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 항에 다녀와서
2009년 5월 10일 신애리
초여름 바람이 살랑거리는 바다는 파랗게 실실거리며 간지럽다고 웃습니다.
은빛 햇살을 가르마처럼 단정하게 가르며 흰 돛을 단 배들이 항구를 가로지르는 모습과 갈매기 떼가 배를 따라 이른 봄날의 하얀 벚꽃 잎 마냥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횟집 창가에 앉아 항구를 내려다봅니다.
항구는 나른한 오후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졸고 있고
항구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엄두도 못 내고 그냥 잊어버리기에 동의합니다.
항구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빨간 등대에 불을 켜고
'부웅'
길게 무적이 울립니다.
시간이 우리를 밀고 먼 바다로 가 보자 합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예측하지 말고 바람이 주는 대로 가 보자 합니다.
믿을 수 없는 것들 속에서도 유독 더 믿기 어려운 바람을 타자고 합니다.
더 이상 밀려날 곳도 없는 바다의 끝에 서서
길게 손 내민 선창가에 서서
배를 타기로 합니다.
항구는 떠나기 위한 장소이고 돌아오기 위한 이정표입니다.
마지막 기억을 위해 산자락을 바라보다가 낡아가는 기와지붕을 찾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 자리에 섰을 때
짙은 초록 숲과 낡은 기와의 흔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대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람이 재촉하는 길을 따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오늘을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벗어버리기 위한 시간을 묵묵히 수행하며 바다를 돌고 산자락의 쓸어져가는 석불 앞에 섰습니다.
지나 간 시간을 곱게 접어 석불의 어깨에 감아두고 산바람을 앞세우며 산길을 내려옵니다.
저만치 파란 남해 바다가 태평양을 향해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