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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가네
여백은 궁극적으로 마음의 여백이다. 우주의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음(無音)의 저 아름다운 소리 여백은, 불경의 궁극의 촉수인 관음(觀音)의 세계를 낳았다. 우주 본래심은 언제나 텅 빈 공(空)이 본체다. 허공은 비어 있어 자유롭다. 전연으로 된 5행 26어절의 총 62자(字) 단시(短詩)「동천」은, 간결하고 고도로 축약된 겨울 하늘에 펼쳐 논 놀라운 여백미가 압권이다. 한시 형태의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3장 4음보 45자로 구성된 우리 정형시조의 틀을 파격한 외적 율조와 7․5조 민요 가락을 현대시에 버무려 오롯이 살렸다.
항용 우리가 시「동천」에서 가장 놀라워하는 신비경은 이 시 속엔 분명 ‘달’은 없는데, 오랫동안 여러 수십 번 곱씹어 읊조리면 묘하게도 ‘초승달’ 이미지가 흠뻑 되비친다는 점이다. 이런 시법이야말로 바로 미당의 탁월한 재주다. 보는 형상을 움직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대로 주물리는 신비로운 주술적 언어 감각은 가히 천부적이다.이미 미당은, 시「동천」을 읽는 독자들의 머릿속 상상력에 ‘고운 눈썹’의 이미지가 ‘초승달’로 바뀌어 비출 것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는 경이로운사실이다.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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