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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2월16일 한국 천주교의 대들보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으로 향년87세로 선종(善終)하였다. 정진석추기경과 임종을 함께한 마지막까지 선한마음으로 나는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다, 모두 사랑하고 용서하기를 당부를 하며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
서울 명동성당에 마련된 빈소에는 각지에서 몰려든 조문객들이 고인의 마지막모습을 지켜보기 위하여 1시간이상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명동성당과 장례위원회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리자 질서 유지 및 안전 확보를 위하여 8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나와 조문객들을 안내하며 줄을 세웠고 안전 펜스도 설치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구급차를 대기시켜 놓기도 했다.
오전6시부터 자정까지 빈소를 공개하여 조문을 받고 대성전과 지하 소 성당 등에서는 매시간 위령 기도와 추모 미사가 열리고 있다. 19일 오후에는 유리관 안에 있는 고인의 유해를 관으로 옮기는 입관예절이 진행이 되고 5일장 마지막 날인 금요일 오전 10시에는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장례미사가 치러진 다음 경기도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지에 고인의 유해가 안장될 예정이다.
출근하기 전 아침 일찍부터 모여든 사람들은 교회와 사회의 큰 어르신을 잃은 슬픔에 애통해하며 김수환 추기경의 영원한 안식을 빌고 있다. 군중 속에서 숨을 죽이며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 올 때마다 주변사람들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로 빈소에는 애통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18일 10시경 김수환 추기경과 악연이라 할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를 조문해 눈길을 끌었다. 조문을 마친 전 전두환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김수환 추기경과 개인적으로 관계가 깊다. "국민들 싸움 붙이지 말고 정계도 싸움 붙이지 말고 화합시키고 힘을 합하여 난국을 타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며 "어려울 때 (나라에) 도움이 많이 돼야 하는데 돌아가셔서 애석하다"고 말하였다.
◆ 김수환(金壽煥)추기경 연보
1922년 5월 8일(음력) 대구출생 1941.3. 서울 동성상업학교 졸업 1941.4. 일본 동경 상지대학교 입학 1942.9. 위 대학 문학부 철학과 진학 1944.1.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학업 중단 1947.9~51. 6.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전공 1956.10~63ㆍ1ㆍ독일 퀸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전공 1951ㆍ9ㆍ 사제서품 1951ㆍ9~53ㆍ4ㆍ대구대교구 인동천주교회주임신부 1955ㆍ6~56ㆍ7ㆍ대구대교구 김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겸 성의중·고등학교장 1964ㆍ6~66ㆍ5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사장 1966ㆍ 마산교구 주교 서임 1966ㆍ6 주교서품, 마산교구장 착좌 1968ㆍ4 서울 대주교 승품. 1968ㆍ5 서울대교구장 착좌 1969ㆍ4 교황 바오르 6세에 의해 추기경서임 1970ㆍ10-75ㆍ2ㆍ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1차 역임) 1970~73 아시아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4ㆍ2ㆍ명예문학박사(서강대학교) 1981ㆍ5-87ㆍ11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2차역할) 1967ㆍ71ㆍ74ㆍ80ㆍ83ㆍ85ㆍ교황청 시노두스(세계 주교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 1977ㆍ5 명예 법학박사(미국 노틀담대학교) 1988ㆍ11ㆍ명예 신학박사(일본 상지대학교) 1990ㆍ5ㆍ명예 철학박사(고려대학교) 1990ㆍ10ㆍ명예 법학박사(미국 Seaton Hall대학교) 1944ㆍ5ㆍ명예 신학박사 (연세대학교) 1995ㆍ6ㆍ명예 철학박사 (타이완Fu Jen 가톨릭대학교) 1997ㆍ7 명예 인문학박사(필리핀 Ateneo대학교) 1998ㆍ4ㆍ로마에서 열린 아시아 특별 주교시노드 공통의장대리로 참석.. 1998ㆍ5월29일. 서울대교구장 착좌 30주년. 1998. 5월 30일. 서울 대교구장직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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