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문희공 휘 창(敞) 할아버지의 둘째 아드님으로 일찍이 문과급제하여 통훈대부로써 금산군수(지금의 경북 김천시)를 역임하시고 자헌대부(資憲大夫:정2품)로 대제학(大提學)을 지내시다.
할아버지께서는 도량(道量)이 넓으시고 강직(剛直)하심을 스스로 수범하시더니 관직에서 물러나 옥산에서 여생을 보내시다.
할머니는 정부인 전주이씨(貞夫人 全州李氏)로 대호군(大護軍) 동영(東榮)의 따님이시다.
슬하에 5남을 두셨는데 장자에 휘 한(翰)이며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요, 차자에 휘 덕(德)은 통덕랑(通德郞)이요,
三자는 휘 연(演)이며 출계 수종(壽宗)후 하고, 四자 휘 백(伯)은 용천고강 만호(龍川古江萬戶)요,
五자는 휘 극주(剋周)요 형조참의와 능주목사(刑曹參議 綾州牧使)를 역임, 다섯 형제분을 두셨는데 후손이 많이 사는 지역은 강원도와 경상도며 소수분포는 전국에 산재하여 살고 있으며 군수공손(파) 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제국(漢帝國)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 유방(劉邦)선조의 위대한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훌륭한 후손(後孫)인 것이다.
한고조(漢高祖)께서 한제국(漢帝國)을 창건(創建)하시고 황제(皇帝)에 등극(登極)하시면서 유자(劉字)를 우리 성(姓)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도시조 문양공 유전(荃) : 한(漢)나라 고황제(高皇帝) 유방(劉邦)의 40세손으로 문장(文章)과 도학(道學)에 뛰어났던 휘(諱)는 전(荃) 자는 원보(原甫), 호는 죽간(竹諫), 익호는 문양(文襄)이시다.
약900년전인 고려문종(文宗) 36년 8월(서기1082년) 배를 타고 동해바다를 건너 경북(慶北) 영일군(迎日郡) 기계면에 도착, 안주하여 정착하면서 우리나라 유(劉)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강릉시조 국재공 유승비(承備) : 우리 유씨의 본관(本貫)을 대별(大別)하면 거창(居昌), 강릉(江陵), 백천(白川)등 삼본(三本)이다.
강릉유씨(江陵劉氏)의 본관시조(本貫始祖)는 중국 송(宋)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歷任)하시고 유(劉)씨의 도시조(都始祖)이신 유전(劉荃)선조의 9세손이시며 유 창(劉 敞)의 증조부이신 유승비(劉承備)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