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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의 금강경 핵심 강좌
1강 1부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2011.10.24
金剛般若波羅蜜經 科分
금강반야바라밀경 과분
歸命一切佛菩薩海等
금강경 32분 과목
[序 分](證信序)
서분
第一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正宗分]
정종분
第二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善現申請)
第三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如來正說)
第四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第五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一, 斷求佛行施住相疑)
第六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二, 斷因果俱深無信疑)
第七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三, 斷無相云何得說疑)
第八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第九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四, 斷聲聞得果是取疑)
第十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五, 斷釋迦燃燈取說疑)
(六, 斷嚴土違於不取說疑)
(七, 斷受得報身有取疑)
第十一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第十二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第十三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第十四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八, 斷持說未脫苦果疑)
(九, 斷能證無體非因疑)
(十, 斷如徧有得無得疑)
金剛般若波羅蜜經 下
금강반야바라밀 경 하
第十五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第十六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第十七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十一, 斷住修降伏是我疑)
第十八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十五, 斷諸佛不見諸法疑)
第十九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十六, 斷福德例心顚倒疑)
第二十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十七, 斷無爲何有相好疑)
第二十一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十八, 斷無身何以說法疑)
第二十二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十九, 斷無法如何修證疑)
第二十三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第二十四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二十, 斷所說無記非因疑)
第二十五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二十一, 斷平等云何度生疑)
第二十六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二十二, 斷以相比知眞佛疑)
第二十七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二十三, 斷佛果非關福相疑)
第二十八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第二十九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二十四, 斷化身出現受福疑)
第三十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二十五, 斷法身化身一異疑)
第三十一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第三十二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二十六, 斷化身說法無福疑)
[流通分]
佛이 說是經已하시니 長老須菩提와 及諸比丘比丘尼와 優婆塞優婆夷와
불 설시경이 장로수보리 급제비구비구니 우바새 우바리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聞佛所說하고 皆大歡喜하야 信受奉行하시니라
일체세간천인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第三十二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가르치는 입장에 계신 스님들이 이렇게 금강경 회상에 함께 했습니다.
불교공부라고 하는 것은 해도 해도 다 함이 없고, 어쩌면 하면 한 것 만치 더 할 게 있는 것이 불교공부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는 모두가 다 가르친 입장에 있으면서 또 이러한 법석에 동참을 한 것은 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습니다마는,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고, 이 가을에 환희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가 뭐 이 자리에 있다고 해서 특별히 불교에 대한 견해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스님들 보다 뭐 더 많이 아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마는 누군가 이 소임을 해야 하겠기에 그래서 먼저 이 테잎을 끊었습니다.
앞으로 부산 불교 연합회에서 이러한 기회를 인연으로 해서, 보다 더 훌륭한 기획을 많이 세워서 불교 발전에 이바지할 것으로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에는, 포교와 전법이 절대 부족한 이 시점에서 불교 중심에 있는 우리 스님들로서 스님의 본분을 다한다는 것, 언제나 경을 가까이하고, 또 포교일선에서 많은 교화활동을 펴는 이러한 그 막중한 소임을 맡고 있으면서 또 그러면서 또 한편 충전하는 마음과 또 이렇게 오셔서 도반들끼리 서로 교류도 하고, 정보교환도 하고 또 반가운 얼굴들도 만나는 이러한 아주 정말 법석은, 이러한 법석은 정말 우리 승려들의 진정한 그 본분에 충실한 일이기도 하면서 또 개인적인 발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정말 많고 많은 인연을 만납니다.
저는 ‘불교와의 만남’이란 우리에게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가치가 있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금강경을 앞에 놓고 불교와의 만남의 그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우리 모두 기껏 나무 한 짐의, 그저 일당을 받을 만한 나무 한 짐을 시장에 팔러 갔다가 다이아몬드를 한 짐을 짊어지고 돌아가는 일이 바로 우리 불교가 아닐까? 불교와의 만남이 아닐까 이 생각을 합니다.
저는 진정 그러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기껏 해야 일당 받을 나무 한 짐을 짊어지고 시장에 갔다가 불교를 만나서, 그 불교를 만난 이후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들 짐에 다이아몬드가 한 짐 씩 쌓여있더라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얼마나 참 신기한 일입니까?
뭐 일확천금이라고 하는 그런 표현 가지고는 도저히 될 수가 없죠.
그야말로 점철성금(點鐵成金)입니다.
물 한 방울 쇠붙이에 떨어뜨렸는데 그 쇠는 바로 황금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교와의 인연을 우리는 뭐 어려서 가다보니까 절이더라, 뭐 집에서 도망 나오다 보니까 어느 날 절에 와 있더라, 뭐 여러 가지 인연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불교와의 만남이라고 하는 이 만남의 가치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왔던 간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 불교와 만났던 간에, 불교와의 만남의 그 인연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나무 한 짐이 다이아몬드 한 짐이 되고 물방울 하나 떨어뜨리는 것이 황금으로 변하는 일이 되고,
지리일언(至理一言)이 혁범성성(革凡成聖)이라
그런 말도 있죠.
지극한 이치의 한 말씀이 범부를 고쳐서 성인을 만든다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또는 평생 맹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부처님과의 만남,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서 눈을 뜬 일이기도 합니다.
또 한참 깊은 잠에 들어서 꿈을 꾸다가 문득 그 꿈을 깨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과의 만남이요, 불교와의 만남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한번 우리들 자신을 생각해 보면은 얼마나 큰 다행이며, 얼마나 큰 행복이며, 얼마나 큰 수확입니까?
우리들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늘 알 때, 늘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감사해하고, 그러한 의미를 돌이켜 볼 때, 정말 진정으로 불교에 대한 신심이 자꾸 자라날 것이고, 정말 이 불교에 생명을 걸고, 아니, 세세생생을 삶을 걸만한 그런 가치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그렇듯이 한 마디로 우리가 불교공부를 왜 하는가? 불교를 왜 믿는가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단장(斷障)과 성덕(成德)에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끊을 단(斷)자, 장애라고 하는 장(障)자,
(화이트보드에 斷障 成德한문을 쓰심)
기도를 하던, 참선을 하던, 기도를 하던, 주문을 외우던, 절을 하던, 아니면 천도를 하던, 그 의미는 단장(斷障)과 성덕(成德)에 있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온갖 삿된 견해, 또한 업장이니, 번뇌니 하는 등등 삶의 부정적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삿된 견해를 통해서 우리가 그 부정적 요소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데, 그러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단장(斷障)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제거해야할 모든 문제들, 이것을 끊어버리고 제거하는 그러한 일들이 불교공부의 한 면이고,
또 한 면은 성덕(成德)이라고 하는 것,
복덕과 지혜를 이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뭐 기도나 참선이나 간경이나 모두가 거기에 해당됩니다. 그 성덕이라고 하는 것 중에서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견(正見)’입니다.
바른 견해, 특히 금강경을 앞에 놓고 우리가 단장과 성덕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바로 정견, 바른 견해, 인생에 대한 바른 소견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고, 그 속에는 지혜도 포함되고, 자비도 포함되고, 원력과 교화와 우리가 좋아하는 복덕까지도 포함되며, 또 인생에 대해서 긍정적인 사고, 아주 긍정적인 사고도 그 덕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자꾸 함양하자고 하는 것이 우리가 불교를 믿고 불교공부를 하는 목적입니다.
불교공부 안에는 우리가 그러한 용어를 알든 모르든 간에 이미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불교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라면 금강경을 우리가 앞에 놓고 있는 이 마당에서, 금강경 속의 단장과 성덕의 방편은 무엇인가? 이게 이제 우리가 이제 5일 간 네 시간에 걸쳐서 공부해야할 과제입니다. 금강경에서 본 단장과 성덕의 길? 이것이라고 이제 정리할 수가 있는데,
물론 금강경의 중요성을 뭐 제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익히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한국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정해져 있고, 또 역사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중국의 오조 홍인스님(五祖 弘忍 601~674), 오조 홍인스님부터 금강경이 이 세상에 크게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수 만 종류의 해설서, 강설서, 주설서 이런 것들이 나와 있고, 또 우리나라에서 익히 알려진 것이 강원교재에서 오가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미 오가해를 공부해서 그 금강경의 그 오히려 경론의 내용보다도 더 깊은 의미로 해석한 그런 것 까지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선사들의 그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금강경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강경을 빌미로 해서 사실은 당신들의 고준한 선불교적 깨달음을 피력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금강경 해설서에는 무수히 많습니다.
뭐 이러한 것들도 우리가 일찍이 공부했던 바라고 생각합니다. 5일간 10시간에 걸쳐서 제목을 ‘핵심강좌’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만, 물론 금강경을 다 짚고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핵심이 되는 내용은 좀더 역설하면서, 반복해서 역설하면서 말씀을 드릴 그런 계획으로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이 교재는 관음사 지현스님께서 편찬을 한 고려장경본을 토대로 해서 이렇게 편찬했는데, 이 책을 내가 처음 만나고 너무나도 환희스러워서 제가 만 여권 이상을 찍어서 전세계 금강경 독송본을 이것으로서 통일하자, 하는 그런 내 나름대로 작은 원력을 세워서 이 책을 옛날에 한참 보급을 많이 했었습니다. 어느 날 해인사에 가서 법당에 들어가서 금강경 독송본이 뭔가 하고 살펴봤어요. 그랬더니 참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모셔 놓은 해인사에서 그 대적광전에 독송본으로 만들어 놓은 금강경이 너무 초라했었습니다. 그 인쇄한 것이 곧 그 활자하며 종이하며 책 제재하며 너무 초라했었습니다.
그래서 참 좀 슬픈 마음을 가져서 더욱 이 책을 독송본으로 늘 보급을 해야 되겠다하는 그런 생각을 늘 했었는데 마침 이제 이런 기회가 되어서 또 이걸 이제 지현스님이 여러 권 가지고 있던 책을 오늘 이렇게 법공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요 그냥 금강경 활자로 만든 책하고 다릅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내가 이것을 보급하려고 했던 의미가 바로 그것인데, 금강경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금강경의 한 자, 한 자는 바로 불교의 신심으로써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그런 그 슬픈 원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고려인들의 그 참 높고 높은 그런 그 신앙심이 한 자, 한 자 다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이것이 복사본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그들의 신심에 인해서 써지고, 조각하고, 정말 몽고병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정말 이제 대장경 천년 축제가 열리고 있는 이 시점입니다마는, 천 년 전에 그렇게 한 자 한 자 새겨졌던, 그래서 불교의 정신, 불교의 신심으로써 나라까지 구한, 개인의 인생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까지 구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한 자, 한 자에 담겨 있다고 하는 것, 이와 같이 소중한 교재입니다.
이 좋은 우리의 금강경 본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국에서 그 조잡하기 이를데 없는 그런 그 활자본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리어서 그래서 내가 이것을 보급하는 데 힘썼는데 여러 스님들 모두 다 주지로 사시고 포교 일선에 계시니까 이 책을 많이 복사를 해서 개사찰에서 전부 독송본으로 사용했으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내가 이걸 상당히 내가 만 여권 이상 찍었으니까 돈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좋은 점을 내가 좀 더 선전을 하면은 대개 독송본을 보면 32분 제목을 다 넣어 놨어요. 넣어 놨는데 스님들은 32분 제목을 안 읽고 넘어갈 줄 알지마는 그 날 처음 온 신도들은 당신의 선망부모를 천도하기 위해서 함께 동참하고 싶은데 어디를 읽고 어디를 안 읽어야 되는지를 도대체 모르는 거야.
그 문제 하나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수십 년 간 우리는 그런 본을 독송본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현스님이 제목을 위로 올려 버렸습니다.
독송하는데 하나 걸리지 않습니다. 이 점이 정말 내가 고민했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는 어떤 강원에서 보면은 49재 들어가가지고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거기에 이제 반은 한글이요, 반은 한문본이야.
그러나 한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스님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글본을 떡 펴놓고 읽고 있는 거야. 물론 읽기는 편하겠지요.
물론 한문 읽는 것 하고 한글 읽는 것 하고 무슨 차이가 있느냐 물론 따질 수는 있겠습니다마는 그때마다 내가 법문하러 가서 그런 모습을 보면 사실 조금 챙피해요. 좀 떠듬거려서라도 한문본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싶은 생각을 해요. 그런데 버젓이 한글본, 한문이 하나도 없는 한글본 만 떡 이렇게 펴놓고 신도들하고 같이 읽는 거야. 그런데 그런 문제를 또 깨끗이 해결한 책이 이거야.
얼마나 깨끗이 해결했습니까? 한문 글자 큼직하게 해 놨지, 한글을 읽는지 한문을 읽는지 모르는 거야.
한문이 익숙한 사람은 한문을 읽고, 한문이 서투른 사람은 한글을 읽고, 이 문제도 도 이렇게 해결을 했어. 또 어떤 본들은 한글을 또 주먹만 하게 하고 한문은 조그마하게 하고 이것도 잘못된 본이에요.
이게 가장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독송본이다.
첫째 고려장경이라고 하는 것에 제일 큰 의미가 있고, 그 다음에 제목을 이렇게 위로 올렸다고 하는 것, 그 다음에 한문과 한글을 이렇게 함께 했다고 하는 것,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이게. 경을 대할 때 마다 정말 신심이 우러나고 또 이것은 사경본으로 쓰는데 너무나도 좋은 교재입니다. 사경본으로 사용하는데.
왜냐? 이게 구양순[歐陽詢; 557∼ 641;중국 당대(唐代)서예가]체로서, 정말 천하의 해설체로서, 또 사경체로서 최고 좋은 글씨체가 구양순체입니다. 이게 전부 고려장경 구양순체를, 천하의 명필을 모아놓고 3개월 이상 구양순체를 교육시켰습니다.
전부 선비들에게 구양순체를 훈련을 시켜가지고 글자가 전부 통일되게 해놨어요. 그래서 고려장경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구양순체 이고, 한 사람이 쓴 것 같습니다. 이게 많은 수 십 명의 선비가 썼지마는 전부 구양순체로 통일되게, 한 사람이 쓴 것 같이 쓰도록 그렇게 만들었어요.
사경본 글씨체로서 제일 좋은 체이기 때문에 또 그렇습니다. 이런 점들도 이게 우리 것이니까 프로인 우리 스님들이 정말 잘 알고 있어야 되고 이것이 이제 신도들에게도 교육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점에 있어서도 또한 이 교재를 정말 자랑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뭐 자주 이야기가 되겠지마는 무상(無相)으로 위종(爲宗)하고 무주(無住)로 위체(爲體)하고, 묘유(妙有)로 위용(爲用)이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상(無相), 없을 무(無)자 형상 상(相)자입니다. 무상(無相), 무상, 상이 없어야 된다 하는 그것이 으뜸입니다. 위종이란 말은 가장 으뜸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상으로 으뜸을 삼고, 무주(無住), 머물지 않는다, 머묾이 없는 것, 그것으로써 체(體)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체(體)라하고 하면 얼른 머리에 잘 안 떠오르죠. 바로 몸 체(體)자입니다. 우리 몸이 묘용, 묘유로 위용이라, 무상이지만 미묘하게 있는 존재하는 것으로써 그 작용을 삼는다 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면요
몸짓입니다. 몸짓.
몸에서 몸짓이 나오는 거예요. 체에서 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체가 뭘까? 체가 뭘까? 늘 우리가 뭐 진리 자체, 무슨 뭐 신체, 등등 뭐 체라는 말 불교를 설명 하는데 너무 아주 중요한 낱말이 됩니다마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 육신을 먼저 떠올리면, 몸이 있고, 몸짓이 있어요. 우리가 지금 손을 움직인다든지 고개를 돌린다든지 뭐 입을 들썩인다든지 하는 것은 전부 몸짓입니다. 몸이 있음으로 해서 몸짓이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마음이 있음으로 해서, 마음이, 심체(心體)가 있음으로 해서 심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렇게 이해하면 아 마음에도 그럴 수 있겠구나. 마음에 뿐만 아니라 우리 육신에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에는 전부 체(體)가 있고 용(用)이 있습니다. 또 거기도 상(相)이 있어요. 그래서 체(體)· 상(相)· 용(用) 이 삼대(三大)가 정말 모든 존재의 이치를 이해하는데 가장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금강경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새로운 것을 갖다가 무슨 물건 설명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그것도 특히,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또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중심으로 해서 그 원리를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이 금강경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와 체와, 처음에 무상이라고 했습니다만, 상과 체와 용, 이것을 우선 이제 그렇게 이해를 하고 금강경 제목을 한번 살펴보면 ‘금강반야바라밀경’이죠.
금강은 뭡니까? 다이아몬드죠. 다이아몬드의 특색은 뭐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마는
첫째, 빛난다는 뜻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아주 빛나요. 그래서 값이 비쌉니다. 그 빛은요 인조로 만든 것 하고 비교가 안 됩니다. 아주 빛납니다. 아주 빛나요 다이아몬드는.
또 날카롭습니다.
이 다이아몬드의 그 날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물질로도 그걸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두 번째고, 그 날카로움이 또 다이아몬드의 두 번째 특색이에요.
그 다음에 다이아몬드의 세 번째 특색은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견고하다. 그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써만 깎지, 다른 물질로써, 다른 뭐 쇠붙이로썬 도저히 다이아몬드를 깎지를 못합니다.
다이아몬드만이 다이아몬드를 깎을 수 있어요. 그래서 견고하다는 뜻이니까.
빛나고, 날카롭고, 견고하다, 이것을 왜 뭐 다이아몬드 공부하자고 모인 게 아니니까, 이거 왜 이렇게 금강, 다이아몬드를 앞에다 두는가? 제목에서 부터...
비유죠.
불교에는 참 비유가 많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이해한다. 그런 부처님의 말씀이 있듯이 비유를 먼저 떠억 이렇게 먼저 듭니다.
무엇이 빛나고 날카롭고 견고하단 말인가?
바로, 반야입니다. 지혜입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지혜, 그런 말이죠.
금강반야!
그럼 그 다이아몬드 같은 그런 지혜를 가지고 어쩌잔 말이냐?
바라밀, 바라밀하자는 것입니다.
바라밀은 ‘저 언덕에 이른다’이것을 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다’, 그 뜻입니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에요.
다이아몬드 같은 지혜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경, 가르침, 이 뜻입니다. 간단하게 해석하면,
‘다이아몬드와 같은 지혜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르침’!
그 모든 문제라고 하는 것은 뭐겠어요?
단장과 성덕입니다. 모든 부정적인 장애를 다 제거할 수가 있고, 또 우리가 필요한 뭐 지혜나, 덕이나, 자비나 지혜나 이 모든 것을 다 구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거예요.
이게 바라밀입니다.
무슨 저 언덕에만 이르고 이 언덕 몰라라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언덕, 저 언덕 문제를 다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그래야 금강반야가 돼죠.
‘금강반야(金剛般若)’란 게 이게 보통 반야입니까?
‘금강반야(金剛般若)’란 게 참 무서운 반야에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을 어떤 표현에는 ‘벼락을 치다’, 라고 이렇게 표현해요. ‘벼락 치다’!
벼락을 치면 번개가 번쩍이고 소리가 나오고 정말 깜짝 놀랍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삶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모든 부정적인 번뇌, 망상을 다 사라지게 하는 그런 그 능력을 가진 가르침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리상으로 뭐 이런 저런 이야기는 가능하면 생략하고, 우리 삶에 이제 어떤 그 눈을 뜨게 하고, 효과가 있고, 또 우리 삶의 어떤 감동을 주느냐 이게 중요해요.
옛날 선배스님들이 해석한, 뭐 당나라 때 훌륭한 해석, 뭐 전부 그 해석이 많은데 그런 해석 다 소개하는 것, 아무 이 자리에서 별 의미 없다고 봅니다. 결국은 이것이 우리 삶에 있어서, 내 인생에 있어서 과연 의미를 갖는가? 조금이라도 우리 금강경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내 삶의 눈을 조금이라도 열어줄 수 있고, 뭔가 덕이 되어서 돌아가야지, 그 뭐 이론적인 것, 책 보면 더 많이, 더 자세히 더 잘 되어 있는 것, 그런 이야기할, 진부하게 하자고 모인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번 금강경 강의는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되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경)
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 奉詔譯(요진삼장법사구마라습 봉조역)
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 奉詔譯
요진 삼장사문 구마라습 봉조역,
구마라습의 번역입니다.
많은 사람의 번역이 있어요. 산스크리트 어(Sanskrit語)에서 한문으로 번역했는데 많은 사람의 번역이 있지마는 이 구마라습은 워낙 번역의 대가고, 명석(名釋)입니다. 그래서 이 분의 번역을 우리가 교재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말에는 서론, 본론, 결론이 있고, 경에도 서론, 본론, 결론이 있고, 행사에도 서론, 본론, 결론이 있게 마련입니다.
여기 처음에는 이제 서분(序分)인데,
第一 法會因由分
제일 법회인유분
[序 分](證信序)
第一 法會因由分
제일 법회인유분
如是我聞하사오니 一時에 佛이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하사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으로 俱러시니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 구
(發起序)
爾時에 世尊이 食時에 著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하사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
乞食하실새 於其城中에 次第乞已하고 還至本處하사
걸식 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飯食訖하시고 收衣鉢하시며 洗足已하시고 敷座而坐하시다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法會因由分 第一
법회인유분 제일
‘법회인유분 ’이라고 하는 것이 ‘법회가 열리게 된 까닭’, 이것을 이제 왜 이 금강경과 같은 법회가 열리게 되었는가? 이것을 이제 제 1분을 말하자면 서분, 서분이라고 이렇게 금강경에선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2분부터 정종분(正宗分), 본론이다, 이렇게 이제 보죠.
여기 서분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가르침이 있습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이걸 이제, 요즘 어제까지 KBS에서 대장경천년축제 때문에 대장경 천년 특집 방송‘다르마’(KBS 1TV)라고 하는 아주 좋은 프로를 제작을 해서 보여줍디다.
거기에도 이것을,‘여시아문’을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이렇게 번역을 했어요.
그 글자 그대로 하면 뭐 틀린 번역은 아닙니다.
그런데 수보리가 당신보다 훨씬 우수한 500명의 장로들 앞에서 한 말입니다.
훨씬 형님되고, 선배되고, 먼저 깨달은 그런 분들 앞에서 하는 말이에요.
기록에 의하면, 이 아난존자는, 아난존자는 사실은 결집에 참석을 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깨닫지 못해가지고.
나중에 가서 일주일동안 교적(敎迹)?정진을 해서 깨닫고 나서 비로소 이제 칠엽굴(七葉窟) 에 뛰어 들어와가지고, 다 문을 막아놨는데 신통으로 뛰어들어가지고 결집하는데 참석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정말 500명의 아라한 중에서도 제일 부족한 사람이 아난존자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들었다’그 많은 선배 스님들 앞에서 그런 말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 번역을 그전부터 늘 이야기하는데, ‘저는 들었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저는 들었습니다’그래야지 어떻게 장로들 앞에서 ‘나는 들었다’라고 이런 말을 우리가 못하잖아요. 최소한도 한국에서는 ‘저는 들었습니다’
해석해야 된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法會因由分 第一
법회인유분 제일
如是我聞 一時 에 佛이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하사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爾時에 世尊이 食時에 着衣持鉢하시고 入 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실새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 사위대성 걸식
於其城中에 次第乞已하시고 還至本處하사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하시고
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敷座而坐하시다
부좌이좌
그랬습니다.
모든 경전에는 그 나름의 그런 그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금강경에서 만 중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그런 의미를 여기서 눈치를 채야 됩니다. 서론에서, 서분에서 눈치를 채야 되는데,
‘걸식을 했다’하는 이야기입니다. ‘걸식을 했다’!
爾時에 世尊이 食時에 着衣持鉢하시고 入 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실새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 사위대성 걸식
入 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실새
입 사위대성 걸식
‘그 성중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실 새’이렇게 했어요.
걸식은 부처님은 매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 경전에도 걸식이야기가 없어요. 거의 없습니다.
그 날도 부처님이 걸식을 하시고 경을 설하셨어요, 다! 어느 경전을 설해도 그날도 역시 걸식을 하시고 나서 경을 설했는데 그 경전에는 걸식 이야기가 없는데 왜 금강경에만 유독 ‘걸식을 하실 새’표현을 했는가?
이거 큰 이유가 있어요! 여기서!
於其城中에 次第乞已하시고
어기성중 차제걸이
이건 이제 칠가식(七家食)을 하다보니까 부잣집만 다녀서도 안 되고, 가난한 집만 다녀서도 안 되고, 순서대로, 차제걸이(次第乞已),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마는 일일이 다 설명을 못하겠고,
還至本處하사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하시고 敷座而坐하시더라
환지본처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還至本處하사
환지본처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서
飯食訖하시고
반사흘
식사를 마치시고
收衣鉢
수의발
의발을 거두시고
洗足已하시고
세족이
발을 씻고 나서
敷座而坐하시더라
부좌이좌
그랬습니다.
入 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실새
입 사위대성 걸식
스님들 혹시 탁발을 해보셨어요?
이 ‘걸식(乞食)’이란 문제를 제대로 우리가 이해를 하면은 금강경이 ‘무상(無相)으로 위종(爲宗)한다’‘상이 없는 것으로써 으뜸을 삼는다’, 하는 이 의미를 통째로 이해하게 되고 , ‘아 뭐 더 이상 금강경 공부할 필요가 없구나’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 낱말이 ‘걸식’이라는 낱말입니다.
제가 어릴 때 2차 정화에 참석을 했었어요. 뭐 철도 모를 때, 십대에 정화한다고 하니까 가서 무슨 정화에 대한 정신이 있겠습니까? 어른 스님들 따라서 그냥 여기 범어사에 있다가 조계사에 까지 가가지고 단식기도 며칠 하다가 대법원에서 할복했다 해가지고, 거기서 누가 선동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와~ 그냥 쫒아가서
맨발로 그냥 대법원에 가서, 대법원난동사건, 그 유명한 대법원난동사건, 그래서 내가 종로 유치장을 거쳐서 서대문형무소까지 한달간 유치장과 형무소를 그렇게 살고, 다시 이제 범어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랬는데 모든 승려들에게 ‘승려의무금’이라고 하는 게 내려왔어요. 승려는 무조건 의무금을 내야된다. 승려 생활하는데 의무금이 있어요? 여러분들 공짜로 승려 생활하죠? 그때는 의무금을 냈습니다.
그게 왜 의무금이 부과가 되었는가 하면 정화불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 비용을 조달하려고 승려의무금이 부담이 되었어요.
새파란 사미에게, 나 같은 사람에게, 그게 1960년인가, 1959년인가 그 무렵이에요.
그때 내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학인이 무슨 돈이 있어요? 그런데 내야 돼. 무조건 내야 되는 거야. 그래서 탁발하러 나갔어요. 범어사 학인 전부 다 하고, 선방스님들 하고 해서 한 30명 그때 쯤 탁발하러 갔는데 국제시장엘 갔어요.
대각사에서 짐을 딱 풀어놓고 국제시장 거기에, 바로 뒤에가 국제시장입니다. 대각사의 뒤에, 갔는데 내가 뒤에 어린 사람이니까 큰 스님들이 앞에 서고, 우리는 뒤에 이렇게 갔는데 바루떼를 들고 가사입고, 겨울이었어요. 그때 이제 겨울에 끝 무렵인데, 탁발을 하는데 얼마나 부끄럽던지, 누가 와서 돈을 넣는지, 돈을 가져가는지, 바람에 날려가는지, 어쩌는지 그 두 시간을 돌아드는데, 한 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지금 같으면 뻔뻔스러워가지고 막 달라고도 하고, 이것저것 돌아보면서 그렇게 했을 텐데 전~혀 그런 생각이 없이 정말 고개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 한 바퀴를 두 시간을 돌아왔는데, 돈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전~혀 알 수도 없었어요. 알 필요도 없었고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 대각사에 들어오니까 그 추운 겨울에 옷이 다 젖었어. 땀이 나가지고 다 젖었어요.
내가 그 일을 가만히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내가 뭐길래, 나에게 무슨 상이 그렇게 많아서 그렇게 부끄러움을 탔을까?
왜 그렇게 창피해했을까? 아 스님들이 여럿이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는데, 혼자 간 것도 아닌데, 그런데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그렇게도 부끄럽고 마주 할 수 없었던가?
이것은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사미든, 비구든, 어린 사람이든, 노스님이든 간에 누구에게나 다~ 타고난 상이 있어서 그렇다.
이 상 때문에 그렇게 부끄러웠던 거예요.
이 걸식 누가 했다는 거죠?
부처님이 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부처님에 대하면 천민 중에 상천민이야. 그런데 부처님은 정~말 존귀하신 분이야. 그 출신이 왕족 아닙니까? 왕자 아닙니까?
그 왕자의 출신으로서 사위성[舍衛城,舍衛大城]에 들어가서 걸식을 했다 이 말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걸식을 했다면 그건 별 중요한 문제 아닙니다. 그런데 왕자 출신이 걸식을 했다고 하는 이 사실도 우리가 기억해야 돼요. 그런데 나 같은 사람도 거기에 가서 탁발하는데, 그것도 큰스님들하고 따라 다니면서 했는데도 그렇게 부끄러웠는데, 부끄러운 것은 오직 상 때문에 부끄러운 거예요.
그런데 위대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 존귀하신 분이 걸식을 했다!
거기에는 정말 먼지만한 상도 있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위대하신 부처님께서, 그 존귀하신 분이 걸식을 했다!
거기에는 정말 먼지만한 상도 있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무상으로 위종하는’ 금강경에 ‘걸식(乞食)’을 맨 먼저 등장시킨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이게 상이 있으면 걸식이 안 되는 거예요.
그 땀을 흘리면서 돈 놓는지, 가져가는지 못 보고 탁발하는 건 헛탁발이에요.
아무 수행에 도움되는 게 아닙니다, 사실.
그야말로 승려의무금, 바치기 위해서, 세금 바칠려고 그냥 동냥하는 것이지 그건 탁발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 금강경에는 위대하신 부처님께서 그 어려운 걸식, 걸식을 여기 앞에 등장시킨 이유가 거기에 있다.
걸식만 제대로 할 줄만 알면 그건 수행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저기 태국 같은데 가보니까 오전에 걸식을 하고 와가지고 하루 종일 놀더라구요. 하루 종일 놀아, 별로 공부하는 것도 없어.
걸식이 수행의 전부라는 거예요. 직접 가서 물어봤어요, 내가.
그때 마침 한국스님이 살고 있어서 그 스님한테 물었더니 그렇다는 거예요.
걸식의 의미는 그렇습니다.
자, 이 걸식의 의미가 정말 그렇게 ‘무상(無相)’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낸 낱말, 이제 그 다음에, ‘세족(洗足)’이란 낱말이 있어요.
洗足已하시고
세족이
발을 씻고 나서,
‘발을 씻었다’는 낱말이 있습니다. 다른 경전 설하는 날도 늘 세족했어요.
발 씻었습니다. 발을 몇 번 씻었어요.
부처님 금강경 설하셨다고 하는 기원정사, 그 부처님 계시던 방 앞에 가보니까 우물이 있더라구요. 우물이 있어요. 지금도 가보면 있습니다.
물론 지금 물은 안 보이지만, 늘 물을 떠서 세족을 했습니다.
왜 여기 금강경에, 무상으로 으뜸으로 삼는 금강경에 세족이란 낱말을 올렸는가?
아 여기 금강경 뭐, 다른 경전도 그렇습니다만, 이 경전의 편찬은요 보통 내용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들의 지혜로써, 우리들의 신심과 우리들의 지식과 우리들의 어떤 이해심 가지고, 이거 사실 쉽게 건드릴 정도의 그런 그 경전이 아니에요, 사실은.
그렇지만 뭐 어쩝니까? 이 시대에 할 수 없이 우리가 그 자리매김을 해야 하니까,
그래 마, 이렇게라도 합니다마는, 이 ‘세족(洗足)’! 왜 이렇게 ‘세족(洗足)’
‘세족(洗足)’이 뭡니까? ‘때를 다 씻는다’는 뜻이에요.
금강경에서의 소위 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때’라고 하는 것은 ‘상’입니다. 상이라고 하는 때를 다 씻는다.
그 다음에
敷座而坐하시더라
부좌이좌
그랬습니다.
걸식 모르겠거든 세족을 해라는 거예요.
세족을 해도 모르겠거든 자리 펴고 한번 앉아봐라. 방석 깔고 처~억 앉아봐.
제대로 앉아야 되지.
몸만 앉는 게 아니고 마음까지 다 앉아야 돼. 마음까지 다 앉아야 돼.
제대로 앉으면 끝이죠.
거기에는 무슨 상이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그야말로 단장(斷障)의 문제와 성덕(成德)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서분(序分)은요, 이와 같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스님들 모두다 그 나름대로 공부를 깊이 하셨고, 강의도 많이 하셨을 겁니다마는 좀 이런 것들이 새삼스럽게 좀 감동적으로 스님들에게 다가오고, 좋은 그런 그 참, 가르침, 우리가 왜 소의경전(所依經典)이라고 하는가? 그 많은 경전 중에서 왜 소의경전이라고 하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잠깐 쉬겠는데 우선 첫 시간에 이렇게 서분에서 전체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정~말 함축해서 담고 있는 세 가지 낱말,
‘걸식(乞食)’,‘세족(洗足)’, 부좌이좌(敷座而坐)!
이속에 금강경의 진정한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잠깐 쉬었다 하겠습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一 法會因由分(제일 법회인유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序 分]
(證信序)
第一 法會因由分
제일 법회인유분
제일 법회가 열린 인연분
如是我聞하사오니
여시아문
이와 같은 내용을 저는 들었습니다.
一時에 佛이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하사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으로 俱러시니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 구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祇樹)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 일천 이백 오십 명의 큰스님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發起序)
爾時에 世尊이 食時에 著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실새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 사위대성 걸식
그 때 세존께서는 공양(供養)을 드실 때가 되었으므로 가사(袈裟)를 입으시고 발우(鉢盂)를 들고 사위성(城)에 들어가서 걸식(乞食)하셨습니다.
於其城中에 次第乞已하고 還至本處하사
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그 성안에서 차례대로 걸식하여 마치시고 본 곳으로 돌아오셨습니다.
飯食訖하시고 收衣鉢하시며 洗足已하시고 敷座而坐하시다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공양을 마치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1강 1부(2011.10.24) 마침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_()()()_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고맙습니다._()()()_
대등행 님



깊고 간절하신 서원 실현되시고 뜻하신 바도 모두 이뤄지시옵길 빕니다.
늘 정진하시는 모습에 감동하오며 두손 모읍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_()()()_
_()()()_
자연 님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많이 가르쳐주세요. 


인연의 시절에 함께 공부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귀하신 서원 성취하시옵고 늘 평안하세요.
_()()()_
() () ()
普德行 님

반갑습니다



귀하신 걸음마다 불국토 법화가 만발하길 빕니다.
서원성취하시옵소서
_()()()_
_()()()_
환희지 님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불국토를 조용히 장엄해주시는 보살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좋은 일들 함께 하시옵길 빕니다.

_()()()_
겨울날씨에도 늘 건강하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평안하시고
_()()()_
여울목 님


하세요
새해에도 항상 건안하시고 상서로운 새해 기원드립니다. 

다시 한번 재복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_()()()_
법우성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매사 형통하시고 강건하신 
의 새해를 기원드립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큰스님 법체 평안.강녕 하시길_()()()_
빈망태 님
인사가 너무 제가 늦어 죄송합니다. 
불국정토 이루어지이다


고귀하신 서원성취
_()()()_
마음의 기둥으로 삼겠습니다.
오공 님


불빛 기둥같은 인생의 나침반, 불법 가운데 깊은 서원 이루시옵시고
평안하심을 기원드립니다.
_()()()_
감사...=\\\=金剛
高麗山 님



여여하신 정진에 두손 모아
깊고 크신 서원 이루시옵시기를 빕니다.
건안하시옵소서
_()()()_
_()()()_
일광명조 님




청정 도를 구하며 공덕을 행하심에 합장합니다.
귀한 서원 이루시고 늘 평안하소서
_()()()_
고맙습니다 -()()()-
정진행 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여여하신 정진과 한량없는 수희공덕 합장합니다.
깊은 서원 성취하시고 건안하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지효님
반갑습니다




일심정진 불향에 합장합니다.
마음 속 간절하신 서원 이루시옵시고 늘 평안하소서
감사합니다_()()()_
바다님




칠보보다 귀한 불국토 서원 성취하시옵시고
상서로운 금강지혜 영원하소서
_()()()_
=\\\=11/28
명성화 대보살님, 그 어려운 중에도 이렇게 보살행을 하시는군요.
보살님은 이렇게 일심으로 정진하시는데 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답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소원성취하소서 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금강반야바라밀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
최고의 경전을 보게 되어 진실 감사합니다.
()()() 삼보에 귀의 합니다.
_()()()_
_ ()()() _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볼때 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