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근하자마자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외출 채비를 했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휴대폰 티맵에 ‘대전역’을 세팅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가뿐하게 빠져나왔다. 대전역 주변이 복잡할 텐데 주차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내려앉는다. ‘그래, 여동생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를 대고 버스로 이동하면 되겠네.’ 유레카를 외치듯 기쁨과 만족감의 추임새가 삐져나온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노선을 몇 번씩 확인한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는 일이 드물다 보니 버스를 탈 때면, 겁먹은 아이처럼 허둥댄다. 앞서 승차한 사람의 뒤 꽁무니를 쫓아 실수 없이 승차 미션을 완수한다.
줄지어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교통카드 태그와 함께 발사되는 기계음 사이로 ‘안녕하세요’라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 온다. 검은 롱패딩 위로 검정 백팩이 가볍게 매달려 있다.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다섯 글자는 모두 학생 승객들의 입을 통해서만 흘러나왔다. 버스 기사님은 속삭이듯 응대해 주었다. 나는 보고도 내가 본 것을 듣고도 내가 들은 것을 믿기 어려웠다. 낯선 여행지에서 생경한 풍경을 마주한 느낌처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을 마주친다. 누구도 살갑게 소리 내어 인사하지 않는다. 그냥 보일 듯 말 듯 스쳐 가는 눈인사가 전부다. 꼬마 친구들이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우 허겁지겁 인사를 돌려준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들여 침대 길이에 맞추어 몸을 자르거나 늘려서 죽였다던 악명높은 도둑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요즘 아이들이란 카테고리를 올려놓고 어른이란 사고의 틀에 짜 맞추어 버릇없다고 재단한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무튼 시간은 걸렸지만, 무사히 대전역에 도착했고 부지런히 볼일을 보고 되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는 버스 기사님이 ‘안녕하세요’라며 승객을 맞이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며 승객을 떠나보냈다. 아까보다 더한 충격에 휩싸였다. 상대의 치부를 긁어내려고 비열한 총알을 난사하는 세상에 가장 선한 방법으로 맞서는 전사라고 해야 할까? 한결같이 친절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실려 나오는 기사님의 마음결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품은 위안이 되었을까? 칸막이가 쳐진 기사님 석에 앉은 기사님의 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벼랑 끝 하루살이에 기댈 언덕이 생긴 것처럼 가슴이 일렁였으리라. ‘라떼는 말이야’라며 시작하는 꼰대 정서에 반감을 갖는 젊은이들의 눈에 진짜 ‘어른’의 모습을 담아 준 것 같아 또 다른 의미로 얼굴이 상기되었다.
요즘 노래 하나로 세대 통합을 이루어낸 유명 가수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부모님의 뒤늦은 덕질이 자녀의 덕질을 이해하게 되고, 부모님이 빠져든 노래에 대한 호기심이 수줍은 공감으로 이어지며 대화의 봇물이 터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요즘 아이들’로 묶이는 시기를 지나오고 ‘라떼는 말이야’를 회상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도 매몰된 시선으로 서로를 닦달하며 살았나 보다. 세대 갈등의 해답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누군가의 작은 몸짓이 누군가의 고집스러운 상식을 애쓰지 않고 털어내며 한 발짝 나아가게 한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올가미에 옭혀 뒤틀린 오만에 우쭐해 있는 이 시대에 펀치 한 방을 날린다. 자신만의 척도에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편협한 ‘동굴의 우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출구를 본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장승처럼 서 있지 말고 소심하게라도 뱉어 보련다. ‘안녕하세요’라고.
첫댓글 생동감이 넘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눈 앞에 펼쳐지네요. 저는 보통 (선수를 뺏길까봐?) 아주 힘차게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외치는데... ㅋㅋㅋ
연화쌤은 옛날에 제 벗 중 하나 같아요. 그애는 늘 제 뒤에 숨어 있었죠. 제가 늘 "안녕하세요~!" 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얼굴 빨개지곤했었는데...^^ 그땐 이해를 못했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까 아주 쬐끔 이해가 됩니다. ㅋㅋㅋ Thank you!!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참으로 많은 오해를 겹겹이 입고 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부터도 화석화된 생각의 틀안에 사람을 가두고 거림낌없이 판단하며 산 것 같아요 이제는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으로 서 있어야 되는데~~ 올해는 내가 걸치고 있는 것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나체(?)로 있으려고요.
@진연화 좋아요^^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안녕하세요?' 다섯 글자가 생경했군요. 하긴 요즘 이웃끼리도 서로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끔 버스 기사님께서 승객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습니다.
따뜻한 인삿말로 시작하여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려는 사유가 참 좋습니다. 세대간의 갈등의 해답을 찾았군요.
앞으로 나먼저 인사하도록 해야하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다보니 저한테는 낯선 경험이었고 그냥 뭉클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생각에도 시선에도 막을 하나 씌워놓고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좀 '친절한 연화씨'가 되어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