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어원 및 계통에 대한 攷
- 우리․오리․아리․어리를 중심으로 -
金正鎬*
Ⅰ. 序 言
1)
고대 한국어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반도의 언어상태에 관한 연구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어의 형성과 음음과 어휘의 변천과정을 살피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삼국시대 이전의 언어상황을 알아 볼 수 있는 언어자료가 매우 빈곤한 편이다. 그나마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국어의 역사는 오백년을 채 넘지도 못한다. 그 이전으로 소급한다 하더라도 고대 한국어의 언어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언어자료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비록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언어자료이기는 하나 외사서에 기록된 언어자료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언어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고대한국어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비록 부족한 자료이기는 하나 지명은 친지명(親地名)과 자지명(子地名)의 관계에 따라 새로운 지명이 파생 발달하기 마련이다. 이것을 세심하게 분류하면 계통을 같이 하는 것들로 그룹이 형성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렇게 동일 그룹내에 형성되는 지명을 비교 검토하여 보면 동일어원 즉 원초형에 해당하는 어형을 재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의는 이러한 언어자료를 바탕으로 어휘의 대응을 통해 고대한국어를 재구함으로써 한국어의 형성과 어휘변천 및 음운의 변화를 구명하는 언어자료를 제공함에 그 의의를 둔다.
2)
외사서에 의하면 한반도지역에 분포한 고구려, 옥저, 예 등의 부여계 언어가 한 어군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언어가 만주와 그 북쪽에 분포된 종족의 언어인 만주-퉁구스어계로 추정된다. 본고에서는 만주-퉁구스어계로 추정되는 민요 「아리랑」과 이와 동원어로 추정되는 「우리, 오리, 아리, 어리」를 중심으로 3C 후반의 기록으로 생각되는 魏志 東夷傳 高句麗條의 「溝漊者句麗名城也」와 北史(659) 高句麗條의 「溝漊者句麗城名也」의 기사에서 추출한 「溝漊」와 駕洛國記條의 「駕洛」을 몽고, 만주-퉁구스제어와의 비교로 아리랑의 어원과 계통을 해명하는데 초점을 둘 것이다. 따라서 본 논의를 위해 삼국사기 지리지, 삼국유사 및 내사서에 등재된 언어자료와 언어 이론을 바탕으로 알타이제어와의 비교를 통한 통․공시적 고찰이 될 것이다.
Ⅱ. 溝漊에 대하여
앞에서 제시한 제문제를 논의함에 있어 먼저 해명되어야 할 과제가 「아리랑」의 「아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溝漊」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곧 아리랑에 대한 해명의 열쇠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오리」의 어원을 해결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어휘가 「溝漊」와 관련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溝漊」에 대한 해명은 金芳漢(1982:12~21)에 의해 어느 정도 해명되었다고 본다. 이 견해를 바탕으로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溝漊」는 만주-퉁구스제어의 「柵→兵營→城」을 의미한 다음 낱말과 비교되는 바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당 차자의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溝: kûgku/kəukəw/kəu<東><法華>구<字>
<類><新字>
漊: lûglew/ləu:룽<東> 루<要><子會>
에번키語kurē柵, 垣, 家畜舍
라무트語kurē柵, 垣, 家畜舍
네기달語kuri柵, 垣, 家畜舍
오로크語kurei~kureji柵, 垣, 家畜舍
v. 울타리를 치다.
kure~kureji-柵, 垣, 家畜舍
v. 울타리를 치다.
만주語kuran~kuren柵, 垣, 家畜舍, 兵營
몽골語küriyen~kürigen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둘러친땅(구내),
군진, 승원
일본語kuru-wa성이나 요새 등의 둘레를 흙이나
돌로 둘러 싼 것; 유곽
「構漊」는 음독표기 ‘kuru’로 재구된다. 위 어례에서 ‘kuru’가 모두 「柵」, 「垣」, 「家畜舍」, 「兵營」, 「城」의 의미를 뜻하고 있음을 이루어 원의미로 보이는 동사 「울타리를 치다, 둘러싸다」에서 「柵」 곧 「木柵」에서 다시 「울타리를 쳐서 가축을 넣어 두는 곳」 또는 「垣」의 뜻을 가진 의미로 변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이들이 지닌 의미로 보아 ‘kuru’는 「柵」의 의미에서 「城」의 의미로 변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柵」이 「城」의 의미로 전의됨을 알 수 있는데, 後漢書, 고구려조에 「東至柵城」의 기사와 당서, 북적발해전조에 「龍原府, 亦柵城府」의 기사에서 「柵→柵城→城」으로 바뀌어 온 것임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小澤重男(1979;7~75)은 ‘kuruwa’를 ‘kuru-wa’로 분석하고 「무언가 둘러싸다」를 의미한 동사적인 낱말 곧 ‘kur-’이라는 동사어근에 모음 ‘-u’를 붙여서 명사형을 형성한 것으로 보았고 ‘kur-’은 몽골문어 küriyen-kürigen과 비교하여, kurigen이 ‘küri(kure)-gen’로 분석하고 ‘küri(kure)’가 「둘러싸다」를 의미하는 동사어근으로 보고 있다. 또 V.I.Cincius(1960:436)에서 kurē, kuri, kuran~kuren 등이 몽골語의 kürigen과 어원이 같은 낱말임이 확실하다고 하였다. 이를 근거하여 金芳漢(1982:18)은 고구려의 「溝漊」, 滿洲-퉁구스諸語 kurē, kuri, kuran~kuren, 몽골어의 küri-yen, 일본어의 kuru-는 모두 어원이 같은 동원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 제학자들의 선견을 미루어 이들 낱말이 「둘러싸다」를 의미하는 낱말 즉 동사어간 ‘kur-’에서 파생된 어형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溝漊」 또한 동사어간 ‘kur-’에서 파생된 어형으로 그 원의미는 「둘러싸다」, 「울타리를 치다」에서 「柵」, 「垣」, 「家畜舍」 등의 의미로 변화되어 고구려어에서는 「城」을 의미한 낱말로 표기되고 이것이 그 의미가 확대되어 「縣」 또는 「國」의 의미로는 「句麗(句驪)」로 기사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고구려의 「高麗(高驪)」는 「溝漊」의 동음이차자 표기로 같은 어사일 것으로 생각된다. 위지동이전 고구려조에 「句麗作國 依大水而居」, 「句麗別種 依小水作國 國名之爲小水貊」과 동이전조에 「其言語興句麗大同 時時小異」의 기사와 예조에 「其耆老 舊自謂與句麗同種……言語法俗興句麗同」의 기사에서 「句麗(句驪)」가 聚落를 의미하는 낱말, 곧 「都市→縣→國」의 의미로 확대되어 사용되었음이 확인된다. 또 「國」의 의미를 가진 낱말로 몽고어의 ‘gurun’과 일본어 クニ(kuni), 여진어 ‘gurun(gurun-ni)’으로 표기됨을 미루어 「城」을 의미한 낱말 고구려어 「溝漊(kuru)」와 「懸」 또는 「國」을 의미한 「句麗」가 같은 어사로 그 의미가 분열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고구려어의 「溝漊」와 「句麗」는 몽고어 ‘guru-n’, 여진어 ‘guru-n’, 일본어 ‘クニ(kuni)’가 동원어으로 추정되므로 이들 낱말 또한 ‘kur-’동사어간형에서 파생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고구려어의 「溝漊」는 「句麗」의 동음이차자표기로 원의미 「둘러싸다」, 「울타리를 치다」에서 「柵→城(都城)→都市」의 의미로 전의되고 「縣」 또는 「國」의 의미로는 「句麗(句麗)」로, 「城」을 의미한 낱말로는 「溝漊」로 표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 溝漊와 忽의 對應
전술Ⅱ에서 「溝漊」가 원의미 「둘러 싸다」, 「울타리를 치다」에서 「柵→城→都市」의 의미로 전의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句麗」가 「懸」또는 「國」의 의미로 전의되고 「城」을 의미한 낱말은 「溝漊」로 표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지명에서 「城」을 의미한 낱말은 일반적으로 「忽」로 표기되어 나타나고 백제지명에서만 유일하게 「屈」이 「忽」과 대응되어 나타나는데 고구려지역에서 「城」과 「忽」이 다음과 같이 그 대응을 보이고 있다.
1) 三國史記 地理志 卷三十五 地理二.
陰城 < 仍忽 峯城 < 述爾忽
白城 < 奈兮忽 堅城 < 馬忽
赤城 < 沙伐忽 開城 < 冬比忽
水城 < 買忽 取城 < 冬忽
車城 < 上(一作車)忽 岐城 < 冬斯忽
邵城 < 買召忽 野城 < 也尸忽
戌城 < 首爾忽 高城 < 達忽
童城 < 童子忽 (15個處)
2)a. 三國史記 地理志 卷 三十七 地理四
水城 < 買忽 池城(長城) < 內米忽
臂城 < 馬忽 漢城(息城) < 漢忽(乃忽)
臨城 < 烏阿忽 母城 < 也次忽
水谷城 < 馬忽 淺城 < 比烈忽
鼓監城 < 冬音忽 邊城 < 加阿忽
(10個處)
2)b. 三國史記 地理志 卷 三十七 地理四 三國有名未詳地分(鴨錄水以北)
節城 < 蕪子忽
豊夫城 < 肖巴忽
新城(敦城) < 仇次忽
桃城 < 波尸忽
大豆山城 < 非達忽
遼東城 < 鳥列忽
屑夫婁城 < 肖利巴利忽
鉛=城 < 乃勿忽
牙岳忽 < 皆尸押忽
鷲岳城 < 甘彌忽
積利城 < 里忽
木銀城 < 召尸忽
犂山城 < 加尸達忽
安市城(丸都城) < 安寸城
宂城 < 甲忽
甘勿主城 < 甘勿伊忽
銀城 < 折忽
似城 < 史忽
(18個處)
위 어례에서 고구려지명에서는 「忽」과 「城」이 대응되어 기사된 것은 25개처에서 나타나고 삼국유명미상지분에서는 18개처에서 대응의 어례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비록 삼국유명미상지분이라고는 하나 압록수이북지역에 국한되어 분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고구려의 구토로 고구려지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에서는 「城」을 의미한 낱말은 「忽」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백제지명에서는 「忽」과 「城」이 대응되는 어례는 「賓城郡本百濟伏忽郡」의 기사로 유일하게 1개처에서만 나타난 반면 「城」을 의미한 낱말로 「己」와 「只」의 두형이 보이고 있다.
悅城都本百濟悅己縣 景德王改名 今因之(史36, 地3)
潔城都本百濟結己郡 景德王改名 今因之(史36, 地3)
儒成縣本百濟奴斯只縣 景德王改名 今富利縣(史36, 地3)
悅己縣一云豆陵伊城一云豆串城一云伊城(史37, 地4)
위 어례에서 백제어 「己」와 「只」가 「城」을 의미한 낱말임을 제학자들에 의해 추정된 바 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고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백제지명 「賓城郡本百濟伏忽郡」에서 유일하게 「城」의 의미로 「忽」이 기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忽」이 백제에 유입되었거나 아니면, 고구려의 구토가 백제에 흡수되어 고구려지명이 백제에서 그대로 유지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고구려어 「忽」과 백제어 「己」와 「只」가 신라 경덕왕의 지명개명에 의해 「忽」과 「己」, 「只」가 한자식 기명인 「城」으로 표기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溝漊」가 고구려지명에서는 「城」의 의미를 가진 낱말로 외사서에 기사되어 있고, 또 「城」의 의미를 가진 낱말 「忽」이 내사서에 기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서로 대응됨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城」의 의미를 가진 낱말 「溝漊」와 「忽」이 고구려지명에서 일반적으로 「溝漊」가 아닌 「忽」로 기사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城」을 의미한 낱말 「溝漊」와 「忽」은 어떤 관계인가, 왜 고구려지명에서는 「溝漊」가 보이지 않고 일반적으로 「忽」로 기사되어 있는가, 이점이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金芳漢(1982:16)은 ‘kure’가 「城」을 의미하는 낱말로 존속하지 못한 것은 또 하나의 「城」을 의미하는 낱말 ‘hoton’을 몽골어에서 차용했고 이것이 「城」을 의미하는 낱말로 고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V.I.Cincius(1975;418)에서 만주어의 ‘hoton’과 통구스제어의 ‘xoton’이 몽골어의 ‘qoton’을 차용한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필자 또한 이들 선견을 적극 수용하고자 한다.
전술Ⅱ의 「溝漊」와 알타이제어와의 비교에서 「溝漊」가 만주-퉁구스제어 kurē, kuri, kura-n, 몽골어 küri-yen, 日本語 kuru-wa와 「國」의 의미를 가진 낱말 몽골어 guru-n, 여진어 guru-ni, 日本語 ‘クニ(kuni)’, 고구려의 「句麗(句驪)」가 그 어원이 같은 동원어로서 그 기저형이 ‘kur-’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고구려지명에서 「城」의 의미를 가진 낱말로 「溝漊」가 아닌 「忽」만이 일반적으로 기사되어 나타난 반면 백제지명에서 「屈(kul)」이 유일하게 1개처에서 그 어례를 보이고 있다.
斌城縣本百濟賓屈縣(三國史記 卷36, 地3)
여기서 「城」의 의미를 가진 낱말 「屈」을 얻게 된다. 따라서 「城」의 의미를 가진 「溝漊」, 「屈」, 「忽」과 「國」의 의미로 전의된 「句麗(句驪)」가 동원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문제는 고구려에서 일반적으로 기사된 「忽」이 백제지역에서 「忽」과 「屈」이 유일하게 나타나고, 고구려어인 「屈」이 고구려지역에서는 보이지 않고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고구려어의 침투 내지 유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구려에서 만주어 ‘hoton’을 차용하므로 해서 「城」을 의미하는 낱말 「溝漊(kuru)」가 존속하지 못하고 점차 쇠퇴하였을 것으로 보며 「屈」이 유일하게 잔존한 것은 지명의 보수성에 의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리고 「溝漊」와 「忽」이 그 의미가 상통되고 이들이 서로 대응됨은 알타이제어와의 비교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몽골어. qota :거주지, 읍, 도시, 마을(계곡), 구역
울타리 (양울타리) (Ramstedt,1949:127)
qaton :거주지, 읍, 도시, 마을(계곡), 구역
울타리 (양울타리) (Ibid,p.127)
qori- :보호하다, 감싸다, 숨기다, 방어하다,
금하다
(Ibid, p.98), 둘러싸다. 패쇄하다
quriga, qurija : 금하다, 숨키다, 들러싸다
(가축 따위)
방어벽, 시벽, 시 (Ibid, p.125)
kori- : (Ⅴ) 둘러싸다, 패쇄하다,
금하다 (Ibid,p.125)
칼묵방어.xot, xoton : 담, 우리, 도시, 도성(벽)(Ibid, p.190)
퉁구스어.koton : 목초지 외양간 (ibid,p.127)
kori-, kojiča : 울타리로 막은 땅, 벽 (Ibid, p.98)
xoton : 거주지, 읍, 도시, 마을, 구역 울타리
korigan : 벽 (<mo), (Ibid, p.98), 울타리,
들판 (Ibid, p.125)
만주어.hoton : 도성, 도곽(滿和辭典)
성, 흙이나 돌로 둘러싼 인민의 거소,
혹 나무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우리, 우리를 침.
hoton/hotat(복수); 둥근(城) 벽, 벽으로 둘러싼 도시
γorin : 울타리를 친 땅 (우리 ; (Ibid, p.125))
네기딜어.kori- kojiča : 울타리로 막은 땅, 벽 (Ibic, p.98)
korija, koriga : 울을 친 땅 (Ibid, p.125)
kori : 곰우리(Ibid, p.125)
골디이어.hore-jni. hore-če-jni : 도우다, 보호하다, 구하다(Ibid, p.98)
터어키어.quri : 울타리를 만들다, 방어하다, 보호하다(Ibid, p.98)
울을 친 땅(Ibid, p.125)
오스만터어키어. qorū : 보호하다(Ibid, p.98)
qoru- : 은신처, 보호(Ibid, p.98)
위굴어. qoryr : 은신처, 보호(Ibid, p.98)
텔루트어.qorū : 은신처, 보호(Ibid, p.98)
터어키古語(<mo) : qorran, 울타리, 성채(보루, 요새), 城(Ibid, p.98)
울차어. kori : 새우리, 마굿간(우리) (p.125)
日本語 kori : 둥근바구니 (Ibid, p.98)
※ ma, go, olča어로 kori가 있음(이 경우 명사에 -i가 첨가된 경우임) (Ibid, p.125)
hori : 城 주위를 파서 물을 통하게 한 곳
(新朝國語辭典, 1981:1808)
hora : 洞, 계곡, 골짜기 (古語大辭典, 1983:1496)
위 어례에서 알타이제어의 qota, qota-, qoru, qoru-, qori-, qory, koto-, γori-, xoto-, hoto-, hota- 등이 그 의미가 서로 터 씌었음을 미루어 이들 어휘가 대응됨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어휘가 「울타리를 치다, 둘러싸다」에서 「柵→城→都城→都市(國)」의 의미변화를 가진 「溝漊(kuru)」와 그 의미가 상통하고 「溝漊」와 대응됨을 추정할 수 있다. 위 어례에서 어두자음 ‘k-’, ‘q-’, ‘h-’, ‘x-’, ‘γ-’가 서로 대응되고, 어중모음 ‘-o-’와 ‘-u-’가 대응된다.
그리고 고대국어에서 몽골어의 qota, qoton, 퉁구스어의 koto, kori-, xoton, koton, 만주어 ‘hoton’이 만주․퉁구스제어인 ‘kurē(kuri)’와 대응되고 이들 어휘가 「城」의 의미를 가진 「溝漊(kuru)」와 대응되어 나타나므로 동원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몽골어에서 qoton이, 퉁구스어에서는 xoton이, 만주어에서 hoton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Poppe (1960:99)의 주장대로 만주어의 hoton과 xoton이 몽골어의 qoton을 차용한 것으로 qoton에서 변화한 어형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위의 비교어례에서 몽고어에서 qoton, qota, qori, qor-로, 터어키, 오스만, 위굴, 델루트어에서 qory, qoru-, qorü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퉁구스어에서는 xoton, koton, kori, 네기달어에 kori-로 나타난 반면, 만주어에서는 hoton, hotot, γorin으로, 골디어어에서 hore-jni로만 나타나는 것을 미루어 hoton과, 퉁구스어 xoton이 퉁구스어 koton에서 변화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곧 만주어의 hoton과 퉁구스어 xoton이 몽고어 qoton과 퉁구스어의 koton에서 변화한 어형일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어두음 ‘k-’, ‘q-’, ‘h-’, ‘x-’, ‘γ-’가 대응되고 ‘k-’음이 ‘γ-’化하고 ‘γ-’어두음은 k-음이 변화된 것으로 ‘k-’音과 ‘x-’,γ-音이 동위음이므로 알타이제어의 ‘k-’, ‘q-’音이 ‘h-’, ‘x-’γ-音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아진다. 따라서 만주어의 hoton과 퉁구스어의 xoton이 퉁구스어 koton을 차용하고 퉁구스어 koton이 몽고어의 qoton를 차용하고 「城」을 의미한 낱말 만주어의 hoton을 고구려에서 차용함으로써 「城」을 의미한 낱말 「溝漊(kuru)」가 고유한 낱말로 존속하지 못하고 고구려에서는 「忽」이 「城」을 의미한 낱말로 고정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溝漊」와 「忽」이 만주어 hoton, 퉁구스어의 koton, xoton, 몽고어의 qoton이 대응되므로 동원어임이 분명해지므로 ‘kuru’가 ‘둘러싸다’에서 「柵→柵城→城」의 의미로 전의된 어휘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은 알타이제어의 어두음 ‘k-’, ‘q-’와 ‘h-’, ‘x-’, ‘γ-’가 대응되므로, 어두음 ‘k-’, ‘q-’가 ‘h-’, ‘x-’, ‘γ-’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만주어 어두음 ‘h-’와 고대국어의 어두음 ‘k-’가 대응되므로, 고대국어 ‘k-’음이 ‘h-’음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어례에서 어두음 ‘k->h-’음화하고 어중모음 ‘-o-’와 ‘-u-’가 서로 터쓰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k→h’化
葛草縣<何老<谷野 * 葛草縣 一云何老 一云谷野(史37, 地4)
骨<忽 * 骨正 一作忽淨(史2, 助賁尼師今)
骨<合 * 合埔縣 本骨埔縣(史34, 地1)
屈<成 * 咸豊縣本百濟屈內縣(史36, 地3)
皆<解 * 解禮縣本皆利伊(史37, 地1)
穴<海 * 海口郡 本高句麗穴口縣(史35, 地2)
大<翰 * 翰山縣 本百濟大山縣(史36, 地3)
道<海 * 海祭縣 本百濟道祭縣(史36, 地3)
(2) 語中母音 ‘-u-’와 ‘-o-’의 對應
穴<洞 * 洞山縣本高句麗穴山縣(史35, 地2)
固<古 * 固城郡 本古自郡(史34, 地1)
玉<古斯* 玉馬縣本高句麗古斯縣(史35, 地2)
仇<高 * 高仇縣本仇火縣或 一云高近(史34, 地2)
仇刀<仇道<鳥禮 * 仇刀 一云仇道 一云鳥禮山(史37, 地4)
위 어례에서 고대국어의 어두음 ‘k-’가 ‘h-’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어중모음 ‘-u-’와 ‘-o-’가 터쓰이므로 「溝漊(kuru)」는 ‘kuru>horo> horø>hol’로 변화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城」을 의미한 낱말 「溝漊」와 「忽」이 동원어로써 대응되고, 「溝漊」와 몽고어 qoto-(n), 만주어 hoto-(n), 퉁구스어 xoto-(n), koto-(n)과 대응되며 동원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2) 忽과 骨, 谷의 對應
전항에서 고구려의 「城」을 의미한 낱말 「溝漊(kuru)」와 「忽(hol)」이 대응되며 「忽(hol)」은 「溝漊(kuru)」에서 변화한 어형으로 「溝漊(kuru)」의 후대 어형임을 추정하였다. 그리고 「溝漊(kuru)」와 qoto-(n), koto- (n), hoto-(n), xoto-(n)이 같은 어사로 대응됨을 확인하였다. 그러면 「城」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의 「溝漊」, 「忽」과 「屈, 骨, 谷」과는 어떤 관계인가 이에 대해 필자는 「溝漊」, 「忽」과 「屈, 骨, 谷」이 고대국어 지명어례에서 「城」과 「忽」을 의미하는 낱말로 표기되어 있고 고대국어에서 어중모음 ‘-o-’, ‘-u-’가 터쓰이고 어말모음이 탈락한 어형일 것으로 생각되므로 동원어로 보고자 한다. 다음 지명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賓城郡 本百濟伏忽郡(史36, 地3)
斌城郡 本百濟賓屈縣(史36, 地3)
臂城君 本辟骨(史37, 地4)
國原城 一云夫乙省 一云託長城(史37, 地4)
買省郡 一云馬忽(史37, 地4)
臂城郡 一云馬忽(史37, 地4)
骨正 一作忽爭(史2, 助賁尼師今)
四原 一云臂城 一云子谷(史37, 地4)
大谷郡 一云多知忽(史37, 地4)
十谷郡 一云弓次云忽(史37, 地4)
五谷郡 一云弓次云忽(史37, 地4)
위 어례에서 「屈/城」, 「忽/城」, 「骨/城」, 「城/忽」, 「谷/忽」로 대응되므로 「城」을 의미한 낱말 「屈」, 「忽」, 「骨」, 「谷」을 추출할 수 있다. 또 「骨正/忽爭」에서 「骨」과 「忽」이, 「谷/忽」에서 「谷」과 「忽」이 대응되고, 또 「屈」, 「忽」, 「骨」, 「谷」이 ‘kul’, ‘hol’, ‘kol’, ‘hol’, ‘kol’로 재구되므로 이들 낱말이 「城」의 의미를 지닌 낱말로 동원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음에서 ‘kul’과 ‘kol’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자료를 제시한다.
洞山縣 本高句麗穴山縣 景德王改名 今因之(史35, 地1)
洞福郡 一云谷野(史37, 地4)
해당 차자의 훈독은 다음과 같다.
洞 : 골 동<類合上 55><石千 27> 골 동, 굴엉 동<新字>
가막 골 ; 加莫洞<龍歌 9>, 至北泉洞 ; 뒷심 <龍歌 2:32>
얌 골 ; 蛇洞<龍歌 34>
穴 :구무 혈, 구무 굴; 窟, 구무 혈<類合下 56>, 구멍 혈<新字>
谷 :골 곡<千字><類合>, 골 곡<字會上>, 골 곡, 실 곡<新字>
위 자료에서 「穴=洞=谷」의 대응을 얻게 되므로 「穴, 洞, 谷」은 훈독표기 ‘kul, kol, kol’로 재구된다.
여기서 「洞/谷」, 「洞/穴」이 대응되어 나타남을 추출할 수 있는데, 이들 낱말 ‘kol(洞)=kol(谷)=kul(穴)’이 대응됨을 미루어 동원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또 중세국어와 현존 지명어례에서 「洞」, 「谷」이 「骨」, 「屈」로 쓰이고 있음을 다음 어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中世國語의 語例
가막골(加莫洞) (龍飛御天歌:9)
마근담골(防墻洞) (龍飛御天歌:33)
다대골(韃靼洞) (龍飛御天歌:34)
비얌골(蛇洞) (龍飛御天歌:45)
설멧골(所磨洞) (龍飛御天歌:79)
벽골(滓辟洞) (龍飛御天歌:9)
답샹골(答相洞) (龍飛御天歌:34)
골(舍音洞) (龍飛御天歌:35)
투셋골(兎兒洞) (龍飛御天歌:38)
2)-a 現存地名
대골(竹洞)(경남, 김해, 가야)
심방골(深洞)(경북, 월성, 강동)
노린골(黃谷)(경북, 월성, 천북)
쇠골(金谷)(경북, 군위, 군위)
검동골(儉洞)(경북, 군위, 산성)
한골(大谷)(경북, 봉화, 소천)
깐치골(鵲洞)(경북, 금능, 아포)
부무골(治谷)(충남, 서산, 이북)
다리골(槁洞)(충북, 영동, 매곡)
샘골(井洞)(경기, 안성, 미양)
가리골(蘆洞)(경기, 안성, 일죽)
여묫골(廬墓谷)(서울, 성동구, 암사동)
2)-b
간낫-굴(마을)(서울, 성동구, 둔촌동)
숫-굴(마을)(서울, 성동구, 청담동)
삼태밋-굴(三台洞,마을)(서울, 서대문구, 만리동)
가맛-굴(마을)(서울, 서대문구, 부암동)
도덕-굴(마을)(서울, 서대문구, 부암동)
으릉나뭇-굴(마을)(서울, 서대문구)
방학-굴(마을)(서울, 성북구, 미아동)
하곗-굴(마을)(서울, 성동구, 하계동)
쪽다릿-굴(남교동, 마을)(서울, 동대문구, 숭인동)
성밑-굴(城底洞, 마을)(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인숫-굴(仁壽洞, 마을)(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홍숫-굴(紅樹洞, 마을)(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먹-굴(墨洞, 마을)(서울, 동대문구, 묵동)
뒷-굴(後洞, 마을)(서울, 동대문구, 묵동)
인-굴(內洞, 마을)(서울, 동대문구, 신내동)
피-굴(稷谷, 마을)(서울, 동대문구, 신내동)
3)-a
래올(湫洞)(龍飛御天歌:100)
항새올(大鳥洞)(경북, 금오, 감오)
샘올(泉洞)(경북, 금릉, 천동)
자재올(魚村)(경남, 남해, 송동)
3)-b
가래울(芦乃洞)(충남, 서산, 음암)
가재울(伽左洞)(경기, 안성, 미양)
가지울(柯支洞)(경기, 광주, 중대)
위 어례에서 「洞」과 「谷」이 聚落의 의인 부락명 「骨」로 중세국어와 현존 국어지명에 쓰이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것은 고구려어의 「柵→城」 또는 취락(都市)을 의미하는 「溝漊(kuru)」와 그 변화형으로 보이는 「忽(hol)」, 「屈(kul)」, 「骨(kol)」과는 동원어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溝漊(kuru)」, 「忽(hol)」, 「屈(kul)」이 삼국통일후 신라경덕왕의 지명개명으로 「城」, 「省」, 「谷」으로 표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屈(kul)」과 「骨(kol)」이 1개처에서 그 어례를 보이고 있는 것은 만주어 ‘hoton’을 고구려에서 차용하여 「城」을 의미하는 낱말 「忽(hol)」로 고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로 인해 「溝漊(kuru)」가 「城」을 의미한 고유한 낱말로 지속되지 못하고 일부가 잔존하여 그 명맥이 유지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忽(hol)」, 「屈(kul)」, 「骨(kol)」, 「洞(kol)」, 「谷(kol)」이 「溝漊」에서 변화한 어형으로 동원어임을 추정할 수 있고, 어두음 ‘k-’가 탈락한 어형이 ‘ul, ol’임을 미루어 중세국어와 현존지명에서는 「骨」이 취락의 뜻을 지닌 낱말 「洞」, 「谷」으로 굳어진 것으로 그 기층어가 ‘kuru’일 것으로 본다.
Ⅲ. 加羅(伽落)에 대하여
「城」을 의미하는 낱말 「溝漊(kuru)」와 「忽(hol)」은 만주어 ‘golo’ ‘holo’와는 어떤 관계인가, 이에 대한 문제를 구명하는 것이 곧 이들 낱말의 관계를 밝히는 단서가 된다고 본다. 「溝漊(kuru)」와 「忽(hol)」이 만주-퉁구스어의 ‘kurē’, ‘kuri’, ‘kuran~kuren’, 몽골어 ‘küri-yen’, 일본어 ‘kuru’와는 모두 어원이 같은 동원어로써, 몽골어 ‘qoton’, 만주어 ‘hoton’, 퉁구스어 ‘koton, xoton’과도 같은 어사로 대응됨을 추정하였다. 그런데 만화사전에 만주어 ‘golo’가 「省․河身」의 의미로, ‘holo’가 「山谷」의 의미로 記事되어 있어 「溝漊(kuru)」, 「忽(hol)」과 ‘golo’, ‘holo’가 형태와 의미면에서 같은 어사로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들 어휘가 같은 어사로 받아 들이기는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溝漊(kuru)」와 「忽(hol)」이 滿洲 ‘golo’, ‘holo’와는 그 원의미가 각각 다른 낱말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溝漊」와 「忽」이 「울타리를 치다」, 「둘러싸다」에서 「柵→城→聚落」의 의미로 내륙 산간지역의 취락을 의미하는데 반해 만주어 ‘golo’, ‘holo’는 「分岐」의 원의미 「分岐」 곧 ‘가다’에서 ‘golo’는 「省(聚落)」으로, ‘horo’는 「山谷→聚落」의 의미로 변화한 낱말일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어례가 이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몽골문어 gool :강, 강의 계곡, 중심, 주축, 중심부 등
칼카어 gol :강, 강의 계곡, 중심, 주축, 중심부 등
칼묵어 gol :강, 강의 계곡, 중심, 주축, 중심부 등
튀르크고어 qol :地名에 쓰이는 골, 와일룬강,
와일룬계곡(비교; kol, 오리골, 오리계곡)
만주어 golo :한가운데, 주무기, 혹은 강의 원류, 좁은 수료,
산 사이의 작은 골짜기, 강 사이의 땅.
골디어어 gol :한가운데, 중심부.
울챠어 gol :한가운데, 중심부. (Ramstedt;1949:121)
위의 어례에서 알타이제어에서는 ‘gool’, ‘gol’, ‘qol’로 나타나고 있으나 이들 어휘의 그 원의미가 「分岐」의 뜻을 지닌 낱말로 추정되며, 「分岐」의 의미에서 「溪谷→聚落(省)」의 의미로 변화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위 어례에서 만주어에서는 ‘golo’로, 퉁구스제어와 몽골제어에서는 ‘gol’로 나타나고 다만 몽골문어에 ‘gool’, 튀르크고어에서 ‘qol’로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퉁구스제어(go.,olča어)와 몽골제어(kh, klm어)에서 만주어 ‘golo’를 차용한 것으로 생각되며, ‘golo’에서 변화한 어형이 퉁구스제어와 만주제어의 ‘gol’어형일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알타이제어 ‘gool’, ‘golo’, ‘gol’, ‘qol’이 동원어으로서 「分岐」의 원의미에서 「山谷(溪谷)→聚落」의 의미로 변화한 것으로 본다. 만주어 ‘golo’의 의미가 현 滿和辭典에 「山谷」의 의미로 기사된 것은 「分岐」의 의미에서 「溪谷」의 의미로 변화하여 고정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golo’의 후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는 ‘holo’는 「山谷(溪谷)」의 의미에서 「聚落」의 의미로 변화한 것으로 보이며, 「河身」의 의미 또한 「分岐」의 원의미에서 전의된 의미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高句麗語 「城」을 의미한 낱말 溝漊(kuru)와 「忽(hol)」은 「柵→城→都成」의 의미로 그 의미가 변화한 낱말이고, 만주어의 ‘golo’와 ‘holo’는 동일 어사이나, 「省․河身」의 의미를 지닌 golo는 강변의 취락명으로 쓰이고 ‘holo’는 溪谷의 취락명으로 쓰이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고구려어의 「溝漊(kuru)」, 「忽(hol)」과 만주어 ‘golo’, ‘holo’는 그 원의미가 분명히 서로 다른 낱말임을 확인할 수 있어 「分岐→山谷(溪谷)→聚落」의 의미를 지닌 「伽落國」의 「加羅」와 연결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金亨奎(1974:9)에서 「忽」을 한자음대로 ‘hol’로 읽든 국어화한 ‘gol’로 보든지 그들은 오늘의 만주어 ‘holo’ 또는 ‘golo’로 상통되며 또 올라가 고구려 지명에 나오는 「溝漊」와도 연결된다고 한 견해는 수용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忽」은 내륙 산간지역의 「城→都成→聚落(都市)」의 의미로 변화한 낱말로 「城, 屈, 骨, 洞, 谷」과 동원어임을 알 수 있고 今西春秋(1971:1~11)에서 ‘golo’는 원어미 「水流」에서 「水邊地城→居佳地」의 의미로 확대된 낱말로 보고 있음을 미루어 ‘golo’는 「分岐→聚落」 또는 「分岐→山谷(溪谷)→聚落」의 의미로 변화한 낱말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golo’는 「分岐→聚落」 또는 「分岐→山谷(漢谷)→聚落」의 낱말임을 미루어 ‘부분, 반’의 의미를 지닌 퉁구스어 ‘kalta, kalto’와 동원어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가르다’에서 분화된 「伽落國」의 「伽耶」 곧 「加羅」와 동원어일 것으로 생각되며, 「加羅」에서 ‘k-’어두음이 탈락한 어형이 「아라, 어라」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선 Ⅵ항에서 상술토록 한다.
Ⅳ. kuri / kori / kari / kəri에 대하여
고지명에서 「kuri=kori=kari=kəri」가 서로 터쓰이어 호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신라통일 이후 경덕왕의 지명변경 이후 나타난 현상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다음 어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 金 / 仇知 / 加知의 대응
(kuti=kati)
해당자료를 종합하여 제시한다.
東虛縣 一云加知斤縣 (史37, 地4)
新復縣 本加尸兮縣 (史34, 地1)
新城川 本仇次忽 (史37, 地4)
金也縣 本百濟仇知縣 (史36, 地3)
金溝縣 本百濟仇知山縣 (史36, 地3)
해당 차자의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加 :kaka/kakra/ka․강<東><月釋>,
가<類合><宣小>
知 :tịěg tịěg/tịḙṭịeγ/ṭɪl딩<東><愣解>,
디<千字><類合><宣小>
尸 :ẋịedṡịər/śist'jier/śiri싱<東><月印>
시<宣小><字要>
乙 :ịətịɛt/ịětjət/jet핧 <東>을 <字要>
仇 :ģịǒg ģịǒg/ģịəugjəw/giəu궁<東>, 구<千字>
<類合><新字>
次:čịedtśịər/tśi-tśjier/tśiịi<東><月釋>, ㅊ<千字>,
<類合><供養>
위의 「東=加知」, 「新=加尸=仇次」, 「金=仇知」의 대응에서 「東=新=加知=加尸」, 「新=金=仇次=仇知」을 얻게 되어 「東=新=金」의 대응을 추출할 수 있어 「加知=加尸=仇次=仇知」의 대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따라서 「加知」는 「加」의 음독이 ‘ka’이고 「知」는 음독 ‘ti(ci)’의 표기이므로 ‘kati’로 재구되고 「加尸」는 「加」의 음독 ka, 「尸」는 음독 ‘γi (si)’의 표기임으로 ‘kari(kaci)’로 재구된다. 「仇次」는 「仇」의 음독 ‘ku’ 「次」의 음독 ‘čʌ의표기 이므로 kučʌ’로 재구되고, 「仇知」는 「仇」의 음독 ‘ku’ 「知」의 음독 ‘ti’의 표기이므로 ‘kuti’로 재구된다. 여기서 「東=kati」, 「新=kari=kuči」, 「金=kuti」를 얻게되어 「東」은 훈독표가 ‘kati’로 재구되고 「新」은 훈독표기 kari(kučʌ)로, 「金」은 훈독표기 ‘kuti’로 재구된다. 따라서 ‘kati(東), kari(kuči)(新), kuti(金)’은 동음이차자 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加知=加尸=仇知=仇次」의 대응에서 「加知=加尸」, 「仇知=仇次」의 대응을 이끌어 낼 수 있어 「加知=加尸」는 ‘kati>kari>kasi’, 「仇知=仇次」는 ‘kuti>kusi>kučʌ’의 변화를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고대국어에서 ‘s’, ‘c’, ‘č’가 분화되지 않고 터쓰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kuti>kučʌ’의 ‘-ti>-čʌ’의 변화는 구개음화 현상일 것으로 여겨지므로 고대국어에서 구개음화현상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2) 金 / 伽落 / 伽耶의 대응
(kuti=kara)
우선 해당 자료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金海小京金官國 一云伽落國 一云伽耶…景德王改名金海京 今金州(史34, 地1)
浦上八國侵加羅(史2, 奈解王條)
百濟王明禮與加良來功(史4, 眞與王條)
望駕洛九村 逐地其地開國 號曰加耶 後改爲金官國(史41, 列傳1, 金庾信條)
辰韓之地 古六村…五曰金山加里村(三遺1, 赫居世條)
國稱大駕洛 又稱伽耶國(三遺2, 駕洛國記條)
金溝縣 本百濟仇知只縣(三史36, 地3)
金池縣 本百濟仇知只縣(三史36, 地3)
해당 차자에 대한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加 :kaka/kakra/ka·강<東><月釋>, 가<類合>
<宣小>
駕 : ka ka/kakra/ka·강<東><月釋>, 가<六祖>
<字會>
落 :glâk/lâklak/lak·락<東><月釋><字會>,
락<天><類合>
洛 :lâkglâk/lâklak/lak·락<東><능解>, 낙<千>
<石千><字要>
耶 :γraγ/ia양<東>, 야<字要>
羅 :lalâ/lâla/la랑<東><月釋>, 라<字會>
<六祖><千字><類合>
良 :liangliang/liangliang/liang량,:량<東>,랑<月釋>
<千字><類合><六祖>,
냥<石千>
里 :lịəglịəg/lji:liəγ/li:링<東><釋譜>, ·링<內訓>
·리<六祖><宣小>, :리
<求簡><字會>, 리<類合>
위에서 「伽落=駕洛=加浪=加羅=加里=金」의 대응을 얻게되어 「伽落, 駕洛」의 「伽, 駕」는 음독 ‘ka’, 「落, 洛」은 음독 ‘rak’이나 약음차 ‘ra’의 표기이므로 ‘kara’로, 「加羅」는 음독표기 ‘kara’로, 「加里」는 음독표기 ‘kari’로 재구된다. 「伽耶」의 「伽」는 음독 ‘ka’, 「耶」는 음독 ‘ja’의 표기이므로 ‘kaja’로 재구되고, 「金」은 「仇知=金」의 대응에서 「金」의 고유어 ‘kuti’를 얻게 되므로 「金」은 고훈독 ‘kuti’의 표기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kuti’로 재구된다. 따라서 「駕落=伽倻=加倻=加羅=加良=加里=金」과 전항의 「加知=加尸=仇知=仇次=金」의 대응을 얻게되어 kara(kari= kaja=金)와 kuti(kati=kari=kuti=kuči=金)가 대응 표기임을 확인할 수 있어 어중모음 ‘-a-’와 ‘-u-’가 서로 호용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落, 洛, 良」은 「耶, 羅, 里」의 동음표기이므로 약음차 ‘ra’로 추독된다. 따라서 「落, 洛」, 「良」은 ‘rak’, ‘raŋ’의 반절상자인 ‘ra’의 표기이므로 어말자음 ‘-k’, ‘-ŋ’은 표기에 관여치 않았을 것으로 본다. 그럴 가능성이 다음의 어례에서 확인된다.
① 寶城郡 本百濟伏忽郡 景德王改名 今因之(史36, 地3)
② 于鳥縣 一云郁馬(史37, 地4)
③ 屈旨縣 一云屈直(史 37, 地4)
④ 翼山縣 一云伊文縣(史37, 地4)
여기 ①㑀 : 寶 ②于 : 郁 ③旨 : 直 ④翼 : 伊의 대응표기는 종성 k가 무음임을 증언하고 있다.
⑤ 阿瑟羅 一云阿西良 一云阿西(史37, 地1)
⑥ 九良梁 在州南(世志 150, 慶尙道)
⑦ 九羅梁 在州南六十里(東輿覽4, 晋州)
여기서 ⑤⑥⑦의 「羅=良」에서 우리는 종성 ‘ᅌ’이 무음임을 확인하게 되고 「伏=寶, 郁=于, 直=旨, 翼=伊」에서 어말자음 ‘-k’와 어말자음 ‘ᅌ’은 표기에 관여하지 않았음이 확인된다.
「伽耶, 加良」은 동음이차자표기로 ‘kara>kaja’의 변화형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江陽=大良(一作耶)」(史34, 地1)에서 「良」이 「耶」임을 보여주므로 더욱 확실해진다.
그러면 이제 「羅=耶」의 대응표기 문제만 남은 셈이다. 이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는 阿羅<一作耶>(遺1)의 「羅=耶」와 「加羅」의 동음이차자 표기인 「加耶」이다. 그러면 우선 「耶」에 대한 고대음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K Ch
耶 zia/ia γra/ia
위의 고대음 중어서 中古音을 택한다면 「羅>耶」를 가정할 때 ‘r>y’의 변화에 따라 ‘r>y / ___v#’의 규칙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따라서 「耶」는 「羅」의 변화형을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加利 / 古陵 / 金의 대응
(kari=korɨ=kuti)
해당 자료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改五伽耶名一金官<爲金海府>, 二古寧<爲加利縣……(遺1. 五伽耶)
古寧郡 本古寧加耶國 新羅取之爲古冬攬郡 一云古陵縣 今咸寧郡(史34. 地1)
해당 차자에 대한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加 :kaka/kakra/ka․강<東><月釋>, 가<類合>
<宣小>
利 :liedliəd/ljilier/lili․링<東><月釋>, 링,<金三>
:리<飜小><宣小>
리<千字><類合>
古 :kâgko/kuokar/kuo:공<東><永嘉>, 고<千字><類合>,
고<字會><飜小>
寧 :<新字><漢韓>
陵 :lịanglịəng/lịənglịəng/lieng<東><月釋>,
<字會><類合>
冬 :tôngtông/tuongtəwng/tuog<千字><類合> <字會>
攬 :glâm/lâ:ləm/lam람<字會><新字>
위의 자료에서 「古寧=加里」, 「古寧=古冬攬=古陵」의 대응에서 「加里=古寧=古陵=古冬攬」의 대응을 얻게 된다. 「加里」는 음독표기 ‘kari’로 재구되고 「古寧」의 「古」는 음독 ‘ko’, 「寧」은 음독 ‘niəŋ’의 표기이나 어말자음 ‘-ŋ’은 표기에 관여치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konjə’로 재구된다. 「古陵」의 「古」는 음독 ‘ko’, 「陵」은 음독 ‘rɨŋ’이나 ‘ŋ’은 표기에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약음차 ‘rɨ’의 표기이므로 음독표기 ‘korɨ’로 재구된다.
「古冬攬」의 「古」는 음독 ‘ko’, 「冬」은 음독 ‘toŋ’이나 ‘-ŋ’ 표기에 관여치 않았으므로 약음차 곧 반절상자성모 ‘t’의 표기이고 「攬」은 음독 ‘ram’이나 운미 ‘-m’은 표기에 관여치 않았으므로 음독 ‘ra’의 표기이므로 「古冬攬」은 ‘kora(<koøra<kotla)’의 표이므로 음독표기 ‘kora’로 재구되고 고대형은 ‘kotla’일 것으로 생각된다.
‘koniə(古寧)>korɨ(古陵)’의 ‘-n->-r-’의 변화는 운미 ‘-n-’이 외파에 의하여 ‘-r’로 변화한 것으로 본다. 어말모음 ‘-jə’와 ‘-i’는 고대국어에서 터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ram(攬)’의 운미 ‘-m’과 ‘rɨŋ’의 운미 ‘ŋ’은 음독에 관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1) 階(開) / 解 / 古祿의 대응
(kai=koro)
해당 자료를 제시한다.
解禮縣 一云階利伊(史37, 地4)
古祿只縣 一云開要(史37, 地4)
해당 차자의 고대음을 재구하면 다음과 같다.
T K Ch SK
皆 :keokɛr/kâikrer/kɛr:갱<東><法華>, <千字>
<飜小><類合>
解 :kegkěg/kaikreγ/kæi:갱<東><月釋>, <千字>
<飜小><類合>
開 :ḱǝdkǝr/ḱâi-ḱǝr/ḱǝi캥<棱解>, <字會><類合>
<六租>
古 :kâgko/kuokaγ/kuo:공<東><永嘉>, :고<字會>
<飜小>, 고<千字><類合>
祿 :lūkluk/luklewk/luk․녹<字會>, 록<新字>
위의 「解=階 」, 「古=開」의 대응에서 「開=皆=解=古祿」의 대응을 얻게 되어 「皆, 開, 解」의 「皆, 開」는 음독표기 ‘kai’로, 「解」는 음독 ‘hai’의 표기로 재구된다. 「古祿」의 「古」는 음독 ‘ko’, 「祿」은 ‘rok’으로 음독되나 「古祿=開」의 대응표기임을 미루어 운미 ‘k’음은 표기에 관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음독 ‘ro’의 표기이므로 「古祿」은 음독표기 ‘koro’로 재구된다. 그러므로 「koro(古祿)=kai(開․皆)=hai(解)」는 대응표기이므로 ‘kai(開), hai(解)’는 ‘kari>kaøi>kai>hai’의 변화를 거친 어형일 것으로 여겨지므로 어두음 ‘k->h-’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어중모음 ‘-o-’, ‘-a-’는 터쓰였을 것으로 본다.
(2) 葛 / 闕의 대응
(kal / kwəl)
해당 자료를 제시한다.
闕谷 一作葛谷(遺1, 赫居世王條)
闕城郡 本闕支郡 景德王改名 今江城縣(史34, 地1)
江陽郡 本大良(一作耶)州郡
해당 차자의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葛 :kâtkât/kâtkat/kat․갏<東><救急>,
․갈<字會><飜小>,
갈<類合>
闕 :ḱiwātḱiwāt/ḱiwǝtḱjwat/ḱjuǝt궗<東><救急>,
궐<宣小>, 궐<千字>
<字會><類合>
江 : 강<字會上千>, 하:河<字會上千>, 가람 강<新字>
매 업거늘; 河無舟矣<龍歌 20>
자거늘; 宿宇江沙<龍歌 67>
리 즈믄 매 비취요미 니라<月釋 1:1>
나라히 破亡니 뫼과 잇고; 國破山河在<杜解 10.6> 大: 큰, 클 대<新字>
根이 크니 져그니 업시; 根無大小<圓覺下 一之=55>
大 클씨라<阿邇 3>
큰 보신다; 大見風<譯語上 29>
위 자료에서 「葛=闕=江=大」의 대응을 얻게 되어 「葛」은 음독표기 ‘kal’로 재구되고, 「闕」은 ‘kwǝl’로 재구된다. ‘kwǝl’은 ‘kwǝl(闕)=kal(葛)’의 대응표기임을 미루어 어중모음 ‘wǝ=ǝ=a’가 고대국어에서 터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江」은 고훈독이 ‘kʌrʌm’이나 「葛=闕=江」의 대응을 보여주고 있어 어말자음 ‘m’은 표기에 관여치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kʌrʌ’로 재구된다. 「大」는 훈독표기 ‘kɨl’로 재구된다.
(3) 穴 / 江 / 大의 대응
(kul=kʌrʌ=kɨl)
해당 자료를 제시한다.
海口郡 本高句麗穴口郡 景德王改名 今江華縣(史35, 地2)
江華郡 本高句麗穴口郡(輿覽12, 江華)
江陽郡 本大良(一作耶)州郡 景德王改名 今陜州(史34, 地1)
大城郡 本仇刀城(史34, 地1)
해당 차자의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海 :xɔgxmǝg/xâi:xmǝr/xǝi:<東><月印>, <千字>
<字會><類合> :<六祖>
仇 :ģiŏgģiŏg/ģiǝugjǝw/giǝu궁<東>, 구<千字>
<類合><新字>
刀 :tŏgtŏg/tâutaw/tau둄<東><月釋>, 도<字會>
<類合><六租>
穴 :구무 혈<字會上>, 구무 굴; 屈<字會下>, 구무 공;孔<字會下>
:구무 혈<類合下 56>, 구무 공; 孔<類合下 24><石千 15>,
굴 혈 ; 屈也
:구멍 혈<新字>
大 :큰 대, 클 대<新字>, 클 인;仁, 클 의;義<訓夢下 25>
큰 덕; 德<訓夢下 31>
根이 크니 져그니 업시 ; 根無大小<圓覺下 一之=55>
大 클씨라<阿彌 3>
큰 보신다 ; 大風見<譯語上 291>
위에서 「海=穴=江=大」, 「大=仇刀」의 대응에서 「海=穴=江=大=仇刀」의 대응을 얻게 되어 「海」는 음독 ‘hai’의 표기로, 「穴」은 훈독표기 ‘kul’로, 「江」은 훈독표기 ‘kʌrʌ’로, 「大」는 훈독표기 ‘kɨl’로 재구된다.
「仇刀」는 「大=仇刀」의 대응표기이므로 「仇」는 음독 ‘ku’, 「刀」는 음독 ‘to’의 표기이므로 ‘kuto’로 재구된다.
‘hai(海)’는 「穴=江」의 대응표기임을 미루어 ‘hari>haji>hai’의 변화과정을 겪은 어형으로 ‘k’어두음이 ‘h’화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또 ‘kul(穴), kɨr(大)’은 「海=穴=大」의 대응표기이므로 ‘kul’은 ‘kuri>kurø>kul’, ‘kɨr’은 ‘kɨri>kirø>kɨr’의 변화를 거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kai, kul, kʌrʌ, kɨl’의 어중모음 ‘-a-, -u-, -ʌ-, -ɨ-’가 터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4) 穴 / 洞 / 江 / 居知의 대응
(kul / kol / kʌrʌ / kəti)
해당 자료를 제시한다.
洞山縣 本高句麗穴山縣 景德王改名 今因之(史35, 地1)
洞福縣 一云谷野(史37, 地4)
海口縣 本高句麗穴口郡 景德王改名 今江華縣(史35, 地2)
江陽郡 本大良(一作郡 景德王改名 今陜州(34, 地1)
大城郡 本仇刀城(史34,地1)
安彼縣 本百濟居知山縣(居一作屈) 景德王改名 長山縣
해당 차자의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居 :kịagkịo/kịwokjar/kio・겅, 겅<東>, 겅<釋譜>,
거<字會><千字><類合>
<飜小><六租>
知 :tịegťieg/ťiegtieγ/tio딩<東><楞解>, 디<千字>
<類合><宣小>
屈 :ḱiwǝtḱiwǝt/ḱiuǝtḱjwǝt/ḱjuǝt:굻<東><靈驗>,
굴<六租><類合>
長 :긴, 기리, 길, 클(大也), 놉을 쟝<新字>
洞 :골 동<類合 上55><石千27>
골 동, 굴엉 동<新字>
가막골 : 加莫洞<龍歌 45>
얌골:蛇洞<龍歌 45>
谷 :골 곡<千字> 실 곡, 골 곡<字會>
올 곡<類合> 실 곡, 골 곡(新字)
답샹골 答相谷<龍歌>
위에서 「洞=穴」, 「洞=谷」, 「海=穴=江」, 「江=大」, 「大=仇刀」, 「安=居知=屈知=長」의 대응을 얻게되어 「洞=穴=谷=海=江=大=仇刀=居知=屈知=長」의 대응을 추출할 수 있다. 따라서 「洞, 穴, 谷, 大, 長」은 훈독표기 ‘kol, kul, kol, kɨl, kɨl(kil)’로 재구되고 「仇刀, 居知, 屈知」는 음독표기 ‘kuto, kǝti, kuti’로 재구된다.
「屈知」는 「屈」의 음독 ‘ku’ 「知」의 음독이 ‘ti’이므로 ‘kulti’로 재구되나 「kuto=kǝti」의 대응표기임을 미루어 모음사이의 자음군 ‘lt’의 ‘l’가 탈락하여 ‘kuti’로 변화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므로 ‘kuti’로 재구된다. 그리고 ‘kuti’의 원초형은 ‘kulti’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kol, kul, kol, kɨl, kɨl’의 어중모음 ‘o, u, ɨ, ɨ, ǝ’와 ‘kuto, kǝti, kuti’는 어말모음 ‘o, i’가 고대국어서 서로 호용되어 터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Ⅴ. k->ø-화에 대하여
1) 仇 / 高 / 雨의 대응
(ku / ko / u)
어두음 ‘k-’가 ‘ø’화 하는 현상을 다음 어례에서 확인된다.
해당 자료를 제시한다.
高丘縣 本高句麗仇火縣 或云高近(史34, 地1)
高澤縣本百滓 雨坪縣 景德王改名 今長氷縣(史36, 地3)
해당 차자의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仇 :ģiogģiȏg/ģiaugjaw/giǝu<東>, 구<自會><類合>
高 :kɔgkog/kâukaw/kau<東><釋譜>,
고<千字><類合><六租>
雨 :γiwagγiwo/jiu:γjwaγ/jiuo:웅, ․웅<東> :우<釋譜>
<字會><飜小>, 우<千字>
<類合>
위에서 「仇」는 「仇=高=雨」의 대응표기이므로 「仇」는 음독표기 ‘ku’ 「高」는 음독표기 ‘ko’, 「雨」는 음독표기 ‘u’로 재구된다. 여기서 ‘ku(仇), u(雨)’는 ‘kuri>kuji>kuøi>kui>ku>u’의 변화과정을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雨」는 ‘kuri>uri>uji>ui>u’, ‘ko(高)’는 ‘kori>koji>koøi>koi>ko’의 변화과정을 거치었거나 아니면 ‘kuri>kuji>kuøi>kui>ku>ko’의 변화로 겪은 어형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ku(仇)>ko(高)’의 변동은 어중모음 ‘u>o’의 상통에 의한 호용표기일 것으로 추정되고 ‘kuri>uri’의 변동은 어두음 ‘k-’가 탈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 阿尸 / 居知 / 屈知의 대응
(ari / kəti / kuti)
해당 자료를 종합하여 제시한다.
安賢縣 本阿尸兮縣 一云阿乙兮縣 景德王改名 今安定縣(史34, 地1)
野老縣 本百濟阿老谷縣 景德王改名 今安老(史36, 地3)
碣島縣 本百濟阿老縣 景德王改名 今六昌縣(史36, 地3)
居知山縣 一云安陵(史37, 地1)
安波縣 本百濟居知山縣(居一作屈) 景德王改名長山縣(史36, 地3)
安波縣 本仇尸 波知(史37, 地4)
해당 차자의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安 :․ân․ān /․ân・an / ・an-<東><月印>,
안<救簡><六租>
<千字><類合>
陵 :lịənglịəng / lịəngliəṅg / lieng<東><月釋>
<訓蒙>, 릉<字會>
<類合>
阿 :․â․â / ․â․a / ․a , :<東>, <月釋>,
아<千字><類合>
<六租>
尸 :ẋịedśịəγ / śisṫjier / śiri싱<東><月印>,
시<宣小><字要>
之 :․ịətịɛt /․ịětiət / iet<東>, 을<字要>
居 :kịagkịo / kịwokjaγ / kio․겅, 겅<東>, 거<釋譜>,
거<字會><千字>
<類合><飜小><六租>
屈 :ḱịẁə́tḱịwət / ḱịuətḱjwət / ḱjuət․쿯 <東><靈驗>,
굴<六租><類合>
知 :tegtịěg / ̂tịḙ gṭieγ / ṭiI딩<東><능解>, 디
<千字><類合><宣小>
老 :lôglôg / lauləw / law로<千字><類合>,
:로<字會>
野 ::양<東><救急>,
야<訓蒙>
長 : 긴, 기리, 길, 클(大也), 놉흘 쟝(新字)
위 자료에서 「安=阿尸=阿乙」, 「安老=野老=阿老」, 「碣島=阿老」, 「安陵=居知」, 「安=居知」, 「安=仇尸=屈=長」의 대응에서 「安=安老=安陵=野老=阿老=阿尸=阿乙」, 「(安老=安陵)=碣島=居知=屈知=仇尸=屈=長」의 대응을 얻게 된다. 따라서 「安, 阿尸, 阿乙」은 음독표기 ‘an(al), ari, al’로 재구되고 「安老」는 「野老=阿老」의 대응표기이므로 「野」는 ‘ja’, 「安」은 약음차 ‘a’, 「老」는 음독 ‘ro’의 표기이므로 ‘aro’로 재구되고 「野老」는 음독표기 ‘jaro’로 「阿老」는 ‘aro’로 재구된다. 「安陵」은 「安=安老=安陵」의 대응을 얻게 되어 「安」의 음독 ‘an’, 「陵」의 음독 ‘rɨŋ’이나 어말자음 ‘-ŋ’은 표기에 관여치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약음차 ‘rɨ’의 표기이므로 ‘arɨ’로 재구된다. 「野老, 阿老, 阿尸, 阿乙」은 음독표기 ‘jaro, aro, ari, al’로 재구된다.
「碣島」는 음독 ‘kalto’의 표기이나 ‘kalto>kaøto>kato’의 변화를 거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kato’로 재구되고 원초형은 ‘kalto’일 것으로 본다.
「居知, 仇尸」는 각각 음독표기 ‘kəti, kuri’로 재구되고 「屈知」는 음독 ‘kulti’의 표기이나 ‘kulti>kuøti>kuti’의 변화를 겪은 어형일 것으로 여겨지므로 ‘kuti’로 재구되고 원초형은 ‘kulti’일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kato(碣島)=kəti(居知)=kuti(屈知)=kuri(仇尸)=kɨl(kiri:長)’의 대응표기가 ‘an(安), aro(安老), aro(阿老), arɨ(安陵), ari(阿尸), al(阿乙)’이므로 어두음 ‘k’가 탈락한 어형임을 확인할 수 있고 ‘al’은 ‘ari’, ‘arɨ’의 어말모음 ‘-i, -ɨ’가 탈락한 어형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kəti, kuti, kuri’는 서로 호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어중모음 ‘-ə-, -u-’, ‘aro, arɨ, ari’의 어말모음 ‘-o, -ɨ, -i’가 서로 터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서 논의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 仇道(刀)>鳥>孤>上
(kuto=ko=o=u)
해당 자료를 종합하여 제시한다.
烏丘山縣 本烏也山縣 一云仇道 一云烏禮山(史34, 地1)
長少縣 本百濟上老縣 景德王改名 今因之(史36, 地3)
野老縣 本百濟阿老谷縣 景德王改名 今安老縣(史36, 地3)
碣島縣 本百濟阿老晛 景德王改名 今六昌縣(史36, 地3)
孤山縣 本百濟烏山縣 景德王改名 今禮山縣(史36, 地3)
安波縣 本百濟居知山縣(居一作屈) 景德王改名 今長山縣(史36, 地3)
해당 차자의 고대음은 다음과 같다.
T K Ch SK
仇 :ģˏiˎǒ gģˏiˎǒ g / ģˏiˎaugjəw / giəu궁<東>,
구<字會><類合>
道 :d'ȏgd'ȏg / d'âudəw / daw:<東><月印>,
도<千字><類合>,
:됴<字會><飜小>
碣 :gịatgiat / giat․갈 <磁會>, 갈<新字>,
걸<俗><新字>
鳥 :․âg․o /․uo․aγ /․uo<東><月釋>,
오<字會>, 오<類合>
<球簡>
禮 : liedliər / liei:ler / liɛi:롕<東><月釋>,
례<字會>,:례<六祖>,
녜<類合>
島 :tȏgtȏg /tâutəw / tau․도<字會>, 도<新字>
孤 :kwâgkwo / kwokwaγ/ kuo공<東><月釋>,
고<字會><三施><宣小>
長 :긴, 기리, 길(永也, 遠也) 쟝, 클(大也), 쟝(新字)
어루 기리 한 디흐리로다 ; 可矣長嘆矣<法華 2:213>
上 :미디 상<千字>, :마:듸 샹<字會>, 웃 향<類合>, 우, 놉흘 샹<新字>
위 자료에서 「仇道, 烏禮, 烏也」, 「碣島=阿老=野老」, 「烏=孤」, 「上=長」의 대응에서 전항에서 「安=居知=居知=長」과 「野老=阿老=安老=安=安陵」의 대응표기를 얻게 되어 「仇道=碣島=居知=孤=長」과 「烏禮=烏也=阿老=野老=烏=上」이 대응표기임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仇烏, 烏禮, 烏也」는 음독 ‘kuto, orje, oja’의 표기로 재구된다.
「碣島」는 ‘kalto’의 표기이나 ‘kalto>kaøto>kato’의 변화를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kato’로 재구되고 원초형은 ‘kalto’였을 것으로 본다. 「居知, 屈」은 ‘kəti, kul’로 재구되고 「阿老, 野老」는 「碣島=阿老=野老」의 대응표기이므로 음독표기 ‘aro, jaro’로 재구되고 「烏, 孤」는 각각 음독표기, ‘o, ko’로, 「上, 長」은 훈독표기 ‘ui(u), kɨl’로 재구된다.
따라서 ‘kuto(仇道), orje(鳥禮), oja(鳥也)’는 ‘kuto>kuro>øorje>oøje>oja’의 변화를 겪은 어형으로 어두음 ‘k-’가 탈락한 형태일 것으로 추정되고 어중모음 ‘u’와 ‘o’, 어말모음 ‘-o, -je, -ja’는 터쓰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kato(碣島), aro(阿老), jaro(野老)’는 ‘kalto>kato>karo>aro(jaro)’의 변화를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kato’의 어두음 ‘k-’가 탈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孤>烏」는 ‘kori>koji>koi>ko>o’로 「長, 上」은 ‘kɨri~kuri>uri>uji>ui’ 또는 ‘kuru>kuju>kuu>ku>u’ 또는 ‘kɨri>ɨri>ɨl’의 변화를 거친 어형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kuto(仇道), kato(碣島), ko(孤), kɨl(kiri:長)’은 서로 터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서 논리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ro>kato (阿老>碣鳥)
碣島縣 本百濟阿老縣 (史36, 地3)
o>ko (鳥>孤)
孤山縣 本百濟鳥山縣 景德王改名 今禮山縣(史36, 地3)
o>ku (烏>仇)
烏丘山縣 本烏也縣 一云仇道 一云烏禮山(史34, 地1)
u>ko (雨>高)
高澤縣 本百濟雨坪縣 景德王改名 今長氷縣(史36, 地3)
高丘縣 本仇火縣 或云高近(史34, 地1)
u>kɨr (上>長)
長少縣 本百濟上老縣 景德王改名 今因之(史36, 地3)
kəti(kɨr)>ari(al) (居乙>阿尸(阿乙)>安陵)
安賢縣 本阿尸兮縣 一云阿乙兮 景德王改名 今安定縣(史34, 地1)
安波縣 本百濟居知山縣(居一作屈) 景德王改名 長山縣(史36, 地3)
居知山縣 一云安陵(史37, 地4)
kuti>ari(ar) (居知>安陵(安))
安彼縣 本百濟居知山縣 (居一作屈) 景德王改名 今長山縣(史36, 地3)
居知山縣 一云安陵(史37, 地4)
安彼縣本百濟居知山縣(居一作屈) 景德王改名 今長山縣
ku>o (仇>烏)
烏丘山縣 本也山縣 一云仇道 一云烏福山(史,34, 地1)
仇刀 一云仇道 一云烏福山(史34, 地1)
kul>ari, ara (屈(咸)> 阿尸, 阿耶)
阿尸良國 一云阿那加耶(史34, 地1)
安賢縣 本阿尸兮縣 一云阿乙兮 景德王改名 今安定縣(史34, 地1)
安波縣 本百濟居知山縣(居一作屈) 景德王改名 長山縣(史36, 地3)
kol>ol 래올 <楸洞(龍歌 100)
샘올 <泉洞(慶北, 金陵)
새올 <鳥洞(金北, 安州, 鳳洞)
가제올 <加左洞(京畿, 連州, 官仁)
kol>ul 가리울 <蘆洞(金北, 益山, 礪山)
수리울 <酒谷>(京畿, 廣州, 樂生)
가지울 <柯字洞>(京畿, 廣州, 中垈)
가래울 <聲乃洞>(忠南, 瑞山, 音岩)
위 자료에서 「老>碣島」, 「鳥>孤」, 「雨>高」, 「上>長」, 「仇>鳥」, 「居知>安陵」, 「屈>阿尸, 阿耶」의 대응에서 어두음이 ‘k->ø-’화한 것인지, 아니면 어두음 ‘ø->k-’로 복귀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고대국어에서 어두음 ‘k-’가 삼국정립기에 탈락해 가는 과도기의 표기현상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중세국어에서 ‘kol(洞)’이 ‘ol’, ‘ul’로, 현존 지명에서 ‘ol, ul’로 나타나 있고 알타이제어 ‘qolaŋ(안장띠)’이 ‘xačin(gačin)>ačin(종류)’으로 나타나 있음을 미루어 고대국어에서 어두음 ‘k-’가 ‘-a, -ə, -o, -u’의 모음 위에서의 탈락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Ⅵ. 아리랑의 어원 및 계통에 대하여
1) 「아리」의 어원
전항Ⅱ에서 「城」을 의미한 낱말 ‘kuru’는 몽고어에서 ‘qota, quri, qur-, qoton’으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퉁구스어에서는 ‘kori, koton, xoton’, 네기달어와 올차어에서 ‘kori’로 나타나는 반면 만주어에서 ‘hoton, hotat, γo rin’, 골디어어에서 ‘hore-jni’로만 나타난다. 이를 미루어 만주어의 ‘hoton’과 퉁구스어어의 ‘xoton’은 퉁구스어의 ‘koton’을 차용하고 퉁구스어 ‘koton’은 몽고어 ‘qoton’에서 변화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퉁구스어 ‘koton’과 몽고어 ‘qoton’의 어두음 ‘k-, q-’는 만주-퉁구스어에서 ‘h-, x-, γ-’로 변화하여 약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퉁구스, 네기달, 올차어의 ‘kori, koto-’가 에벤키, 라무트어에서 ‘kurē’ 네기달어에서 ‘kuri’, 오르크어에서 ‘kurei, kure’ 만주어에서 ‘kuran, kuren’으로 기사되어 ‘울타리를 치다’, ‘울, 울타리, 우리, 「垣」, 「柵」, 「家畜舍」, 「市內城」, 「兵營」’의 의미로 나타나 있어 ‘kuru, kuri, kura’와 ‘kori, koto-’가 동원어임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城」을 의미한 고구려어 ‘kuru(溝漊)’가 만주-퉁구스어의 ‘kure, kuri, kura’와 ‘kori, koto-’가 동원어로 확인되고 그 의미가 「柵→城→都城→都市」로 그 의미가 확대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주-퉁구스어 ‘kura, kuru, kuri’는 ‘kuru~kori’곧 ‘koto>kori>kor>ol’의 변화를 겪은 어형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城」을 의미하는 고구려어 ‘kuru’가 고구려지명에서 「忽」과 「城」으로 대응되어 25개처에 나타나고, 三國有名未詳地分에서 18개처에서 대응어례를 보이고 있는 반면 유일하게 백제지역에서 「屈」이 「忽」과 대응되어 1개처에서 나타나 있다. 이것은 고구려에서 「城」을 의미하는 낱말 「溝漊」가 「忽」로 기사되어 나타난 것은 만주어 ‘hoton’을 차용하므로 해서 「城」을 의미한 낱말 ‘kuru’가 존속하지 못하고 점차 쇠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백제지명에서 「屈」이 유일하게 잔존한 것은 지명의 보수성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백제지명에서 「城」이 「己, 只」로 표기된 것은 신라 경덕왕의 지명개명에 의해 「忽, 己, 只」가 한자식 기명인 「城」으 로 표기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또 「己, 只」가 ‘kuru~kuri>kuji>kui>ki’로, ‘ki>či’로 변화한 어형임을 미루어 ‘kul(屈), kol(骨, 洞, 谷)’이 「kuru(溝漊)」의 동음표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溝漊」는 ‘kuru~kuri>kuri>uri>ur’ 혹은 ‘uri>uji>ui>u(上)’의 변화를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骨, 洞, 谷」은 「溝漊」의 대응표기이므로 「溝漊」가 만주-퉁구스어 ‘koto, kori’의 동음이차표기임으로 ‘koto~kori>kori>ori>ol, kol>hol’의 변화를 거친 어형일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kuru~kuri’의 어두음 ‘k-’가 탈락한 어형이 ‘uri, ui, ul’이고 ‘koro~kori’의 어두음 ‘k-’가 탈락한 어형이 ‘ori, ol’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kuru~kuri’에서 ‘k-’어두음이 탈락한 ‘uri’는 「畜舍」에서 어의가 분화되어 취락의 의에서 중심, 大 또는 공동체의 의인 ‘우리’로 전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ui’가 ‘위(上)’, ‘ul’이 ‘柵’ 곧 울타리로 그 의가 분화되어 오늘에 이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kori’에서 ‘k-’, 어두음이 탈락한 ‘ori’가 「中心, 大」의 의로, ‘ol’과 ‘kol’이 「洞」으로 그 의가 전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로 변화한 어형임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分岐」의 의미를 지닌 만주어 ‘golo’는 강의 수로변 또는 강의 「분기」에 형성된 취락 곧 「分岐→城→都城→都市」의 의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goro’의 변화형으로 추정되는 ‘holo’는 강의 계곡에서 형성된 취락지 곧 「柵→城→都城→都市」의 의(義)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分岐」 곧 ‘가르다’에서 취락의 의로 변화하여 「都城→都市(國)」로 변천한 것이 낙동강변의 伽落(加羅)國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分岐」의 義를 지닌 ‘golo, holo’는 수변지역에서 형성된 「柵→都城→都市(國)」의 의미로 轉義되어 고대국어에서 ‘kara, kari’의 표기로 나타나고 ‘kuru(溝漊)’는 내륙의 산악지역에서 「柵→都城→都市(國)」의 의미로 轉義된 어형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만주어 ‘golo, holo’는 「부분, 반(半)」의 의미를 지닌 몽고어 ‘kelte-gei’, 퉁구스어 ‘katla, kalto’, 올차어의 ‘kalta-sin, kalta-al’와 동음이형태의 표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주-퉁구스어 ‘kalto, kalta’는 ‘kalto~kalta>kata>kara’의 변화를 겪은 어형으로 추정되므로 고대국어 ‘kara(加羅), kari(加里)’와 동원어임을 확인할 수 있어 만주어 ‘golo’, 퉁구스어 ‘kolte’와 올차어 ‘kalta’가 동원어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가르다’ 곧 「分岐」의 義에서 「柵→都城→都市(國)」의 변화를 겪은 「伽落國」의 ‘kara, kari’가 ‘kara~kari>ari>ar’로 변화과정을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kari’의 어두음 ‘k-’가 탈락한 것이 ‘ari’, ‘al’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만주어 ‘golo, holo’의 동원어로 보이는 ‘kalto, kalta’가 고대국어의 ‘kara, kari’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전항에서 ‘kəl(kwəl:闕)’, ‘kɨl(大)=kΛrΛ(江)’, ‘kəti(居知)=arɨ(安陵)=kɨl(長)’, ‘kəti(居地)=kato(kalto:碣島)=aro(阿老)’의 대응에서 ‘kəl(kwəl)=kal’, ‘kəti=kato(kalto:碣島)=aro(阿老)’을 얻게 되어 ‘kato(<kalto:碣島)’가 ‘kato~kari>ari>al’의 변화를 겪은 어형임을 미루어 ‘kəti(居知)’는 ‘kəti>kəri>əri>əl’의 변화거친 것으로 ‘k-’어두음이 탈락한 어형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kəl=kal’, ‘kəti=karo=kato’가 대응표기로 이들 어휘가 터쓰이어 호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도해하면
등의 변화를 거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kato, kari’는 「分岐」 곧 수변지역에서 형성된 「柵→都城→都市(國)」의 의미를 지닌 낱말이므로 ‘k-’어두음이 탈락한 ‘ari’는 둥근벽으로 둘러싸인 「都城, 都市」의 의미를 지닌 낱말로 「둥근(圓)」의 義 또는 권내의 「중심부, 중심, 주축」의 뜻을 지닌 낱말로 추정된다. ‘al’은 둥근(圓․丸)의 義 곧 둥근 방책의 의해서 둥근벽으로 둘러싼 「都城」의 형상에서 「알(卵)」의 형상과 연결되어 「알(卵)」로 전의된 것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해(太陽)’가 「알(卵)」의 형상과 흡사하고 ‘해’의 형상인 ‘알(卵)’이 시조탄생과 연결되어 卵生神話를 태동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al’은 둥근의 의에서 전의된 것이 ‘알(卵)’의 義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kari’에서 ‘k-’ 어두음이 탈락한 ‘ari’는 「大, 중심, 주축」의 義로 추정되고 ‘al’은 「卵」의 의에서 「넋, 魂」의 義로 전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요약하면
등으로 변화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kur-, kor-, kar-, kər-’은 경덕왕 지명변경이후에 이들 어휘가 서로 터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리랑」의 「랑」은 터(地)곧 취락지(聚落地)를 지칭하는 것임을 고지명 어례에서 이를 입증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당 자료를 제시한다.
해당 자료를 재구하면 다음과 같다.
위 어례에서 「落=耶=羅」, 「羅=良」, 「陽=良」, 「陽=奴」, 「壤=奴」, 「羅=盧」, 「襄=盧=路」에서 「洛=耶=羅=良=陽=壤=襄=奴=弩=盧=路」의 대응을 이끌어 낼 수 있으므로 이것이 동음이차자표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들은 음독표기 ‘ra(ra-k:洛), ja(耶), ra(羅), ra(ra-ŋ:良), ja(ja-ŋ:陽), ja(ja-ŋ:壤), ja(ja-ŋ:襄), no(奴), no(弩), ro(盧), ro(路)’로 재구된다. 따라서 「ra-k(洛), ra-ŋ(良), jia-ŋ(陽, 壤, 襄)」의 어말자음 ‘-k-’, ‘ŋ’은 표기에 관여치 않았을 것으로 본다. 또 「伽耶」는 ‘kara>kaja’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추정되고 「壤, 襄」은 ‘ja(壤)=no(奴)’, ‘ja(襄)=ro(盧)=ro(路)’ 대응표기이므로 자 ‘r->I-’화한 어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洛, 羅, 耶, 良, 陽, 壤, 襄, 奴, 弩, 盧, 路」는 「랑」의 동음이차자의 표기로 차용표기임을 확인할 수 있어 「랑」은 ‘터’ 곧 취락지의 의미를 지닌 낱말일 것으로 추정한다. 梁柱東(1962:271~276)에서 「울․우리」의 원음(原音)이 「>>>올․울>오리․우리」로 분화하고 우리(나의 복수)의 원음(原音)이 「부리」로서 「(伐)>부리>우리」로 전(轉)하고 「」은 「光明․原野․男」을 뜻한다고 하였다. 「아리․어리․오리․우리」 등은 「부리」의 전(轉)이라 하고 다음과 같이 분화하였다.
으로 음전(音轉)된 것이라 하였다. 또, 「아리랑」의 「랑」을 「嶺」으로 해독(解讀)하고 다음과 같이 어례를 제시하여
에서 이것을 「아리領」으로 해독하고 「謁日․嬰留」는 음사(音寫)로 「아리․아루」, 「卵結․鳥卵」은 훈차 「알」이기 때문에 「아리랑」의 원음이 「아리령」이고, 「령」은 「嶺」의 借字라 하였다.
이 견해에 대하여 수급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이 「한>한>한」로 무성자음 「ㅂ」이 유성음 사이에서 「」으로 변화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의 어두음 「ㅂ」이 유성자음 「」으로 변화할 수 없음은 선초국어에서 입증되므로 「」을 「아리랑」의 「아리」로 해독할 수 없는 것이 그 첫째 이유이다. 또 「(伐)」이 「發, 伐, 弗, 拂, 不」의 동음이차자 표기로 동음표기이나 「原, 平, 坪, 評」은 이차자 표기로 「地, 野」의 의차자이고 「(伐)」은 ‘-k-’ 어두음이 탈락한 어형인 「아리, 어리, 오리, 우리」의 동음표기가 아닌 것이 그 둘째 이유이다. 그리고 위 어례의 「謁日嶺」은 「아리고개」의 해독에 무리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아리랑’의 ‘랑’과 ‘嶺’과는 별개 의미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아릿고개(嶺)를 민요 「아리랑」으로 해독하면 ‘아릿고개 아릿고개 아라리요 아릿고개 고개를 넘어 간다’가 되어 짜임의 탄탄성과 율조가 흐트러진다. 그러므로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과 정조에 맞는다. 왜냐하면 ‘아리랑’은 삶의 터전이요 거주지인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 떠나간다는 것은 삶의 터전(장소)인 그곳의 고개를 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는 것은 사별(死別)이요 이별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울타리 문화가 갖는 속성이요 겨레의 연결고리인 한(恨)의 정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랑’의 ‘랑’은 ‘고개(嶺)’가 아닌 삶의 터전인 취락 곧, 터(地)로 해독해야 하는 것이 셋째 이유이다. 넷째 「良, 耶, 狼, 陽, 壤, 襄」의 동음표기가 「랑」이고 「랑」의 약음차 표기가 「落, 耶, 羅, 路, 奴, 弩」로 ‘터(地) 곧 취락지인 삶터인 것이 넷째 이유이다. 그러므로 ‘아리․어리․오리․우리’는 ‘kari, kəri, kori, kuri(kura)’에서 어두음 ‘-k-’가 탈락한 어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의(義)는 ‘중심의 지(地), 큰터(大地) 또는 삶터’로 추정된다. 이들 어휘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변화하여 그 의미가 분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Ⅱ.에서 만주-퉁구스어군인 에벤키어, 라무트어 ‘kurē’, 네기달어 ‘kuri’,인 오로키어 ‘kure-kureji’, 만주어 ‘kuran~kuren’과 몽골어 ‘kurie’와 일본어 ‘kuru-wa’는 고구려어 「城」을 의미한 낱말 고구려 「溝漊」와 동원어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國」의 의미를 가진 낱말 여진어 ‘gurni’, 몽고어 ‘gurun’과 일본어 ‘kuni’ 고구려의 「句麗(句驪)」가 그 기저형(基底形)이 ‘kur-’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고구려지명에서 「城」을 의미한 낱말 「溝漊」가 「忽」로 기사(記寫)되어 있는 반면, 백제지명에서 유일하게 1개처에서 기사되어 그 어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고구려에서 「城」을 의미한 낱말 「溝漊」가 존속하지 못한 것은 또 하나의 「城」을 의미하는 낱말 ‘hoton’을 만주어에서 차용했고 이것이 「城」을 의미한 낱말 ‘hol’로 고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Ⅴ.1. Cincius는 만주어의 ‘hoton’과 퉁구스제어 ‘xoton’이 몽골어 ‘qoton’을 차용한 것이 확실하다고 하였다. 이를 미루어 「城」을 의미하는 낱말 「溝漊」가 존속하지 못하고 점차 쇠퇴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백제지역에서 「屈」이 유일하게 잔존한 것은 지명의 보수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만주어, 퉁구스어 ‘koton, kori, kojiča’ 네기달어 ‘kori-, korija, koriga’, 만주어, 골디어, 올차어인 ‘kori’ 등은 몽골어 ‘qoton’에서 변화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만주-퉁구스어 ‘koton, kori’는 「溝漊」 곧 「(성)城」의 대응표기인 「忽, 骨, 洞, 谷, 穴」과 동원어일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고대국어의 ‘kuru(溝漊), kul(穴), kol(骨, 洞, 谷)’과 ‘k-’어두음이 탈락한 ‘uri, ori’가 만주-퉁구스어계인 ‘kurē, kuri, koton, kori’와 동원어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동일어계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만주어 ‘golo, holo’는 퉁구스어 ‘kalta’, 올차어 ‘kalta, kalta-ka, kalta-n, kalta-sim’, 몽고어 ‘kelte-gei, kertagai, kelteiji, keltele’는 만주어 ‘golo, holo’에서 분화된 동원어일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만주-퉁구스어 ‘kalta’가 ‘kalta>kata>kara’의 변화를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앞의 고지명에서 ‘kalta(碣島), kalt'-čo(葛草), kara(加羅), kari(加里)’가 ‘kalta~kati>kati>kari>ari’의 변화를 겪은 어형임을 확인할 수 있어 만주어 ‘golo, holo’와 만주-퉁구스어 ‘kalta’, 몽고어 ‘kelte-’가 동원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또 전항에서 ‘kəti(居知)=kato(<kalto:碣島)=aro(阿老)’의 대응을 얻게 되어 「碣島」는 ‘kato~kari>ari>al’의 변화를 겪은 어형임을 미루어 「居知」가 ‘kəti>kəri>əri>əl’의 변화를 거친 어형일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ari, al, əri, əl’은 알타이제어 ‘kalta, kelte-’가 동원일 것으로 추정되고 만주어-퉁구스어 ‘goli’, ‘kalta’가 ‘kara’와 동원어일 것으로 생각되므로 만주-퉁구스어계로 추정한다.
Ⅶ. 결 론
본고에서 삼국사기 지리지에 수록되어 있는 대응관계의 지명어휘를 추출하여 통시적, 공시적 고찰로 얻어진 어휘를 바탕으로 알타이제어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 오리, 아리, 어리」 및 「아리랑」의 어원 및 계통을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고구려어의 「城」을 의미하는 낱말 ‘kuru(溝漊)’와 만주-퉁구스어 ‘kure(kuri)’, 몽골어 ‘kur-’, 일본어 ‘kuru-’는 어원이 같은 동원어로 추정되고, ‘kuru(kuri)’의 어두자음 ‘k-’가 탈락한 것이 ‘uri’이고 ‘uri’의 어말모음 ‘i’가 탈락한 것이 ‘ul’일 것으로 추정된다.
2. 고구려어의 「城」을 의미하는 낱말 ‘hol(忽)’은 몽골어계 ‘qota, qoto-, qori-’, 튀르크어계 ‘-qorū, qory-’, 퉁구스어계 ‘koto-(n), xoton’, 만주어 ‘hotō-(n)’은 어원이 같을 동원어로 추정되고 몽고어 ‘qoton’을 퉁구스어에서 차용한 것이 ‘koton’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만주어 ‘hoton’과 몽고어 ‘xoton’은 몽고어 ‘koton’에서 변화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고구려어 ‘kol(骨, 谷)’은 몽고어 ‘koton, kori’에서 차용한 어형일 것으로 여겨지므로 ‘koto~kori’에서 ‘k-’ 어두음이 탈락한 어형이 ‘ori’이고 ‘ori’에서 어말모음이 ‘i’가 탈락한 것이 ‘ol’일 것으로 추정된다.
3. ‘가다(分岐)’에서 변화한 ‘kara-(k)(伽落, 加里)’는 만주어 ‘golo’와 ‘kalta(kata)’, 몽고어 ‘kelte’는 어원이 같은 동원어로 추정되고 ‘kari, kara’의 어두자음 ‘k-’가 탈락한 것이 ‘ari(ara)’이고 ari(ara)의 어말모음 -i(-a)가 탈락한 것이 ‘al’일 것으로 추정된다.
4. ‘kəri’는 ‘kari’의 동음이형태표기로 추정되고 ‘kəri’의 어두자음 ‘k-’가 탈락한 어형이 ‘əri’이고 ‘əri’의 어말모음 ‘-i’가 탈락 어형이 ‘əl’일 것으로 추정된다.
5. 「아리랑」의 「아리」는 만주어 「分岐」의 의(義)를 지닌 ‘golo’, ‘kalta’의 어두음 ‘k-’가 탈락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랑」은 「良, 羅, 耶, 里」의 표기로 터, 곧 「地, 大地, 原地」의 의를 지닌 낱말로 추정된다.
6. ‘kuri(u), kori(o), kari(a), kəri(ə)’는 경덜왕이후 터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어중모음 ‘-u-, -o-, -a-, -ə-’와 어말모음 ‘-u, -o, -a, -ə’가 고대국어에서 터쓰이어 호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 ‘kuri, kori, kari, kəri’는 ‘kuri>uri>ul, kori>ori>ol’, ‘kari>ari>əl, kəri>əri>əl’의 변화과정을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kuri, kori, kari, kəri’의 어말모음 ‘-i’가 탈락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8. ‘kuri, kori, kari, kəri’의 어원 및 어휘와 음운의 변화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등으로 변화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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