 적은 표지 판같은 걸 목에 걸고 하루 종일 서있으면 되려나? 바보가 아닌 이상 범인이 자기 발로 자백할 리는 없을 것 같지만.”
“…….”
유진이의 그때 그 말을 듣고난 후 좀 엉뚱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이틀 째 엄마가 사고 난 장소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런다고 해서 범인이 자백할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목격자만이라도 연락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2006년 12월 21일 오후 4:00쯤 교통사고를 낸 뺑소니 범인은 제발 자수해주세요’ 라고 크게 쓴 후, 남은 부분에 ‘목격자분은 여기로 연락해주세요→010-XXXX-XXXX’ 라고 쓴 종이를 붙인 우드락을 목에 걸고 1인 시위 중인데, 호소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수막보다는 동정심을 부추기기 때문에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단지 흠이 있다면 장난전화가 많이 온다는 것과, 사람들의 시선이다. 모두가 ‘참 별짓 다 한다’라는 눈빛으로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목격자가 연락 해줄 때까지는 1인 시위를 계속 할 생각이다. 아르바이트 할 시간이 없어서 아예 밤샘중이긴 하지만, 나를 위해 몸을 바쳐가며 여지껏 힘들게 살아오셨던 엄마를 우해서라도 나는 더 버텨내고 말것이다.
저 멀리서 누군가 “야! 박 정원!”라고 크게 외치며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유진이었다.
“네가 여길 어떻게….”
“어째 자꾸 집에도 없고 휴대폰도 안 받는다 했지…. 그냥 우스갯소리로 말한 ‘1인 시위’에 예민하게 반응하더라니-”
“말릴 생각 마, 난 당분간 계속 이 1인 시위를 할 생각이니까.”
“누가 말린 대냐? 언제는 내 말 들었고? 어떻게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할 수가 있어?”
“미안해. 말릴 것 같아서 그랬지.”
“그건 아네, 당연하잖아! 네 얼굴 좀 봐, 저녁때는 계속 1인 시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새가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네 꼴이 말이 아니잖아. 몸 좀 아껴가면서 하라구. 네 맘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런다고 너희 어머님 다리가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 너희 어머님께서 이런 걸 바라실 것 같니? 보는 나는 정말 안쓰러워 죽겠어!”
“시끄러워! 너야 모르겠지, 난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심정 이라구! 너와는 관계없잖아. 신경 꺼줘.”
“…….”
유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그냥 가버렸다. 유진이는 나에게 화가 난 것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평소 같았으면 바로 유진이를 만나 미안했다고 사과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유진이가 싫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유진이를 볼 면목이 없다. 나는 두 번씩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심한 말을 한것이다. 나는 정말 몸쓸 놈이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일주일 동안 유진이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제대로 화가 난 듯 하다. 예전 같았으면 내 마음을 꾀뚫어보고 괜찮다며 날 토닥여줬을 테니까. 이런일은 처음이라 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조차 못 잡고 있다. 그렇다. 나는 굉장히ㅡ 무능력하다.
유진이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하니 1인 시위도, 아르바이트도, 간병도. 모든게 두배로 힘든 것 같았다. 1인 시위가 정확히 3주째인 오늘, 이제는 1인 시위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과, 내일은 유진이에게 먼저 말을 걸어 사과를 해야 겠다고 결심한 순간, 유진이가 내 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유진이의 뒤에 우리 반 아이들 전체가 뒤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유진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라고 물었다.
유진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놀랬지? 내 15년 친구님께서 홀로 외롭게 1인 시위하고 있는 꼴을 어떻게 보겠냐. 2주 동안 우리 반 아이 모두를 포섭했지! 물론, 학기 초 너에게 시비걸었던 아이는 결국 설득시키지 못했지만.”
나는 놀라워서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유진이는 ‘얘들아, 촛불시위 개시!’라고 말하며 반 아이들에게 초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유진이는 2주동안 내 사정을 애기해가며 우리반 아이들을 설득해 반 규모의 촛불시위를 준비했던 거였다.
나는 걱정스레 유진이에게 물었다.
“촛불 시위, 마음대로 여기서 해도 괜찮은 거야? 불법 아니야?”
“걱정 하지 마, 이미 서류 낼 건 다 냈고 허가 받았으니까. 곧 TV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구!”라고 유진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을, 유진이가 해낸 것이다.
“2주 동안 말도 안 걸고 그래서 미안해, 놀래켜 주고 싶었거든. 어때, 2주 동안 너에겐 영원한 친구. 내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
“그래, 그래, 그래….” 나는 유진이에게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코가 시큰해질 정도였다.
“그래야지, 짜식.”하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유진이, 박수를 쳐주는 반 아이들. 나는 너무나 행복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시위 허가 받는데 얼마나 고생 했다구, 몇 일 동안 계속 졸라가며 허가 받았어. 사람이 왜 그렇게 깐깐한가 몰라- 정의를 실현하는 것 뿐인데 말이야.” 라며 유진이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가장 먼저 내가 초에 불을 붙였고, 유진이에게 그 불을 옮겼다. 그리고 반 아이들 하나 하나의 초에 불빛이 옮겨갔다.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에 이렇게나 많은 불빛들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유진아, 고맙다….”
“고마우면 앞으로는 혼자서만 짐을 지려고 하지마. 지치고 힘들 땐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으니까 세상 앞에 고개 숙이지 마, 기죽지 마, 포기하지 마.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주는대로만 받는 건 굉장히 억울한 거라구. 네 곁에는 내가 있고,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나 많은 빛을 가진 ‘우리’가 있다고.”
“응….”
우리가 촛불 시위를 시작한지 이틀 만에 TV 뉴스에 출연했고 온갖 잡지와 신문에도 실리게 되었다. 1인 시위로 시작한 것이 반 규모 촛불 시위로, 그리고 학교 전체 촛불시위로 발전했고 각지 뺑소니 피해자도 촛불시위에 대거 참여했다. 재밌는 사실은, 학교규모 촛불시위로 발전시킨 장본인은 학기 초에 12월 급식비를 아직도 안 냈냐며 비웃었던 그 여자아이였다. 사실 자기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힘이 되 주고 싶다면서. 그것 또한 유진이가 반 규모 촛불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그 아이를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였다.
“춥지? 이거 먹어가면서 해-”라며 학기 초, 나를 비웃었던 그 여자 아이가 우리 반 아이 모두에게 코코아를 사주었다
나는 “고마워. 정말 개과천선이네- 12월 급식비를 아직까지 안냈냐면서 비웃더니.”라고 다소 짖궂게 말하자 ‘이젠 그 얘기는 그만 하라니깐-’하며 그 여자 아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진이가,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도 네 이름을 모르네, 이름이 뭐야?”라고 묻자 그 여자 아이는 ‘박선영이야’라고 답했다. 유진이는 나와 박 선영을 번갈아 쳐다보며 ‘그럼 너네 똑같은 성이네?’라고 말하자 반 아이들 전체가 즐겁게 웃고 있는데, 우리 반 어떤 아이가 한 남자를 데려와 이 분이 목격자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다. 유진이와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 남자는, 나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저, 정원아….”하며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버지….” 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엄마가 뺑소니 당하는 그 현장을 본 목격자가 몇 년 전 엄마와 이혼 후 연락이 끊긴 아버지였다니. 내 머릿속이 하얘져 있을 때, 유진이가 조용히 ‘정원아, 침착해야지’하고 말하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렇다. 침착해야했다. 아버지 이전에 엄마가 뺑소니 당한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아버지, 정말 뺑소니 목격자이신거죠?”
“그래…. 하지만 그 피해자가 네 엄마일줄은 몰랐었단다….”
“…. 차번호는요? 아세요?”
“기억나지 않는구나. 하, 하지만 범인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지금 바로 경찰서에 같이 가시죠. 몽타주 작성해봐야죠.”
“그러자꾸나.”
나는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반 아이들을 해산시키고 아버지를 데리고 유진이와 나는 경찰서로 향햇다. 경찰 측은 몽타주 작성 후 뺑소니 범인 수배령을 내리면 범인은 곧 잡힐 것이라고 했다.
이제 이 문제는 해결되어 가고 있는 것 같고, 아버지와의 ‘대화’가 시급했다. 나는 경찰서에서 몽타주 작성을 끝낸 후 서로 헤어지려 할 때 아버지를 붙들고 말했다. ‘아버지. 하고 싶은 말과 묻고 싶은 말이 많아요. 내일 이 시간 이 경찰서 앞 현관에서 만나는 게 어때요?”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시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나는 ‘그럼 이만.’하고 일부러 딱딱하게 말한 후 유진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유진이가 걱정스레, “내일 만나 뵈어서 뭘 어쩌려고?”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일단 엄마와 이혼한 이유를 물어볼꺼야.”라고 말했다.
“몰랐던거야?” 유진이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응. 어리다는 이유로 나에게 이유조차 말하지 않고 이혼하다니. 그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모르는 걸까?”
“…그래서.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는 거니?”
“새삼스럽게 원망은 무슨…. 그냥 나 자신이 싫어지더라고. 나 자신만을 용서할 수가 없는 거야,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어.”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넌 정말 좋은 녀석이라고. 이제 널 몰아세우는 건 그만해.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라고. 언제나 네 곁에 있어줄 테니까.”라고 유진이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나는 괜히 어색해서, ‘어째 우리 연인 사이 같은 말투다?’라고 웃으며 말하자 유진이가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마!’하며 내 등을 세게 쳤다. 유진이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왠만 하면 아버지를 용서해드려, 그게 널 용서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잖아?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어?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봐. 건투를 빈다!”하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다음 날, 나는 아버지와 만나 한 공원 벤치에 앉았다. 몇 년만에 재회하는 거라 어색해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왜 엄마와 이혼하신 건가요’하고 묻자, 아버지는 착잡한 표정으로 자세한 사정을 얘기해주었는데,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나는 계속 궁금 했던 ‘여태 어디서 뭘 하고 사셨어요’같은 질문을 던졌다. 물론 대답은 갈수록 놀라웠다. 나는 아버지께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내 폰에 번호를 저장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사정은 대략 이러했다. 아버지에게 어떤 젊고 예쁜 처녀가 유혹하더니 몇 번 만난 것 뿐인데 너무나 사랑한다고, 결혼해달라며 매달렸단다. 아빠는 순진하게도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해달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고 그 여자에게 속아 잘 살던 엄마와는 이혼하고 그 여자와 재혼한 것이다. 이유가 이러했기 때문에 당시 10살이었던 내가 충격 받을까봐 말없이 이혼을 한 것이고, 양육권을 아버지가 가지려 했지만 엄마가 양육권을 양보하지 않으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양육권을 양보했단다. 그리고 엄마와 이혼 후 그 여자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명의로 돌려놓고, 이혼을 하자고 악을 써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나. 나와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미안한 마음에 도저히 만나러 갈 수 없었다는 사정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고 기가막혔지만,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도 이 사실을 전했다. 얘기를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엄마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싫어져서 이혼하려는 줄 알았더니….’하며 입술을 깨무셨다. 역시 아버지를 유혹한 여자가 있었을 줄은 모르셨나보다. 엄마에게 아버지에 대해 다 얘기한 후 병실을 나오려는데, ‘정원아, 나는 이제 모든 일은 너에게 맡기 마’라는 알수 없는 말을 하셨다.
유진이 에게 아버지와 이었던 일을 털어놓고,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물었다. 유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거야?”
“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미 네 마음에선 모든 결정이 끝났을 텐데.”
“너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난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았다구.”
“그래? 그런데 ‘너도’라니?”
“엄마가 오늘 나한테 ‘모든 것은 너에게 맡기마’라고 말씀하셨거든.”
유진이는 ‘과연!’하고 탄성을 지르며 흥미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나도 너희 어머니 말씀에 동감해’라고 말했다.
몇일 뒤, ‘몽타주도 그려 범인 수배령도 내려졌으니 촛불시위는 이만 끝내자. 지금까지 고마웠다’라고 말하고 아이들을 해산시키려는데, 갑자기 선영이가 뛰어오더니 ‘만세-’하는 것이엇다. 유진이가 대체 왜 그러냐고 묻자 선영이는 말했다.
“뺑소니 범인이 잡혔대!!”
“뭐?!”
“뺑소니 범인이 잡혔대!! 금방 자수했다나봐!”
그 순간 지금까지 나의 절망적인 순간들, 고생했던 나날들, 유진이가 내게 격려를 해줬던 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휴대폰에 저장된 아버지의 폰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아버지는 ‘그래, 정원아. 무슨 일이니?’하고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했다. ‘아버지, 범인을 잡았어요!’ 아버지는 정말 축하한다며, 다행이라며 우는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복받친 감정으로, “아버지 덕분이예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네가 고생한 덕분이지 내가 힘쓴 건 하나도 없다며 그런 생각은 하덜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 때 내 마음에 서 이미 결정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깨달음을 실천할 때다.
“아버지, 제가 용서해 드릴테니까 우리 같이 살아요!”
‘뭐라고?’
“같이 살자구요, 엄마랑, 저랑, 아빠랑. 셋이서요!”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아뇨. 충분히 자격 있는걸요. 이혼하셨어도 아버지는 영원한 저의 아버지니까.”
‘정원아….’
“이제는 행복하게 살아야죠, 이렇게 모두를 미워하며 살수는 없는거잖아요, 가족은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거잖아요.”
‘…….’
“부모는 자식이 뉘우치지 않아도 자식을 이미 용서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부모만 그러라는 법 없잖아요. 제가 아버지를 용서 할테니, 우리 가족, 이제 서로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는 일 밖에 남지 않은 거잖아요. 가족은 함께 지내야죠. 예? 같이 살자구요…."
‘정원아.’
“네?”
‘내가 정말 필요한거니?’
“그럼요.”
‘아버지로서?’
“당연하죠.”
‘그럼 나도 네가 아들로서 필요하니 내가 아버지로서 살아가도록 하마…. 우리 서로 용서하고 웃고 울고 화내면서…. 가족으로서 똘똘 뭉쳐 서로 사랑하며 살자꾸나…….’
“네……. 내일 당장 엄마랑도 만나서 얘기 하시고 그러세요,”
‘그러마. 내가 마다하지 않을 일이 어디 있겠니….’ 라며 흐느끼시는 아버지. 동시에 내 코가 싸해짐을 느꼈다. 용기 하나로 몇 년동안 내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이뤄내고 만 것이다.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나는 예전처럼 같이 살게 되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것 같아 기쁘기만 했다. 그리고 뺑소니 범인은 재판에서 감옥수감 5년형과 피해자에게 보상금 200만원을 줄 것을 선고받았다. 유진이가 힘써줬기에, 마침 그 사고 현장을 목격한 아버지가 있었기에(하지만 아버지는 사고 현장 목격 당시 무시한 것이 틀림없다. 이 점이 계속 명치 끝에 매달려 내려가질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니까. 이랬든 저랬든 아버지니까. 그리고 TV 뉴스를 통해 그 사고 피해자가 자신의 이혼한 전처였고 1인 시위 장본인은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음에도 내가 바로 목격자라며 나서준 것이 고마웠으므로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다짐했다.) 가능했던 일이었다. 엄마는 다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도록 계속 병원을 다니며 물리치료를 하고 계시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꾸준히 물리치료를 계속하면 다리의 상태가 나아질 지도 모른다며 격려해주었다. 또, 꿈도 없이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차있던 내게 ‘자원봉사자가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자’라는 꿈이 생겼다.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나 행복하다. 혹시 나에게 ‘꿈이 목숨보다 중요하냐’며 퇴짜를 놓는 사람이 있다면, ‘꿈이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꿈이 없으면 뭘 보고 살아갈 텐가? 꿈이 있기에 내가 있고, 꿈이 있기에 인류는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라고 반문할 것이다.
처음엔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아버지의 재산만 믿고 호화찬란한 사치를 누리며 살던 첫 번째 인생. 아버지가 엄마와 이혼한 후 가난을 죄라고 기피하는 어둠으로 다시 시작한 나의 두 번째 인생. 아침을 두려워했고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혐오만을 계속하던 나에게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말텐가?’라고 말하며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유진이로 인해 수많은 성냥과 초가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불빛’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촛불 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한 불빛 어둠속에서 발버둥치는 나의 이 몸짓과 빛을 향해서, 저 빛을 향해서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나의 날개 짓을 바라보며 격려해준 유진이가 있었기에 드디어 촛불을 켤 수 있었다. 촛불을 밝혀도 무엇이 변한건지 알 수 없던 나에게 불빛의 따뜻함을 일깨워준 어머니가 있어 세 번째 인생이 시작 되었고 수많은 초를 통해 불빛이 옮겨갈 수 있었다.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곧 어둠은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나의 어둠속에는 ‘성냥’이라는 유진이가 있었고, ‘초’라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내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의 숨겨져 있던 ‘불빛’과, 엄마가 내게 가르쳐 주신 ‘불빛의 따스함’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었고 무서운 속도로 옮겨 붙은 나의 불빛. 더 이상 그 불빛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것이었다. 그 것이 오히려 더 큰 따스함을 가르쳐주었다. 또한 이 불빛은 내게 행복이라는 것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의 불빛을 더 빛나게 해주는 어두컴컴한 새까만 색이 고맙다고, ‘우리’의 불빛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 차가움이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이 행복을. 그리고 행복은 내 속의 빛나는 별을 만나게 해주었다. ‘꿈’ 이라는 별을.
이제는 모든 어둠에게 외치고 싶다. 너희도 할 수 있다고. 지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적어도 남을 위해 그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축복이라고. 불빛은 언제나 네 곁에 있다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어디서나 어둠과 불빛은 공존한다고. 어둠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어둠은 불빛의 존재와 불빛의 따뜻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공존하는 것이라고.
세상엔 우리들 보다 가지지 못한 어려운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그 친구들을 위해 나의 불빛을 바친다. 힘내라, 친구여!
이름 : 김옥미
학교, 학년·반·번 : 김해중앙여자중학교 3학년 2반 5번.
공모부문 : 소설
제목 : '촛불하나'
전화번호 : 집-055-332-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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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사 님의 글을 읽어 봣습니다. 저는 詩를 쓰기 때문에 소설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때 소설을 습작한 적이 있습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약간 미숙한 듯 하면서도 탄탄한 구성과 어둠이 잇기에 밝음의 소중함이 있으며 차가움과 슬픔과 아픔이 잇기에 따스함과 기쁨의 충만함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며 서로 상반된 두 가지가 공존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만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잇다는 메시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나이 답지 않은 놀라운 성취에 진심으로 격려를 보내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