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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역학(quantum mechanics , 量子力學)에 대해서
“양자 컴퓨터 정보 처리 속도 ‘디지털 컴’의 수백만 배” “양자 컴퓨터 현실화 땐 세상 뒤바꿀 수학 신세계 열려” “도청·감청 위험 원천 차단…100배 정확한 시계까지”
2012년 10월 9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프랑스의 세르주 아로슈(69)와 미국의 데이비드 와인랜드(69)로 결정되자, 국내외 언론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기사를 읽어 보면, “양자 물리학”, “양자 역학”, “광자”, “슈뢰딩거의 고양이” 등의 단어가 어김없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사를 읽어도 알쏭달쏭합니다. ‘양자 물리학 혹은 양자 역학은 도대체 뭐지?’ ‘광자, 빛 알갱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또 뭐야? 미국 드라마 <빅뱅 이론>에서도 나왔던 단어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양자 물리학과 양자 컴퓨터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거야?’ ‘여기서 갑자기 도청 차단 얘기는 왜 나오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막스 보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에르빈 슈뢰딩거, 폴 디랙 등이 20세기 초반에 양자 물리학 혹은 양자 역학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양자 역학(量子 力學)은 말 그대로 ‘양자가 힘을 받을 때 어떻게 운동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이론’입니다.
그럼, 양자(quantum)는 뭘까요? 양자는 말 그대로는 연속적인 양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양, 즉 모래알과 같은 알갱이로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런 양자의 양은 한 개, 두 개, 세 개 이런 식으로 띄엄띄엄 측정할 수밖에 없지요. 앞서 언급한 과학자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미시 세계의 요소들이 바로 이렇게 띄엄띄엄 존재하는 알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빛입니다. 과학자들은 예전부터 빛의 본성이 물결이나 소리와 같은 파동인지, 아니면 모래알과 같은 입자인지를 놓고서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빛이 파동이긴 하지만 그 에너지가 일정한 단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입자이기도 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빛 알갱이를 ‘광양자(光量子)’ 혹은 줄여서 ‘광자(光子)’라고 부릅니다.
나중에는 애초 입자로 알려진 전자, 양성자와 같은 미시 세계의 구성 요소들이 입자뿐만 아니라 파동의 성질도 가진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양자 역학은 이렇게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광자, 전자 등 미시 세계의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들이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아로슈와 와인랜드는 양자 물리학 특히 양자 광학 실험 분야에 수십 년을 바친 과학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실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앞에서 언급한 지난 100년간 축적된 양자 물리학의 이론과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수많은 실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한두 편의 기사로 이들이 노벨상을 받은 이유를 파악하는 건 당연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이번에도 단어만 몇 개 훑고서 넘어가면 20세기의 과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자,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밑바탕이 된 양자 물리학에 한 걸음 다가갈 기회를 영영 잃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크로스로드>와 ‘프레시안 books’가 색다른 ‘과학 수다’를 준비했습니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부산대학교)와 과학철학자 이상욱 교수(한양대학교)가 친절한 가이드를 자처했습니다. 이들은 가능하면 쉽게(!) 노벨상을 수상한 아로슈와 와인랜드의 실험을 소개하면서, ‘슈뢰딩거의 고양이’ ‘얽힘’과 같은 양자 물리학의 핵심 개념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김상욱, 이상욱 교수는 양자 물리학의 세계에 들어갈 각오가 되어 있는 독자를 위해서 읽어야 할 책들도 따로 소개합니다. 양자 물리학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안내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천문학자 이명현 <크로스로드> 과학문화위원과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는 이들의 말과 글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를 대화로 재구성한 멋진 책인 루이자 길더의 <얽힘의 시대>(노태복 옮김, 부키 펴냄)를 읽고서 매트 리들리는 “잠시나마 내가 양자 역학을 이해했다고 여길 뻔했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이번 수다를 읽고서 독자 여러분도 “잠시나마 양자 물리학을 이해했다고 착각한다”면 이 글의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단, 잊지 마세요! 양자 물리학의 초석을 닦았던 과학자이자 20세기의 천재 중의 천재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요즘은 양자론과 씨름하다가 잠시 기분 전환용으로 상대성 이론을 다룰 뿐이네.” 또 우리 시대의 저명한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도 이렇게 말합니다.
“양자 역학은 (…) 고전적인 논리학 규칙들이나 제정신을 가진 멀쩡한 사람들이 추론할 때 동원하는 평범한 규칙들까지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양자 역학은 괴상망측해 보였다. 그러나 그렇든 말든 물리학자들은 양자 논리라는 새로운 논리에 맞춰 자신들의 신경망을 재배선했다.” (<블랙홀 전쟁>(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이종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12쪽)
자, 여러분 머릿속의 신경망을 재배선할 준비가 됐습니까? 그럼, 이제 2013년의 첫 번째 과학 수다를 시작합니다. 과학 수다는 매월 첫째 주 <크로스로드>와 ‘프레시안 books’를 통해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2012년 노벨 물리학상의 비밀
이명현 : 먼저 이번 노벨 물리학상 얘기부터 해볼까요? 서지 아로슈와 데이비드 와인랜드가 공동으로 수상했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들도 자신의 수상을 의아해 하더군요.
상욱 : 그럴 만합니다. 국내에도 이번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들과 비슷한 연구를 해온 과학자들이 꽤 있어요. 그런데 이들도 이번 노벨 물리학상 발표를 듣고서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해요. 보통 노벨상은 한두 마디 열쇳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선구적인 업적에 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아요. 이 과학자들이 훌륭한 연구 업적을 많이 낸 것은 맞지만 해당 분야의 수많은 연구자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한 열쇳말을 독점한 이들은 아니거든요.
▲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명현 : 공식적인 수상 이유는 뭔가요?
김상욱 : 홀로 존재하는 개별 양자계(individual quantum system)를 실험을 통해서 구현했다는 거예요. 말만 들으면 뭔가 싶지만, 사실 내용은 아주 단순합니다. 20세기 초에 양자 물리학이 태동하고 나서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는 풍성한 예측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이론을 실험으로 구현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어요.
왜냐하면 양자 물리학은 기본적으로 입자 하나에 주목하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입자 하나가 이론처럼 움직이는지를 실제로 확인하는 것은 정말로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서 광자나 원자는 양자 물리학이 예측한 여러 성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입자입니다. 광자는 빛 알갱이를 가리키는 말이고요.
하지만 광자나 원자 하나를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작습니다. 원자 수십만 개를 일렬로 늘어세워 봐야 겨우 머리카락 굵기밖에 안 되거든요. 본다는 것이 빛을 흡수하는 것이라 광자는 보는 순간 사라져 버리죠.
특히, 이런 작은 양자계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격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로슈와 와인랜드가 바로 이걸 해낸 거예요. 그러니까 외부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고립된 상태의 양자계를 구현하고, 그것이 양자 물리학이 예상하는 대로 행동함을 실제로 보여준 겁니다.
훌륭한 실험인 것은 틀림이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양자계가 고립된 채로 존재하는 상태를 실제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실험을 한 과학자들이 이들뿐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심지어 본인들도 “왜 나지?” 하고 반문을 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좀 있다 얘기하겠지만, 이들의 실험 결과가 요즘 각광을 받는 양자 컴퓨터와 연결되긴 합니다.
이상욱 : 사실 역대 노벨 물리학상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몇 가지 패턴이 보이잖아요. 이론과 실험을 번갈아 준다든가 또 이론 분야에서도 천체 물리학, 입자 물리학, 고체 물리학 이렇게 돌아가면서 준다든가 이런 식으로요. 그러니 이번 노벨 물리학상을 놓고도 그런 고려가 있었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대충 이번에는 양자 물리학 특히 양자 광학 실험 분야에 노벨상이 돌아갈 차례인데, 여러 대가급 과학자 중에서 아로슈와 와인랜드가 남아 있었던 거지요. 두 사람은 나이도 1944년생 올해 예순아홉 살로 많은 편이잖아요. 더구나 방금도 언급했지만 최근에 주목을 받는 양자 컴퓨터와 연결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두 과학자가 행운의 주인공이 된 게 아닐까요? (웃음)
신의 거울, 빛 알갱이를 가두다!
이명현 : 이거 처음부터 두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을 너무 폄하한 건 아닌가요? (웃음) 지금까지 얘기만 듣고선 많은 독자들이 알쏭달쏭할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실험 얘기를 하면서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 과정에서 두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쌓았는지 판단해 보면 어떨까요?
김상욱 : 먼저 아로슈의 실험부터 살펴볼게요. 빛의 알갱이, 즉 광자의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까도 잠시 언급했듯이 우리가 광자를 보는 순간 광자는 우리 눈에 흡수되어 없어지거든요.
그런데 바로 아로슈가 이 광자를 관찰하는 실험을 고안한 거예요.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거울은 빛을 반사하잖아요? 물론 일반 거울은 빛을 반사만 하는 게 아니라 상당 부분 흡수해요. 그런데 만약에 빛을 거의 흡수하지 않는 거울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런 거울이 두 개가 있다면요?
이상욱 한양대학교 교수
한 쪽 거울에 빛을 쏜 다음에 각도를 잘 맞춰 다른 쪽에 거울을 대면 빛이 두 거울에 반사되겠죠. 그럼 빛이 두 거울 사이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합니다. 두 거울 사이에 빛을 가둬둔 셈이죠. 바로 아로슈가 이걸 한 겁니다. 이 실험을 위해서 ‘슈퍼 미러’라고 부르는 초전도체를 이용한 거울을 만들었습니다. 이 거울은 빛을 흡수하지 않고 반사만 합니다.
이명현 : 신의 거울이네요. (웃음)
이상욱 : 맞아요. 신의 거울이죠. 이 신의 거울 두 개를 각도를 잘 맞춰놓고서 한쪽 거울에 광자를 쏴요. 그럼 이 광자가 두 거울 사이를 왔다 갔다 할 거 아니에요. 이런 방법으로 아로슈가 무려 10분의 1초 동안 광자를 가둬두는 실험을 했어요. 빛이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는 걸 염두에 두면, 이 실험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이 올 거예요.
이상욱 : 그러니까 빛이 두 거울 사이를 10분의 1초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무려 3만 킬로미터를 움직이고 있는 거군요. 정말로 기적 같은 실험이군요.
이명현 : 그런데 그렇게 가둬 놓은 광자의 상태를 어떻게 관찰한 건가요?
김상욱 : 아로슈는 이렇게 거울 사이에 광자를 가둬놓고 거기에 원자를 하나 쏴 준 거예요. 그런데 이 원자는 거울 사이에 갇힌 광자와 상호 작용을 합니다. 그렇게 광자와 상호 작용을 하고 나서 나온 원자는 들어가기 전의 원자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을 거예요. 이 다른 점을 파악해서 광자의 성질을 간접적으로 관찰하는 겁니다.
이상욱 : 무슨 얘긴지는 대충 감을 잡았을 텐데요. 그런데 이 실험이 왜 대단한가 싶을 테니 보충 설명을 해볼게요. 책상과 같은 물체를 볼 때는 우리의 보는 행위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해요. 우리가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이 되어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지 않는 한 책상은 우리가 보더라도 그대로 있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책상을 보고, 그 색깔이 하얀색이나 검정색이라고 아는 것도 사실은 책상에 반사된 빛 즉 광자가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책상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의 관찰 행위가 관찰 대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거예요. 실제로 책상의 색깔은 우리가 본 대로 하얀색이나 검정색이지요.
그런데 크기가 아주 작은 빛 알갱이 하나 즉 광자는 상황이 달라요. 두 거울 사이에 갇힌 광자가 지나가는 원자를 만나 커플이 되면 둘이 상호 작용을 하면서 서로의 성질이 바뀌어요. 그리고 그렇게 광자와 커플이 된 원자가 튀어 나왔을 때, 그것의 바뀐 성질의 내용을 역으로 추적해 광자의 성질을 확인할 수 있는 거예요.
이명현 : 그런데 이 실험이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과 연결이 된다면서요?
이상욱 : 네, 양자 물리학의 정통적인 해석은 이른바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불리는 거예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이 가세해서 정립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 코펜하겐 해석에 반발해 에르빈 슈뢰딩거가 한 가지 사고 실험을 고안합니다. 그게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요.
이명현 :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거론하기 전에 먼저 개념 하나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중첩(superposition)’이요.
이명현 세티코리아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천문학자)
김상욱 : 중첩 자체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요. 목소리의 높낮이가 다른 남성 네 명이 같이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봐요. 각각의 목소리가 어울려서 하나의 화음으로 멋진 소리를 냅니다. 이렇게 소리의 파동들이 합쳐져서 또 다른 파동을 낳는 현상이 바로 중첩입니다. 이 역의 과정도 가능한데, 하나의 파동을 둘 또는 몇 개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파동은 동시에 여러 곳에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양자 물리학은 빛이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빛 알갱이 즉 광자가 중첩 상태에 있으면 마치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분명히 빛 알갱이는 하나인데, 그것이 A 장소에도 존재하고 B 장소에도 존재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거기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이 바로 코펜하겐 해석입니다.
이상욱 : 코펜하겐 해석은 광자가 A 장소에도 존재하고 B 장소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이런 식으로 설명해요. ‘광자는 A 장소에도 있을 수도 있고, B 장소에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런 중첩 상태는 깨지고 광자의 위치는 A 혹은 B 하나로만 결정된다.’
그러니까 이런 식인 거죠. 광자는 A 장소에도 있을 수도 있고 B 장소에도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그걸 확인하는 순간에 그 중 하나가 현실로 나타난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코펜하겐 해석은 우리가 살아가는 거시 세계가 아닌 미시 세계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했어요.
바로 이런 코펜하겐 해석에 슈뢰딩거가 반기가 든 거예요. 왜냐하면, 양자 물리학은 거시 세계, 미시 세계를 포괄하는 모든 세계에 대한 이론이거든요. 사실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양자 물리학의 특징을 보이는 광자, 전자 등과 같은 미시 세계의 작용으로 거시 세계가 이뤄진 것이니까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슈뢰딩거가 내놓은 게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단단히 봉해진 상자 안에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방사성 물질과 고양이를 함께 넣는 거예요. 그 방사성 물질이 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 방사선을 한 시간 안에 내뿜을 확률은 50퍼센트입니다. 만약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내뿜으면 고양이는 죽겠고, 그렇지 않으면 살겠죠.
슈뢰딩거가 코펜하겐 해석의 난점을 꼬집은 겁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누군가 확인(관찰)하기 전에는 상자 안의 고양이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두 가지 상태 모두에 해당됩니다(중첩). 그런데 생물은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 하나잖아요? 도대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가 뭔가요? 코펜하겐 해석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 상자 안의 고양이는 살았거나, 죽었거나 두 상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겠죠. 그런 고양이의 운명이 상자를 여는 행위(관찰)로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바로 아로슈의 실험이 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유사한 상황을 보여준 거예요. 결과적으로 코펜하겐 해석의 문제점과 슈뢰딩거가 가졌던 직관의 문제점도 보여주고요.
이명현 : 아로슈의 실험이 어떻게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다는 건가요?
이상욱 : 방사성 물질이 내뿜는 방사선은 전자, 중성자, 광자(X선, 감마선) 등과 같은 미시 세계의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어요. 그리고 고양이는 거시 세계의 대상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이 미시 세계의 구성 요소와 거시 세계의 대상이 결합되었을 때의 중첩 현상을 비유한 거지요.
아로슈의 실험으로 돌아가 볼까요? 거울 사이에 광자가 갇혀 있어요. 광자는 미시 세계의 구성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거울 속의 광자에 원자를 쏩니다. 원자는 광자에 비해서는 훨씬 더 큰 거시 세계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원자를 고양이에 비유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거울 사이에 가둬둔 광자는 10분의 1초(아주 긴 시간입니다!) 동안 원자와 상호 작용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광자와 원자가 서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갖는 ‘결맞은(coherent)’ 중첩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그런 중첩 상태가 파괴되는, 즉 ‘결깨지는(decoherent)’ 현상까지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실은 코펜하겐 해석이 말하는 외부의 관찰 행위는 전혀 없었어요.
물론 쏘기 전의 원자와 나온 후 원자의 상태를 비교해서 거울 사이에서 광자와 원자 사이에 어떤 상호 작용이 있었는지를 사후적으로 확인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둘이 상호 작용하는 동안은 관찰을 비롯한 외부의 어떤 개입도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아로슈의 실험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재현하면서 중요한 세상의 진실을 보여준 셈이죠.
이명현 : 세상이 원래 그렇다! (웃음)
이상욱 : 맞습니다. 아로슈의 실험은 양자 물리학의 이론이 예측한 여러 현상이 관찰자의 개입에 의존하거나 혹은 미시 세계에서나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라 그냥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아마 슈뢰딩거가 살아 있었다면, 아로슈의 실험이 자신이 고안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실제로 보여줬다고 좋아했을 거예요.
이명현 : 다음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죠. 아까 거울 사이로 쏜 원자와 나온 원자의 상태를 비교해서 광자와 원자의 상호 작용을 사후적으로 추적해서 관찰한다고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그 관찰 결과가 양자 물리학의 이론이 예측한 광자의 진짜 성질인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이상욱 : 상당히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직접 관찰이 불가능한 미시 세계의 물리 현상이 진짜인지 어떻게 확신을 하느냐, 이런 질문과 통하잖아요. 기존에 우리가 광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광자의 성질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우리는 이미 확보하고 있거든요. 광자에 대한 그런 사전 정보를 염두에 두고 이 실험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거예요
김상욱 : 사실 많은 사람은 과학 연구 결과가 어느 한 순간에 탄생하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나 뉴턴의 ‘사과나무’ 같은 건 그 상징이고요. 그런데 사실 과학 연구는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아요. 아로슈의 연구 결과도 100년에 걸친 이론과 또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실험이 축적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거든요.
그리고 이런 실험 결과를 놓고서 최소한 서너 군데에서 재확인이 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진행이 될 수가 없어요. 논문이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실렸다고 하더라도, 다른 데서 재연 실험이 이뤄지지 않아서 폐기되는 경우도 많고요.
이상욱 : 다음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지적할게요. 아로슈의 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양자 물리학이 미시 세계에서는 통하고 거시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해석은 이제 폐기되어야 마땅한 관념이거든요. 광자, 전자뿐만 아니라 원자 100개, 1000개, 1만 개 정도 수준에서도 양자 물리학이 이론적으로 예측한 효과가 나타나니까요.
그런데 아직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물리학 교과서는 ‘양자 물리학은 미시 세계의 이론이고, 거시 세계의 이론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서술을 고수해요. 왜냐하면 그게 가르치기 싶거든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보여준 아로슈의 실험 등을 염두에 두면 더 이상 이런 타협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얽힘의 신비
이명현 : 이제 ‘얽힘(entanglement)’ 현상을 알아볼까요? 이 현상은 또 다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와인랜드의 실험과 직접 연결되지요? 우선 와인랜드의 실험부터 살펴봅시다.
김상욱 : 와인랜드는 원자 한두 개를 제어하는 실험의 선구자입니다. 사실 1997년에 스티븐 추, 윌리엄 필립스 등이 (중성) 원자 한 개를 포획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때도 와인랜드가 제외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이들이 많았어요. 그들보다 먼저 전하를 띤 원자 그러니까 이온을 포획하는 데 성공한 게 와인랜드입니다.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자를 먼저 전기를 띤 이온으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서, 알루미늄 원자(Al)가 전자 세 개를 잃으면 알루미늄 이온(Al3+)이 됩니다. 알루미늄 원자를 양전기를 띤 알루미늄 이온으로 만들면 전기장을 걸어서 이 알루미늄 이온을 잡을 수가 있어요.
1989년에 볼프강 폴 등이 이렇게 ‘이온 덫’을 이용해 이온을 포획하는 방법을 구현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지요. 이번에 노벨상 위원회가 이온을 포획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더욱더 발전시킨 와인랜드의 업적을 노벨상 수상 이유로 언급한 건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둔 듯해요.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죠. 그는 이온 한 개를 포획해서 외부에서 빛으로 그것을 제어할 방법을 궁리했어요.
이명현 : 이온에 빛을 쏴 제어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김상욱 : 여기서 상상력을 좀 발휘해 봅시다. 사실 우리 앞에 놓인 책상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이 책상도 지금 스프링처럼 미세하게 진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 진동이 너무 미세하니까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죠. 이처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진동을 하고 있어요. 와인랜드가 포획한 이온도 마찬가지입니다.
덫에 가둬 놓은 이온도 실제로는 진동을 하고 있어요. 진동을 양자 물리학의 시각에서 해석하면 특정한 에너지 상태거든요. 그렇다면 이 덫에는 두 가지의 에너지 상태가 공존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선 이온 내부에서 비롯된 에너지 상태가 있겠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온을 강제로 덫에 잡아두는 외부의 힘에서 비롯된 에너지 상태가 있겠죠.
여기에다 빛을 쏴주면 이온 내부와 외부의 두 가지 공존하는 에너지 상태를 엮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덫에 이온을 하나만 넣으라는 법이 없잖아요? 또 다른 이온을 하나 더 넣으면, 이렇게 추가된 이온도 같은 식으로 내부와 외부의 두 가지 공존하는 에너지 상태를 엮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덫에 포획된 두 이온은 서로 얽히게 되요. 이 얽힘 현상은 앞으로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요. 이렇게 두 이온으로 얽힌 상태를 만들면 그걸 이용해서 양자 컴퓨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컴퓨터 언어는 기본적으로 0(꺼짐), 1(켜짐) 두 숫자로 이뤄진 이진법이 기본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온 하나가 갖는 두 가지 에너지 상태를 0, 1에 대비하고, 그것을 조작할 수만 있다면 이진법의 컴퓨터 언어를 구현할 수 있는 게 되지요. 이게 바로 양자 컴퓨터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덫에 넣을 수 있는 이온의 숫자를 계속 늘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8비트, 16비트, 32비트 컴퓨터처럼 훨씬 더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명현 : 현재까지 이온 덫에 이온을 몇 개나 넣었나요?
김상욱 : 현재까지 열네 개의 이온을 덫에 가둬놓았어요. 더 넣기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하는데, 앞으로 두고 봐야죠. 아무튼 이렇게 덫에 열 네 개의 이온을 넣어 놓고서 그것을 마치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처럼 제어할 수 있는 실험을 바로 이 와인랜드가 수행한 거예요. 어때요? 노벨상을 받을 만한가요.
이상욱 : 기막힌데요. (웃음) 우리가 앞에서 괜한 소리를 한 것 같네요. 정말로 노벨상을 받을 만하네요.
김상욱 : 네, 더 기술적인 건 어려우니 이 정도로 하고요. 이 양자 컴퓨터를 가능하게 한 양자 물리학의 현상이 바로 아까도 잠시 언급한 ‘얽힘’인데요. 일단 앞에서도 덫에 이온 두 개를 가둬 놓으면 그 두 개가 얽힌다고 했잖아요? 이처럼 얽힘은 입자 두 개에서 나타나는 정말 당혹스러운 현상인데요.
이명현 : 일단 얽힘 현상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죠.
김상욱 : 예를 들어볼게요. 여기 빨간 펜과 파란 펜이 있어요. 이 두 개의 펜은 통상적으로 물리학에서 얘기하는 상호 작용 그러니까 당기거나 밀어내는 그런 식의 관계는 전혀 없어요. 하지만 제가 이 두 개를 한 상자에 넣어요. 그럼 이 상자에 든 펜 두 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형성될까요?
내가 펜 하나를 꺼냈을 때 그게 빨간색이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파란색이어야 하는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제가 처음에 제시한 조건(한 상자 안에 빨간 펜과 파란 펜을 넣은 것) 때문에 생긴 관계예요. 만약에 내가 안대를 찬 다음에 펜 하나를 꺼내고 이 상자를 안드로메다은하에 가져다 놓아도 이 관계는 변하지 않아요.
상자가 안드로메다은하에 도착한 다음에 안대를 벗고 펜을 확인해 보니 빨간색이었어요. 그렇다면 이곳 지구에 있는 상자 속의 펜은 당연히 파란색이겠지요. 이런 관계를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자 물리학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가진 상식을 의심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게 바로 얽힘 현상입니다.
양자 물리학을 염두에 두면, 이상한 일이 생겨요. 역시 상자 안에 펜 두 개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펜은 아직은 색깔이 없어요. 단, 어느 펜이나 빨간 펜이 될 수도 있고 파란 펜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만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다른 하나가 빨간 펜이 되면 나머지 하나는 파란 펜이 되어야 하는 관계로 ‘얽혀’ 있어요.
자, 이 펜 중 하나를 안드로메다은하로 가지고 갔어요. 그래서 상자를 열었더니 빨간 펜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지구에 남아 있는 펜은 그 순간(!) 파란 펜이 되는 거예요. 반대로 지구에 남아 있는 펜이 빨간 펜이면 안드로메다은하에 있는 펜은 역시 그 순간(!) 파란 펜이 되고요. 참 신기한 일이죠? 이게 바로 양자 물리학의 얽힘 현상입니다.
이명현 : 아인슈타인이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상이었죠?
김상욱 : 맞아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세상에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어요. 그런데 안드로메다은하는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가도 230만 년이나 걸리는 곳에 있거든요. 그런데 230만 광년 떨어져 있는 두 곳의 정보가 순식간에 전달되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안드로메다은하의 펜이 빨간색이 되는 순간 지구에 있는 펜은 파란색이 되니까요.
‘그럼,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이 가능한 숨어 있는 무엇인가가 있는 거냐?’ ‘상대성 이론을 수정해야 하는 거냐?’ 이런 식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겁니다. 사실 얽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스핀’이라고 하는 양자 물리학의 개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건 독자들에게 무리겠죠?
이상욱 : 시도는 한 번 해보죠. 장회익 선생님이 스핀 대신 아주 적절한 비유를 만든 게 있는데 그걸 이용해서 제가 보충 설명을 한 번 해볼게요. 여기 금속으로 만든 단단한 공이 하나 있어요. 그런데 그 안에는 어떤 폭발 장치가 있습니다. 그 장치가 가동하면 이 공이 두 쪽으로 갈라져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간다고 가정합시다.
왼쪽으로 튀어나간 조각을 L, 오른쪽으로 튀어나간 조각을 R이라고 합시다. 이 L과 R을 놓고서 우리는 질량, 표면적 그리고 형태 세 가지를 측정할 수 있어요. 질량이 전체 질량의 반 이상의 값이면 '+', 그렇지 않으면 '-'라고 가정합시다. 마찬가지로 표면적이 전체의 반 이상이면 '+', 그렇지 않으면 '-'라고 하죠. 형태가 볼록하면 ‘+’, 오목하면 ‘-’라고 해요.
눈치 빠른 분은 알아차리시겠지만, 아까 빨간색, 파란색 비유는 바로 이 '+', '-'와 대응하는 거죠. 자, 이제 양자 물리학의 얽힘 현상을 염두에 두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게요. L 조각은 지구에 그리고 R 조각은 안드로메다은하에 있다고 생각해 봐요. 먼저 지구에 있는 L 조각의 질량을 쟀더니 ‘+’로 나왔어요. 당연히 안드로메다은하의 R 조각은 '-'입니다.
그리고 지구에 있는 L 조각의 형태는 오목해서 ‘-’예요. 역시 안드로메다은하의 R 조각은 볼록해서 ‘+’가 되겠죠. 표면적도 마찬가지고요. 여기까지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데 양자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이 지점부터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지구에 있는 L 조각의 질량을 다시 측정했더니 난데없이 ‘-’가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또 측정했더니 이번에는 ‘+’가 나와요. 반반 확률로요. 형태를 측정하고 나니 질량 값이 확정적이지 않고 확률적으로 변화하게 된 거지요.
그리고 이렇게 L 조각의 질량이 ‘+’, ‘-’로 확인이 되는 순간에 23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은하의 R 조각의 질량 역시 ‘-’, ‘+’로 바뀌는 겁니다. 마치 두 조각이 순간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그럼, 이제 형태를 재보면 어떨까요? 그 역시 마찬가지로 반반 확률로 계속 변하는 거예요. 당연히 L 조각과 R 조각이 동시에요. 이것은 질량 측정이 형태 확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죠? 아인슈타인은 이런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고전적 세계에서는 측정 행위가 물리적 속성을 바꾸는 일은 발생하지 않거든요. 아인슈타인이 양자 물리학의 비판자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양자 물리학의 성립에 엄청난 기여를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마치 두 개의 입자가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얽힘 현상을 용인하는 양자 물리학을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본 겁니다.
그래서 그는 양자 물리학이 미처 알지 못하는 숨은 변수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론적으로 또 실험적으로 아인슈타인이 불리한 것 같아요. 일단 1964년 존 벨이 ‘벨의 부등식’을 제안해요. 벨의 부등식은 얽힘 현상과 같은 양자 물리학의 현상을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이 꿈꿨던 완벽한 이론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죠.
김상욱 : 1982년에 알랭 아스페 등이 12.8미터 떨어진 곳에 놓인 서로 얽혀 있는 두 빛 알갱이가 한 쪽의 스핀이 ‘+’면 다른 쪽 스핀이 자동으로 ‘-’가 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어요. 1997년에는 니콜라스 지생이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놓인 서로 얽혀 있는 두 빛 알갱이도 똑같이 얽힘 현상을 보인다는 걸 확인했고요.
이명현 : 얽힘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보여줬군요.
이상욱 : 네, 그런 얽힘 현상이 어떻게 가능하냐? 이렇게 물어보면 사실은 뾰족한 대답이 없어요. 그냥 이렇게 답할 수밖에요. ‘원래 그렇다.’ (웃음)
도청이 불가능한 궁극의 암호
이명현 : 이 얽힘 현상은 정말로 상상력을 자극하는군요. 얽힘 현상을 이용하면 뭔가 획기적인 통신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양자 전송(quantum teleportation)이 있잖아요?
김상욱 : 네, 실제로 과학자들이 양자 전송 실험에 성공을 했어요. 1997년에 안톤 차일링거가 얽힘 현상을 응용해 거리가 떨어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광자를 전송하는데 성공했어요. 2007년에는 그 거리가 144킬로미터로 멀어졌고요. 2000년에는 <발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암호화한 사진을 보내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상욱 : 지금은 한 풀 꺾이긴 했지만 이 얽힘 현상을 이용해서 획기적인 암호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지요.
김상욱 : 지금도 군에서는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궁극의 암호 체계는 풀기 어려운 암호가 아니라 도청이 불가능한 암호잖아요. 그런데 얽힘 현상을 응용한 암호 체계는 절대로 도청이 불가능하지요. 왜냐고요? 중간에서 제3자가 암호를 가로채는 행위는 일종의 관찰(측정)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관찰을 하는 순간 애초의 얽힌 관계는 깨져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얽힘 현상을 응용한 암호 체계는 몰래 도청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도청이 불가능한 궁극의 암호 체계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실제로 등장하려면 멀었고요. (웃음)
이상욱 : 혹시 이미 군에서 개발한 거 아니에요? (웃음)
김상욱 : 글쎄요. (웃음) 어쨌든 한국에서도 군에서는 관심이 많더군요. 이제 대화를 접기 전에, 와인랜드의 업적 하나만 더 언급할게요. 와인랜드는 굉장히 정교한 시계도 만들었어요. ‘과학자가 웬 시계?’ 혹은 ‘정교한 시계를 만든 일에 왜 그리 호들갑이야’ 하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과학자 입장에서는 정말로 가슴이 뛰는 일입니다.
와인랜드가 만든 시계의 정확도가 마이너스 17승 초에요. 그러니까 0.000에서 0이 열일곱 개 붙고서 1이 나오는 겁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가 싶지요? (웃음) 그런데 이렇게 정교한 시계가 등장하면 정말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면에서 이 시계를 30센티미터 높이로 올렸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명현 : 상대성 이론을 증명한 거군요.
김상욱 : 그렇죠. 상대성 이론에서는 중력이 셀수록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그런데 이 시계를 지면에서 30센티미터 올렸더니 시간이 좀 더 빨리 간 거예요. 30센티미터의 중력 차이만큼 시계가 영향을 받은 거죠. 정확한 시계가 상대성 이론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걸 단숨에 보여준 거예요.
실제로 이런 정밀한 시계 혹은 정밀한 저울이 물리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예측했던 여러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좀 더 정밀한 시계 또 좀 더 정밀한 저울이 등장할 때마다 과학자들의 가슴이 막 뛰는 거죠. 그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과학의 난제를 해결하니까요.
이상욱 : 쭉 얘기를 하고 나니까 처음의 얘기를 취소해야겠네요. 노벨상을 받을 만한 과학자들이 받았네요. (웃음) 그나저나 우리 얘기가 독자들에게 잘 전달이 될지가 걱정입니다.
이명현 : 어쨌든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요. 양자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보어가 그랬다고 하잖아요. “양자 물리학이 쉽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양자 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려운 내용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며 쉽게 설명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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