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도솔산 찬가
김영훈(동화작가·공주교대강사)
산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유로워지기도 한다. 더구나 오늘처럼 한해가 저물어가는 섣달 세밑에 산에 오르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더욱 마음이 숙연해진다. 요즈음 들어 부쩍 산에 오르는 횟수가 많아진 것은 일상을 바쁘게 사느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없었기에 스스로를 반추하고 싶어서 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젊어서는 자연을 호흡하면서 이웃들이나 지연, 학연을 같이한 이들과 친교를 하느라 올랐던 산이었다. 또 호연지기도 기르고 건강관리를 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심(無心)의 경지로 빠지고 싶을 때는 산에 오른다. 그 중에서도 자주 찾는 산이 바로 우리 집 뒷산인 도솔산이다. 도솔산은 접근성이 좋으니 떠나느라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도심에 있는 산답지 않게 공기가 맑고 쾌적하다. 그러니 어쩌면 배재대학교 캠퍼스를 포옥 감싸고 있는 도솔산이 나에게는 대전에 위치한 몇 안 되는 산 중 으뜸인 셈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나는 아내와 함께 그 도솔산에 오르곤 했었다. 도솔산은 대전의 한 복판인 정림동, 도마동, 변동, 내동, 갈마동, 월평동에 걸쳐 있는 큰 산이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바로 우리 집 뒷산이라고 해야 더 친근감이 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대전 주변에 위치한 산이 보문산·구봉산·장태산·계족산·식장산 등 많지만 도솔산만큼 정감이 가지 않는 것은, 지척에 사는 탓에 산이 베풀고 있는 은혜를 입는 최대의 수혜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집 뒤편으로 길게 누워 있는 도솔산 기슭이 개발되기 전에는 더욱 그랬었다. 도솔산 밑에 위치한 주택에서 오래 전부터 산 덕에 나는 그 산 기슭을 호미로 파서 상추도 기르고 고추도 심었었다. 또 호박 몇 포기를 심어 애호박도 따 먹고, 그 호박을 늙혀 가을에는 자줏빛 팥을 실한 것으로 장만하여 겨울이면 죽을 쑤어 먹었던 참맛도 간직하고 있다. 아내가 쒀 주던 그 호박 팥죽 맛이 지난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추억에 함께 얹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세워지고 큰길이 뚫려 옛 정취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지만 30년을 한 자리에 산 나로서는 아직도 도솔산이 그저 정겨운 뒷산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물맛 좋기로 소문난 약수터가 몇 곳 있어 나와 아내를 유혹했었다. 그 뿐이 아니다. 울울창창한 조선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도솔산 정상의 솔향기와 군데군데 서 있는 검회색 바위, 그 틈에서 자라나는 산철쭉들,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서남부권의 넓은 뜰과 까마득히 보이는 계룡산 정상, 게다가 신선한 바람과 솔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코발트빛 하늘이랑…. 날 산에 오르라고 유혹하는 것들이 참 많다.
더구나 단풍이 곱게 물드는 철이나 진달래가 활짝 핀 봄날의 도솔산은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며 등산객들에게 절경을 연출하곤 한다. 어디 그뿐이랴! 흰 눈으로 덮인 겨울에 핀 설화도, 녹음이 짙은 여름도 도솔산은 늘 제 자리에서 더욱 아름답게 제 자태를 뽐내는 산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지인들 중에는 신도시 둔산 쪽으로 이사를 갔다가 매연에, 교통 혼잡에, 아스팔트의 냉혹함에, 또 신도시가 갖는 낯설음에 아예 그 쪽을 버리고 도솔산이 좋아서 그 품에 다시 안기는 이가 한둘이 아닐 지경이다.
도솔산은 야트막하면서도 골이 깊은 산이다. 산속을 한참 걷다보면 도시 속이 아닌 심심산골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정말 복잡한 거리에서의 부산한 삶 속에서 빠져나와 문득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 도솔산이다. 산으로 들어오는 초입부터가 그렇다. 서대전여고 교문 앞을 지나고 잠시 후 구립 ‘도솔산다목적 체육관’을 거쳐 내원사로 향하는 소롯한 길로 접어들면 공기부터가 상큼하다. 충주박씨 재실(齋室) 옆 편으로 난 길을 따라 깊숙이 산에 들어서면 나는 어느 새 산사람이 된다. 마음까지가 편안해진다. 도시와 잠깐 절연하고 그 속세를 떠난 사람처럼 마음을 비우게 된다. 게다가 바람이 불 때마다 풍경소리가 마음을 헤집는 내원사 뜨락에 도착할 때쯤이면 더욱 마음은 차분해지기 마련이다.
산새들이 우짖는 날은 더욱 그렇다. 더러는 도시에 위치한 산과는 어울리지 않게 까악까악 까마귀가 우는 날도 있지만 대개는 깟깟깟 거리는 까치 울음소리나 그밖에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는 내원사 처마에 매달린 풍경의 금송성과 묘하게 조화가 된다. 이런 도솔산에 묻히면 세상에서 묻은 때가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내를 동반한 채 산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산의 정취에 묻힌 채로 나는 아내와 잠깐 대화를 단절하고는 상념에 젖는다. 돌아보면 올 한해 역시 정말 다사다난했었던 한 해였다. 그동안 40년이 넘게 근무하던 학교에서 퇴임을 해 노년을 설계하는 삶을 시작 하는 한 해였고, 대학 강의와 충남초등특수교사 연수회에서의 ‘문학과 인생’ 강의, 전남 나주 문평초등학교에서의 ‘작가와의 대화’ 등 대여섯 곳의 특강, 대전시 평생교육원이 주관하는 글쓰기 지도사 양성과정의 출강 그리고 몇 차례의 문학 작품 심사 등은 큰 보람이었다. 어쩌면 교육자로서 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기억에 남는 일이다.
또한 소설과 동화 작품, 수필을 쓰는 작업에다가 ‘아동문예’지에 시작한 장편의 연재와 ‘제11회 김영일 아동문학상 수상’ 등은 내게 문운을 가져다 준 기쁨이기도 했다. 또 하나가 더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학습을 하겠다는 자세로 임한 1년간의 충남대학교 공자아카데미에서의 중국어 수강은 특별한 체험이었다.
가정적으로도 큰아들을 장가들여 제 살림을 차려주고 나서 마음 편히 함께 한 퇴직 동기들과의 여행도 즐거웠었다. 또한 어저께는 외손주 돌찬치를 한다고 딸 내외가 돌떡을 싸들고 다녀간 것도 큰 기쁨이다. 고향에 들려서 종산 등기를 문중 명의로 바꾸는 일에 주최가 되어 협조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90에 가까운 장모님께서 아주 정정하셔서 맑은 정신으로 과천중앙공원을 하루에 한 시간 여씩 꼭꼭 산책 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것도 자식으로서의 큰 기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백모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시어 큰 고생을 하시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 똑똑하시던 넷째 숙부님 또한 1년이 넘게 요양병원에서 어렵게 계시는 걸 보면 애처롭다. 막내 숙모님까지도 와병 중이어서 귀향을 하면 가슴이 우울해지는 것도 큰 슬픔이다. 그러고 보니 올 한 해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슬픔과 애처러움이 함께 밀려든 희비의 쌍곡선을 그린 해였다. 나 역시 어느 새 점점 노년으로 접어드는 이 나이에…….
나는 문득 상념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발걸음이 빠른 아내는 벌써 저만큼 앞서 걷고 있었다. 산에는 우리 말고도 등산객들이 참 많았다. 등산객들이 많으니 산이 주는 정취가, 여러 사람들의 어수선해짐으로 인하여 깨진 그 적막함 때문에 서운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산속의 모습은 오히려 푸짐해진다.
마침 바람이 건듯 분다. 솔향기가 묻어나는 바람이 코끝으로 파고들어 기분이 한결 더 상쾌해진다. 나는 도솔산에 오를 때마다 정말 이 산은 우리들을 품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구이나 하면서 감격할 때가 많았었는데 오늘도 역시 그런 기분이 된다. 그런 느낌으로 나는 아내를 얼른 따라잡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역시 도솔산은 찬양을 받을만한 산이라고 생각하면서….◆
김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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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희집옆에도 도솔산인데 등산 계획을 잡아야 겠네요~~
근데"울울창창한"이라고 쓰신거 혹 오타는 아닌지요..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꿀이맘, 울울창창은 산에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는 모습을 뜻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오세요.
오늘은 카페지기님의 수필 한편을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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