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렇게 생각한다
1.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과 개념
2.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
1) 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2) 70년대와 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3.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반적 특성
1)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공통적 특징
2)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상이성
(1)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2) 패러디와 패스티쉬
(3) 주변적인 것의 부상
(4) 양식의 다원성
3)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차이점
4.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적 특징과 작품분석
1)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1) 상업적 보수주의
(2) 비판적 저항주의 (시뮬레이션 아트)
(3) 그 밖의 미국의 대표적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와 작품
2) 독일의 신표현주의 회화
3)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디아
5. 건축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6. 결론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렇게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극까지 치닫은 모더니즘의 허무적 페혜의 대안으로 볼수 있다.
(모던이즘..이성이 수단이고, 목적이다.
포스트..이성은 유용한 수단일뿐 완벽하지 않음이
현실에서 너무도 크나크게 드러났다.)
(내 생각....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수단(=도구)으로서 이성이지. 이성이 현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긍극적 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즉 이성은 유효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님을 뼈져리게 느껴서--일이차 대전-- 생긴게 포스트인데, 이 포스트는 모던의 대안을 제시한게 아니고 모던의 부작용만을 보고 일단 해체하자고 하는 사고이다.그러면서 무대책이란 비난을 피하고자 한게 아니지만, 그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찾아 나서는게 각 문화,각각의 사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다양성 존중=차별을 넘어서는 차이들의 존재 인정-흘러가고 있다고 예시를 든게 가족관계의 변화를 가져온 산업화,도시화를 예로 들었다.)
세계의 양극체제가 붕괴되는 시점을 전후로 제3세계권 국가의 독립과 개도국의 문화적 욕구의 상승으로 말미암아 독자적인 양식들이 속속 생겨나게 된다.
멕시코의 거리미술(벽화)을 통한 언더그라운드 미술형식이나 한국의 신구상적 요소의 민족미술 등이 이러한 부류에 속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다원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으며 다원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 개념의 하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개념이 무한하며 우리의 입장에선 한국적 시각의 국체적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모더니즘이 뛰어난 사상적 요소를 등지고 끝간데 없이 흘러왔다가 그 이론을 위한 이론, 사상을 위한 사상의 허무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을 낳았듯이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애매모호함이 하나의 결정체로서 독자적인 영역이 구축 되어지지 않을 때 다시 네오포스터 모던이나 탈포스트모더니즘의 이상형식이 새로이 대두되지 않을까 예측한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던의 후기적 성향이 아니라 모던에 대한 반발적 성격으로 보아야 앞으로의 전개도 각성을 통한 발전적 요소의 새로운 이즘 창출이 되리라고 본다.
(내 생각
....한마디로 줄이면...포스트 모던이즘은
현재의 시대정신은 반 이성임이 주류를 형성 했다는 것이다.
....모던이든,포스트모던이든 둘 다 공통적인것은
이분법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나<모던>는 통일을,
또 다른 하나<포스트모던>는 분열을 주장)
(획일적 통일도 무조건적인 분열도 옳지 못하다. 그래서, 이분법이 아닌 이중성의 세상임을 인정해야만이 조화로운 세상을 지향할수 있는 것이다. 마치 대문이나 창문을 외부와 단절로만 보는 우를 범하지 않게, 창은 때론 외부와 연결하는 소통의 장이 되듯이...즉, 창문의 유리를 외부를 보는 투명성의 기능만 생각하여 대문의 문짝처럼 벽=단절-로만 보지 말고, 내가 열어 졎히면 내외 구분이 무의미하게 되듯이...)
서구의 계몽주의자들은 동양의 중국 제자 백가 쟁명을 보지도 들을려하지도 않았고, 더더욱 알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찿아 나서다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제자 백가들이 이천년 전에 피와 땀 흘려 만들어 놓은 곳으로 찿아 들어온것이 포스트 모던이란 명패만 바꿔 달았을 뿐이다.즉,제자백가의 논쟁을 통해 유학이 중심 사상이 된 것을 서구 계몽주의자들이 서구적으로 해석한 것이 근대 자유주의인데 이를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제국주의 논리를 위해서 비서구지역의 낙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유학을 왜곡햇으나, 결국 세계대전을 통해서 인정 할수 밖에 없었음을 증명하는게 표스트 모던이다. 본질의 중요성을 강조한 종교, 판단의 원칙을 강조한 계몽, 논리적 사고를 강요한 모던, 이런것들이 불필요하게 된 서구의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는 다는게 고작 일단 기존의 사고 방법을 몽땅 부수고 보자이니 세속적으로 흐를수 박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부초로 떠 도는 방황의 시대를 걷고 있다. 중국의 명변론이 언어주의와 해체주의로 서구 옷을 입고 나왔을뿐이라고 하면 지나친 악담일까?
인본주의 산실인 공맹에서 인류의 길을 찿는 방법을 얻는 것이 좋을듯하다.
현대적 표현으로 하자면....동도서기 !!!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동양적 사유=정신 문화에 서구 과학을 융화 시키는 세계관 갖는게 ....인간의 삶의 가치 추구에서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룩 할 것 같다.)
(가치 중립적이라 믿었던 과학이 인간의 삶에 가치 전도를 일으키는 현실을 외면 할 수없는 상태에 도달 했음이..세계대전인데, 이런 상황 돌파를 포스트적 사고로는 한 발작도 나아 갈 수없고, 오히려 사고=철학 방기로 오는 혼란만 커진다. 잘 못 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불교의 자연회귀, 유학의 인본주의, 기독교의 신에 의탁....이 중 유학의 인본주의( 서구의 계몽주의에서 유학에 대한 오해로 파생한 인간 중심주의가 아님.)에서 과학적 사유 부작용을 치유 내지 최소할 수 있는 방법 모색이 들어 있다.
격물치지의 해석은 중의적이며 상극적이다. 격물=과학, 격물=마음. 이치를 아는 것을 서구는 물질을 통해서 인간이 알아야한다고 봐 물질주의로만 흘렀지만, 동양은 물질을 서구처럼 과학적 접근해야 이치를 알게 된다는 논리도 있었고 그 반대 논리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물질주의(물질 만능)는 동양에선 없었으나 지금은 동양도 서구 못지 않게 물질주의로 치닫고 있다. 포스트 모던을 격물치지로 해석해 보면, 과학중심의 모던만을 중시할게 아니라 마음도 과학 만큼 중시해야 한다는 다양성을 강조한 주장이다.결국은 포스트 모던은 재앙을 경험한 후에 깨달은 격물치지이다.)
1.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과 개념
포스트모더니(postmodernism)은 후기 현대 사회라는 관점과 긴밀한 관계성을 맺고 있는데 포스트라는 말은 언어의 역사에서는 일반적인 용어적 도구이며, 그것은 이따금씩 뛰어난 이전 시대의 운동들을 언급함으로써 특정한 사건들의 위치를 적절하게 지적하는 중성적이며 편리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다른 형상을 위한 후시성으로 특정 지워지는 그러한 특정한 형상적 사실은 결코 그것이 앞에 것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포스트는 긍정적인 시대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부재가 일반적으로 변환 적인 시대의 특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어원은 여전히 불확실하나, 1934년에 마드리드에서 출간된「스페인 및 라틴 아메리카 시선집」이라는 책에서 페드리코 드 오니(fedrico de oni s)가 포스트모데리니시모 (postmiderinicimo)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1942년 더들리 피츠가 자신이 편집한 「현대 라틴 아메리카 시선집」속에서 그 용어를 다시 한번 사용했다. 이들은 모두 20c 초반의 시기에 관심을 갖고 모더니즘 그 자체에 이미 내재하고 있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다. 1947년에 D.C 소머벨(somevell)이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의 역사 연구 (a study of history)를 요약해서 출판했을 때 제1권에서 사용한 바 있다. 토인비는 서구 문명에 있어 대략 1875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가리키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은 도시 산업노동자의 비이성과 무정부적인 시대를 예언적으로 지칭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찰스 올슨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여 그 용어의 사용범위를 확산시켰다.
1959년과 60년에 어빙 하우(irving howe)와 헤리 레빈(harry levin)은 다소 불만스런 태도로 포스트모더니즘을 그 당시 하나의 거대한 운동으로 확산되어 있던 모더니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글을 발표하였다. 어빙 하우는 포스트모던상황을「대중사회의 등장과 함께 가족과 같은 전통적인 권위의 중심이 희박해져 가고 무기력이 사회적인 태도로서 만연하는 동시에 인간 자신은 생산품, 유흥산업, 그리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소비자로 전락되었다.」고 하면서 위대한 모더니즘의 쇠퇴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이 말을 썼다. 반면 레슬리 피들러(leslie fiedler)는 모더니즘(근대=이성)의 종말을 진단하며 반이성적이고 낭만적이며 무책임한 묵시적인 새로운 대중문화의 도래를 선언하였다.
50․60년대 미국 문화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자주 사용되긴 했지만 요즘 쓰이는 의미에 가까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70년대 중반 이후이다. 본격적인 모더니즘을 공격하며 새로운 감성, 캠프(camp)를 옹호한 수잔 손타그(susan sontag)외에도, 이합 핫산(ihab hassan)은 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가장 큰 공로자이다. 그는 기술만능, 비인간화, 도시화 등을 배경으로한 반권위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주장하다 80년대 들어서는「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속성을 구별하는 대조표」까지 만들기에 이른다. 주로 미국의 문학계에서 맴돌던 이 용어가 유럽으로 전해지게 된 것은 70년대 말경으로 프랑스에서는 장 프랑스와 리오타르(jean francois lyitard)와 프리스티바(kristeva)가 독일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가 이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국제적인 확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합 핫산의 영향을 받은 리오타르는 1979년「포스트모던의 상황」이란 책을 내놓음으로써 문학내에 갇혀 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을 정치, 경제, 문화의 각 방면으로 퍼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프랑스의 탈구조주의(poat structuralism)에 기반한 사회비판이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자리 잡힌 것에는 리오타르의 역할이 무척 크다할 것이다.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리오타르는「거대 설화의 해체」를 주장하는데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나 쟈크 데리다(jaeques derrida)가 주장하는 형이상학의 해체, 주체나 진실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일치한다. 이런 경향을 하버마스는 합리적 이성, 보편성을 부정하는 니이체적인 허무주의라고 비난하며 신보수주의의 등장이라고 우려하는데, 지난 2세기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일련의 이념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데 이들 탈구조주의자들의 역할이 컸던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80년대 초에는 예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모더니티 논쟁이 서구사회 지식인 사이에서 가장 큰 주제로 부각된다.
미술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활발하게 된 것은 건축분야에서의 논쟁이 무성하였던 70년대 이후부터 이고, 주로 미국에서 쓰이던 이 말이 국제적으로 확산된 것도 건축분야에서 비롯된다. 이같이 건축과 관련된 맥락에서 80년대 전후 미술계에서 유행하였던 형상으로의 복귀 또는 개념미술이후의 다원주의 등을 지칭하여 사용하게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
1960년대 및 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견해를 부정하거나 비판한다. 전시대의 고급모더니즘과의 결합을 뿌리치면서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럽 아방가르드 유산을 소생시키려 했고 듀상-케이지-워홀을 축으로 하는 미국적 형식을 접맥시키려 했다. 70년대가 되자 60년대의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점차 생명력을 잃어 갔으며 70년대의 새로운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절충주의의 출현으로 비판, 변화, 부정을 내세우는 주장을 단념해버린 긍정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안적 포스트모더니즘(alternative postmodernism)의 출현, 즉 아방가르드적 용어, 말하자면 오래된 모더니즘 이론보다는 효율적으로 현대문화의 정치적 발전에 부응하는 용어에 의해서 재규정되는 견해의 부각이다.
1) 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50년대 중반 이후의 문학과 예술에서는 추상표현주의, 세리음악 그리고 고전적 모더니즘문학의 지배에 대항하는 라우센버그(Rauschenberg), 쟈스퍼존스(Jasper Johns), 캐로엑(Kerouac), 진스버그(Ginsberg)와 비트스(the beats),
바로스(Burroughs), 비텔메(Barthelme)등의 새 세대예술가들이 등장했고 수잔 손탁, 레슬리 피들러, 이합 핫산과 같은 비평가들과 제휴됐다.
비평가 제랄드 그레이프(Gerald Graff)는 60년대 포스트모던문화를 두 경향으로 구분했다. 그레이프에 의하면 절망적인 예언적 경향과 환희에 찬 이상적 경향은 이미 모더니즘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다니엘 벨(Daniel Bell)은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모더니스트들 의도의 논리적 귀결」이었다고 주장했다. 벨과 그레이프는 50년대 후반 및 60년대의 항거를 고전적 모더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혁명으로 보기 보다는 일찍부터 허무부주의적 색체를 띠었던 모더니즘 경향의 지속으로 보았다.
후이센은 60년대 항거는 모더니즘 그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오히려 50년대 진보적-보수적 역할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던 길들여진 모더니즘 견해에 대한 항거였고 반공산주의 사상이 범람했던 냉전시대의 문화적-정치적 병기고로서의 선전무기로까지 변색된 모더니즘 견해에 대한 항거로 보았다. 예술가들의 항거에 직면한 모더니즘은 더 이상 대항 문화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고급모더니즘의 상상적 추상보다는 다다(DaDa)와 초현실주의 같은 연속적 아방가르드 운동의 상상적 추상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연출되고 있었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들, 즉 시민권 운동, 투쟁 캠프, 반전운동, 반문화등으로 인해 이러한 아방가르드는 독특한 미국적인 것으로 되는데, 이때 사용된 미학적 형식들과 기교들에 대한 용어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예술과 삶의 재통합을 기도하는 아방가르드의 특별한 급진주의, 즉 헤게모니를 쥔 이론으로서의 고급예술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아방가르드가 60년대의 미국적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에너지와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해프닝, 독특한 팝, 사이키델릭 예술, 애시드 로크, 대안적인 거리무대의 형식을 취하며 초창기 현대 예술을 육성시킨, 그러나 더 이상은 존속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대항적 정신을 재수용하려했다. 팝아방그르의 성공은 유럽의 초기 아방가르그드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고도로 발전된 문화산업 속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상품화와의 결탁에도 불구하고 팝아방가르드는 60년대 대항문화(Culture of Confrontation)에 버금가는 비판력을 가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많은 초기 주창자들은 20년대 아방가르드의 단편인 테크놀로지적 낙관주의에 동조했다. 20년대에 사진과 영화가 베르토프(Vertov), 트레티야코프(Tretyakov)등에게 하나의 가능성이었듯이 텔레비젼, 비디오와 컴퓨터가 1960년대의 기계기술적인 미학의 선구자에게 그러하였다. 맥루한(Mc Luhan)의 인공두뇌학적이며 기술 관료적인 매체종말론이라든가 핫산의 「쾌주하는 테크놀로지」, 「매체에 의한 제한 없는 분산」, 「대리의식으로서의 컴퓨터」등은 후기 산업사회의 자가 도취적인 자아와 쉽게 결합하였다.
로큰롤과 대중음악, 일상적인 심상들, 대중문학의 복합적인 형태를 찬양하던 1960년대의 이러한 「대중주의적」경향은 반문화운동의 맥락에서 그리고 다음으로는 현대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그 이전의 미국전통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힘을 얻었다.
피들러가 1965년 발표한「새로운 돌연변이체들 The New Mutants」는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피들러는 「탈백인 Post-White」,「탈남성 Post-male」
「탈인간주의 Post-humanist」,「탈청교도 Post-puritan」등을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은 모더니스트적인 도그마와 서구문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기성문화 체계가 갖고 있는 개념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미국의 전반적 정치상황이, 아방가르디즘과 전위 정치 사이에 미약하고도 단명했던 연합전선이 이루어졌던 1920년대 초반의 베를린이나 모스크바의 정치상황과는 결코 비유할 바는 안 된다. 하더라도 19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는 진정한 아방가르드 운동의 성분이 얼마간은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존재론적 모습을 반영하는 의미로서의 아방가르드주의가 내포한 정신은 60년대의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그때까지 고갈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모더니티 내에 이러한 비동시성이 잠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70년대와 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70년대 상황은 모더니즘 자체의 와해를 실현시키는 예술적 책략의 좀 더 광범위한 확산과 유포로 특징 지울 수 있다. 모더니즘 체계를 공격하고 그것의 어휘를 박탈하며 전근대(premodern) 및 비근대(nonmodern)문화 뿐만 아니라 현대적 대중문화의 이미지들과 모티브들을 닥치는 대로 추출하여 보충하였다.
70년대 중반에 이르자 선행시대의 기본 가정들은 종적을 감추거나 아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졌다. 날로 더해 가는 상업화의 확산이 아방가르드 정신을 강탈해 버림으로써 팝 록크, 그리고 아방가르의 우상파괴적 제스cb어들은 탈진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기계공학, 매체, 그리고 대중문화에 대한 초기의 낙관론은 좀더 냉정하고 비판적인 평가로 대치되었고 반문화, 신좌파, 반전운동은 성숙치 못한 미국역사의 궤도 일탈로 어느 때보다도 더 자주 미판을 받았다. 1960년대는 아직도 여러 양식들(팝, 광학예술, 키네틱 아느, 미니멀 아트, 관념예술)이 연속해서 논리적으로 생겨났다든가 아니면 모더니스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예술에 대항하는 반예술과 비예술의 행위 등으로 논의될 수 있는 반면에 1970년에는 그러한 구별들이 점차 그 근거를 상실해 갔다.
70년대 미술은 다시금 장식적으로 또는 도덕적이고 과장되게 또는 소형화, 인류학적, 고고학적, 사회생태학적, 자전적, 허구적으로 됨에 따라서 모방의 문제,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과거에는 소흘히 여겼던 환상적, 연극적, 장식적, 문화적 등의 단어들이 부활했다. 1978년 부적절한 미학과 막연한 취미를 제시했던 신미술관(new museum)의「bad painting」전과 1979년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최된「새로운 이미지 the new image」전은 채색된 이미지에로의 복귀를 예고한다.
70년대 후반, 이른바 다원주의적 시기동안에 서로 중복되어 존재하던 양식의 혼란으로부터 갑자기 신표현주의가 미국과 유럽에서 지배적인 사조로 등장했고 시대정신의 낡은 개념이 또 풍미했는데 시대정신은 신표현주의 미술에 극한 되지 않고 실험적, 독창적, 발명적, 분석적으로 분명히 아방가르드적인 어떤 것의 광범위한 거부를 포함하였다. 그 대신 초자연적인 새로운 종류의 역사주의, 원시주의, 표현주의 등이 비합리적으로 수용되었다.
80년대에는 동시적인 미술운동이 즐비하게 도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표현주의를 시작으로 네오지오(neo geo), 네오 미니멀리즘(neo minimalism), 네오 콘셉츄얼리즘(neo conceptualism), 시뮬레이셔니즘(simulationism)등과 자발적으로 일어났다가 종종 즉시 사라지는 개인적인 ‘환원’의 부활을 포함한다. 80년대는 ‘회화의 재탄생’ 그리고 자신들의 국가가 지닌 과거의 화해를 꾀하는 유럽의 새로운 독일 이탈리아 화가들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요란스런 거리 예술과 거친 낙서화까지도 수용했던 뉴욕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의 비형식적 표현주의 미학이 출현하면서 시작되기도 했다.
형식과 양식 그리고 컨텍스트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으며, 전통의 이론이나 사관에 얽매이는 것보다 개인적 모티브, 사물과 어떤 동기가 갖는 개념, 단절과 결합의 중간 지점에선 묘한 심리상태, 과거의 것을 오늘날의 사고와 감각으로 해석, 환원시키는 양상이 80년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3.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반적 특성
모더니즘은 유일무이한 현상이 결코 아니었다. 모더니즘은 미래주의․구성주의와 같은 근대화에의 도취, 또「낭만적 반자본주의(romantic anti-capitalism」의 여러 모던형식과 같이 근대화의 강력한 비판을 모두 기자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다양한 논의의 양상을 띠며 구축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는 전통의 관련성 아래서, 혹은 차이점 아래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공통적 특징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는데, 본질적인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과의 단절, 불확정성, 파편화, 반리얼리즘, 전위적 실험성,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그리고 비역사성과 비정치성등에 있어 모더니즘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런 특징들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같은 특징들에 대해 모더니즘보다 한결 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전통과 인습에의 도전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제까지 서구세계를 지배해온 휴머니즘전통을 비판함으로써 변혁과 혁신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두 이론이「대항문화」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이 지니는 비결정성 혹은 불확정성에 대해 핫산은「비결정성은 우리의 행동과 관념, 그리고 해석행위에 침윤되어 있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0c 후반이 흔히「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용어로 요약되는 것을 보아도 이점을 잘 알 수 있다.
비결정성에 필수적을 수반되는 것이 바로 다원성과 상대성의 문제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특징적으로 일원론이나 절대성을 배격하고 보다 다원적인 관점에서 모든 현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비결정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파편화 편리화현상 역시 이미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한결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징적으로 결합보다는 단절, 질서보다는 혼돈, 그리고 총체성이나 종합보다는 해체나 분해를 더욱 중시하기 때문이다.「총체성에 대한 전쟁을 일으키자..............여러 가지 차이점을 활성화시키자」라고 한 리오타르의 주장은 바로 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파편화나 편린화는 몽타쥬나 콜라쥬의 기법을 통해 잘 나타난다.
총체성에 대한 거부는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특히 포스트구조주의는 이제까지 구조주의자들이 공시적인 체계의 수립을 통해 인간의 기호 세계를 정복하고자 시도해온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하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어 신고전주의와 리얼리즘에서 극한점에 달한 모방이론과 리얼리즘에 기초하고 있는 제시성과 재현성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사실상 반리얼리즘은 이 두 이론을 서로 결합시켜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학을 임마뉴엘 칸트의「숭고함」의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리오타르는 비제시성과 비재현성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모더니즘의 경우보다 한결 더 첨예하게 강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는 제시할 수 없는 것을 바로 제시하는 것, 훌륭한 형식의 위로와 성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향수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취향의 일치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 새로운 제시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흔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형식과 기교를 통해 부르조아의 정신적 자기만족감을 파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모더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흔히 리얼리즘 예술가들이 추구해온 삶에 대한 환상을 의도적으로 깨뜨리고 있다. 비토리 쉬클로프스키나 보리스 아이헨바움과 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낯설게 하기」나「탈자동화의 개념」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소외효과」의 개념은 사실상 이 실험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러한 특징을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혹은 미래파와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 그리고 모더니즘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극한점이 달했다.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는 불확정성이나 비결정성에서 야기되는 문제로 의견과 실재, 기대와 결과들의 불일치를 통해 고정불변한 의미나 의도를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어느 한 증상이나 권위에 도전하고자 한다. 아이러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물론 모더니즘에서도 사용하는 중요한 장치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두 전통이나 이론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모더니즘의 경우 아이러니는 상징이나 메타포(metarphor)혹은 알레고리(allegorie)와 마찬가지로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충하는 인간 경험을 결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그것은 오히려 인간 경험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인 비역사성과 공시성, 그리고 그것에 수반되는 비정치성은 본질적으로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연속성보다는 불연속성을, 전통의 계승보다는 전통의 단절을 강조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의 비역사적 특성이나 비정치적 특성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위적 실험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역사적 통시성이 배제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히 주어진 시간 안에서 새로운 방법과 기교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비역사적-비정치적 특성은 독일 신보수주의자 하버마스,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 르레드릭 제임슨 등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포스트 모던 미술이나 건축은 다른 어떤 예술 영역보다는 역사상에의 복귀현상이 비교적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역사적 절충주의」에 의해 특징 지워지며, 따라서 모더니즘과의 단절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이 본질적인 면에서 모더니즘과의 단절이기보다 오히려 그것의 논리적인 계승이며 발전이라는 전제 아래 포스트모더니즘을 규정짓는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논리적으로 계승되고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한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으로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에 해당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본적인 면에서는 모더니즘과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반면 다른 중요한 면에서는 그것과 구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相異性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달리 脫正典化 혹은 脫中心化 현상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탈정전화는 넓게는 神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작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산되어 있는 현상이다. 모더니즘 역시 그 나름대로 이런 정전이나 권위에 대해 심각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모더니즘은 이런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격한 계급적 질서와 권위를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패러디와 패스티쉬, 주면적인 것의 부상, 양식의 다원성 등에 있어 모더니즘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1)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자아와 주관성의 문제는 서구 휴머니즘 전통의 근간을 이루어 온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모더니즘은 자아와 주관성, 그리고 그것에 기초하고 있는 개인주의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였다. 특히 예술의 경우 자아나 주체는 텍스트에 존재하는 고정된 의미를 만들어 내는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의 기원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런 자아나 주관성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다니엘 벨은 「모더니즘은 이제 고갈되었으며, 다양한 유형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개인적 에고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으로 자아를 분해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자아의 중요성이나 총체성의 문제보다는 자아의 상실이나 분산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2) 패러디(parody)와 패스티쉬(paetiche)
포스트모더니즘은 패러디나 패스티쉬를 핵심적인 예술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이 특징은 자아의 분산이나 상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탈정전화나 탈중심화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패러디를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寄生的인 작품으로 전락하는 반면(=모방,환쟁이), 경우에 따라서는 원형에 못지 않게 훌륭한 창조적인 작품이(=법고창생,예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패러디는 모더니즘의 경우와 비교하여 한결 다른 양상과 형태로 나타난다. 모더니즘의 경우 그것은 어디까지나 암시적이고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는 보다 명시적으로 그리고 보다 일관성 있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전자의 경우 패러디가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후자의 경우 보다 긍정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할 포스터는 패스티쉬가 역사성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할 포스터에 의하면「포스트모던 미술관 건축의 경우 패스티쉬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스타일들은 측정한 문맥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까지도 박탈당한다. 수많은 상징물로 전락된 여러 가지 스타일들은 부분적 幻影의 형태로 재생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역사」는 物化되고 파편화되며 날조된다.」고 한다. 따라서 포스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역사에의 복귀는 한낱 실체가 없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3) 주변적인 것의 부상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인 계급적 질서의 붕괴, 그리고 새로운 계급의 출현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말하는 이른바「억압된 것의 복귀」가 매우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런「억압된 것의 복귀」양상은 우선 무엇보다도 소수 민족의 부상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초엽부터 시작된 흑인 민권운동과 블랙 파워같은 정치운동으로 인하여 흑인의 위치가 상당히 격상되었다. 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권리와 자유를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같은 현상은 또한 소수민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러나 이런 주변적인 것의 복귀현상이 무엇보다 잘 나타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性의 해방에서이다. 이런 성의 해방현상이 가장 명시적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일어난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패미니즘운동이나 패미니즘 문학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은 특징적으로 남성 중심주의에 기초한 전통 이론이었던 것이다.
(4) 양식의 다원성
모더니스트들은 새로운 기계류와 과학기술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보고 그를 근거로, 빅토리아풍의 예술 및 디자인의 양식적 무정부주의와의 절충을 거부했다. 따라서 그들은 새시대의 상황에 걸맞는 새로운 형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스타일과 새 재료, 새 기술, 새기법이라는 강권적 의무의 창출이 불가피 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각 시대는 오직 하나의 스타일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사고 방식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스타일의 다원성이 존재한다. 는 생각에 의해 거부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충주의, 異種交配의 복합적 스타일이 유행하며 단독의 스타일이 지배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3) 포스트 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차이점
현대미술의 최근 경향에 대한 몇인이나 그룹운동들에 관해서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이것은 미술작품이나 문예작품을 옛것이나 현대의 것을 막론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그 독해와 시각의 문제 이상으로 독해자가 보는 사상의 문제를 언어표현(diskurs)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Ihanb hassan의 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