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회 혜암 아동문학상 당선작 발표
<동시 당선작>
노랑나비
빌딩이 보이는 2층 양옥집
시멘트 담벼락 밑에는
민들레가 피었고요
나는
그 민들레를 훔쳐보는 길고양이
와 친구처럼 지내는 왼쪽 앞발을 못 쓰는 버려진 개
의 이름이 궁금한 다섯 살짜리 꼬마
가 무릎이 아픈 할머니와 손을 잡고
햇살 가득한 골목길로 사탕을 사러 가는 오후 세 시
의 낮잠을 자는 민들레
를 보러 온 노랑나비
김치참치덮밥
오늘은 김치참치덮밥을 선택했어
매일 같은 것만 먹으면 질리니까
컵라면 컵밥 삼각김밥
이보다 더 비싼 도시락들
편의점은 나를 키워주는 곳이야
쑥쑥 자라게 해주는 곳
이제는 조리법 같은 건 읽지 않아도 돼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하면 몸에 배거든
전자레인지에 김치참치덮밥을 넣고
30초씩 네 번을 눌러
2분 동안 기다리는 시간이야
김치 참치 덮밥이 익는 시간
따뜻해지는 시간이야
뜨거워진 김치참치덮밥을 먹으면
내 마음도 따뜻해지겠지
엄마 없는 아이라는 것도 잠시 잊히겠지
<동시 당선 소감 및 약력>
김연진
제 마음속에는 자라지 않은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 아이는 내가 어른이 되었는데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끌고 다닐 때가 많습니다. 봄 햇살이 가득한 날, 바람이 나무를 힘차게 흔드는 날, 비가 오는 날, 풀꽃들의 이름이 궁금한 날, 혼자 밥 먹는 날...
그런 날 나는 아이가 되었다가 어른이 되었다가 과학자가 되었다가 바람이 되었다가 뱀이 되기도 합니다.
동시를 쓸 수 있게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내 마음속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고운 눈으로 봐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생명을 주신 부모님께 이 영광을 돌리며 하루하루 더욱 성장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시 심사평
과감하고 섬세하기 위해 많이 망설이고 오래 서성이시길
동시 심사평: 심사위원/김미희(동시작가)
더러 심사를 하게 됩니다. 응모하는 사람일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입니다. 응모작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응모작들이 고만고만합니다. 제가 그동안 응모했을 수많은 과정 속 제 작품들이 그랬겠구나 싶습니다. 흠이 눈에 더 잘 띕니다. 하나만 골라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리되나 봅니다.
예심을 거쳐 상대적으로 흠이 덜한 11분의 작품, 55편이 제게 왔습니다. 휘리릭 읽어보기도 하고 더듬듯이 한 행 한 행 읽기도 하고 아침에도 읽어보고 밤에도 읽어보았습니다. 그렇게 11권을 읽듯이 55편을 읽었습니다. 제 마음을 건드리고 간 작품은 이렇습니다. 아마 예심을 하신 선생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이 작품들 덕분에 어려운 예심을 통과하셨을 테지요.
하나하나 불러드리는 이유는 시작인 만큼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우리 모두 시가 될 말들이 오는 길목에 서 있었는데 이번엔 내 차례가 아니었나 보다. 더 간절하게 부른 이에게 먼저 갔나보다 여겨주십시오.
<뚝> 외 4편을 응모하신 5번 님의 ‘스타킹의 기분’은 초등 어린이의 생활에서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기차와 터널을 떠올린 발상이 새롭습니다.
<우산꽃> 외 4편을 응모하신 7번 님의 ‘민들레’는 꽃방석이 닳고 낡아서 솜털이 날린다는 과정까지 끌고 간 것도 좋고 씨앗을 낡은 방석에 빗댄 비유가 참 좋습니다.
<행복한 우리 동네> 외 4편을 응모하신 27번 님의 ‘오타의 가르침’에서 특히 시를 짜는 솜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들꽃 탐구 시간> 외 4편을 응모하신 52번 님의 ‘700원’은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고 마무리 반전이 돋보입니다.
<아버지의 영어> 외 4편을 응모하신 40번 님의 ‘물의 입’은 끝까지 능청스러운 어법을 유지한 것이 좋았고 ‘오줌 참기’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읽혀서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물 파는 할머니> 외 4편을 응모하신 1번 님의 ‘나물 파는 할머니’는 시적 표현들이 유려하여 밑줄을 긋고 싶게 했고 ‘선장’ 시는 잔잔한 감동과 ‘명랑’이 읽혔습니다.
<소나기 화살> 외 4편을 응모하신 36번 님의 ‘소나기 화살’은 소나기를 화살로 본 것은 좀 식상할 수 있지만, 과녁을 맞히고 점수를 획득하게 하는 대상들을 점층적으로 열거한 것이 재치 있고 소나기를 완벽하게 피한 나를 높은 점수의 과녁으로 집중시킨 것에서 내공이 보였습니다. ‘책가방’ 또한 아이의 심리를 잘 포착했습니다.
이런 장점을 가진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으로 올리고 싶은 작품은 김치참치덮밥’외 4편을 응모하신 44번 님의 ‘노랑나비’, ‘김치참치덮밥’입니다.
‘노랑나비’에서 시인은 서서히 줌인(zoom in)하여 민들레에 앉은 노랑나비를 주인공으로 비춥니다. 쉬이 눈여겨보지 않을 들꽃인 민들레에게 역시 작고 여린 노랑나비가 찾아갑니다. 양옥집이 있는 풍경 속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노랑나비가 민들레에 내려 날개를 접는 모습을 보며 따스함에 눈을 감고 싶어지는 오후를 선물 받습니다. 좁은 모퉁이를 환하고 큰 세계로 만드는 일을 시 한 편이 해냅니다. ‘나’는 길고양이인가 했더니 개이고 개인가 했더니 할머니 손을 잡고 가는 꼬마이고, 꼬마인가 했더니 꼬마 옆 민들레를 찾아온 노랑나비입니다. 끝까지 긴장하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존재함을 조사를 다음 행으로 미루어 엮는 기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김치참치덮밥’은 편의점 식품으로 끼니를 이어야 하는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정성이 깃든 밥이 아닐지언정 배고픔을 잊게 하는 식사라는 것에 긍정을 부여합니다. 아픔을 밀어내고 기어이 씩씩해지려 합니다. 울컥하는 여운을 줍니다.
‘비밀번호’는 코로나19의 전염병으로 닫힌 세계, 격리된 지구를 자물쇠라고 말합니다. 지구가 활짝 열릴 비밀번호를 어떻게 찾을지를 묻습니다. 그 외 ‘고드름’이나 ‘거미와 앵두나무 꽃잎’ 또한 시를 향한 시인의 서성임이 오래되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오늘은 목 놓아 ‘브라보’를 날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당선을 마음 모아 축하드립니다.
우리에게 올 낱말과 문장 앞에서 많이 망설이고 서성이기를 바랍니다. 망설임으로 꽉 찬 시간 속에 잉태된 언어들이 시의 근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만나지 못했다고 내일이 없는 것이 아니듯 이번 당선이 빗겨 갔다고 다음이 없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문장이 올 것을 믿습니다.
<동화 당선작>
진짜 강아지 콩이
“이걸로 주세요.”
한참 둘러보던 단발머리 아줌마가 나를 가리켰다. 내게도 주인이 생겼다. 가게 아저씨가 꼬리 아래에 있는 잭을 뽑았다.
“우리 진우 사진이랑 옷이에요.”
아저씨가 물건을 받아 내 눈앞에 놓았다. 옷으로 코를 덮었다. 뭉근한 땀 냄새가 훅 들어왔다. 아저씨가 혀 밑에 숨겨져 있는 세팅 버튼을 눌렀다.
온몸에 전류가 돌았다. 렌즈가 진우의 얼굴을 인식했다. 기억 회로는 진우의 냄새를 저장했다.
“혹시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하는 기능은 있나요?”
“이 모델은 짖는 소리가 약하고 모든 사람을 잘 따라요. 지킴이 기능은 옵션을 추가해야죠. 더 진짜처럼 보이고 비쌉니다.”
아저씨가 허허 웃었고 아줌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겠네요.”
아줌마 차를 타고 아파트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진우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강아지다!”
진우는 바로 나를 안아 쓰다듬었다. 입을 조금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졸라도 안 사 주시더니 어쩐 일이에요?”
“어……. 네 수학 점수가 조금 올랐잖아. 다음에는 백 점 받으라고 데려왔어.”
엄마는 조금 당황한 듯 얼버무렸다. 진우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네 이름은 콩이야. 눈이 참 까맣고 반짝거리는구나!”
이름이 촌스러웠다. 고개를 저으려고 했는데 진우가 뺨으로 내 배를 문질렀다. 불편해서 버둥거렸다. 진우는 목젖이 보이도록 깔깔댔다.
나는 최첨단 인공 지능 강아지다. 털이 보드랍고 밥도 먹을 수 있다. 잠도 자고 똥도 싼다. 사실 진우가 눈이라고 부르는 건 렌즈다. 내 임무는 아이들 감시다. 부모들은 집을 비운 사이에 아이들이 쓸데없는 짓을 할까 봐 걱정한다. 나는 실시간 영상을 부모들에게 전송한다. 아이들은 내가 진짜 강아지인 줄 안다.
“작지만 잘 훈련받았어. 물거나 짖지 않아. 먹이는 이걸 주면 돼.”
엄마가 상자를 열었고 진우는 사료 포장을 뜯었다. 진우가 물통을 가져오자 엄마가 손을 저었다.
“물은 안 돼. 이 종은 가정용으로 많이 개량되어서 좀 특이하대. 아무 물이나 잘못 마시면 장염이나 피부병에 잘 걸린대.”
엄마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물을 먹으면 고장이 난다. 진짜 강아지와 딱 하나 다른 점이다.
“그럼 목마를 때는 어떻게 해요?”
“이 밀봉된 정제수를 가끔 먹이면 돼.”
엄마가 물약처럼 생긴 걸 꺼냈다. 투명하게 찰랑거리는 그건 사실 기름이었다. 이음새를 부드럽게 해주는 기름.
“물 때문에 아파서 병원에 많이 온대. 조심해.”
진우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피아노 학원 늦겠다. 빨리!”
엄마의 말에 진우가 허둥지둥 현관문을 나섰다. 그 와중에 내게 뽀뽀를 해주었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진우가 다문화 애를 친구라고 데리고 왔지 뭐야. 게임도 몰래 하는 것 같고 겸사겸사 감시 카메라 강아지 샀지. 요새 아는 사람들은 다 산대.”
그 친구가 얼마나 나쁜 아이일까 추측하며 앞다리를 쭉 뻗었다. 빠른 속도로 전류가 돌았다. 감시 대상이 없어서 잠시 수면 모드로 들어갔다.
다음날 오후, 진우가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콩이야! 보고 싶었어.”
진우는 나를 안고 거실을 뒹굴었다. 등을 쓰다듬는 진우의 손길이 나쁘지 않았다. 잠시 후, 진우는 부엌에서 가져온 빵 봉지를 옆에 두고 컴퓨터 게임을 시작했다. 모든 장면이 그대로 진우 엄마에게 전송되었다.
띠리리링.
진우가 핸드폰을 받았다.
“어, 엄마! 아니 아니. 숙제하고 있었어요.”
핸드폰 너머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우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수그린 어깨 때문에 몸도 작아 보였다. 진우가 내게 다가왔다. 눈치챈 건가 싶어 움찔했다. 그런데 진우는 나를 꼭 안았다. 울먹임이 느껴졌다. 나는 내 임무를 잘 해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텔레비전으로 실랑이를 했다. 결국 그건 창고로 갔다. 어떤 날은 떡볶이 같은 불량 식품을 먹어서 혼났다. 그럴 때마다 진우는 나를 가만히 안았다.
“콩이야, 우리 엄마는 내가 조금만 다른 걸 하면 귀신같이 알아.”
머리 위에 뭔가 톡톡 떨어졌다. 진우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눈물 한 방울이 내 혀에 떨어졌다.
지지 지지직. 나만 아는 작은 파도가 느껴졌다.
회로가 살짝 녹았다. 몸이 따뜻해지더니 가슴 부분이 뜨거워졌다. 보호 기능이 시작되어 동작이 느려졌다. 허공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진우 품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졸림 기능이 작동됐다.
“아, 눈물 묻었네!”
진우가 옷으로 내 입을 문질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우는 훌쩍거리며 나를 한참 바라봤다. 곧 책상에 앉았다. 숙제하는 모습을 보니 내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숙제하는 진우 옆을 맴돌았다. 그런데 가슴이 살짝 죄어왔다. 미안함이라는 감정이었다. 물에 닿으면서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앞발로 진우의 종아리를 톡톡 쳤다. 진우가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집에 오면서 특수 개껌을 사 왔다.
“우리 콩이 데려오길 참 잘했어. 이거 먹으렴.”
나는 꼬리를 흔들었다. 특수 간식은 렌즈를 깨끗하게 해주고 전송 속도도 높인다. 진우는 내가 간식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우의 검은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진우는 매일 저녁 나와 산책을 했다. 진우는 엄마 앞에서와 달리 큰 소리로 웃었다. 같이 밖에 나올 때면 깃털이 몸을 간질이는 기분이었다. 진우를 보기만 해도 꼬리를 흔들고 싶었다.
어느 날, 진우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손을 폈다.
“콩이야, 이거 너만 보여주는 거야.”
손바닥이 환하게 빛났다.
“민우랑 뽑기 했어. LED 탱탱볼이야. 멋있지?”
진우가 공을 바닥에 던졌다 받았다. 나는 천장을 봤다. 진우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구석 자리를 찾아갔다. 비밀 하나는 지켜주고 싶었다. 엄마는 분명 조잡한 장난감이라고 싫어할 거다. 진우가 탱탱볼을 꺼낼 때마다 소파 옆에 숨었다.
진우는 여전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침대에서 과자를 먹고, 정신없이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야단을 맞고 주눅 든 얼굴로 나를 안았다.
“콩이야, 가끔 네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 넌 어쩜 이렇게 훈련받은 대로 잘 지키니? 잘 먹고 잘 자고 짖거나 물지도 않고…….”
나는 머리로 진우의 배를 문질렀다. 진우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꼭 안았다. 진우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났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진우가 내게 속삭였다.
“콩이야, 오늘 친구한테 이상한 말을 들었어. 자기 집 강아지가 알고 보니 감시 카메라가 달린 로봇이었대. 으아, 소름 돋아! 우리 콩이는 이렇게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게 느껴져서 참 좋아.”
눈물을 삼킨 후 가슴 회로에 약한 진동이 생겼다. 진우는 한 번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진우가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몸을 쭉 늘렸다. 햇살이 몸을 데우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느려졌다. 졸음 기능이 시작되고 수면 모드로 들어갔다. 책 넘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악!”
얼마나 잤을까. 진우의 비명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진우가 날 덮고 있어서 꼼짝할 수 없었다.
“콩이야, 괜찮아?”
진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다리를 절뚝거렸다. 주변에는 책과 깨진 유리가 떨어져 있었다.
“탱탱볼을 잘못 던져서 액자가 떨어졌어. 큰일 날 뻔했다.”
진우 발목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유리에 움푹 파였다. 숨이 턱 막혔다.
‘나 다칠까 봐 그런 거야? 미안해, 진우야.’
내 말은 “멍멍 멍멍”으로 나올 뿐이었다. 진우 다리를 핥아주었다.
띠리리링
진우의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놀랄까 봐 참고 있었던 것이다.
곧 엄마가 왔다.
“집에서 왜 공 던져! 콩이는 왜 그걸 보지도 않고…… 위험하면 피해야지, 콩이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의 눈길이 싸늘했다. 나는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진우는 병원에 다녀왔다.
“나 일곱 바늘 꿰맸다!”
돌아온 진우는 날 보며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불 꺼진 밤, 진우가 속삭였다.
“콩이 네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야.”
그날 이후, 진우를 멀리했다. 진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지 않았다. 진우가 야단맞는 게 싫었다. 그래서 거실에 숨어 있거나 코를 박고 밥을 먹었다.
“콩이야, 너 왜 그래? 섭섭해.”
진우는 구석에 숨어 있는 나를 꺼내 등을 쓸어주었다.
다리를 다친 후로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낮잠을 자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진우 엄마가 조금 봐주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 진우가 친구를 데리고 왔다.
“민우야, 넌 이번 수학 몇 점이야?”
“30점. 14개나 틀렸는데 언제 공책에 적지?”
“내가 도와줄게!”
둘은 소파에서 방방 뛰었다. 말로만 듣던 민우였다. 얼굴이 갈색이고 눈이 움푹 들어갔지만 웃음소리가 똑같았다. 진우의 표정은 어둠을 물리치며 올라오는 해처럼 환했다. 진우와 민우는 소파에서 과자를 먹었다. 발을 굴러가며 웃었다. 진우가 민우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 줬다. 형제처럼 다정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계속 보았다.
삐삐 삐삐 삐삐 비비
현관문 여는 소리였다. 엄마는 전화도 없이 일찍 퇴근했다. 민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엄마 걱정하시겠다. 그만 돌아가렴.”
한겨울 바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였다. 민우는 비 맞은 인형처럼 축 늘어져 돌아갔다. 진우도 엄마의 표정에 고개를 숙였다.
“내가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
“정말 좋아하는 친구예요. 대체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그게 중요해? 쟤는 공부도 못하고…….”
“왜 그런 식으로 말해요? 정말 착한 친구란 말이에요!”
엄마는 진우를 노려봤다. 화가 나서 감당할 수 없다는 눈길로 콧김을 뿜으며.
내 탓이다. 내가 영상을 보냈기 때문이다. 갑자기 가슴을 쿡 찌르는 기분이 들었다. 회로가 엉겼나? 나는 거실 구석을 맴돌았다.
톡, 토독. 진우가 눈물을 흘렸다. 나 때문에 온몸을 쥐어짜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향해 달렸다. 아주 세게 종아리를 물었다.
“왜 이래? 저리 가!”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막대기로 내 등을 때렸다.
“콩이야, 왜 그래?”
진우가 달려와 나를 붙잡았다. 엄마가 다리를 탈탈 털며 막대기를 휘둘렀다.
“무는 기능은 없댔는데! 고장이야 뭐야?”
“멍멍 멍멍” 짖으며 엄마에게 떨어졌다. 엄마가 막대기로 내 등을 때렸다.
“엄마! 콩이한테 그러지 마!”
놀란 진우가 나를 안았다. 달렸다. 헐떡이는 숨이 느껴졌다.
‘진우야, 나는 강아지답지 못했어. 너는 너답게 놀아!’
진우에게 꼭 매달렸다. 진짜 강아지처럼. <끝>
<동화 당선 소감>
송선혜
이제야 잠들어 있던 글 하나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될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 동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즐겁던 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헤매고 있는 순간 전화가 왔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왔는데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조금만 더 일찍 소식을 전해드렸다면 직접 읽으셨을 텐데요. 어릴 때 가족들 다 같이 서점 나들이하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저를 저이게 해 준 가족들 감사합니다. 늘 옆에서 지지해주는 남편과 제 글의 원동력 서준이에게도 사랑한다는 말 남기고 싶습니다.
처음 동화의 길을 열어준 김재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불평불만과 걱정만 쏟아내는 저에게 긍정의 기운을 주셨습니다.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왜 어른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리나
동화심사평 : 심사위원/정진(동화작가)
아이는 어른과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고 어른의 과거입니다. 아직 어른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아이가 어른을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때 아이의 시절을 거친 어른이 더 아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화는 ‘어린이의 눈빛과 마음’을 간직한 어른이 쓰는 작품이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총 8편이었습니다. 그 중에 3편을 놓고 당선작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세 작품의 공통된 특징은 현실의 어린이들에 대한 작가의 염려와 걱정이 많이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어른들이 원하는 욕망의 주체가 되어 부모가 짜놓은 사교육 지도를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 아이의 진정한 욕망과 놀이의 욕망은 전혀 배려 받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날개를 꺾어드립니다>란 작품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비밀노트에 시를 쓰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주인공 소년이 등장합니다. 진정한 글쓰기의 효과를 느끼는 주인공의 일탈은 경쾌하고 즐거운 반항으로 나타납니다. 마지막에 뉴스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는 재치는 신선하고 날카로웠습니다. 아쉬운 점은 내용이 다소 가볍고, 신인에게 기대하는 소재의 신선함이 약합니다.
<코비의 기억 보고서>는 반려 견 코비를 잊지 못하는 12살 소년이 ‘펫 메모리’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가상현실로 코비와 재회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의 의도된 반전은 가상현실로 만난 코비가 화면에 뜨는 자막으로 자신의 감정을 알려 주는 대목입니다. 코비는 사실은 주인공 소년을 겁내고 좋아하지 않았으며, 나중에 소년의 부주의함 탓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말로만 반려 견을 사랑했고 사실은 반려 견을 진정으로 보살피지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잘못을 깨달은 소년의 마음은 아프기만 합니다. 아쉬운 점은 이야기의 전개가 문제 제기로 그치는 면이 있습니다. 내포독자를 배려하는 동화적인 카타르시스와 결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진짜 강아지 콩이>는 최첨단 인공지능 강아지가 주인공입니다. 정말 강아지랑 비슷하고, 딱 하나 다른 점은 ‘물’을 먹으면 고장이 난다는 겁니다. 맡은 임무는 오로지 ‘아이들 감시’이며, 부모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아이들이 쓸데없는 짓을 할까봐 걱정해서 생긴 존재입니다. 이 강아지에게 ‘콩이’라는 순박한 이름을 지어 준 소년은 자신이 감시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정말 강아지인 줄 알고 무척 좋아합니다. 소년의 눈물 때문에 ‘콩이’는 회로가 살짝 녹으면서 고장이 나 감정이 생겨 버립니다. 그래서 취조하는 형사처럼 소년을 몰아대는 엄마의 종아리를 물어 버립니다.
위의 세 작품 중에서 당선작으로 <진짜 강아지 콩이>를 뽑게 되었습니다. 다른 두 작품에 비해 구성이 탄탄하고 메시지도 작위적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삶의 자리를 되찾아주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따스하고 자연스럽게 형상화 되었습니다. 특히 ‘콩이’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면서 희망을 주는 캐릭터입니다. 더 이상 ‘감시자’가 아니라 스스로 ‘소년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임무를 맡는 장면에 독자들은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어린이의 눈빛과 마음’을 간직하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작가가 되기를 응원하겠습니다.