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永嘉) 스님의 휘(諱)는 현각(玄覺)이요, 자(字)는 도명(道明)이고, 성은 대(戴)씨이며, 절강성(浙江省) 온주부(溫州俯) 영가현(永嘉縣) 사람입니다.
어릴 때 출가하여 안으로는 삼장(三藏)을 두루 섭렵하고 밖으로는 외전에도 널리 통달하였다고 합니다.
영가 스님은 본래 천태종 계통으로 천태지관(天台止觀)을 많이 익혀서 그 묘를 얻고 항상 선관(禪觀)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천태종 팔조(八祖)인 좌계 현랑(左溪玄朗) 법사와는 동문(同門)이며, 나중에 도를 성취하고 난 뒤에도 서로 서신 왕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일찌기 온주의 개원사(開元寺)에 있으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내며 효순하기로 소문이 났으나, 누님까지 함께 지내니 두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 하여 온 사중(寺中)과 동구(洞口)에서 비방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별세하여 상복을 입고서도 누님을 떠나보내지 못하니 사람들의 비방이 더욱 심했으나 영가 스님은 전혀 그러한 데 개의치 않았습니다.
영가 스님이 천태종에 있으면서 선관을 닦고 선종과 비슷한 길을 밟았다고 기록되고 있는데, 그러면 왜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개원사 복도로 현책(玄策)이라는 선사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나이는 육십여세였습니다. 이때 그의 누님이 발 밖으로 그 노숙(老宿)을 보고,
"저 노스님을 방으로 청해서 대접했으면 좋겠다."
고 하였습니다. 영가 스님이 얼른 나가서 노스님을 청하였더니, 노숙은 들어오지 않으려 하다가 스님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방에 들어 왔습니다. 그 노숙과 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토론해 보니 자신의 견처나 노스님의 견처가 같은 점도 많이 있고 독특한 점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책 스님은 영가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의 법사는 누구인가?"
"제가 방등경론(方等經論)을 배울 때는 각각 스승이 계셨으나, 뒤에 『유마경(維摩
經)』에서 불심종(佛心宗)을 깨치고는 아직 증명하실 분이 없습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노스님은 영가 스님의 기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또 그 누님에게도 협기(俠氣)가 있음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부모와 형제에게 효순하는 일도 한 가지 길이지만, 당신은 불법의 이치를 밝히기
는 했으나 스승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 있소. 과거의 부처님들도 성인과 성인이
서로 전하시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인가하였습니다. 석가여래께서도 연등불의
수기를 받으셨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연외도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오.
남방에 큰 스승으로 혜능 선사가 계십니다. 그곳으로 가서 발아래 예배하고 스승
으로 섬기시오."
그러자, 영가 스님이
"다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실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법이 수승하신 듯하니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허락해 주십시오."
하자, 현책 스님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로서는 그대의 증명법사가 되기는 곤란하오. 지금 조계에는 육조대사가 계셔
서 사방에서 학자가 운집하여 법을 받는 터이니 만약 그대가 가겠다면 함께 가리
다."
그러나 영가 스님은 누님 홀로 남겨두고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누님이 하는 말이 "나는 다른 데 의지해서 지낼 수 있으니 나를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책 스님과 함께 떠났는데, 그때 영가 스님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그럭저럭 시흥현(始興懸 ) 조계산(曹溪山)에 이르니 때마침 육조대사(六祖大師)께서 상당(上堂)하여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에 영가 스님은 절도 하지 않고 선상을 세 번 돌고 나서 육환장을 짚고 앞에 우뚝 서 있자니 육조대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대저 사문(沙門)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서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대덕(大德)은 어디서 왔기에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
가?"
육조 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건방지게 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선상만 세 번 돌고 턱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그것을 아만심이 탱천하기 때문이 아니냐 하는 힐난입니다. 그러나 육조 스님이 영가 스님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번 슬쩍 법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 스님께서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無常)은 빠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과는 뜻이 다르므로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육조 스님이 말씀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남[生]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
가?"
이렇게 육조 스님께서 반문하시니 이것은 '네가 지금 무상이 빠르다고 하니 그 무상(無常)의 근본을 바로 체험하여 깨치고, 남이 없음[無生]을 요달하면 빠르고 빠르지 않음이 떨어져버린 구경을 성취하게 되는데, 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이에 영가 스님이 답하였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하였습니다."
본체는 원래 남이 없으니 그걸 우리가 체득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대로가 남이 없고 이대로가 빠름이 없는데, 다시 남이 없고 빠름이 없음을 요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영가 스님이 반박하자, 육조 스님이
"네 말과 같다, 네 말과 같다."
고 인가하시니, 천여 명의 대중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영가 스님은 다시 동랑(東廊)으로 가서 육환장을 걸어 놓고 위의를 갖추어 육조 스님께 정중히 에배하였습니다. 위의(威儀)를 갖춘다는 것은 큰 가사를 입고 향을 피우고 스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가 스님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로 하직 인사를 드리자 육조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리 빨리 돌아가려고 하느냐?"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니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느냐?"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네가 참으로 남이 없는 도리를 알았구나!"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이는 남이 없음에 뜻이 있다면 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뜻이 있는니 없느니 하고 있는 그것부터가 분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육조 스님의 질책입니다.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분별을 하여도 심(心)ㆍ의(意)ㆍ식(識)의 사량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대용의 나타남이라는 영가 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께서 선상에서 내려오셔서 영가 스님의 등을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장하다. 옳은 말이다. 손에 방패와 창을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그리하여 그때 사람들이 영가 스님이 조계산에서 하룻밤만 자고 갔다 하여 일숙각(一宿覺 )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튿날 육조 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몸소 대중을 거느리시고 영가 스님을 전송하셨는데, 영가 스님이 열 걸음쯤 걸어 가다가 석장을 세 번 내려치고 말했습니다.
"조계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나는 죽음과 상관 없음을 분명히 알았노라!"
선사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소문은 먼저 퍼져서 모두들 그를 '부사의(不思議) 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가(歌)ㆍ항(行)ㆍ게(偈)ㆍ송(頌)은 모두가 그의 누나가 수집한 것입니다.
영가 스님은 선천(先天) 2년 (서기 713년) 10월 17일에 입적하시니 세수 39세였으며, 시호(諡號)는 무상대사(無相大師), 탑호(塔號)는 정광(淨光)이라 하였습니다. 그해에 육조 스님께서도 돌아가시니 세수 76세였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흔히 어떤 사람들은 이 법담(法談)을 평하기를, 영가 스님이 육조 스님보다 나은 듯하고 육조 스님이 말에 몰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가 스님이 육조 스님보다 수승(殊勝)한 사람이 아니냐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을 하면 영가 스님을 잘못 본 사람입니다. 영가 스님 자신이 「증도가(證道歌)」안에서 분명히 말씀하였습니다.
"스스로 조계의 길을 깨친 뒤로 나고 죽음과 상관 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고 하여, 조계산에 있는 육조 스님을 찾아와서 근본을 확철히 깨쳤다고 자기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古人)들은 영가 스님이 깨친 대목을 두고 말하기를 앞의 법담에서,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하는 말 끝에서 깨쳤다고 봅니다.
영가 스님이 자기 스스로 조계의 길을 확실히 깨치고 난 뒤에는 나고 죽음에 자재하다고 말씀하였으며, 자기가 평생 동안 연구했던 천태종을 버리고 육조 스님의 조계 선종의 입장에서 법문하였고 저술도 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육조 스님께 와서 깨친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영가 스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고, 선종에서 깨친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가 스님의 행장(行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살펴보고 「증도가(證道歌)」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겠습니다.
<출처 : 성철 스님의 증도가(證道歌) 강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