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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생활과 인연 지금 나는 부산에 살고 있고 앞으로 어쩌면 죽는 날까지 부산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부산은 결코 내 고향이 아니다. 단지 제2의 고향일 뿐이다.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부산이 내 고향이 아닌 이유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고 어릴 때 추억도 없으며 또 내가 원해서 진짜 내 고향 버리고 부산에 와서 사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고향처럼 생각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고향에 대한 의식은 갖고 있기는 하나 늘 고향을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어쩌다 혹은 오늘처럼 아침부터 비가 내리거나 퇴근 후 오랜만에 고향친구 누구라도 만나 소주한잔 주고받으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 무엇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리운 것이 고향일 것이다. 너무 센치한 이야기로 가는 것 같지만 오늘 나는 스스로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사는 부산은 내게 무엇이며 나의 부산생활은 어떠하며 부산이 내게 준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이 글을 쓴다. 우선 새겨보아야 할 것이 고향이란 무엇인가인데 사전 안 보고 정의할 수 있는 내용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 조상 대대로 물려온 문전옥답이 있고 조상의 산소가 있는 곳’(3대가 대를 이어 한곳에 살아야 고향이라는 말도 있다)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부산은 분명 내 고향이 아니다. 내가 처음 부산을 밟은 것은 내 나이 열 서넛 살 때인데 이후로 자주 부산에 내려 올 기회가 생겼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고모님과 종형들이 부산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의로 부산을 처음 밟은 것은 남지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1967년 말쯤이다. 고등학교를 진학한다는 확신이 없었는데 다 진학한다해도 어떤 비젼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친구인 상열이, 두희 등과 취직할 것이라며 부산을 찾아 영도다리 건너 이디쯤을 헤매고 다닌 기억이 난다. 이후 몇 년 동안 나는 오늘날 내가 부산에 살게된 토대를 만들게 되는 시절이 있었다. 부산공업고등학교 시절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도 그때 그 시절이 그립지만 이제 돌아갈 수는 없다. 당시 서로 장래를 까놓고 담론하던 친구들 가운데 둘은 이미 이승을 떠났다. 비가 오는 오늘 그 친구들의 영혼에 축복 있기를 빈다. 돌아보아서 내 인생을 성장기․학습기․방황기․연륜기 등으로 나누어 본다면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거의 모든 성장을 끝낸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만큼 조숙했다고나 할까. 100m를 12~3초에 달릴 수 있었던 근력도 이 때 만들어졌고, 이상과 김유정, 삼국지에 미치던 시기도 바로 중학교 시절 전후였다. 별로 적성에 맞지 않은, 그래서 어쩌면 졸업장을 따기 위해 다닌 학교생활은 그래도 내게 양식과 안식을 주었고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책임의식도 생기게 됐다. 이성에 눈 뜨이기도 했지만 학교생활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고 두렵기만 하던 세상의 풍파를 해쳐 나갈 용기도 생기고, 동기도 부여되었다. 어쩜 아직도, 아니 죽을 때까지 영원히 이어져갈 인생의 방황을 나는 언제쯤 끝낼 것이라는 각오는 하지 못한다. 또 소신도 그것을 끝내고 싶은 바램도 없다. ‘태어남이 곧 고(苦)’라고 하는 것처럼 부처님도 풀지 못한 생노병사(生老病死)와 108 번뇌(煩惱)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방황하고 고뇌하다가 본래의 어머니 자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올 때에 빈손으로 왔으니 갈 때도 빈손으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아온 지난 세월, 선각자들의 따뜻한 정담이나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몰락사, 최근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의 구속,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 당선 등 세상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희비쌍곡선을 그리는 이런 세상의 일상 속에 나는 전국을 누비듯 여행도 하고, 책 읽고, 등산하며 인생의 맛을 다 느끼려 한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탓하지도 않는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스스로 자중하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내게 세월은 화살처럼 날아 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지금 내가 남지초등학교 42회 동기회 부산분회장을 맡고 있는데 총무인 김춘선이 유방암 수술 받았다는 소식은 나는 물론 동기생 모두를 숙연하게 하는 뉴스다. 죽고 사는 운명을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숙명론도, 사람의 운명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운명개척론도 나는 믿지 않는다.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고 평소 스스로 잘 관리하지 못했다면 후회하고 반성 할 일이다. 여름을 부르는 듯한 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 부산이 내게 인생과 생활을 준 것처럼 나는 부산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 2006. 5. 19(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